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폭력을 일삼던 실패자였으나 하나님을 통해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저는 진정한 목회자는 자기의 살을 베어서 불우한 이들을 먹여 살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자신이 죽어가는 것처럼 목회자도 그렇게 해야 된다고 봅니다."
1988년 한국 최대의 윤락가 청량리 588 한복판에 가나안교회를 세운 김도진 목사(77)는 1938년 일본 나고야에서 태어났습니다. 독립군 할아버지 김성숙옹은 3•1운동에 가담해 옥고를 치루었고 부친은 일본에서 독립운동을 지원했습니다.
일본 패전 후 한국으로 돌아왔으나 전염병으로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그는 세상을 비관적으로 바라보며 감사, 축복, 용서라는 말 자체를 몰랐고 4•19운동 참가자로 지명수배되어 도망자 신세가 되었습니다. 또한 아버지마저 속병으로 돌아가시자 알코올중독에 깡패로 밑바닥 인생을 살다가 33세에 삶의 변화를 기대하며 기독교인 여성와 결혼했지만 건축업을 하다 사기를 당해 가정은 거의 파탄되고 산더미같은 빚만 졌습니다. 사기꾼 세 명을 잡으려 복수의 칼을 품고 정신병자처럼 돌아다니며 식음도 전폐했고 결국 그 자신이 먼저 죽어갔습니다.
42세에 아내와 성도들의 설득에 이끌려 '다락방기도원' 부흥성회에 참석, 삼일째날 비몽사몽간에 "내가 너를 도우리라. 그리고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축복으로, 저주하는 자에게는 저주로 갚으리라"는 음성을 듣게 되자 그에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평생을 악과 더불어 살았고, 불평하면서 살던 그가 평강의 눈물과 감격의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면서 "칼을 버리고 내 인생 다시 살리라"고 다짐했습니다. 또한 죄인을 용서하기 전에 자기 자신이 죄인임을 깨닳았고 "난폭한 표범이 순한 양으로 변했습니다."
예언자로부터 "말세에 하나님께서 크게 쓰실 재목"이라는 증거를 듣고 43세에 신학에 입문하여 51세에 신대원을 졸업했습니다. 졸업을 1년 앞두고 기도 중에 "청량리로 빨리 가라"는 음성을 듣고 찾아간 곳은 살벌한 분위기가 감도는 깡패 소굴이었습니다. "여기가 네가 예배드릴 곳이니 자리를 떠나지 말고 사수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예배를 시작하였고, 전도 대상자는 전과자, 부랑인들이었으나 "나를 변화시킨 하나님은 다른 사람도 변화시킬 수 있다"는 확고부동한 신념하에 하루 1000명의 노숙인들에게 세끼 식사를 무료로 급식하면서 26년동안 교회를 사수했습니다.
"쓸모없는 버려진 돌이 모퉁이 돌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능력'이십니다. 망가진 인간을 고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외에는 없습니다. 창조주는 재생하실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낮은 자들을 섬기신 예수님처럼 한국교회는 교회 이기주의와 물질적 세속화를 버리고 낮은 자들을 돌보아야 합니다."
【인물】따귀 한 방으로 아들 살인범을 용서한 어머니
【교육】홍법대사(弘法大師)의 명언
【교육】힐링 메시지
【No Pain No Gain】범사에 감사하라 !!!
【No Pain No Gain】나비처럼 하늘을 날아라!
この記事へのトラックバック
この記事へのコメン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