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동포】'세계 고아의 날' 제정 서명운동 발족식, '韓 고아의 어머니' 윤학자 여사의 뜻을 기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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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독립선언 기념일을 맞이해 방일중인 이낙연(李洛淵) 전남지사가 동석한 가운데 도쿄에서 '세계 고아의 날' 제정을 위한 서명운동 발족식이 열렸다. 올해는 지난 2012년 '한국 고아의 어머니' '목포의 어머니'로 추앙받는 故 윤학자(다우치 지즈코:田内千鶴子) 여사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목포에서 20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유엔 '세계 고아의 날' 제정 추진대회가 열린지 5년째를 맞이하는 해이다.

윤학자 여사의 장남인 '일본사회복지법인 마음의 가족'의 윤기(尹基, 일본명 다우치 모토이:田内基) 이사장은 "수많은 단체가 있지만 고아들을 응원해 주는 단체는 아직 없다"면서, 앞으로 멜린다 게이츠 여사를 초빙해 '우리는 세계 고아의 날을 원한다'는 취지로 뉴욕에서 사회복지 관계자 세계대회를 개최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어 이낙연 지사는 "지난달 1월에 시코쿠(四国) 고치(高知)시를 방문해 윤 여사의 기념비를 찾아 헌화했다. 윤 여사가 키워낸 고아들을 상징하는 3천개의 작은 돌들이 비를 에워싸고 있었다. '세계 고아의 날'을 제정하기 위해서는 먼저 민간 차원에서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이 달 25일 경 유엔을 방문해 '세계 고아의 날' 제정을 위하여 협조를 요청할 것"이라며 참석자들을 독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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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여사의 남편인 故 윤치호씨는 일제시대에 목포 영사관의 외교관이었다. 1928년 그는 목포의 어느 냇가 다리밑에서 추위에 떨고 있던 일곱명의 어린 고아들을 발견해 그들과 같이 생활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바로 '공생원(共生園)'의 첫 출발이었다.

윤치호씨는 맨손으로 땅을 고르고 어린이들과 함께 기도 드리며 강당을 짓기 시작했다. 마침 해변가에서 표류된 난파선 한 척을 발견해 쓸 수 있는 목재들을 골라 강당을 짓는데 활용했다. 그로부터 10년만에 완공된 강당은 현재 교회로 사용되고 있으며, 건물 중앙의 석조 아치문 위에는 한글로 '공생원'이라 새겨져 있다.

이후 고아들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혼자만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게 되자, 당시 여학교 음악교사였던 윤학자 여사가 합류했다. 윤 여사는 고치시에서 태어나 7세 때인 1919년 총독부 산하 목포시청 관리였던 아버지를 따라 한국에 왔다. 열성적인 기독교인이었던 그녀는 공생원에서 봉사하다가 윤치호씨와 결혼하기에 이른다.

해방 후 총독부 치하에서 사회 사업을 경영하던 일본인들은 모두 본국으로 돌아갔지만, 윤 여사는 남편과 함께 고아들을 끝까지 지켰다. 하지만 그들 부부는 친일파로 몰리게 되었고 특히 윤 여사에 대한 박해가 극심한 가운데, 그들의 방패막이가 되어준 것은 다름아닌 공생원의 아이들이었다. 그들은 윤 여사가 "비록 일본인이지만 우리들의 어머니"라며 인간띠를 만들어 묵숨을 지켜줬다. 민족은 달라도 진심은 통한다. 사랑을 받으면 사랑하는 사람이 된다. 도움을 받으면 되돌려 준다. 이것이 인간이다. 이것이 바로 공생원의 역사이다.

그러던 중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전쟁 고아들과 버려진 아이들까지 받아들여 원생들은 일시에 300명을 넘어섰다. 어느날 식량을 마련하기 위해 외출했던 윤 원장이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한 것일까 결국 돌아오지 않았다. 윤 여사는 남의 아이들의 생명을 온몸으로 떠안고 오직 사랑하는 남편이 평생 동안 투입해온 공생원을 남편이 돌아오는 날까지 지키겠다는 일념 하나로 리어카를 끌며 쌀과 김치를 얻기 위해 돌아다녔다. 점차 그녀의 헌신적인 삶이 세인들의 마음 속에 감동을 불러일으켜, 한 때 반일 감정을 갖고 있던 사람들도 그녀를 통해 일본 여성의 진가를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윤 여사는 '한국 고아 3000명을 키운 어머니'로 ​​존경을 받았고, 63년 박정희 대통령은 문화훈장을 수여해 여사의 공적과 노고를 치하했다. 당시 일본 경단련(経団連) 부회장이며 일한경제협회의 설립자였던 우에무라 코고로(植村甲午郎)씨는 윤 여사로부터 '공생원'에 대한 얘기를 듣고 감동한 나머지 '윤 여사와 그 사업을 격려하는 모임'을 결성하자고 제안했다. 그 제안에 많은 유명인사들이 동참해 그 해 10월에 모임이 발족되고 바로 그 이듬해에 한일국교정상화가 성사됐다.

이 모임의 발족은 한일 양국에서 크게 보도되었으며 그녀의 바다를 건넌 인류애는 일본 각지에서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일본 정부는 란쥬포상(藍綬褒章)을 수여했다. 이것은 외국인에 대한 일본인 사회사업가에게 수여한 최초의 포상이었다. 또한 일본 전역의 민단으로부터 따뜻한 손길이 전해졌다.

68년에 55세로 영면한 윤 여사를 위해 목포시 최초의 시민장으로 치뤄진 장례식장에는 3만 명이 운집했고, "이날 목포가 울었다"고 보도됐다. 이듬해 일본 정부로부터 훈일등 호우칸쇼(勲五等宝冠章)가 추증되었다. 윤 여사는 평생 한복과 한국어를 사랑했는데 마지막으로 "우메보시가 먹고 싶다"며 일본어로 소원을 말했다고 한다. 장남 윤기 이사장은 어머니의 유훈을 받들고자 간사이 지방에서 다문화 공생의 '고향의 집'을 네 개 지었고, 올해 7월에는 재일 한국인과 일본인 노인들이 편안히 노후를 보낼 수 있는 김치와 우메보시의 양로원 '고향의 집 도쿄'를 개설할 예정이다.

69년 일본방송(NHK)에 출현한 윤 이사장이 "가족적인 분위기 속에서 어린이들을 기르고 싶다"고 호소하자, 이에 감동한 일본항공회사(JAL)의 마쓰오 시스마(松尾静馬) 회장이 사랑의 집을 기증해 'JAL하우스'로 명명되어 지금까지 교류가 이어지고 있다. 현재 졸업생들을 위한 기숙사로 사용되고 있다.

70년대 당시만 해도 320명의 어린이들은 임시로 지어진 좁은 식당에서 3교대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이 광경을 차마 볼 수 없었던 오사카의 지쿄칸(自彊館) 요시무라 이사장이 목포목공회사(木浦工務店) 오우라 가즈오(大浦一夫) 사장에게 부탁해 건립된 것이 바로 '대일식당'이다. 지금은 도서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윤치호 할아버지 때부터 삼대에 걸친 봉사활동이 NHK '20세기의 영상'에서 방영되자, 마침 이 프로를 시청한 '오부치 게이조(小渕恵三)' 전 총리는 자신의 고향 군마현(群馬県)의 매화나무 12그루를 기증해 2000년 공생원 뜰에 심어졌다. 2008년 공생원 창립 80주년에는 오부치 지즈코(小渕千鶴子) 전 총리 부인이 공생원을 방문하기도 했다.

이와같이 윤학자 여사의 민간 외교적 성과는 일일히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한때 이씨 정부에 의해 반일 감정이 이식되었던 수많은 한국 사람들은 윤 여사를 통해 일본인의 진가를 알게 되었고, 2012년 윤 여사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목포에서 20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유엔 '세계 고아의 날' 제정 추진대회가 열린 것이다. 국경을 초월해 인류애를 몸소 실천한 윤 여사의 고귀한 삶이야말로 오늘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인류의 귀감이며 세계평화의 유산으로서 길이길이 후손들에게 상속해 줘야 할 것이다.

윤학자씨와 그 사업을 격려하는 모임 임원 명단
(64년 12월 1일 현재)

〇〇〇〇〇〇〇〇〇会長 植村 甲午郎 経団連会長
〇〇〇〇〇〇〇〇〇理事 足立 正〇〇 日商会頭
〇〇〇〇〇〇〇〇○〇〇〇安藤 豊禄 小野田セメント相談役
〇〇〇〇〇〇〇〇〇○〇〇上村 健太郎 日本科学技術振興財団
〇〇〇〇〇〇〇〇〇〇○〇神田 博〇〇   
〇〇〇〇〇〇〇〇〇〇〇○吉川 久衛 衆議院議員
〇〇〇〇〇○〇〇〇〇〇〇木村 忠二郎 日本社会事業大学学長
〇〇〇〇〇〇○〇〇〇〇〇楠木 直道 いすゞ自動車社長
〇〇〇〇〇〇〇○〇〇〇〇田中 竜夫 衆議院議員
〇〇〇〇〇〇〇〇○〇〇〇団  伊能 日韓貿易協会会長
〇〇〇〇〇〇〇〇〇○〇〇鄭  漢永 日韓友好協会会長
〇〇〇〇〇〇〇〇〇〇○〇徳永 久次 富士製鉄常務
〇〇〇〇〇〇〇〇〇〇〇○灘尾 弘吉 全国社会福祉協議会
〇〇〇〇○〇〇〇〇〇〇〇西嶋 東〇〇 三井物産 常務
〇〇〇〇〇○〇〇〇〇〇〇野田 卯一 衆議院議員
〇〇〇〇〇〇○〇〇〇〇〇長谷川重三郎 第一銀行 副頭取
〇〇〇〇〇〇〇○〇〇〇〇浜田 幸雄 衆議院議員
〇〇〇〇〇〇〇〇○〇〇〇原田 憲〇〇 衆議院議員
〇〇〇〇〇〇〇〇〇○〇〇船田 中〇〇 衆議院議員
〇〇〇〇〇〇〇〇〇〇○〇牧野 正士 石川島播磨重工業常務
〇〇〇〇〇〇〇〇〇〇〇○李  康友 日韓経済協会 副会長
〇〇〇〇〇〇〇○〇〇〇〇和田 他圭作 小松製作所 常務
〇〇〇〇〇〇〇〇○〇〇〇恩田 寛〇〇 東洋綿花株式会社東京支社
〇〇〇〇〇〇〇〇〇監査 山口 英治 日韓経済協会専務理事
〇〇〇〇〇〇○〇〇〇〇〇渡辺 欽〇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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