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여성 리더십인가?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 피터 드러커는 21세기를 '여성의 세기'로 못 박았다. 1979년 영국에 첫 여성 총리 마거릿 대처가 등장한 뒤 "여성도 리더가 될 수 있다"는 말이 나왔지만 큰 공감은 얻지 못했다. 그러나 이후 수십 년 동안 세계는 변했다. 고리타분한 남성 리더십 대신 여성 리더십이 주목받는 게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니다.
여성 리더십의 핵심은 '상생'과 '화해'다. 남성 리더십은 흔히 명령과 통제, 권위와 복종에 기반한다. 가부장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기존 리더십에 익숙한 남성과 달리 여성은 사람 간의 관계, 배려, 포용을 중시한다. 남성 리더십에는 위기를 헤쳐나가는 강인함이 있고, 여성 리더십에는 강인함과 더불어 유연성이 있다. 남성 리더십은 수직적 소통관계와 억압, 권력투쟁이 필연적이나 여성 리더십은 수평적 소통과 이해, 공감이 핵심이다.
세상을 구한 여신 '아메노 우즈메'
여신, 즉 여성 리더십이 세상을 구한다는 얘기가 일본 고대신화에 등장한다. 여성 태양신이었던 '아마테라스'가 남성신인 '스사노오'의 난폭한 행동에 분노한 나머지 슬픔을 견디지 못해 석굴 속으로 숨어버리자 세상은 암흑세계로 변한다. 이때 '아메노 우즈메'라는 여신이 나타나 대담한 행동으로 대중들을 움직여 '아마테라스'를 어둠에서 해방함으로써 세상이 다시 광명을 회복(광복)하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한다.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 사회에서는 '여성은 안 된다'라는 편견 때문에 여성적 가치(상생, 화해 등)는 무시당하고 그 결과 세상은 권력투쟁으로 인한 불안과 공포(암흑)에 휩싸이게 된다. 이때 잔다르크와 같은 여성이 해성처럼 나타나 '여성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며 담대하게 외치자 이에 대중들이 호응하여 여성적 가치가 부활되고 남성 우월주의 편견을 물리쳐 세상을 평화롭게 한다는 의미로 해석해 볼 수 있다.
이처럼 일본 고대신화 속에 암시되어 있는 세상을 구한 여성 리더십이 오늘날 스포츠계에서 그 빛을 발하고 있다. 스포츠계의 잔다르크 '미셸 페인'의 성공스토리는 신화보다 더 신화 같은 얘기다. 많은 사람들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빛나는 승리를 거머쥔 그녀의 일대기는 그 어떤 이야기보다도 진한 감동을 선사한다.
'멜버른 컵' 최초 여성 우승자 미셸 페인
세계적 경마대회인 호주 '멜버른 컵' 최초 여성 우승자인 미셸 페인은 10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생후 6개월 만에 엄마를 잃었다. 미셸은 어린 시절부터 '멜버른 컵' 우승을 꿈꿨다. 그러나 1861년 설립된 '멜버른 컵'은 우승 상금 730만 호주달러(약 59억원)라는 어마어마한 액수만큼이나 위험하고 거친 레이스로 악명이 높다.
미셸은 어릴적부터 집보다 마구간을 더 편하게 여길 정도로 말과 승마를 사랑했다. 역대 우승 기수들과 경주마 이름, 기수들이 입은 재킷의 색깔까지 줄줄 외울 정도였다. 하지만 그녀가 15세 때 처음으로 출전한 경마대회에서 우승한 이후 '멜버른 컵(3200m)' 우승에 이르기까지는 여성차별과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극한의 노력이 필요했다.
미셸에게는 좌절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100가지도 넘었다. 여자는 '멜버른 컵'에 참가할 수 없다는 세상의 편견과 싸워야 했고, 3200번 경기 출전에 16번 골절, 7번 낙마로 인한 전신마비라는 최악의 상황도 극복해야 했다. 언니도 낙마사고로 숨지고 불공정한 심사로 자격정지까지 당했으나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3일 동안 3kg를 감량하는 가혹한 훈련에도 견뎌냈다.
2015년 30세 때 숱한 어려움 끝에 드디어 여성기수는 승산이 없다고 여겨졌던 경마계의 성배 '멜버른 컵'에 출전할 기회가 그녀를 찾아왔다. 그런데 당시 트레이너는 미셸의 재능을 크게 믿지 않았으며 마주 또한 그녀의 출전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다. 게다가 수많은 부상을 입어 인기 최하위권에 있던 경주마 '펜잰스의 왕자'의 우승확률은 겨우 1%에 불과했다.
하지만 미셸은 자신의 말을 믿었고 돌아가신 어머니와 언니의 못 다 이룬 꿈을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경기 결과는 대이변을 일으켰다. 우승확률 1%의 '펜잰스의 왕자'가 결승선을 300m 남겨둔 지점에서 극적으로 탄력을 발휘하며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2위 '맥스다이너마이트'와는 반 마신(馬身) 차였으며 기록은 3분 23초 15였다. 155년만에 처음으로 여성이 우승하자 호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남성 우월주의적 스포츠'로 여겨졌던 경마대회에서 우승한 미셸은 "여자는 힘이 부족하다고 했는데, 방금 우리가 세상을 이겼다"라며 "활동 내내 나를 깎아 내리기에 급급한 사람들 때문에 힘들었다. 여성도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세상을 이길 수 있으니 (회의론자들에게) 이제 조용히 하라고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
세상을 바꾸는 일본의 '화(和)의 정신'
미셸의 성공 스토리는 여신과 남신의 갈등 속에서 여신의 활약으로 세상을 구하는 일본의 고대신화를 연상시켜 준다. 신화는 집단 무의식을 표출하는 상징이며 고대신화를 통해 나타난 일본의 집단 무의식 속에는 21세기에 필요한 여성적 가치가 내포되어 있다. 그것이 바로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세상을 극복할 수 있는 '소프트 파워'이다.
과거 일본은 '화(和)의 정신'을 중시하는 일본 본래의 '야마토 다마시(日本魂)'에 반하여 유럽 제국주의의 조류에 편승해 흐르다가 결국은 대패하고 말았다. 오늘날 또다시 패권주의적 경향으로 흐르는 국제 환경 속에서 일본이 이에 휩쓸리지 않고 그 흐름을 바꾸는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는 '화의 정신'이라는 소프트 파워를 다시 한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서는 여성 리더십으로 '세상을 바꾼다'는 대담한 외침과 함께 떨쳐일어나 '세계평화의 어머니나라'라는 새로운 신화창조를 향해 도전해 나아가기를 바라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