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이무라 마사토 전 재판관】인권 존중에 무게 두고 대국적으로 전후 보상 문제 다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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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6월 30일 일본 아키타현 오다테시에서 열린 하나오카 사건 추모식. 니이무라 마사토 전 도쿄고등법원 판사가 '중국순열열사 위령비' 앞에 헌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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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이무라 마사토 전 일본 내각부 정보공개개인정보보호심사회 회장이 2000년 11월 도쿄고등법원 재판관으로 재직할 당시 '하나오카 화해(花岡和解)'를 성립시킨 배경에 대해 월간지 '세계'('19년 2월호)에 기고문을 게재하고 징용 피해자 소송 문제에 대한 소견을 밝혔다. 니이무라 전 판사는 1995년 일본 아키타현 오다테시 '하나오카 광산'에서 강제노역에 종사한 중국인 피해자들이 가지마건설(옛 가지마구미)을 상대로 제기한 재판을 맡아 이를 화해로 이끈 장본인이다.

2000년 11월 29일 도쿄고등법원은 2차대전 중 아키타현 하나오카의 가지마건설 광산에 강제연행되어 가혹한 노동에 종사한 중국인 노동자들의 봉기(1945년 6월 30일)가 진압되는 과정에서 고문으로 학살된 이른바 '하나오카 사건'의 피해자들이 가지마건설에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에서 회사 측이 중국 적십자사에 5억엔을 제공하여 피해자 전원을 구제하는 방식으로 화해를 성립시켰다.

나는 이 소송을 담당하는 합의체의 재판장을 맡아 화해를 주선함에 있어서 당사자가 제출한 증거 자료를 통해 같은 패전국인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 피해자에 대한 보상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화해 교섭은 지극히 어려운 과정이었으나 독일의 전례에 힘입어 돌파구를 찾기 위해 몸부림친 결과가 전술한 방식으로 화해가 성립되었으며, 법원은 이례적으로 "전쟁으로 초래된 피해를 회복하기 위한 각국의 노력의 발자취와 그 성과에 대한 배려"라는 '소감'을 통해 그 경위를 밝혔다.

독일은 히틀러 시대의 잔재를 지금도 보존하면서 이를 공개하여 과거의 역사를 진지하게 마주보며 그 기억을 승계하고 있다는 사실에 깊은 감명을 받았으며 전후 보상에 대한 국가로서의 자세도 이와 동일하다는 것을 인식한 것이다.

NHK에 보낸 수기

하나오카의 화해 성립 이후 중국인 노동자 봉기 70주년을 맞아 NHK 아키타 방송국이 특집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이 프로그램은 도쿄고등법원에서 일찍이 성립된 화해는 중국인 강제연행 재판 관련 첫 화해이며 전후 보상의 모델 케이스가 되었다며 그 의의를 설명하고, 내가 제공한 수기의 일부를 사진과 함께 소개했는데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한 지방공공단체가 공인의 입장에서 시민과 더불어 일체가 되어 매년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는 사실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중일 관계에 있어서 일본 측에는 먼저 겸허하게 역사와 마주보는 자세가 요구되고 있다는 사실을 국가의 지도적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깊이 인식해 주셨으면 한다. 화해의 성립은 쌍방이 총명하게 미래지향적인 해결 방법을 모색하고자 노력한 결과이며, 이 값진 성과를 모델로 삼아 민간 차원에서 해결을 도모하려는 지속적인 노력을 바탕으로 일중 관계가 보다 좋은 방향으로 진전되길 기대합니다. 인연이 닿아 하나오카 사건에 관여했던 사람의 바램입니다."

화해의 의의

하나오카의 화해는 성립 직후 일부 관계자들로부터 강한 반대와 비난을 받으며 전후 보상의 형태와 방식 등에 대한 논의와 검증 작업이 이루어졌지만, NHK의 특집 프로그램에서 언급한대로 전후 보상의 모델 케이스로서 대개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리하여 대법원은 중국인 노동자들이 제기한 일본 기업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거부한 판결(2007년 4월 27일)에 있어서도 기업을 포함한 관계자들에게 피해자의 구제를 위해 노력할 것을 기대한다고 부언한 것도 이 화해의 성과를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한 그 후 기업 간의 재판에서 화해가 성립된 복수의 다른 사건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볼 때, 앞서서 선례를 남긴 우리 합의체의 노력이 관계자들로부터 평가된 것에 대해 고맙게 여기고 있다.

무엇보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하나오카 소송에 있어서 피고 측 회사인 가지마가 보여준 영단(英断)이다.

가지마는 이보다 앞선 1990년 7월 5일 피해 노동자 측과의 공동성명에서 하나오카 사건이 강제연행·노동으로 인한 역사적 사실임을 인정하고, 기업에게도 책임이 있음을 인식하고 해당 중국인 생존자와 그 유족들에게 심심한 사과의 뜻을 표명했던 것이니, 말할 것도 없이 이것 없이는 화해의 성립은 있을 수 없었다. 상기 도쿄고등법원의 소감과 NHK에 제공한 나의 수기 중에 화해의 성립은 당사자들이 총명하게 미래 지향적인 해결 방법을 모색하고 노력한 결과라고 말한 것은 해결을 위해 적극적인 자세로 임한 원고 피해자 측과 피고 가지마 측의 영단에 대해 경의를 표한 것임은 명백하다.

한국 대법원의 판결

한국인 징용 피해자가 한국 법원에 제기한 일본 기업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2018년 10월 30일 한국 대법원은 원고의 청구를 인정하고 일본 기업에 손해배상을 명하였으며, 본고 집필 시에 제기된 후속 두 건의 소송(한 건의 원고는 전 여자 정신대원)에서도 같은 판단이 내려졌다.

포츠담 선언 수락에 따른 일본의 무조건 항복과 카이로 선언으로 일본은 과거의 지배와 침략으로 인해 획득한 영토를 상실함으로써 조선에 대한 35년에 걸친 오랜 식민지 지배는 끝났다. 그동안 한국 국민이 받은 고난은 다방면에 걸쳐 있어 그 손해에 대한 배상은 당연히 문제가 되었는데,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의해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입장을 취해왔으며 이는 한일 양국 정부의 공통된 이해였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이러한 이해에 반하는 것으로서, 선고된 판결 이유에 따르면 해당 소송에서 주장된 청구권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불법이었다는 전제 하에 일본 기업의 반 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한 위자료 청구권으로서 한일 청구권 협정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개별 의견, 보충 의견, 반대 의견이 첨부된 일곱 명의 다수 의견에 따른 판결인 점으로 볼 때 상당한 고심 끝에 내려진 과감한 판단이다.

따라서 이번 한국 대법원 판결을 폭거라고 비난하는 것은 삼가해야 할 일이다. 청구권 협정으로 포기한 것은 외교 보호권이며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소멸하지 않았다는 이 판결의 논리를 지지하는 논조가 일본의 일부 지식인 중에도 나타나고 있으며, 원래 일본 정부도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소멸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다.

개인의 청구권을 국가 간 조약·협정으로 일방적으로 소멸시켜 재판상 청구할 수 없다는 것이 이치에 맞는지 원점에서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 피해 사실이 있고 피해자에 대한 구제의 필요성이 있다고 인정되지만 큰 장애물이 있을 경우, 판사는 장애물을 넘어서는 안 된다며 청구권을 인정하지 않는 안이한 결론을 낼 수도 있다. 그러나 장애물이 있을 경우, 이를 돌파하기 위해 이론을 재구성하거나 장애물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를 우회하는 다른 방법을 찾는 일도 가능하다. 하나오카의 화해가 후자였다면 한국 대법원 판결은 전자를 택한 것이다.

개인적인 감회

한국의 법원 판결이 혼란을 초래했다는 비판도 있으나 오히려 이를 계기로 개인의 인권 존중이라는 점에 무게를 두고 토론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독일의 해결 방법, 가깝게는 일본 기업의 화해를 표본 삼아 관민이 일체가 되어 다시 한번 전후 보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 위해 기업은 '하나오카(花岡) 화해' 때 가지마의 경영자가 '책임감 있는 태도'로 다이쇼 고등법원에 선 '대담한 결단'을 배워야 할 것이며, 국가로서는 냉정하게 '대국적으로'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런 관점에서 민관 협력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논조가 한국에서도 제기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