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나는 대한민국 마지막 황태자비 이 마사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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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자가 구술하고 강용자가 쓴 '나는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비 이마사코입니다'는 열여섯 살 때 한·일 정략결혼의 희생자가 된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비 이방자의 회고록이다. 일본은 조선과 일본의 융화정책으로 두 나라 황실 간의 결혼을 적극 추진하는 정책을 펼쳤다. 그리하여 1916년 조선 왕족과 일본의 황족의 결혼을 통해 두 나라의 결합을 굳건히 한다는 명분 아래 조선의 왕세자 이은과 일본의 황족 이방자(나시모토노미야 마사코)의 약혼이 결정됐다.

이방자는 메이지 천황의 손녀뻘로 어렸을 때부터 활발한 성격의 소유자였으며 학습원 시절에는 동기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열정이 넘치는 여성이었다. 16살 꽃다운 나이의 그녀가 얼굴 한번 보지 못한 한국 남자와 약혼한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신문을 통해서 였다. 자서전 '세월이여 왕조여'에서 당시 그녀의 심정을 헤아려 볼 수 있다.

"이 왕세자 전하와 내가 약혼했다는 주먹만한 활자가 내 이마를 쳤다. '이럴 수가 있나? 내가 왕세자 전하와 약혼을 하다니! 약혼 사실을 신문에서 알게 되다니!' 도대체 납득할 수 없는 사실에 머릿속이 휭휭 돌고 눈앞이 어지러워 활자가 커졌다 작아졌다 했다."

약혼이 발표되고 처음 몇 달 동안 이은과 이방자는 모두 정신적 혼란기를 보냈다. 그러나 이방자가 이듬해 이은의 저택을 방문하여 그와 만나기 시작하면서 둘의 감정은 조금씩 무르익었다. 자서전 '바람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에 그녀의 심정이 녹아 있다.

"뵙기만 하면 좀처럼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뜰을 산책하거나 때로는 아이들이 하는 것처럼 트럼프 놀이를 해보거나 하는 정도였습니다. 그래도 두 번보다 세 번, 세 번보다 네 번, 서로 만날 때마다 마음과 마음이 접근하고 접촉되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1920년 4월 28일, 이은과 이방자의 결혼식이 치러졌다. 일본유학이라는 명목으로 볼모로 잡혀온 이은의 모습을 측은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망국의 한을 되씹으며 몸부림치는 그분을 보며 나는 한·일 융화보다는 외로운 그분의 따뜻한 벗이 되고자 했다. 암담한 인생길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인간으로서 깊은 애정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인간 이은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사랑, 그것은 가장 위대한 승리자가 아닌가?

1923년 9월 1일, 일본 관동지역에 지진이 일어나 수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내부의 혼란과 불만이 고조되자 이를 해소하기 위해 조선인에 대한 대대적인 학살이 자행됐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괴소문을 퍼트려 6천여 명 이상의 무고한 조선인들이 학살됐다. 이 소식을 접한 그녀의 고뇌는 깊어만 갔다.

"나는 전하의 얼굴을 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나도 일본인이므로 이 모든 일이 내 잘못인 듯 죄책감으로 몸이 죄어드는 듯했다. 전하를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엄두도 나지 않았다. 전하와 나는 나라나 피를 초월한 애정과 이해로 굳게 맺어졌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 생각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절실히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과 조선 사이에는 도저히 메울 수 없는 깊은 도랑이 가로놓여 있었던 것이다.

이런 일은 나의 결혼 생활 중 여러번 겪어야 했다. 그럴 때마다 나의 입장은 참으로 괴로운 것이었다. 일본은 나의 친정, 조선은 나의 시댁이다. 어느 곳도 공개적으로 편들거나 비난하거나 할 수 없는 처지인 나는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이 나 자신의 운명만을 슬퍼하며 혼자서 숨이 막히도록 고통을 참아내야 하는 것이다."

정략적으로 맺어진 결혼임에도 불구하고 헌신적인 사랑으로 부부의 연을 이어간 모습이 아름답다. 조선의 운명을 함께 슬퍼하고 고통을 함께 감내해 가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과연 누가 그녀를 일본인이라고 정죄할 수 있을까? 해방 후 이은이 한국에서 냉대를 받고 빈궁해졌을 때도 끝까지 남편을 지켜준 그녀의 강직한 천성과 인내심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고 싶다.

그런데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삶을 고달프게 살아가는 그들을 정작 위로해 주고 손을 잡아 준 것은 한국이 아닌 일본이었다. 익히 알고 있는 사실과는 달리 이토 히로부미는 이은을 못살게 굴지 않았다. 오히려 이은을 데리고 홋카이도를 여행하기도 하고 신지식으로 조선을 문명화시킨다는 이은의 생각을 곧잘 들어줬다고 한다. 이토는 외로운 일본 생활을 견디게 해주는 말벗이 되었다.

이방자는 "내게는 두 개의 조국이 있다. 하나는 나를 낳아준 곳이고, 하나는 나에게 삶의 혼을 넣어주고 내가 묻힐 곳이다. 내 남편이 묻혀 있고 내가 묻혀야 할 조국, 이 땅을 나의 조국으로 생각한다"며 마지막까지 한국인의 아내로서 남편을 지극히 사랑하며 황태자비로서의 역할에 충실한 삶을 살았다.

그녀는 70세에 한국사회의 냉대와 경제난 속에서도 연세대학교 강의실을 빌려 장애인 직업교육과정을 개설한 이후 신체장애자협의회 부회장을 역임하고 장애인 전문 자혜학교를 설립하는 등 사회복지사업에 여생을 바쳤다. 누가 그녀를 일본 여자라고 매도할 수 있을 것인가? 그녀는 한국의 어머니요, 한국인도 인내하지 못할 어려움을 기품과 헌신, 희생으로 이겨낸 인간 승리자이다.

운명을 받아들일 줄 알고 남편을 지극히 사랑했던 이방자였기에 양국의 원수 관계를 풀고 하나로 묶고자 몸부림쳤던 것이리라. 만일 두 사람의 국경을 초월한 사랑이 없었더라면 오늘날 두 나라는 더 먼 존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또한 일본인 이방자의 심정을 이렇게 깊이 이해하고 섬세하게 묘사한 한국인 저자의 애정어린 마음에 깊은 감명을 금할 수 없다. 이 책을 통해 일본인을 사랑한 한국인과 한국인에게 사랑받은 일본인의 숭고한 정신과 감동을 만나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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