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을 먹여 살릴 돈을 빌려 주시오"하고 박 대통령은 에르하르트 서독 총리 에게 손을 내밀었다.
"한국인의 절반이 굶어 죽고 있소. 우리는 거짓하지 않는다. 빌린 돈은 반드시 갚겠다"고 울먹이며 부탁했다.
일본어"한국인의 절반이 굶어 죽고 있소. 우리는 거짓하지 않는다. 빌린 돈은 반드시 갚겠다"고 울먹이며 부탁했다.
1961년 5월 16일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 대통령은 "하면 된다"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경제는 의욕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자금이 없었다. 박 대통령은 미국에 부탁했지만, 케네디 대통령은 군사쿠데타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박 대통령을 문전박대했다. 미국의 금융기관도 한국의 미래를 불신하고 거절했다. 일본도 "국교가 없는 나라에 돈을 빌려줄 수 없다"고 거절했다.
박 대통령이 주목한 것은 당시 '라인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성장을 이룩한 서독이었다. 분단 국가의 아픔과 패전의 상처를 극복하고 당당히 일어선 서독을 보면서 박 대통령은 "우리도 전쟁의 잿더미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루자"고 결심했다. 1961년 11월말 '차관교섭사절단'을 구성하여, 국비 유학생으로 서독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백영훈씨(現한국산업개발연구원장, 83)가 공식 통역을 담당했다.
1961년 12월 12일, 드디어 사절단은 1억 5천만마르크(당시 3천만달러)의 상업차관 도입에 성공했다. 한국 정부수립 이후 최초의 상업차관이었다. 그러나 지불보증을 해줄 은행이 없었다. 당시 한국은 세계에서 인도 다음으로 최빈국이었다. 그러나 구원의 하나님은 계셨다.
"당시 서독은 광부 부족으로 고민하고 있었다. 지하 1,000미터 깊이 갱도속의 힘든 작업 때문에, 파키스탄, 터키 노동자들이 다 도망가 버렸다. 서독에서 광부 5,000명과 간호사 2,000명을 보내달라고 요청해 왔다. 그들에게 지급할 급료를 담보로 지불보증한다는 것이다. "1977년까지 서독에 파견된 광부는 7,932명, 간호사는 10,226명. 그들로부터 한국에 송금된 금액은 연간 5,000만달러, 일시 한국 총생산의 2.5%에 달했다. 만일 고향을 떠나 말도 통하지 않는 타국에서 땀흘린 광부와 간호사들의 헌신이 없었다면, 돈도 빌리지 못하고 오늘날의 한국도 없었을 것이다.
지하 1,000미터에서 시간외 근무도 서슴치 않고 일하는 한국인 광부들의 모습이 텔레비전에 방영되자 서독 사람들은 큰 감명을 받았다. 곧 국회의원들은 "한국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한국 대통령을 국빈 초청하여 우리의 마음을 전하자"고 결의안을 채택했다. 1964년 12월 5일, 박 대통령은 서독에 국빈 초대되었다.
박 대통령은 에르하르트 총리에게 "한국인의 절반이 굶어 죽고 있습니다. 우리는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빌린 돈은 꼭 갚겠습니다. 도와주세요. 우리 국민은 모두 실업자입니다. '라인강의 기적'을 우리도 이루고 싶습니다."고 울먹이며 애원했다. 에르하르트 총리는 "왜 쿠데타를 일으켰소?"라고 질문했다.
"한국은 서독과 마찬가지로 공산주의 세력에 위협받고 있습니다. 공산주의에 이기기 위해서는 먼저 풍요로워져야 됩니다. 나는 권력이 탐나 혁명을 일으킨 것이 아닙니다. 정치가 혼란에 빠질대로 빠져 경제도 피폐됐습니다. 이대로는 한국이 위험하다고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돈이 없습니다. 돈을 빌려주면 반드시 국가 재건을 위해 쓰겠습니다"라고 역설했다.
박 대통령의 열정과 사명감에 감화된 에르하르트 총리는 다음과 같은 조언을 했다. "나는 경제장관 때 한국에 두 번 갔다 왔습니다. 한국은 산이 많아 경제 발전이 어렵습니다. 아우토반(고속도로)을 건설해야 합니다. 고속도로를 만들면, 그 위에 자동차가 달려야 합니다. 서독의 국민차 폭스 바겐은 히틀러가 제조한 것입니다. 자동차를 제조하기 위해서는 철을 가공할 제철 공장을 짓고, 연료 생산을 위해 석유정제공장도 필요합니다. 경제가 안정되기 위해서는 중간층이 확고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소기업을 육성해야 합니다. 우리가 도와주겠습니다. 경제 고문 을 파견해주겠습니다." 박 대통령이 귀국한 후 서독에서 다섯 명의 경제 고문이 한국에 파견되었다.
독일의 초대 경제장관(1949~1963)을 지낸 에르하르트 총리는 한국의 은인과 같은 존재였다. 총리는 이 날 "일본과 손을 잡으시오"라고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독일은 프랑스와 16번 싸웠습니다. 독일 사람들은 지금도 프랑스를 원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후 콘라드•아데나워 총리가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을 찾아가 악수했습니다. 한국도 그렇게 해 주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공산주의를 막는 길입니다."
박 대통령은 화난 표정으로 "우리는 일본과 싸운 적이 없습니다. 늘 맞았습니다."고 반박했다. 에르하르트 총리는 "리더는 미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고 말하며 설득했다. 에르하르트 총리의 조언은 이듬해 1965년 '한일협정조약체결'이라는 형태로 결실을 맺었다. 이 날 두 사람의 이야기는 한국 역사상 매우 중요한 전환기가 된 것이다.
에르하르트 총리와 박 대통령은 서로 손을 잡고 일어섰다. 회담 후 에르하르트 총리는 담보 없이 2억 5천만마르크를 한국에 제공하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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