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대표하는 위인 '해리엇 터브먼'
미국을 대표하는 위인 중 한 사람인 해리엇 터브먼(1820 또는 21~1913)은 메릴랜드주 농장에서 흑인 노예 부모로부터 태어난 열성적인 기독교 신자이자 노예해방운동가이며 여성해방운동가였다. 그녀의 위대한 삶은 진정한 리더는 성별을 불문하고 용감하고 이웃의 고통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미국의 독립전쟁 전 노예제도를 인정했던 일부 주들은 노예들에게 잘못된 기독교의 권위를 주입하고 하나님 앞에서 욕망을 부끄럽게 여기고 순종과 근면을 미덕으로 삼아야 한다고 세뇌교육을 했다. 노예제에 묶여 있는 한 노예들은 단지 주인의 '소유물'에 불과했으며 주인의 뜻대로 움직이는 존재였을 뿐 혹사를 당하든 매를 맞든 팔리든 절대 반항할 수 없었다.
터브먼은 15살 때 큰 사고를 당했다. 어느 날 흑인 노예가 주인의 허가 없이 외출하여 가게에 들른 적이 있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주인은 당장 그를 끌어내 묶으라고 터브먼에게 명령했다. 그녀가 거절하자 그 틈을 이용해 도망가려는 노예를 향해 격분한 주인이 2파운드(0.9키로)짜리 분동(分銅)을 집어 던졌다. 터브먼이 그를 감싸기 위해 추격자들이 달려드는 가게 입구를 가로막은 순간 분동이 도망자가 아닌 그녀의 머리에 맞았다. 의식을 잃고 쓰러진 그녀는 생사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중상을 입었다.
그로 인한 후유증으로 터브먼은 계시를 받는 의식 레벨로 알려진 트랜스(초인식) 상태에 빠지는 기면증을 앓게 되었는데 이후부터 분명히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그녀는 오로지 '하나님의 음성'에 의지하여 거침없는 위험한 행동으로 불가사의한 기적을 일으키는 지극히 '비합리적'이고 '직관적'인 존재가 되었던 것이다.
1849년 노예로서 비참한 나날을 보내던 터브먼은 주인이 사망하자 자신이 팔려갈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탈출을 꺼리는 남편을 남겨두고 자유를 찾아 혼자서 160킬로 떨어진 노예제가 폐지된 펜실베니아주 필라델피아로 탈출했다. 이 때 그녀의 탈출을 도와준 사람은 바로 노예해방운동가이자 비밀조직 '지하철도'의 맴버였던 퀘이커 교도였다. 필라델피아에서는 레비 코핀, 토마스 개렛, 프레더릭 더글러스, 존 브라운 등 노예해방운동가들과 교류했다.
비밀결사 '지하철도' 여성지도자
마침내 탈주한 노예를 돕는 일을 불법화하는 '도망노예법'이 1850년에 제정되었다. 터브먼은 노예들에게 자유를 찾아 주기 위해 결성된 비밀결사 '지하철도'의 여성지도자로서 스스로 목숨을 걸고 남부의 노예주와 노예제가 폐지된 북부의 자유주 또는 캐나다를 왕래하며 노예해방운동을 전개했다.
캐나다까지 1000km 거리를 이동하며 노예를 구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조직원들에게 터브먼은 "거리는 상관없다. 안전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은 모른다. 남부에서 가족들과 헤어져 살아야만 하는 노예들에겐 '자유 아니면 죽음'이다"라고 호소했다. 강하고 담대하게 어떤 난관에도 굴하지 않고 도전하는 터브먼! 성별은 상관없다!! 이것이 진정한 리더의 자세가 아니겠는가!!!
이렇게 1830년부터 1865년까지 미국에서 완성된 '지하철도' 경로도는 실제 열차가 달리는 철도가 아니라 흑인 노예를 자유주와 캐나다로 탈출시키는 비밀 경로였다. 음식과 의류 공급자 및 안전한 은신처를 연결하는 네트워크가 구축되었고 '차장'이라고 불린 인솔자가 도망친 노예들을 데리고 그곳을 찾았다. 적어도 3만명에서 많게는 10만명에 달하는 흑인 노예들이 '지하철도'를 이용해 캐나다로 탈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나님 음성' 듣고 동족을 구한 '흑인 여성 모세'
하나님에 의지하여 행동하고 하나님을 믿고 투쟁하며 자신의 목숨을 돌보지 않고 노예들의 안식처를 마련해준 터브먼은 그 공로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여성 모세' 또는 '흑인 모세'라고 불렸다. 고대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이끌어낸 이스라엘의 민족 지도자 모세처럼 그녀 또한 동족을 이끌어 해방했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녀는 1850년~1860년 사이에 약 13회에 걸쳐 남부의 노예주를 왕래하며 예지력을 발휘하여 부모를 비롯한 70명 이상의 노예 '승객'들을 한 번도 붙잡히지 않고 이끌어냈다. 그녀 또한 단 한 번의 실패도 없이 '차장'으로서 성공을 거두어 이 활동의 리더적인 존재가 되어갔다. 당시 그녀와 함께 '지하철도' 운동을 전개했던 1천여명의 기독교인들은 그들의 인권운동이 곧 하나님의 뜻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남북전쟁과 미국 최초 여성 지휘관
1861년 남북전쟁이 발발하자 흑인들도 북군에 가담하여 총을 들었고 그녀 또한 요리사와 간호사로 일하면서 북군의 스파이와 무장 척후병으로 활약했다. 터브먼은 '지하철도'의 '차장'으로 활동한 경험을 통해 지역 사정에 정통했기 때문에 척후병으로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녀는 전쟁터에서조차 한번도 임무에 실패한 적이 없었다.
노예 출신을 스파이로 활용하는 전략을 극비리에 추진했던 링컨 대통령은 육군장관과 해군장관에게조차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당시 비밀 스파이 조직을 총괄한 사람은 윌리엄 수어드 국무장관이었다. 그의 자택이 '지하철도'의 '정거장'(은신처)으로 쓰였던 시절에 터브먼과 대면한 인연이 있었다. 이렇게 노예 출신들이 스파이로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노예제를 지지했던 남부연합이 그들의 지능을 과소평가한 때문이기도 했다.
남부연합 관할지역에 잠입한 스파이는 노예들로부터 남군의 전략에 관한 정보를 입수했다. 예를 들면 남군은 북군의 배를 폭파하기 위해 화약을 채운 술통을 기뢰로 사용했는데, 그것을 어디에 부설했는지 노예들이 스파이에게 가르쳐 주었다. 이같은 스파이들의 정보는 '검은 속보'라고 불렸다. 그러나 법적으로 아직 '자유인'이 아닌 도망자 신세였던 그들이 남부연합 관할지역에 잠입해 들어가는 데는 큰 용기가 필요했다. 특히 노예제 폐지론자로 유명해진 터브먼에게는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하지만 그녀는 "자유롭고 싶다. 다른 사람들도 자유롭게 해주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품고 있었기에 자신의 목숨조차도 아까워하지 않았던 것이다. 1863년 여름 북군이 사우스 캐롤라이나 컴바히 강면 쌀농장을 습격하는 작전에서 그녀는 몽고메리 장군을 돕는 미국 최초 여성지휘관이 되어 도주한 남군 영주가 두고 간 노예 750명 가량을 배에 태어 북군 영지로 이송했다.
당시 습격작전의 에피소드가 전해지고 있다. 접근하는 터브먼의 배를 향해 늙은 흑인 노예가 달려가고 있었다. 그 순간 그는 '81세나 먹은 나이에 굳이 여기서 도망쳐야 할까?'라고 잠시 망설였다고 한다. 번개처럼 스쳐가는 생각이었다. 후일 노인은 이렇게 회고했다. "예속의 땅을 버리는 데 너무 늦은 나이는 없다."
평가받지 못한 공적
남북전쟁이 끝나고 남부에서 노예해방이 선언된 뒤에도 터브먼은 흑인과 여성의 권리 신장을 위한 순회강연 등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비공식적으로 북군에서 3년간 간호병, 요리사, 밀정, 척후병으로 활약했던 사실이 문서로 남아 있지 않아 정부로부터 연금도 받지 못한 채 곤궁한 생활을 면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1869년 자서전 '해리엇 터브먼의 인생 이야기'가 출판되어 경제적 어려움은 크게 개선된 반면 역사 자료로서는 과장이나 미화가 많았다고 한다.
나이가 들자 그녀는 뉴욕으로 거점을 옮겨 79세부터 지급되기 시작한 미망인 연금(연 240달러)을 밑천으로, 1908년 오번에 시설을 짓고 부모없는 노예 출신들을 살게 했으며 그들과 같이 일하면서 흑인 전사자 유족들을 지원하는 활동을 펼쳤다. 만년에는 자신도 그 집에서 기거하다가 1913년에 폐렴으로 사망했다. 향년 91(93?)세였다.
필라델피아의 노예해방운동가 존 브라운은 터브먼을 '터브먼 장군'이라고 칭하면서 "이 대륙에서 가장 용감했던 인물"이라고 평했다. 또한 프레더릭 더글러스도 "존 브라운 외에 노예 탈출을 돕기 위해 터브먼 이상으로 위험하고 어려운 일을 해낸 인물은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또한 '해리엇 터브먼 시크릿 에이전트'의 저자 토마스 앨런은 "그녀는 남북전쟁에서 굴지의 여걸이었다. 그러나 그 공적은 전후 제대로 평가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미국 20달러 새 지폐 최초 흑인 여성
2016년 20달러 새 지폐의 디자인을 놓고 60만명 이상을 대상으로 실시한 호감도 조사에서 터브먼이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이에 오바마 대통령과 재무장관은 터브만을 지폐의 디자인으로 공식 채택하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2020년 터브먼을 표면에 새기고 지금까지 사용된 앤드류 잭슨을 뒷면에 새긴 20달러 새 지폐가 발행될 예정이었으나, 트럼프 정권이 들어선 이후 이 계획 자체가 재무부 홈페이지에서 자취를 감췄다. 트럼프 개인이 앤드류 잭슨의 팬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지난 1월 25일 사키 바이든 대통령 대변인은 재무부를 통해 20달러 지폐의 초상을 터브먼으로 변경하는 절차를 재개할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 기간 중 분열된 국가를 수복해야 한다고 호소한 바 있으며 각료 인사에 있어서도 인종과 성별 등 다양성을 고려하여 포진하고 있다. 터브먼이 사망한 이후 긴 세월이 흘러 마침내 그녀의 명예가 회복되어 가고 있다. 예전 같으면 빛을 발할 수 없었던 인물이 미국의 역사를 대표하는 지폐의 얼굴이 되는 그런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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