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한인) 강제 이주과 '축복받은 땅' 카자흐스탄

카자흐스탄 사진전 및 예술공연, 한국국제교류재단 갤러리(8.27)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키즈스탄 등 중앙아시아로의 한인(고려인)의 이주 역사는 제정 러시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1869〜1870년에 발생한 이북 지역의 대기근으로 인해 러시아로 대규모 이민이 발생했다.

이때부터 연해주로 이주한 한인들은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면서 만주에서와 같이 이 지역에 논농사를 처음으로 도입했으며, 점차 그들의 선진적인 영농방법과 특유의 근면성으로 인해 사회·경제적으로 인정받게 된다. 그들은 이러한 경제력을 토대로 민족교육을 장려하고 군대를 양성하여 독립운동을 수행할 수 있는 기지로 발전시키고자 했다.

한편 일본과의 전쟁을 앞둔 스탈린은 한인들에게 지급되는 복리증진을 위한 지원금이 독립자금으로 흘러들어가면 일본을 자극할 수 있고, 또 한인들이 일본의 첩자 노릇을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로 인해 1935년부터 3년 동안 2,500명의 한인들이 '일본 간첩'이란 혐의로 총살당하기도 했다. 최근 비밀해제된 구소련 NKVD문서에 따르면 당시 연해주에서 다수의 일제 밀정들이 활약한 가운데 일제에 협력한 한인들이 꽤 많았다고 한다.

이에 1937년 스탈린은 연해주를 개척해 옥토로 가꾼 주인공들로 하여금 낙후된 중앙아시아를 개간한다는 명분 하에 171,781명을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 이주시키고, 그 과정에서 1938년까지 4만 명이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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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 이주 경로. 카자흐스탄은 지하자원이 풍부해 '축복받은 땅'이라 불림.
카자흐스탄의 사막 우슈토베 등지로 버려진 그들은 겨울을 나기 위해 토굴을 파는 등 고통스런 현실과 마주하며 '아리랑'을 즐겨 불렀고, 처절한 생존 투쟁을 벌여 박토(薄土)를 옥토(沃土)로 바꾸어 뛰어난 노동 열정과 창의적 영농으로 작물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증대시켰다.

그리하여 척박한 중앙아시아의 환경 속에서 열렬한 교육열과 억척스러운 삶으로 돈과 학식 있는 민족으로 성장했다. 오늘날 카자흐스탄에 거주하는 10만7000명에 달하는 한인들은 정치·사회·경제·교육 등 다방면에서 크게 활약하고 있다. 

특히 구리광산업체 '카작무스'의 회장인 '블라디미르 김'은 세계 갑부 순위 200〜1000위 안에 드는 카자흐스탄 최고의 부자이다. 또 '에드워드 김'은 대형 전자제품 매장 40여 개를 운영하고 있는 테크노돔(Technodom)의 설립자이다. 복싱 WBA 미들급 세계 챔피언 '게나디 골로프킨', 2017년 동계유니버시아드와 2015년 4대륙선수권에서 우승을 차지한 남자 싱글 피겨스케이팅 선수 '데니스 텐'도 한인 출신이다.

1991년 구소련이 붕괴되고 냉전이 종식되자 카자흐스탄은 마침내 구소련연방으로부터 분리독립되었고, 1993년 4월에야 비로소 스탈린 정권 시절의 한인 강제 이주가 불법이었다는 공식적인 규정이 선포되었다.

오늘날 연해주에 살고 있는 한인들은 중앙아시아로 갔다가 1953년 스탈린 사망 후 이주민 거주제한이 풀리자 다시 이주해온 사람들이다. 러시아 정부는 인구 증가에 도움이 되므로 연해주로 이주하는 한인들에게 정착비를 주는 등 지원을 하고 있다. 또한 연해주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중국에 맞서 한인들로 하여금 균형을 맞춘다는 전략 차원에서 통일 한국을 통한 경협에도 적극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현재 한국에 정착한 연해주 출신 한인 영주귀국자들은 대부분 파주시 문산읍에 자리를 잡고 있으며, 매년 가을 파주에서 '사할린 어르신 축제'가 열린다. 중앙아시아 한인은 주로 이북 출신, 사할린 한인은 이남 출신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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