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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7년 10월 27일 진도의 울돌목에서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일본 시코쿠(四国) 에히메(愛媛)의 성주 구루시마 미치후사(来島通総)가 이끄는 일본수군을 대파했다.
오늘날 일본 우경화의 진원지인 에히메현 마쓰야마시(松山市)에는 '언덕 위의 구름(坂の上の雲)'이라는 박물관이 서있다. 이 명칭은 소설, 영화, 드라마로 반세기에 걸쳐 일본인의 머리를 지배한 작가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 본명 후쿠다 데이이치, 福田定一)의 역사소설 '언덕 위의 구름'에서 유래한다. 60년대 이후 일본 주요 사극들은 대부분 그의 소설이 원작이었으며 NHK방송문화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 소설은 러일전쟁 당시 에히메현 마쓰야마시 출신의 아키야마 요시후루(秋山好古), 아키야마 사네유키(秋山真之),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 등 젊은이들의 활약상을 그린 것으로, 일본 NHK 방송이 일본 민족혼을 불러일으킨다는 야심으로 대하드라마를 제작, 2009년 11월부터 3년에 걸쳐 방영되었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의 승리를 자랑스럽게 표현한 이 드라마는 결과적으로 일본사회의 우경화를 가속화시키고, 예상을 뒤엎고 승리한 러일전쟁은 '강한 일본' '아시아의 맹주'라는 이미지를 심어주었던 것이다.
지난 2015년 종전 70주년을 맞이하여 에히메현 도온시(東温市)를 무대로 한 영화 '요코사쿠라(陽光桜)'가 일본 전국에서 상영되었다. '요코사쿠라'는 故다카오카 마사아키(高岡正明) 씨가 개발한 사쿠라이다.
1935년 일본은 전국에 청년학교를 설치하여 청년들의 군사교육을 강화했다. 1940년부터 에히메현 도온시 청년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다카오카 씨는 "신의 나라 일본은 강한 나라다. 절대로 지지 않는 나라다. 나라를 위해 싸워라. 이 사쿠라 나무 아래서 다시 만나자"고 출정식을 갖고 수백명의 생도들을 전장에 내보냈다.
그런데 일본이 패하자 최전선에 나갔던 생도들이 전원 목숨을 잃고 말았다. "내가 왜 그렇게 가르쳤단 말인가? 내가 죽게 했다." 다카오카 씨는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사쿠라 나무 아래서 사진을 찍은 생도들을 떠올리며 후회와 자책의 눈물을 흘렸다.
다카오카 씨는 세계 도처에서 전사한 생도들의 영혼을 위로해 주고자 어떠한 기후에도 적응하여 꽃을 피울 수 있는 신종 사쿠라를 개발하기로 결심했다. "전쟁없는 세계는 내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비참한 전쟁이 재삼 반복되어서는 안된다는 반전(反戦) 메시지를 담아 평화의 상징 사쿠라를 개발해 세계에 보급하는 것이 내 여생 최고의 사명이다."
그는 속죄와 반전을 염원하며 가업을 뒤로하고 사재를 털어 일본 전국을 돌면서 거듭된 실패와 가정 붕괴의 위기에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어떤 일이 있어도 이 사쿠라는 반드시 꽃피워야 한다. 이것은 생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과 같다."
그로부터 30년에 걸친 그의 집념은 마침내 병충해나 혹한 혹서에도 강한 주홍색 '요코사쿠라'로 결실되었고, 오늘날 '요코사쿠라'는 세계 도처에서 평화의 심벌로 식수(植樹)되고 있다. 그리고 일본 패전 70주년을 맞이한 2015년, NHK에서 방영된 '마음을 비추는 사쿠라ㅡ요코사쿠라 스토리ㅡ(心を照らす桜〜陽光桜の物語〜)'를 원작으로 영화 '陽光'이 제작되었던 것이다.

2010년 하노이 건도(建都) 1000년 기념 요코사쿠라 1000그루 기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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