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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한•일국교정상화의 주역 김종필(金鍾泌) 전 국무총리(89)의 부인 박영옥(朴栄玉)씨가 2월 21일 사망했다. 김 전 총리는 박정희 정권에서 국민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일국교정상화를 추진할 당시 앞장서서 한•일기본조약과 청구권협정 등에 대해 팽팽한 협상을 벌였던 장본인이다.
故박영옥 부인에 대해 김 전 총리는 "64년 동안 함께 살면서 한번도 남편을 원망하지 않았다. 맘에들지 않는 일이 있으면 자기가 먼저 어떻게든 해보려고 애썼다"고 회고했다. 1950년 6•26전쟁 중에 박정희씨 집에 불려가 "내 조카인데 받아주지 않겠나"하고 부탁을 받자 "(그녀가 원한다면) 좋다"며 즉시 결정한 결혼 상대가 박영옥씨였다.
아베 총리는 23일 주한일본대사관을 통해 서한을 보내 "김 전 총리를 비롯해 깊은 슬픔에 잠긴 유족들에게 가슴 깊이 조의를 표한다"고 전했다. 김 전 총리는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郎) 외상(아베 총리의 아버지)은 인품이 대단히 훌륭했다"고 평가했다. 이 날은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曽根康弘) 전 총리의 서신도 도착했다. 또한 방한한 오자와 이치로(小沢一郎)•생활당 대표는 김종필씨와 40년전부터 "바둑을 같이 둔 오랜 친구'이다.
조문객들과 대화하는 가운데 김 전 총리는 "공백이 생겼다. 일본 의원도 한국어를 못하고, 한국의 젊은 의원들도 일본어를 못한다. 예전은 서로 통하는 시절이었다"며 양국 정치가들의 커뮤니케이션 결핍을 지적했다. 이어서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의 발언을 들어보면 한국에 대해 좀 더 깊이 이해하고 양국의 우의를 돈독히 하려는 마음이 느껴지지 않는다. 어딘지 모르게 일본은 한국을 내려다보는 구석이 있다. 서로 한 발작씩 물러나 새로운 한•일관계를 구축해야 한다"며 "우리도 불필요하게 일본을 자극하고 비판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 전 총리는 "예전에 상대했던 일본 정치인들은 그래도 아량이 있었는데, 위안부의 존재를 부정하는 스가 관방장관은 정말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체결시 위안부 배상을 정식으로 거론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당시는 위안부들이 겨우겨우 조국에 돌아와 배우자의 아이를 낳고 열심히 살던 때였다. 그런데 과거의 위안부들을 끌어내서 어려운 문제를 일으켰다. 누구의 발상인지는 모르지만 가슴아프다"고 심중을 털어놓았다.
김 전 총리는 "내게 있어 승자란 죽을 만큼 미운 녀석의 죽음을 확인하고 그 보다 더 오래 사는 사람인데, 졸수(卒寿, 90세)가 되면 생각이 바뀐다. 구순이 되면 미운 사람이 없다"고 덪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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