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 시절에 할아버지로부터 큰 영향을 받은 故김영삼 대통령은 할아버지를 따라 망망대해를 누비며 사나이다운 배포와 우직하리만큼 강직한 성품을 키웠다고 한다.
일찌기 기독교에 심취한 할아버지는 전도사나 목사들을 자주 초청하여 예배를 드렸고, 사람들의 맹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교회에 뽕밭을 기부했다. 그리고 거제도에 기독교를 전파하여 주민들 대부분이 기독교를 믿게 되었고 가족들도 교인이 되었다.
김영삼은 중학생 때부터 대통령이 되기로 결심하고 자신의 장래 희망을 물으면 대통령이라고 대답했고, 책상위에 '미래의 대통령 김영삼'이라고 써놓곤 했다.
김영삼은 아들이 귀한 집안에서 외아들로 태어나 아버지와 어머니의 극진한 보살핌 속에서 성장해 자부심이 강하고 자아의식도 누구보다 강했다. 특히 어머니는 여장부 스타일로 성격도 활달하고 씀씀이도 후해 동네에서 인기가 좋았다고 한다.
김영삼에게 어머니가 정신적 지주였다면, 아버지는 정치적 지주였다. 아버지 김씨는 1930년대 말 모두 어렵게 살던 시절 정치망 멸치 어장과 어선 10여 척을 소유했던 거제도 최고 갑부였다.
정치인 시절 김영삼씨는 양복 안주머니 지갑에 손을 넣어 잡히는 대로 사람들에게 용돈을 주어 '통큰 정치인'으로 알려졌고, 그 덕분에 주변에 항상 사람들이 모여들어 정치세력을 늘리고 마침내 대통령에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효심이 깊었던 김영삼 대통령은 재임 중 매일 새벽 아버지에게 안부전화를 거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고 생일 때마다 꽃다발을 보냈다. 아버지 김홍조 옹은 아들이 대통령으로 재임 중 주변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청와대를 방문하지 않았다고 한다.
퇴임 후 2002년부터 와세다대학 특명교수로 취임하여 매년 두번 방일하여 공공경영연구과 특별 강의 또는 대학 공개강연회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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