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은 정부는 물론 단군 국조를 숭봉하는 종교 및 사회단체들이 각종 기념행사를 열고 홍익인간과 이화세계라는 이념을 토대로 한 개국의 참 뜻을 기린다.
때로는 양력 개천절 행사와는 별도로 음력 10월3일에 개천절 행사가 열리는 경우도 있다. 대종교를 비롯한 민족 종교는 양력에는 경하식으로 치르고 음력에는 선의식으로 제천의식을 거행한다. 나아가 개천절은 음력으로 지내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렇듯 국경일인 개천절 행사는 양력과 음력으로 두 번에 걸쳐 치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개천절에는 양력과 음력 두 세시(歲時=節季) 외에 '개천세(開天歲)'라는 세시가 있는데, 이 사실은 일반인들에게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우리 나라에서 양력은 1886년 1월1일부터 고종(高宗)의 명에 의해 도입된 것으로 이때부터 모든 공문서는 음력을 폐지하고 양력을 쓰기 시작했다.
그에 비해 음력은 옛날 중국에서 들여온 세시로서 고구려•백제 때부터 쓰여졌으며, 신라는 삼국통일 이후부터 쓰기 시작했다.
그럼 개천세는 무엇인가. 송나라 때 주자(朱子)와 소강절(邵康節)이 지은 『천문지(天文誌)』 『천문대성(天文大成)』 『천문시사』 등에 따르면 우주운행의 도수를 놓고 볼 때 10월이 곧 세시가 된다고 했다.
10월은 곧 0수, 첫 1수 나오는 변동수
1〜10까지의 숫자에서 10은 곧 0수이며, 이 숫자만이 변동수가 된다는 것이다. 0수에서 첫 1수가 나오기 때문이다. 이렇게 10월이 변동수이기 때문에 '개천세'가 된다는 것이다. 나무의 경우를 보더라도 낙엽이 지는 가을 10월에 뿌리에서 새로운 양기가 태동된다.
이러한 천지의 운행이치로 보아 10월을 정월이라 했고, 우리 옛 조상들은 이 달을 높여 '상달'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이 상달인 10월의 첫 1일이 되는 날이 설날인 것이다. 0수에서 첫 1이 나온 날이다. 개천세의 초하룻날이 설날이 되는 셈이다.
양력은 해가 뜨고 지는 것, 음력은 달이 차고 지는 것을 기준으로 정해진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에 불과하다.
그에 비해 우리 민족의 태고적 개천세는 이와는 차원이 다르다. 하늘이 열린 날로부터 친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우주를 여신 날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무한한 우주인 0에서 첫 1이 나온 날을 말한다.
그런데 이 개천세를 쓰지 못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무엇보다 사대사상과 외세의 영향 때문이라고 민족사상 연구가들은 지적한다.
중화 사대에 자취 감춘 개천세 되찾자
당나라가 인월(寅月) 1일을 태세(太歲)로 하면서부터 고구려, 백제가 쓰게 됐고 이어서 신라가 이를 적극 받아들였다. 월건지지(月建地支)가 인(寅)이 되는 달이 곧 음력 정월이다.
나당연합군에 의해 삼국이 통일되자 개천세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당나라가 쓰던 음력만 쓰이게 됐다. 모든 것을 중화사상에 기준을 두고, 중국을 지나칠 정도로 사대하던 조선조 시대에 음력 세시가 완전히 굳어졌던 것이다. 오늘날 국가 연호를 단기를 쓰지 않고 서기만 쓰고 있는 실정과도 비슷하다.
개천세는 글자 그대로 하늘이 열린 날을 기준으로 하는 세시이다. 우리 민족사의 출발이 하늘이 열리면서 시작됐음을 뜻한다. 개천절에 잃어버린 '개천세'를 찾아보는 것도 뜻 깊은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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