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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한국에 돌아와 보니 조국 씨를 중심으로 검찰개혁을 지지하는 민주파와 이를 저지하려는 보수파가 투쟁하는 와중이었다. 나는 다른 목적으로 검찰개혁을 지지하는 측, 소위 촛불집회에 참가했다. 서울시 검찰청앞 대로의 사거리를 가득 매워 말 그대로 인산인해였다. 일본에서 이같은 시위는 한번도 본 적도 없도 참가한 적도 없다.
본 행사가 시작되기 전 일찍부터 자리를 잡은 나는 왠지 이 시위가 축제처럼 느껴졌다. 데모라고 하면 과격 분자들의 이미지를 떠올리기 쉬운데 이 집회는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일본인들은 평소 수많은 축제를 통해 즐길 수 있는 기회가 많지만, 그에 비해 한국에는 축제가 별로 없기 때문에 집회를 축제 삼아 즐기기 위해 모여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무대에 설치된 대형 모니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와 영상이 분위기를 띄웠고, 끊없이 모여드는 사람들은 뭔가를 즐기고 있는 듯했다.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다.
참가자들은 '검찰개혁' '조국수호'를 외치며 앞열부터 순차적으로 피켓을 들어올렸다 내리며 파도를 만드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그런데 나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아니 무서웠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이 집회는 대체 무엇을 위한 집회인가? '검찰개혁'을 호소하는 집회인가, 아니면 조국 씨를 지지하는 집회인가?
만약 조국 씨를 지지하는 집회라고 한다면 정말 끔찍한 일이다. 한 사람을 위해서 이렇게까지 열정적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이 무서웠고 위험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만일 그 사람이 틀렸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 열정은 어떻게 될 것이며, 그렇게 열정을 쏟아부은 사람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들의 실망과 분노가 얼마나 크겠는가? 결국 독재자를 불러올 것이라는 무서운 생각마저 들었다.
한국은 대통령제 국가이다. 따라서 과거의 왕정시대 같은 카리스마 리더를 원한다. 그런 성향은 TV 드라마나 CM을 통해서도 쉽게 알 수 있다. 역사 드라마이건 현대적인 드라마이건 공통적으로 적용된다.
그러나 지금은 민주화와 인간 평등을 외치며 피를 흘리고 많은 희생을 치른 뒤에 드디어 쟁취한 민주 정권이 집권하고 있지 않은가. 만일 한 사람의 카리스마에 집착하는 생각이 다른 독재자를 불러온다면 과연 무엇을 위한 희생이었고, 무엇을 위해 쟁취한 주권이었던가. 그것이 모두가 고대했던 민주화인가. 사람이 아니라 검찰개혁 추진을 지지해야 옳지 않은가? 인파 속에 파묻혀 나는 이런 슬픈 생각에 잠겨 있었다.
검찰개혁!?
집회 현장에서는 무엇을 어떻게 개혁할 것인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없었다. '조국 씨를 지지한다는 것'과 '검찰개혁을 바란다는 것'이 주된 이슈였고, 무엇을 어떻게 개혁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내용은 없었다. 아마도 내 공부가 부족한 탓일 것이다. 여기 모인 다른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하는 의문도 생겼다. 물론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한 사람에게만 너무 기대어 나머지 모든 것을 위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독재적인 보수파의 권력에 의해 억울하게 희생당한 한맺힌 분들이 많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아니, 잘 모른다는 게 맞을 것이다.)
불확실한 간첩 혐의로 인해 발생한 제주 4.3사건, '서울의 봄'이 불리는 학생운동과 노동운동, 그리고 유명한 광주사태 등 6.29선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반정부 운동으로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던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청춘을 바쳐 목숨을 걸고 싸웠던가. 지금 그 분노가 폭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폭발 대상이 보수파이며 보수 정권을 지지하면서 성장한 친일파 재벌이다. 나아가 그것이 일제시대로 연결돼 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 문제로 이어진다. 따라서 '검찰개혁'이란 이슈는 보수파 공격→친일파 비판→반일→아베 정권 비판으로 이어지는 구조라고 느껴졌다.
한 많은 한민족의 역사, 그리고 그 역사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뒤돌아보는 한국인들. 뒤돌아 보지 않을 수 없는 서글픈 한국인들. 그러나 '검찰개혁'을 주장하는 집회는 과거의 한을 폭발시키기 위한 집회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부디 자국의 역사를 부정하지 말기 바란다. '한 많은 역사로 충분히 피의 대가를 치렀으니 이제는 앞을 향해 전진하자' '앞을 향해 전진하자' 이렇게 말해 줄 사람은 없단 말인가. 인파 속에 묻혀 나는 한없이 서글픈 생각에 사로잡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