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절대주의와 마녀사냥】일방향형 '신정(神政)정치'→쌍방향형 '신인민주정치' 지향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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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사냥은 중세 말부터 근대 초까지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을 휩쓴 인류 최대의 비극이었다. 마녀사냥은 기독교 절대주의를 강요한 성직자들로부터 시작됐다. 특히 그레고리오 10세 교황(1271~1276)이 정착시킨 가톨릭 사제들에 대한 독신제도가 마녀사냥을 부추겼다고 한다. 사제들이 억압된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 여성들을 마녀로 몰아 화형에 처하면서 대리만족을 느꼈다는 것이다.

마녀사냥 이전에는 나병환자들에 대한 박해가 있었다. '나병환자들이 기독교 세계의 건강한 이들을 죽이기 위해 우물에 독약을 풀었다'는 음모론이 퍼지자 수많은 나병환자들과 그들의 배후세력으로 지목된 유대인들이 화형에 처해졌다. 잘못된 믿음으로 인한 공포는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낳는다. 특히 자연재해나 역병의 창궐로 피폐해진 민심은 더욱 잔혹하게 희생양을 찾도록 부추긴다.

1347년에 흑사병이 유럽을 강타하자 공포에 질린 사람들로 인해 유혈 사태가 발생했다. 당시 유럽 인구의 3분의 1과 유라시아 대륙을 포함해 최대 2억 명가량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되는데, 공포에 질린 사람들은 왜 그런 '대역병'이 발생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공포는 이성을 마비시키는 강력한 마취제이며 이성이 마비되면 마녀사냥을 하고 희생양을 찾게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은 위험과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착각한다.

그들은 흑사병이 신의 벌 또는 공기 중의 사악한 기운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자기 몸을 채찍질하며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가 하면 악마와 함께 흑사병을 퍼뜨린 유대인들을 화형시키는 마녀사냥을 벌이기도 했다. 그동안 악마와 내통했다는 혐의로 희생당한 사람은 독일어권에서 6만여명, 유럽에서는 10만여명으로 추산된다.

마녀사냥은 철저하게 선과 악, 정통과 이단이라는 극단적 이분법을 신봉한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갖거나 행동을 하면 악으로 규정하고 폭력을 정당화해 버린다. 선악 이분법을 활용하면 누군가를 악마 또는 악한 사람들로 규정하고 자신들은 선한 편에 속한다고 믿으면서 자신들이 속한 사회나 공동체를 단결시키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기독교의 역사를 뒤돌아보면 "무조건 이렇게 믿어야 한다"는 강요된 전제 속에서 정통과 이단을 나누기 시작하고 그로 인해 분열되어 가는 고질적인 나쁜 습성들이 깊이 뿌리박혀 있음을 쉽게 간파할 수 있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을 개척한 청교도들도 다른 사람들의 종교적 자유를 인정하지 않고 이미 유럽에서 끝난 마녀사냥을 다시 부활시켰던 것이다.

1656년 두 명의 퀘이커 교도가 종교의 자유를 찾아 영국에서 미국 대륙으로 건너온 후로부터 청교도 사회는 퀘이커교를 이단이라며 탄압하기 시작했는데, 무엇보다도 위계적인 교회 조직을 부정하는 그들의 과격한 평등주의가 청교도 공동체의 질서와 안녕을 심각하게 위협한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퀘이커 교도들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절대 맞서 싸우지 않았다.
 
후일 퀘이커교의 폭력에 반대하는 평화주의와 인권, 교육, 구제사업 등은 미국의 독립선언과 헌법을 만드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독립선언서와 미합중국 헌법이 탄생한 펜실베니아주 필라델피아를 개척한 윌리엄 펜도 바로 퀘이커 교도였다. 그가 제시한 양심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 법 앞의 평등, 종교와 국가를 분리하는 사상들은 건국이념의 토대가 되었으며 미국식 민주주의의 초석이 됐다. 그는 인종과 종교간의 동등권, 여성과 남성의 동등권을 주장했으며 인디언과 평화조약을 협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종교적 신념 때문에 6번이나 투옥되었다.

이처럼 마녀사냥은 기득권을 가진 세력들의 지배수단으로 세습되어 왔던 것이다. 만일 진리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과연 무조건 믿어야 한다는 강요를 전제로 하는 것일까? 하나님은 인간의 자율적 결정을 강요하는 분일까, 아니면 존중하는 분일까? 참다운 신앙이라면 마땅히 자율성에서 출발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나님은 인류의 온전한 구원을 원하지만 그것은 결코 일방적인 강요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설득과 자율성의 상호작용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도 일방향형 '신정(神政)정치'가 아닌 쌍방향형 '신인민주정치'를 지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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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실베니아의 탄생. 윌리엄 펜(오른쪽)에게 펜실베니아에 대한 소유권과 지배권을 부여하는 영국 국왕 찰스 2세(왼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