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100주년 기념】아벨형 독립운동과 가인형 독립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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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 동안 남을 위해 살았고, 자기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암울했던 일제시대에 어떻게 하는 것이 독립을 위한 최선의 방법인가를 놓고 크게 두 갈래로 독립운동이 전개되었다.

신채호, 김좌진, 안중근 등 '가인형 독립운동'은 군사력 등 무력을 갖추어 처절하게 싸워야 한다는 무장투쟁이었다. 의열단의 김원봉은 비폭력투쟁이었던 3.1운동은 일본군의 폭력 앞에 실패한 것으로 규정짓고, 광복을 위해서는 오직 무력과 암살만이 정의라고 주장했다.

두 번째로 안창호, 이승훈, 문윤국 등 '아벨형 독립운동'은 조선 민족의 쇠퇴 원인은 도덕적 타락에 있다고 결론짓고 의식개혁의 절대성을 주장했다. 실력양성을 강조한 안창호는 아직 독립의 준비가 되지 않았으니 교육과 계몽을 통해 스스로 힘과 실력을 키워야만 독립할 수 있다고 했다. 이른바 '준비론'은 독립운동 전선을 정비해 결정적 시기에 대비하자는 논리였다.

당장 싸울 인력이 필요한데 교육과 전도가 왠 말이냐고 비난하는 급진 무력투쟁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는 긴 안목으로 미래를 내다보며 학교와 교회를 통한 인재육성과 실력양성을 강조했다. 그리고 나라를 빼앗긴 책임을 남에게 돌리며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외쳤다.

"우리 민족의 불행의 책임을 자기 이외에 돌리려고 하니 대관절 당신은 왜 못하고 남만 책망하려고 하시오? 우리나라가 독립이 못 되는 것이 다 나 때문이로구나 하고 가슴을 두드리고 아프게 뉘우칠 생각은 왜 못 하고, 어찌하여 그 놈이 죽일 놈이요, 저 놈이 죽일 놈이요라고만 하고 가만 앉아계시오? 내가 죽일 놈이라고 왜들 깨닫지 못하시오?

우리가 나라를 잃은 것은 이완용 일개인 탓도 아니오, 일본 탓도 아니라 우리가 힘이 없어서니, 나라의 독립은 국민 개개인이 힘을 가질 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것이므로 힘을 먼저 키우십시다."

갑신정변 이래 여러 차례 나라를 바로잡으려는 운동이 있었으나 대부분 남의 나라 힘을 빌려 시도했기에 실패했고 마침내 나라가 망하기에 이르렀다. 남의 손을 빌리면 한때 성공하더라도 완전한 독립을 유지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몇 해가 걸리더라도 민중의 실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 안창호의 주장이었다.

안창호는 민족의 단결을 호소했다. "내게 한 옳음이 있으면 남에게도 한 옳음이 있는 것을 인정하여서, 남의 의견이 나와 다르다 해서 그를 미워하는 편협한 일을 아니하면, 세상에는 화평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나와 다른 의견을 용납하는 아량이 없고, 오직 저만이 옳다 하므로 그 혹독한 당쟁이 생긴 것이다.

나도 잘못할 수 있는 동시에 남도 옳을 수 있는 것이어든, 내 뜻과 같지 않다 해서 이를 사문난적이라 해서 멸족까지 하고야 마는 것이 소위 사화이었으니, 이 악습이 지금까지도 흐르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서로 사상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비록 의견은 서로서로 다르더라도 전 민족의 운명이 달린 일에 대하여서는 혼연히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안창호가 다른 독립운동가들에 비해 특히 심혈을 기울인 것 중 하나는 청년 인재양성이었다. "죽더라도 거짓말을 하지 말고 꿈에라도 성실을 잃었거든 통회하라." 일경이 자신을 붙잡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줄 알면서도 어린아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갔던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다.

도산은 말 그대로 오로지 나라와 겨레를 위한 삶을 살아가면서 김구와 윤봉길, 안중근, 이승훈 등을 비롯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에게 사상적 독립투쟁 방향을 제시하고 영항을 주었다. 그는 단순히 이론에만 능한 지식인이 아니라 직접 몸으로 뛰어든 실천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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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남강 이승훈과 도산 안창호

이승훈은 "4000년 역사의 조국을 잃지 않고 지키려면 썩어빠진 옛날의 모든 나쁜 버릇을 버리고 새 힘을 길러야 하며, 그 길은 오로지 새로운 교육으로 모든 국민이 새사람이 되는 것밖에 없다"고 부르짖는 안창호의 연설을 듣고 크게 감동했다.

이승훈은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로 상투를 잘라 단발을 하고, 앞으로 술과 담배를 입에 대지 않기로 결심했다. 교육이 곧 나라 독립의 본원적인 힘이라 생각한 그는 전 재산은 물론 몸까지 바쳐 오산학교를 설립하고 젊은 인재들을 양성했다.

이승훈은 학교 잡일을 도맡아했다. 영하 30도를 오르내리는 겨울에는 대변이 얼어붙어 뽀족하게 얼어붙는 대변 때문에 항문이 찔려 대변을 볼 수가 없었다. 어느 날 탕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승훈이 도끼를 들고 땀을 흘리면서 얼음 대변을 깨부수고 있었던 것이다. "선생님! 똥 얼음이 선생님 입에 들어가요" 하면서 학생들이 눈물을 흘리자, "자네들 똥인데 먹으면 좋지 않은가"라고 이승훈은 털털하게 웃었다.

오산학교 졸업생은 검소하고 소박하며, 일 잘하고, 과한 보수를 바라지 않으며, 민족정신이 높은 것으로 유명했는데, 이는 모두 이승훈이 몸소 실천해 보인 인격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의 열성과 노력으로 오산학교는 수많은 인재를 낳았으며 민족교육사상 금자탑을 이루어냈다.

안창호를 만난 뒤로부터 이승훈은 신채호, 박은식, 이동녕, 이회영 등이 주도하는 항일 비밀결사 단체인 신민회에 합류하여 평북 총책이 되었고, 손병희와 최린 등 천도교인들과 한용운 등 불교인들과 연합하여 민족 전체의 독립만세 운동을 주도적으로 준비했다.

그는 도합 9년간 옥살이를 했다. 105인사건 주모자로 체포되어 악랄한 고문을 당했으나 그의 의지는 강철같이 굳건했다. 징역 10년을 선고받았지만 그는 조금도 불평하지 않았다. 감옥생활 내내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해냈고 규칙을 어기지 않았다. 일본인 간수들조차 감탄과 존경을 금치 못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감옥이란 참 이상한 곳이야. 강철같이 굳어서 나오는 사람도 있고, 썩은 겨릅대 같이 흩어져서 나오는 사람도 있거든…."

이승훈은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이자 기독교 대표로서 3·1운동을 주도했다. 기독교계와 천도교가 단합한 것도 그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목사들이 "우리는 정치에 대한 것은 모른다"고 뒤로 빠지려 하자 "나라가 망하는데 당신들은 천당 가 있을 터이오"라고 일갈했다.

독립선언서에 누구 이름부터 적을 것인지 옥신각신하자 "순서가 무슨 상관이오? 이게 죽는 순서요. 아무나 먼저 쓰면 어떻소? 손병희께서 먼저 쓰시오"라고 호통을 쳤다.
   
이승훈은 3.1운동 주동자로 체포되어 3년간 징역살이를 하면서 옥중 독립만세를 주도했고 더러운 변기 청소를 항상 도맡아 했다. 그는 3·1운동을 이끈 48인 가운데 가장 먼저 감옥에 들어갔고 맨 마지막에 감옥에서 나왔다.
   
감옥에서 나온 뒤로는 오산학교 경영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승훈은 평안북도지사 이쿠타를 찾아가 "지금은 서력동점(西力東漸) 시대 아닙니까? 이때에 일본이 그 힘에 대항해 이기려면 조선 사람도 제 노릇을 해야만 같이 이끌어 나갈 수 있지, 제 노릇 못하는 조선을 일본이라고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라고 설득했다.
   
그 말을 듣고 감동한 이쿠타는 손을 내밀어 이승훈의 손을 잡았다. "과연 선생은 다르십니다." 이쿠타는 자기가 가진 모든 역량을 동원해 오산학교가 재력은 턱없이 부족하지만 고등보통학교 인가를 받도록 해주었다. 적을 이기는 것은 정면 공격만도, 비겁한 타협만도, 간사한 술책만도 아니다.
   
이승훈은 66세 일기로 세상을 떠나면서 이런 유언을 남겼다. "이제 내가 나라를 위하는 것이 이것이 마지막이니, 죽거든 뼈를 흙 속에 묻어 쓸데없이 썩히지 말고, 엮어서 표본으로 만들어 학생들이 연구하는 데 쓰게 하라." 시체를 땅에 묻지 말고 표본으로 만들어 오산학교에 걸어두라고 유언했다.

그러나 일제는 죽은 이승훈의 뼈가 학생들에게 줄 영향이 무서워 뼈의 표본을 만들지 못하게 막았다. 그리고 오산학교에 있던 그의 동상과 묘비마저 없애버렸다. 이에 윤치호는 "조선총독부가 시체 이승훈도 무서워했다"고 조롱했다.

이처럼 독립운동가들은 일생 동안 남을 위해 살았고, 자기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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