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일본의 원형이 만들어진 점령기. 연합군 총사령부(GHQ)의 최고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1880〜1964) 곁에서 통역을 맡었던 일본계 2세 미국 국적의 남성이 지금도 도쿄에 살고 있다. 전 GHQ 통역관 조지 키자키씨(84)다. 15일, 종전 71주년 기념일을 맞이했다. 헌법 개정이 논의되고 있는 작금의 일본이 키자키씨의 눈에는 어떻게 비추는 것일까?
"한마디로 무표정했습니다. 조금이라도 시선을 돌리면 강한 어조로 "너는 지금 누구한테 말하고 있나 하고 지적당했습니다". 키자키씨는 맥아더와 처음 만났을 때의 일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일본에 부임한 직후인 50년도 전후의 일이다.
미국에서 태어난 그는 '8월 15일'을 미국내 일본인계 수용소에서 맞이했고, 전후 미군 소속통역관이 되었다. 당시 GHQ에서는 그 외에도 많은 일본계 사람들이 근무하고 있었다고 한다.
가까이서 접한 맥아더는 일에만 온 정력을 쏟아붓고 있는 것 같았다. 식사라는 것은 고작 스크램블 달걀과 훈제 햄 등 간단한 메뉴들 뿐이었다. "군인들이 일요일에 쉬면 나라는 누가 지키나" 라고 입버릇처럼 말했고, 격앙되면 손에 든 지팡이로 탁자를 두들겨 부러질 때도 있었다. 군신! 키자키씨의 눈에 그는 그렇게 비추었다.

아츠기(厚木)에 도착한 맥아더 GHQ 총사렁관=1945년 8월 30일
GHQ의 임무는 매일 달랐다. 맥아더의 통역을 담당할 때도 있었고, 해외에서 송환돼 온 선박들을 감시하기도 했다. 요인들과의 회의를 통역할 때는 "지금 만난 사람의 얼굴은 잊어라. 내용도 기억하지 말라"는 엄명이 떨어졌다. 냉전이 시작돼 공산주의의 위협이 우려되던 무렵이다.키저키씨는 미군정기 동안 맥아더와 일본에서 같이 보낸 후 55년경 미군에서 제대했다. 그후 일본을 거점으로 무역업에 종사했다. 그가 GHQ의 경험담을 털어놓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전후 71년을 맞이해 지금 일본은 기로에 서있다. 참의원 선거에서 개헌 세력이 3분의 2를 차지해 헌법 개정이 현실성을 띠기 시작했다. 개헌파는 "헌법은 GHQ에 의해 강요된 것"이라고 강변하지만, 키자키씨는 "맥아더가 아니었더라면 전후의 일본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되었을 것이다. 그의 공적을 재평가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맥아더는 일본을 떠난 뒤 "일본은 마치 12살 소년 같다"고 말했다. 일본 사회의 미숙함을 비유한 말이었다. 이제 일본은 얼마나 어른이 된 것일까. 키자키씨는 "40세 정도는 되지 않았을까"라고 대답했다. "도쿄는 불에 타 온통 폐허로 변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풍요롭게 평화를 누리고 있으니까요."
앞으로 '나라의 틀'이 크게 바뀔지도 모르는 일본을 역사의 산 증인은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그의 손에는 맥아더의 지팡이가 쥐어져 있었다.

폐허로 변한 도쿄=1945년 8월 16일
※맥아더의 점령통치:일본이 포츠담선언을 수락하자 연합군 최고사령관에 임명된 맥아더는 1945년 8월 30일, 아츠기(厚木) 기지에 내려 51년까지 일본의 점령 통치를 총괄했다. 천황의 전쟁 책임을 추궁하는 국제 여론에도 불구하고 천황제를 존속시키기로 결정했다. 46년 신헌법 제정시에는 천황의 지위와 전쟁포기, 민주화 정책에 대해 규정한 '맥아더 노트'에 따라 초안을 작성하도록 지시했다. 한편 50년에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일본의 비군사화 정책을 철회해 후일 자위대 창설의 길을 열었다. 이러한 시책들은 전후 일본의 방향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
GHQ청사 부지에 선 맥아더 최고사령관의 통역관 키자키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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