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에 바라보는 필리핀 영화사
필리핀에 영화가 전래된 것은 꽤 이른 편이며, 1897년 첫 상영 이래 1912년에 국민 영웅 호세 리잘을 그린 두 편의 영화가 미국인에 의해 제작되었다. 필리핀 감독이 제작한 첫번째 영화는 1919년 호세 네포무세노의 'Country Maiden'이다. 1930년대에 미국스타일의 스튜디오 시스템이 구축되자, 중국이나 동남아 지역의 영화가 제작되기 시작해, 마닐라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도시가 되었다. 그런데 태평양전쟁이 터져 일본군이 주둔하자 'Dawn of Freedom'(1944) 등 일본식 선전영화의 거점이 되고 말았다.
전후 재건된 필리핀 영화계는 50년대에 '제1 황금기'를 구가한다. LVN를 비롯한 메이저 스튜디오들은 많은 오락영화를 제작했다. 람베르트 아벨라나의 'Child of Sorrow'(1956), 게라도 드 레옹의 'Touch Me Not'(1961) 등이다.
60년대의 불황기를 거쳐 70년대에 표현의 자유가 제한된 마르코스 정권하에서 리노 브록카, 이스마엘 베르나르, 마릴로 디아즈-아바야 같은 체제 저항 작가들이 등장한 시기를 '제2 황금기'라 부른다. 브록카의 'Manila in the Claws of Lights'(1975), 베르날의 'Miracle'(1982)이 대표작이다. 이 시기에 무명의 인디 작가 키들랏 타히믹은 'Perfumed Nightmare'(1977)로 베를린영화제 국제영화비평가연맹상을 수상했다.
독재정권 이후 90년대에는 영화산업이 쇠퇴하지만, 21세기 디지털시대에 독립영화라는 새로운 흐름이 탄생했다. 필리핀 국립문화센터가 젊은 영화인들을 위해 '시네마라야' 영화제를 창설하고 브릴란테 마 멘도자가 2005년에 데뷔했다. 이 때를 '제3 황금기'로 본다. 인디 작품의 품질을 인정한 대스타들이 출연하고, 메인스트림과 인디즈를 합쳐 만든 '메인디즈'라는 신조어도 탄생했다. 또한 라브 디아즈의 'From What is Before'(2014), 에릭 마티의 'On the Job(2013), 라야 마틴의 'Independencia' (2009) 등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대히트작으로 보는 필리핀 영화의 현황
일본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현상이지만, 필리핀 상업영화들의 주력 상품인 오락영화들은 매년 크리스마스시즌 2주간 개최되는 메트로 마닐라영화제(라는 명칭의 국산영화 독점 상영기간)에 출품된 작품에 한정되어 있었다.
그런 상황에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후반 경이다. '비수기'에 상영되는 국내 영화의 흥행수입이 할리우드 영화를 제치고 주간 베스트를 기록하고, 특히 사라 제로니모와 존 로이드 크루즈 주연의 로맨틱 코미디시리즈가 매 작품마다 대히트를 기록했다. 최신작 'It Takes a Man And a Woman'(2013)이 연간 인기 3위를 마크하는 등 상식을 뒤집는 성공을 거뒀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2014년 다크호스 같은 초히트작 'Starting Over Again'으로 이어졌다.
한편 메트로 마닐라영화제 출품작일 경우에는 더 한층 인기가 높다. 그 원동력을 제공한 사람은 필리핀을 대표하는 게이 배우 겸 개그맨 겸 가수인 바이스 간다인데, 데뷔 주연작 'Petrang Kabayo'(2010)이 갑자기 스매쉬 히트를 기록하더니, 이듬해 2011년 두번째 주연작인 'The Unkabogable Praybeyt Benjamin'(2011 제4회 오키나와 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됨)이 국산영화 연간 흥행수입 1위, 그리고 최신작인 'The Amazing Praybeyt Benjamin'(2014)은 필리핀 영화사상 최고의 흥행성적을 기록했는데 아직 이에 필적할 만한 경쟁 작품이 없다.
간다 출연 영화를 독점하고 있는 것은 ABS-CBN 방송사의 자회사인 신흥영화사 스타시네마이며, '강한 배급사에 강한 작품이 모인다'라는 영화업계의 정석대로 필리핀 영화의 연간베스트 10은 (거의) 스타시네마 영화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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