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8년 3월 일본 시마네현 이즈모시(島根県出雲市)의 젊은 상공인들은 시장 선거를 6개월 앞두고 '시장후보 유치단'을 구성했다. 그들은 젊은이들이 해마다 도시로 빠져나가 점차 활기를 잃어가는 고향을 살리기 위해 정치인보다 경영인이 필요하다고 보고 세계 최대의 증권회사인 메릴린치 미국본사 수석 부사장으로 있던 이와구니 데쓴도(岩国哲人)씨를 설득했다. 결국 고향 후배들의 애향심에 못이겨 그는 시장후보로 나서게 됐고 압도적 지지를 받아 당선됐다.
이와구니씨는 보수가 10분의 1도 안되는 길을 택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저는 이즈모시와 시마네현의 장학금으로 대학을 졸업한 인연으로 한시도 고향을 잊어본 적이 없습니다. 고향을 위해 조금이라도 보답할 수 있는 길을 걷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사실 이즈모시의 규모는 직원 6백여명, 연간 예산 3백억엔에 불과한 곳이었다. 그에 비해 당시 메릴린치 도쿄지점은 직원만 해도 4백 50명, 3백억엔이라는 자금은 메릴린치 미국본사에서 3분 30초만에 결재되는 돈이었다.
이즈모시는 일본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곳으로, 그만큼 보수적이고 폐쇄적일 수밖에 없었다. 행정조직과 의식은 노화돼 있었고 공무원들은 '가능한 방법'을 찾기보다는 '할 수 없는 이유'를 찾는 데 시간을 허비했다. 게다가 관청에는 경쟁상대가 없기 때문에 시간에 대한 코스트 개념이나 이자 개념도 전혀 없었다. 오늘 안되면 내일하고 내일 안되면 모레 한다는 식으로, 도로나 다리를 건설하다가 기한 내에 완공되지 않아도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다.
그 반면에 미국의 경우는 각 지방자치단체를 제3자가 평가하는 기준이 있어 '도시간 경쟁시대'라 불릴 만큼 매우 치열하다. "4년 동안 10년 치의 일을 하겠다"고 약속한 이와구니씨는 먼저 관료사회의 상징인 시장의자에 앉아 있는 시간을 하루 5∼6분 이내로 줄이고 결재도 서서 했다. 적어도 2주에 한 가지씩 개혁을 단행해 총 110개의 정책을 시행했다.
'클린 정치, 그린정치'라는 기치하에 지침을 세웠다. △불필요한 직위는 가능한 줄이고 다른 사람에게 이양한다. △혼례와 장례는 원칙적으로 참석하지 않되 불가피한 경우 공무상 필요한 경우에 한한다. △명절에 시장도 직원도 일체 선물을 받지 않고, 받았을 경우 꼭 시장에게 보고한다. △선거 때 나를 지지한 사람은 시청에 방문하지 않는다. △시장으로 일하는 동안 정치자금 모집을 위한 파티는 개최하지 않는다 등이다.
이와구니씨는 공무원들이 관혼상제에 참석하는 일을 엄격히 금했다. 중간관리자가 되면 관혼상제 참석도 많아져 시간비용으로 따지면 엄청난 손실에 해당되고 그만큼 행정처리 속도로 늦어지게 마련이다. 결혼식에 가지 않으면 150표, 장례식에 안가면 100표씩 잃는다고 했지만, 이와구니씨는 처의 숙부가 별세했을 때도 공무 중에는 빈소를 찾지 않았다.
한편 이즈모시 인구의 52%와 유권자의 53%가 여성인데 비해 시청 관리직에 여성이 한 명도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매년 여성을 승진시켜 1차 목표로 관리직의 30%를 여성으로 채우도록 조치했다. 이 조치는 사회나 가정에서 여성의 지위가 재평가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2년 만에 행정 능률이 두 배로 높아져 일본능률협회로부터 도요타, 소니, 혼다와 견주는 일본의 '베스트 컴퍼니'로 선정됐다. 또한 어린이와 노인에 대한 정책도 적극 펼쳐 일본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표창을 받기도 했다.
그는 메이지유신 이래 일본이 지나치게 중앙집권화되어 지방이 단순한 하청 행정기관으로 전락했다면서 "이제는 '지방의 논리'가 중앙을 이끌고 지방행정이 최첨단 행정으로 부상할 때"라고 역설했다. 그 한 예로 이즈모시가 개발하기 시작한 노인복지카드는 도중에 후생성, 자치성, 우정성, 농림성 등 중앙관청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형태로 발전되었다. 또 나무문화를 보존하기 위해 처음으로 수의(樹醫)제도를 도입하기도 했다.
이와같이 이와구니씨가 행정에 경영기법을 도입해 지방행정에 개혁의 바람을 일으켜 '풀뿌리 혁명가'로 이름을 떨치자, 그 소문이 한국에까지 들려왔다. 1993년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은 신경영체제를 선포한 후 전사 차원에서 일하는 방식을 개선하는 '프로세스 혁신'을 추진하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이와구니씨와 같은 전문가를 찾아가 배우는 것이었다. 이 회장을 비롯한 비서실 팀장들과 사장단 등 50여 명이 이즈모시를 방문했다.
그런데 그들이 목격한 이즈모시는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곳곳의 나무 한 그루도 대충 심은 게 없고 철저하게 글로벌화 표준에 맞춰 심어져 있었다. '행정도 서비스'라는 슬로건 아래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같은 곳에 공무원 출장소가 마련돼 있었고, 주중•주말 할 것 없이 시민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에 출장소를 열어 모든 행정이 시민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시민을 위한 서비스정신을 기업에 그대로 적용하면 고객을 위한 서비스정신이 된다.
'차갑다, 어둡다, 뽐낸다, 불친절하다, 게으르다'라는 일본관청의 나쁜 이미지를 없애기 위해 '휴일 개청제도'도 제안했다. 5인 1조로 1년에 한번 토•일요일에 근무를 하면 시청의 문을 365일 활짝 열어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시청에 가야만 일을 볼 수 있다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이러한 불편을 덜기 위해 시내 쇼핑센터에 이동 출장소를 개설해 호평을 얻었습니다." 이스모시에서 처음으로 실시된 출장소제도는 점차 일본 전국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연수가 끝나자 이 회장은 이와구니 시장의 딸을 삼성에 파견해 달라고 요청했다. 한국은 남존여비의 사회이기 때문에, 여성도 열심히 노력하면 남성 못지않게 성공할 수 있다는 모델을 만들고, 일본인도 당당히 한국에서 일하면서 살 수 있다는 모범사례를 남기고 싶다는 뜻이었다.
이것은 이 회장이 신경영에서 강조한 여성인력 활용과 맥을 같이한다. 그는 프랑크푸르트 선언에서 "여성 활용은 선진국의 척도"라며 "현재 삼성은 여성 자원을 낭비하고 있다"고 호되게 질책한 적이 있다. 평소에도 "다른 나라는 남자 여자가 합쳐서 뛰는데 우리는 남자 홀로 분투하고 있다. 마치 바퀴 하나는 바람이 빠진 채 자전거 경주를 하는 셈으로 인적자원의 국가적 낭비가 아닐 수 없다"고 지적한바 있다.
이와구니씨는 처음엔 거절했으나, 미국의 명문 스탠포드대학을 졸업하고 일본여자대학 강사로 취임한 장녀와 더불어 상의한 결과 "지금껏 한국으로부터 많은 것을 전수받은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또한 삼성이 기뻐하는 일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이겠다"고 결심했다. 그로부터 약 2년간 전세계를 돌며 경영전략 고문으로 활약했다.
그는 한국의 대일무역 적자에 대해 이렇게 지적한다. "한국은 부품소재 산업의 육성 없이 공업화가 진행됐기 때문에 한국 기업들은 일본의 정밀부품과 고부가가치 부품을 수입해 완제품을 만들어 수출하기에 급급하다. 중소기업 계열화촉진법이나 중소기업 사업조정법 등도 충분한 성과를 올리지 못한 채 아직 부품소재를 일본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만성적인 대일무역 적자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또한 "남북관계가 정상화되면 KTX를 평양과 신의주, 중국 동북부의 철도망과 시베리아철도에 연결시켜 현대판 실크로드를 완성해 동북아 지역경제가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한일해저터널이 만들어질 수 있다면 신칸센 네트워크를 후쿠오카에서 부산으로 연결하는 것이 가능해져 부산지역 산업의 틀이 크게 넓혀질 것이다"고 전망한다.
이와구니씨의 성공사례는 단 한 명의 리더가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는 이즈모시장을 거친 뒤 4선의 중의원 의원으로서 정치개혁에도 앞장섰다. 그리고 민주당 부대표 때 54년 만에 민주당으로 정권교체가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정계은퇴를 선언해 '세대교체'에 앞장섰다. 이와구니씨는 새한일보 창간 13주년 기념 '대한민국을 빛낸 위대한 인물' 대상 수상자로 선정돼 5월 31일 오후 3시 30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시상식이 열린다.
이와구니 데쓴도씨 프로필
1959년 도쿄대학 법학부 졸업. 일흥(日興)증권 런던·파리지점장, 중동 및 아프리카 담당
1977년 모건스탠리 입사
1984년 메릴린치 일본법인 사장·회장
1987년 메릴린치 미국본사 수석 부사장
1989년 이즈모시장
1988년 버지니아대학, 중국 남개대학 객원교수(1989)
1996년〜2009년 중의원 의원 4선
2008년 중국 산서대학 객원교수
2009년 한국 동서대학 경영학부 종신 석좌교수
새한일보 도쿄지사장 김금산 기자
이메일 shilbotokyo@gmail.com

【인물】2016 대한민국을 빛낸 위대한(자랑스런) 인물 대상
【인물】새한일보 창간 12주년 기념식 및 2015 대한민국을 빛낸 위대한 인물대상 시상식
대한민국을 빛낸 위대한 인물' 대상 "이 상 받으면 모든 일 잘된다"
【인물】大한국을 빛낸 위대한 인물 대상 大韓国を輝かせた偉大な人物大賞
【인물】大한국을 빛낸 위대한 인물 대상(大賞)수상자:이진수
【인물】大한국을 빛낸 위대한 인물 대상(大賞)수상자:박윤서
【인물】大한국을 빛낸 위대한 인물 대상(大賞)사회자:이상용(李相瀧)
【인물】大한국을 빛낸 위대한 인물 대상(大賞) 수상자:손연재 선수
【인물】大한국을 빛낸 위대한 인물 대상(大賞) 수상자:한한국(韓韓国)
【인물】大한국을 빛낸 위대한 인물 대상(大賞)
【인물】제2회 '대한민국을 빛낸 자랑스러운 인물 대상' 특별대상
【인물】제2회 '존경받는 한국인 대상' 특별대상
【인물】2013년 세계식량상 수상자 (몬산토 로버트 프렐리 박사, 마크 반 몽테규 박사, 메리 델 칠톤 박사)
【중국】‘천인 계획'의 총아 주창홍 : 중국 외환보유고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
【중국】‘풀뿌리 기업가' 중국 돈육업계 거물 ‘완롱'씨
この記事へのコメン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