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本語 요코하마 베이스타스라는 일본 프로야구단의 전신인 다이요 웨일즈는 다이요어업(현 마루하그룹) 소속의 구단이었다. 한국 연안 어업에서 일세를 풍미했던 다이요어업(大洋漁業)의 창업자인 나카베 이쿠지로(中部幾次郎)는 생선중개업자로서 한반도 연안어업을 완전히 장악했다.
일본인의 입장에서 보면 나카베는 시대의 풍운아이자 창의적인 기업가였다. 가난한 집안을 일으키고자 세태를 잘 파악해 시장을 개척했고, 독자적으로 각종 어업장비들을 개발하는 선견지명까지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인의 입장에서 볼 때 나카베씨는 일제 강점기를 등에 업은 식민주의자일 뿐이다. 토착 연안어민을 사실상 노예화시키고, 일본의 근해였다면 불가능했을 난획으로 한반도 연안의 수산자원을 고갈시켰다.
이렇게 일본 프로야구사에는 한국이 있고, 한국 어민의 현실에도 일본이 있다. 일본인의 유전자에 한국이, 한국인의 유전자에 일본이 새겨져 있는 것이다. '그때 그 일본인들' 속에는 한국사에 영향을 끼친 72명의 일본인이 등장한다. 최승희(崔承喜)를 가르친 일본인 무용가 이시이 바쿠(石井漠),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斎藤誠), 한국의 고아를 위해 평생을 바친 다우치 지즈코(田内千鶴子), 근대 한국어학을 확립한 오구라 신페이(小倉新平), 한국의 미에 주목한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悦), 제국주의를 비판한 경제학자 이시바시 단잔(石橋湛山), 한국문화재 수집가 오구라 다케노스케(小倉武之助), 아시아 여성을 위해 헌신한 저널리스트 마쓰이 야요리(松井やより)...
오이 겐타로(大井憲太郞)는 김옥균을 수반으로 하는 독립당 정권을 통해 (일본을 포함한 열강으로부터) 독립된 나라를 한반도에 탄생시키려 시도했다. 대한제국 같은 허약한 '사대당'으로는 독립이 불가능하므로, 실력을 갖춘 공화정을 조선에 심으려는 의도였다. 일종의 미국식 연방제를 꿈꾸며 '대등한 한일합방'을 주창했던 다루이 도키치(樽井藤吉), 기독교를 통한 아시아의 진보적 동화를 주장한 에비나 단조(海老名弹正)등도 흥미롭다.
가나자와 쇼자부로(金澤庄三郞)나 오구라 신페이(小倉新平)는 근대 한국어학의 씨앗을 뿌린 인물들이다. 한국어와 일본어의 뿌리가 같다며 두 언어의 동화 가능성을 집중 연구했다는 점에서 '식민학문'의 근원이 되기도 했다. 아키바 다카시(秋葉隆), 무라야마 지준(村山智順),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悦), 아사카와 다쿠미(浅川巧) 등을 빼놓고 한국 민속학과 문예론을 논할 수는 없다.
평화운동과 민중운동의 큰 스승으로 추앙받았던 함석헌의 배후에는 기독교 평화주의를 주창했던 우치무라 간조(内村鑑三)가 있었고, 조선이 낳은 세계적인 무용가로 칭송받았던 최승희의 뒤에도 서구무용으로부터 일본식 무용의 새 길을 개척했던 이시이 바쿠가 있었다. 야마자키 게사야(山崎今朝彌), 후세 다쓰지(布施辰治), 후루야 사다오(古谷貞雄) 등 일제강점기 한국독립운동가를 지지했던 인권변호사들의 족적이 여전히 감동적이고, 박열과 함께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의 이야기도 그립다.
그러나 혁명가와 사상가의 이야기보다 더 감동적으로 한일관계사를 웅변하는 인물이 있다.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이후까지 목포의 '공생원'에서 한국의 고아를 보살핀 다우치 지즈코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한국인 윤치호와 결혼한 그녀는 해방 직후 친일파를 살해하려는 사람들에게 위협당했고, 한국전쟁 때는 북한군에 의해 인민재판을 받았으며, 연합군의 점령 뒤에는 공산분자라는 이유로 체포됐다. 이렇게 생사의 기로에 설 때마다 마을 사람들은 언제나 그녀를 지켜주었다.
전쟁 와중에 남편을 잃은 뒤에도 끝까지 한국에 남아 아이들을 돌보았던 그녀는 일본인으로는 처음으로 한국 정부로부터 문화훈장 국민장을 받았고, 일본 정부로부터 란쥬호쇼(藍綬褒章, 사회사업 공로자에게 주는 기장)를 받았다. 다우치 지즈코는 박애정신으로 한국과 일본을 하나로 묶었다. 그녀가 사랑했던 것은 이념과 민족이 아니라 인간이었다. 오늘날 한일관계에 있어서 절실히 필요한 존재는 바로 제2, 제3의 다우치 지즈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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