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만삭스의 아버지' 시드니 와인버그(왼쪽)
'골드만삭스의 심장' 존 와인버그(오른쪽)
일본어경제발전이 근로자와 대중의 삶의 질도 개선시킬 수 있다는 전통적인 믿음이 사라지고 있다. 여러가지 이유 가운데 가장 중요한 요인은 자본권력이 대의민주주의적 절차에 따라 대중이 위임한 정치권력을 누르고 국가사회의 어젠더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골드만삭스(Goldman Sachs)를 가버먼트삭스(Government Sachs)라고 부르는 미국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미국은 겉으로는 완전한 민주주의체제인 듯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부권력이 자본이 제공하는 정치자금과 인력풀로부터 대단히 자유롭지 못한 나라이다.
독일계 유대인 마르쿠스 골드만은 1869년 뉴욕의 어음거래 중개회사인 골드만을 설립했다. 사위 샘 삭스가 합류하면서 1882년 골드만삭스로 개명했다. 철도채권 거래로 막대한 이익을 올렸던 골드만삭스는 철도붐이 끝나자 1920년대부터 일반 투자자의 자금으로 펀드를 운용했으나 대공황으로 투자금의 90% 이상을 날리면서 파산 위험에 빠졌다.
골드만삭스를 구한 인물은 1930년 회장에 오른 시드니 와인버그였다. '골드만삭스의 아버지'로 불리는 와인버그 前회장은 이후 40여년간 회장직을 맡으면서 골드만삭스를 세계 최고의 투자은행으로 키웠다. 그 과정에서 와인버그는 제2차대전 당시 루즈벨트 대통령 백악관 특별위원회 멤버였고, 전후에는 트루먼 대통령의 백악관 자문위원을 역임하면서부터 워싱턴 정가와 골드만삭스를 연결하는 접착제 역할을 했다.(아들 존 L. 와인버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90년부터 99년까지 골드만삭스 회장을 지냈으며, 손자 존 S. 와인버그는 현재 부회장이다.)
'골드만삭스의 아버지'는 골드만삭스 인맥을 20세기 세계 최강국인 미국 정가에 심는 '전통'을 만들었는데, 특히 부시 행정부에서 골드만삭스와 미국 행정부의 유착은 절정기를 맞이했다.
물론 70년대 존슨 행정부의 헨리 파울러 前재무장관, 80년대 레이건 행정부의 존 화이트헤드 前국무장관과 토머스 힐 前재무차관, 90년대 클린턴 행정부의 로버트 루빈 前재무장관 등 골드만삭스 출신이 행정부에 진출하기도 했지만, 부시 정부에서는 백악관, 행정부, 감독기관을 접수하다시피 했다.
시드니 와인버그가 은퇴할 즈임인 1972년에 골드만삭스에 입사한 헨리 폴슨은 골드만삭스 회장을 지내다가, 2006년 7월 부시 행정부의 재무부장관에 취임했다.
70년대부터 닉슨 행정부 백악관과 국방부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폴슨 前장관은 역시 골드만 회장 출신인 클린턴 행정부 재무장관 로버트 루빈(66년 골드만 입사)과 함께 골드만삭스와 미국 정계의 회전문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인물이었다.
닉슨 백악관에서 일할 당시부터 부시 정권의 '실세'였던 딕 체니 부통령(닉슨 행정부 백악관 비서실장)과는 절친한 사이였다. 체니 부통령과 함께 골드만삭스 부사장 출신인 조슈아 볼턴 당시 백악관 비서실장도 폴슨의 장관 임명을 강력히 밀었다. 폴슨 장관은 취임 직후 로버트 스틸 골드만삭스 前부회장을 재무부 차관으로 임명했다.
부시행정부 1기 백악관 경제보좌관이던 스티븐 프리드먼 골드만삭스 前부회장은 2기에는 백악관 국가경제자문위원회 의장에, 골드만삭스 수석이코노미스트 출신인 월리엄 더들리는 뉴욕연방준비은행 부총재에 올랐다. 골드만삭스 이사 출신인 루벤 제프리는 에너지・원자재 파생상품 거래를 감독하는 상품선물거래위원회 회장을 맡았고, 골드만삭스 최고재무책임자였던 존 테인은 뉴욕증권거래소 회장 자리를 거머쥐었다.
백악관과 재무부, 감독기관뿐만 아니라 국무부 부장관에도 골드만 출신인 로버트 죌릭(세계은행 前총재)이, 라이스 前국무장관의 정책고문에는 골드만삭스에서 임원을 지낸 랜덜 포트가 활약중이었다.
폴슨 前장관은 2006년 6월 의회 인준청문회에서 "슬금슬금 확장되는 금융규제를 막겠다"고 말했다. 알려진 대로 폴슨 前장관은 골드만삭스 회장 시절 투자은행의 차입비율규제 완화 한도를 없앴고, 장관 재직 시절에는 리먼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 금융규제 완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이런 환경에서 골드만삭스는 천문학적 이익을 챙겼다. 심지어 투자자들을 속이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2010년 4월 드러난 파생상품 사기사건이었다. 골드만삭스는 지난 2007년초 고객인 헤지펀드 '폴슨&코'가 위험성 높은 모기지를 모아 부채담보부증권(CDO) '아바쿠스 2007-AC1'을 만든 뒤 스스로는 이것이 떨어질 것을 알고 역베팅해 10억달러를 챙겼다. 그러나 이 사실을 모르고 이 상품을 구입한 다른 투자자들은 그만큼 피해를 입었으며, 골드만삭스는 이 와중에 수수료로 1500만달러를 챙겨 연방증권거래위원회에 의해 제소됐다.
레이건 행정부에서 재무부 차관을 지내다 골드만삭스 최고투자책임자를 맡았던 톰 힐리(Thomas Healey)하버드대학 케네디스쿨 교수는 오래 전 한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골드만삭스에게는 정책에 개입하는 것이 시장뿐만 아니라 고객들에게도 중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폴슨 前장관은 리먼 파산 한 달 뒤인 2008년 10월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규제시스템과 시장질서의 실패 등으로 70년 만의 대공황에 버금가고 최악의 금융위기에 이르게 한 수많은 과오들을 부끄럽게 여긴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후 골드만삭스를 비롯해 모건스탠리, 뱅크오브아메리카, 씨티그룹 등 2010년 리먼 파산 당시 7천억 달러 구제금융의 혜택을 받은 투자은행들은 창립 이래 사상 최대의 천문학적인 수익을 올렸다.
오바마 행정부에서도 골드만삭스의 영향력은 여전하다. 오바마 대통령의 경제 교사로 불리는 로버트 루빈의 '수제자'(protege)인 래리 서머스 백악관 국가경제자문위원장과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이 백악관과 행정부 경제라인을 장악하고 있으며, 부시 정부 시기 행정부에 진출한 로버트 죌릭은 세계은행 총재로 나갔다.
한편 골드만삭스의 영향력은 한국에까지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리먼브러더스의 부사장을 지낸 로런스 맥도널드가 파산 1년만인 지난 2009년 10월 펴낸 책 '상식의 실패'에 따르면 폴슨 前재무장관은 리먼 파산 이전에 수차례 한국의 산업은행에 리먼을 사라고 권유했다. 또 골드만삭스 한국사무소 임원들은 현 정부뿐만 아니라 과거 정부에서도 청와대 국민경제자문회의 등 정부부처 위원회에 포진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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