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지배자는 남의 말을 듣지 않는다.”
<선조실록> 25년 4월 28일
선조는 “나는 떠나지 않고 경들과 목숨을 바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튿날 새벽 선조는 서울을 떠났다.
조선 선조는 명종이 후사 없이 세상을 뜨자, 제왕이 될 공부도 하지 못한 채 열 여섯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당대 최고의 학자였던 퇴계 이황은 이를 우려해 집권 1년이 된 선조에게 제왕의 도를 요약 정리한 <성학10도>를 올렸다. 퇴계는 “임금의 한 마음은 온갖 기틀이 유래하는 바이고 온갖 책임이 모인 바이며, 뭇 요구가 서로 공격하고 뭇 사악함이 차례로 뚫는 것이니, 한 번이라도 태만하고 소홀하며 계속하여 방종하면 산이 무너지고 바다에 풍랑이 이는 것같아 막을 수 없기 때문”에 글을 올린다며, 옛날 현명한 제왕은 눈길이 가는 곳과 몸이 처한 곳에, 교훈과 경계의 글을 새겨놓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조심하고 또 경계했다고 진언했다.
그러나 퇴계의 진언에도 선조가 우유부단하자 7년 뒤 부제학 율곡 이이는 <성학집요>를 바치며 다시 제대로 된 왕도를 따를 것을 촉구했다. 율곡은 “임금이 덕을 닦는 것이 정치의 근본”이며 “온 세상 사람들의 눈을 내 눈으로 삼으면 모든 것을 분명히 볼 수 있고, 온 세상 사람들의 귀를 내 귀로 삼으면 모든 것을 똑똑히 들을 수 있으며, 온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내 마음으로 삼으면 모든 것을 슬기롭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라고 간언했다. “이와 반대로 스스로 모든 것에 통달하였다고 여겨 자기 재능만 믿고 모든 일을 처리하며, 남의 의견을 듣지 않는 것이 고질이 되면 어둡고 막힌 길로 달려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조는 당대의 거유들의 간언을 듣지 않고 임진왜란이란 크나큰 고통을 백성에게 안겼다. 선조는 왕권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백성들로부터 구국의 영웅으로 칭송받고 있었던 충신이나 의병들을 미워했다. 시기 질투가 죽 끓듯 했으며 의심증 또한 보통이 아니었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을 죽인 선조의 망령”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덕망있는 김덕령 의병장에게 군사력과 민심을 발판으로 역모를 꾸민다는 죄를 뒤집어 씌워 모진 고문 끝에 죽였다. 김덕령 의병장은 감옥에서 살이 터지고 뼈가 튀어나와 그 꼴이 말이 아니었다 한다. 왜군을 벌벌 떨게 했던 의병장의 마지막은 그야말로 참혹했다. 그와 절친했던 곽재우 의병장은 은둔생활을 했고 다른 의병장들도 의병을 해산했다. 이순신 장군도 옥에 갇혀 사형 직전까지 갔다가 유성룡의 변호로 간신히 목숨을 건져 백의종군했다.
칠천량해전(漆川梁海戰)에서 삼도수군 통제사 원균이 패하자, 선조는 이순신 장군을 다시 삼도수군 통제사로 임명했다. 이순신 장군은 “임금이 나를 죽이고 왜적이 나를 살리는구나”고 말했다. 만일 칠천량해전에서 원균이 패하지 않았더라면 그 후 조선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
이순신 장군이 열 두 척으로 명량대첩에서 이겼는데도 선조는 기뻐하지 않았다. 선조는 오히려 “저 무식한 무부가 차라리 패전하여 죽기만을 바랄뿐이다”고 더욱 경계했다. 또한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큰 공을 세운 이순신을 잡아 죽일 명분이 없어 고민했는데, 그가 승전을 하고도 전사하였다니 참으로 다행이다”하고 안심했다.
<인조실록> 15년 1월 30일
선조가 서울을 떠난 날로부터 45년 7개월 후 인조가 청 태종에게 항복했다.
청으로 사로잡혀가는 아이들과 여자들이 임금을 바라보고 울부짖으며 “우리 임금이여, 우리 임금이여, 우리를 버리고 가십니까? 길 양쪽에서 울부짖는 사람이 수 만 명이었다.”
그 후 청이 돈을 받고 포로를 되돌려 주었으나, 사대부 가문들은 돌아온 여성들이 성적으로 오염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하여 모두 내쫓아 버렸다.
조선의 왕과 양반은 평시에 백성들의 노동 위에 풍요를 누렸지만, 다급해지면 자신들의 안위를 챙기느라 백성을 버리고 몰래 피난을 떠났다. 원래부터 그들이 세운 나라는 백성을 위한 나라가 아니라, 그들 자신을 위한 나라였기 때문이었다. 선조가 서울을 버리자 난민들이 먼저 불태운 곳은 노비 관계 업무를 관장하는 장례원과 형조였다. 양반들에게 부림을 당하다 난민이 된 노비들의 방화는 그 동안의 차별과 억압에 대한 저항이었던 것이다.
명량대첩(왼쪽)과 중상모략으로 공직을 박탈당해 압송되는 이순신 장군(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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