20년 전 한류드라마가 아시아에서 큰 붐을 일으킨 적이 있다. 그리고 지금 또다시 세계적인 붐을 일으키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20년 전과는 조금 다르다. 20년 전에는 사랑이나 로맨스를 주제로 다룬 드라마가 유행한데 비해 지금 유행하는 것은 그런 정서적인 주제와는 거리가 멀다. 2년 전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패러사이트'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약간의 코미디를 섞어가며 현대사회를 통렬하게 비판한 드라마이다.
오징어 게임! 오징어 게임은 한국인이라면 어릴 적에 한번쯤 친구들과 해본 경험이 있는 놀이 중 하나이다. 드라마에 출연한 참가자들은 상금을 걸고 이 간단한 게임을 시작한다. 이기면 참가자 1인당 걸려 있는 상금 1억원을 받지만 지면 죽는다. 참가자 전원의 목숨의 대가로 받는 상금 456억원을 손에 넣거나 아니면 죽는 게임이다.
오징어 게임은 마치 인생의 게임처럼 보인다. 사람은 인생에서 몇 가지 선택을 강요받는다. 스스로의 책임에 달려 있는 '선택'과 스스로 선택할 여지가 없는 '숙명'이다! 이것이 사람의 인생을 결정한다. 자신의 선택에 따라 사람의 인생은 크게 달라진다.
오징어 게임에 모인 사람들은 선택을 잘못한 사람들이다. 이 게임에서 새로운 인생의 게임이 시작된다. 용서 없는 사느냐 죽느냐의 게임이다. 이 게임을 통해 참가자들은 자신의 본성을 드러낸다.
양심적으로 살고자 했으나 운이 없어 또는 잘못된 선택으로 여기까지 온 주인공! 그는 생사를 가름하는 게임 중에도 양심적으로 살고자 몸부림친다. 참가자 중 약자처럼 보이는 사람을 동정한다. 그는 어떤 게임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 채 짝궁을 선택한다. 그런데 짝궁과 자기 중 어느 한쪽만이 살아 남는 선택을 강요 당했을 때 그의 본성이 드러난다. 상대를 속여서라도 살아남으려 한다. 일말의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도.
한편 세상에서 살인범으로 낙인찍혀 살던 젊은 여성이 등장한다. 상습적으로 DV(폭력)를 휘둘러 어머니를 죽인 아버지를 살해한 것이다. 세상에서는 불량아요 살인범이다. 사는 목적도 의미도 잃어버린 그녀는 탈북자인 젊은 여성과 짝이 된다. "반드시 이길 수 있다"면서...
서로 지난날을 얘기하며 그녀는 다시 한번 삶에 대한 희망과 즐거움을 발견한다. 그러나 이젠 너무 늦었다. 그녀는 남은 생을 의미 있게 살고자 탈북자 여성을 위해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 자신의 삶은 의미도 없고 아무런 가치도 없으니 탈북자 여성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아, 이보다 더한 양심이 있을까?
마지막 게임에는 주인공과 그의 동생만 남는다. 이 드라마의 제목인 오징어 게임을 한다. 공격과 수비로 나뉘어 공격이 수비를 뚫고 첫 출발지인 오징어 머리 홈으로 골인하든가 아니면 방어벽을 뚫지 못하고 오히려 밖으로 밀려나 죽든가 승패가 결정된다. 그들은 마지막 만찬에서 스테이크를 썰었던 나이프를 소지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사느냐 죽느냐 서로 죽이는 싸움이 시작된다. 양쪽 다 상처를 입고 결국에는 동생이 쓰러진다. 목숨을 거두려는 순간 주인공은 다시 한번 양심에 따라 살고자 "이제 그만두자"며 손을 내민다. "둘 다 살아서 돌아가자"라고 호소하면서. 비록 상금은 받지 못하더라도. 그러나 마지막 순간 동생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형, 고마워"라는 말을 남기고.
과연 인간은 죽는 순간 어느쪽을 선택할 것인가?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을 것인가?
이 게임의 주최자는 세계적인 대부호들이 다. 자본주의 사회의 성공자들! 피라미드의 정점에 도달한 듯한 사람들이다. 주체할 수 없는 돈으로 하고 싶은 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풍족한 생활을 하면서도 인생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그들은 인간의 목숨을 장난 삼아 흥미를 느껴보고자 한다.
게임 종료 후 주인공은 상금 456억원을 받는다. 그런데 한 푼도 쓸 수가 없다. 455명의 목숨의 대가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너무나 무거운 대가다. 주인공의 짝꿍이었던 노인은 게임 주최자 중 한 명이었다. 노인은 부자가 되었지만 사는 게 지루하다고 한다. 인생이란 필사적으로 살아가는데 가치가 있고 의미를 느낄 수 있다면서 다시 한번 그 맛을 느껴보고 싶었다고 한다.
노인은 죽음을 눈앞에 두고 주인공과 내기를 한다. 길거리에 쓰러진 사람을 돕는 사람이 있을까 없을까? 노인도 끝까지 인간의 양심이란 걸 믿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주인공의 양심을 믿고 싶었을 것이다. 죽는 순간 노인의 패배는 그에게 안도감을 준 것은 아닐까.
주인공은 상금을 쓰지 못하고 그 돈과 탈북자 여성이 부탁했던 그녀의 동생을 마지막 게임에서 죽은 동생의 어머니에게 맡긴다. 그리고 길거리에서 다음 게임에 참가하고 싶어하는 사람을 만나자 그를 제지한다. 자기와 똑같은 경험을 하도록 내버려 두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대신 자신이 참가하려고 한다. "그만두게 하겠다"는 생각으로 가는 것일까, 아니면 게임의 자극에 마음이 끌린 것일까. 다시 한번 인간의 양심을 묻는다. 과연 인간의 본심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자본주의사회, 경쟁사회의 종착지, 현대 문명사회를 얘기하고 있는 것 같다. 성선설과 성악설, 자본주의 사회, 약육강식의 사회에서 인간은 어디까지 선과 양심에 따라 살 수 있을까. 게임에서는 "여기서는 모두가 평등하다"고 거듭 강조한다. 정해진 규칙에 따르는 게 선이고 이기는 게 우선된다. 그 선을 따라 살면 양심의 가책을 느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사회 안에서 정해진 규칙에 따라 사는 것이 선이라고 한다. 과연 그것이 진정한 선일까. 인간의 본심은 사회의 룰에 따르는 것만이 선이라고 말할까.
이 드라마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이유는 단순한 살인 게임이 아니라 등장 인물들 중 누군가가 자신의 처지와 겹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모두가 지금의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의문, 한계를 느끼고 인간의 본심으로 되돌아가려고 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는 현실사회를 뒤돌아볼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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