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한일본인모임' 회원들이 6월 17일 경기도 광주시에 있는 '나눔의 집'을 방문해 봉사활동을 실시했다. 일본인 여성들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을 나눠드리고 노래와 춤으로 위로했다.
16세 때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李容洙) 할머니가 납치되어 보내진 곳은 대만의 신죽(新竹)라는 마을이었다고 한다. 대만까지는 배로 이송되었는데, 그 배 안에 할머니와 같은 다섯 명의 소녀들이 타고 있었다. 제일 연장자는 열 여덟이었다.
마침내 대만에 도착한 할머니가 끌려간 곳은 특공대의 출격 기지였다. 그들은 오키나와 주변에 있던 미국 함대를 폭격하기 위해 끊임없이 출격했지만, 대부분 미리 잠복해 있던 미군의 요격기에 격추당해 함대까지는 아예 접근도 하지 못했다. 처음부터 성공확률 제로에 가까운 작전이었던 것이다.
어느 날 한 병사가 "비행기로 특공 작전하러 간다. 두 명이 타고 간다. 나는 스물 한 살이다. 며칠 지나면 죽으러 갈 것이다"라고 말을 꺼냈다. 할머니가 "나도 데려가요"라고 애원하자, "안돼" 하면서 노래 하나를 가르쳐 주었다. 할머니는 지금도 그 노래를 일본어로 곧잘 부르곤 한다."
"간코(艦攻=함상공격대) 이륙하네, 대만을 떠나네, 금빛 은빛으로 파도치는 구름을 헤치고, 배웅해 주는 이는 아무도 없고, 울어 주는 사람은 도시코(이용수)뿐이라네.
간코 이륙하네, 신죽을 떠나네, 금빛 은빛으로 파도치는 구름을 헤치고, 배웅해 주는 이는 아무도 없고, 울어주는 사람은 이 아이(이용수)뿐이라네."
중언하는 이용수 할머니(왼쪽열 중앙)
결국 그 병사와 할머니는 이틀 동안 같이 지내게 됐다. 그리고 병사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세면도구를 챙겨주면서 이렇게 다짐했다. "도시코 숨어 있어라. 내가 죽으면 하나님이 되어 너를 엄마 곁으로 데려가 줄게. 엄마 가슴에 안겨 줄테니 도시코 죽지마. 그러니 꼭꼭 숨어 있어라."이 말을 남기고 떠난 그를 할머니는 눈물로 배웅했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잠시 후, 할머니가 있던 기지가 공습을 당해 숙소에 폭탄이 떨어졌다. 할머니는 지하 방공호에 몸을 피했기에 무사했지만, 그녀를 숨겨준 여성은 사망했다.
어느 날 중국인이라는 남자가 찾아와 "전쟁은 끝났다. 더 이상 이런 곳에 머물러 있으면 안돼"라며 할머니들을 수용소로 데려갔다. 그 후 할머니들은 모두 해방되어 다시 고국 땅을 밟게 되었다고 한다.
이용수 할머니는 "위안부 피해자가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역사적 진상 규명과 진정성 있는 사죄"라며 "도쿄 한복판에 소녀상을 세워 자신들의 조상이 우리에게 저지른 만행을 후세 사람들이 보고 기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앞열 중앙)와 함께
그런데 일본인의 "마음으로부터의 반성과 진정성 있는 사과를 기대하며" 세워진 소녀상이 오히려 재일동포들에게 또 다른 고통을 안겨주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어, 금후 문재인 정부가 풀어야 할 난제의 하나로 남게 되었다. 재일본대한민국민단은 "한일관계의 악화에 따른 가장 큰 피해자는 우리 재일동포"라며 2015년 대국민호소문을 다음과 같이 전면 광고한 바 있다.1.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같이 일제의 식민지 통치의 희생자이면서 일본에서 정착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 재일동포들이지만, 외교 교섭에 있어서 일방적인 승리는 있을 수 없는 만큼 지난 24년간 양국간 현안이었던 이 문제를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최선의 합의를 이룩한 본국 정부의 고충을 이해하고 이를 지지한다.
2. 금번 합의가 피해자들의 입장에서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과거 어느 정부도 하지 못했던 일본 정부의 책임 인정 등 결과를 이끌어낸 만큼, 합의에 대한 내부 분열로 영원히 미제(未濟)로 남기기보다는 금후 일본의 약속이행 여부를 지켜보면서 대승적 견지에서 합의안 수용을 본국 국민들에게 호소한다.
3. 일본 정부는 양국 간 합의사항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이행하여 고령의 피해자들이 하루라도 빨리 명예와 존엄을 회복하고 과거의 상처를 조금이라도 치유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할 것과 아울러 이 비참한 역사를 후세대까지 잊지 않도록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한다.
4. 지난 수년간 어려웠던 한일관계로 인해 재일동포의 생계가 큰 타격을 받고 생활의 터전인 동경 신오쿠보 거리를 비롯한 일본 각지에서 혐한(嫌韓) 시위가 넘쳐났던 사실을 상기하면서 금번 합의로 더 이상 양국관계가 경색되지 않고 미래지향적 관계로 발전해 나가기를 기대한다.
5. 우리 60만 재일동포들은 나라 잃은 설움을 뼈에 사무치게 겪어온 당사자들로서 양국 간 가교로서 역할을 충실히 이해하며 모국의 발전을 통한 진정한 극일(克日)의 날이 오기를 열망한다.
돌아가신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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