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年06月16日

【해양강국의 개척정신】"안정성에서 불안정성으로" "획일성에서 다양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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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국토 면적 당 해안선 길이가 일본이나 영국보다 길고, 미국-일본-한반도-중국-동남아-유럽으로 가는 항로의 중심지에 위치하고 있다. 세계 주요 도시들이 대부분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이와 같은 지리적 특성을 잘 활용하면 우리나라는 동북아 물류 중심지로 부상할 수 있는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왜 아직까지 해양강국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통일신라 때만 해도 장보고는 바다를 통해 동북아시아의 국제무역을 장악했다. 왕건 가문도 해상세력이었다. 고려시대에는 아랍과의 교역도 왕성하여 조선 세종 때까지 우리나라에 회교도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조선시대에 들어와 장보고의 해양강국의 맥이 끊어지고 만다.

조선의 이른바 '공도(空島)정책' 때문이다. '섬을 비워둔다'는 공도 조치는 고려 말부터 나타났다. 서남해 해상세력이 삼별초 세력에 동조할 것에 대한 우려와 왜구와의 연대 가능성에 대한 불안감에서 나온 조치였다. 이 조치는 조선시대에 들어와 국가 정책으로 전면적으로 실시된다.

조선은 정기적으로 '수토관'을 각 섬에 파견해 섬에 사는 주민이 있으면 육지로 데려왔다. 게다가 허락없이 섬에 몰래 들어간 자는 곤장 1백대의 형을 받는 것으로 규정하고, 심지어 섬에 도피·은닉한 죄는 본국을 배반한 죄에 준하는 것으로 다스려져야 한다고 했다.

이처럼 공도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했던 배경에는 모든 백성이 국왕의 지배와 보호하에 편제되어야 한다는 통치이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섬은 원칙적으로 국왕의 지배와 보호가 미치는 통치의 대상이 아니었으며 행정 편제의 대상에서도 배제되었다. 따라서 육지를 떠나 섬으로 들어가 거주하는 행위는 국왕의 통치권에서 벗어난 범법행위로 다스려졌다.

조선은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공도정책 뿐만 아니라 명의 '해금(海禁)정책'도 그대로 수용했다. '해금'이란 바다로 나아가 외국과 통교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하해통번지금(下海通番之禁)'의 약칭이다. 해상무역·해상교통 뿐만 아니라 어업까지도 규제하는 해양 통제정책이다. 바다에 나가 무역하는 것은 물론 아예 바다에 나가는 것조차 금했다.

중국은 당·송·원 때까지만 해도 다른 나라와의 교역에 적극적이었다. 그런데 명을 건국한 주원장은 동남의 해상 세력을 견제하고 탄압하기 위해 해금정책을 폈다. 송·원이 대외교역으로 실리를 중시하는 개방정책을 폈다면, 명은 농업 위주의 폐쇄정책을 폈다. 명은 조공무역만 제한적으로 허용했으며, 이것이 조선의 해금정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다.

바다에 나가는 것을 금하다 보니 많은 사람이 바다를 꺼리게 되고 바다를 장애물로 여기게 됐다. 바다를 막은 조선은 경제·문화적 자폐주의에 깊이 빠져들었고, 조선 초기의 지도에서조차 섬을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조선방역지도'에 표기된 섬은 제주도·대마도·진도뿐이다. 또 '동람도'에 나온 섬은 제주도·군산도·흑산도·남해·거제도·대마도에 불과하다.

통상도 중국과 일본에 한정됐다. 당시 일본은 북해도와 네덜란드, 중국은 동남아시아와 서양 각국과도 접촉하던 때였다. 장보고가 동남아뿐 아니라 이슬람 상인과 거래한 것과 비교하면 해양무역사 측면에서 커다란 후퇴였다. 또 중국과 조선의 강력한 해금정책으로 일본인들의 무역 욕구가 차단되면서 그들의 욕구를 불법적이고 약탈적인 형태로 표출한 것이 왜구의 침탈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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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와중에서 임진왜란은 해양에 대한 관심을 새롭게 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일방적인 열세에서 벗어나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수군의 공이 컷고, 그동안 방기했던 섬들이 왜구들의 근거지로 활용되었다는 점 등이 반영되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해양문화를 적극적으로 발전시키지 못했다.

실학자들은 해금정책을 비판하며 바다를 이용할 것을 주장했다. 박제가는 "조선 400년간 딴 나라의 배가 한 척도 들어오지 않았다"고 한탄하고 바닷길을 활용한 통상을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조선의 해양력은 갈수록 축소됐고, 섬과 바다, 연해지역을 왜구에게 내주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오늘날 일본은 독도가 일본의 고유영토였다고 주장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한국은 독도의 존재를 몰랐고 설사 알았더라도 이를 이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일본이 일찍부터 독도를 발견하고 이용해 왔으므로 독도는 일본의 고유영토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울릉도 공도정책이 실시되고 있었을 때, 울릉도와 독도 모두 일본 어부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이용되었다며, 1618년 다케시마 도해면허, 1660년 마쓰시마 도해면허, 1836년 하치에몽에 대한 판결문을 그 증거로 제시하고 있다.

이렇게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바로 태종 때부터 시작된 '울릉도 공도정책'에 기인한다. 1884년 울릉도 개척정책이 실시될 때까지 유지되었다. 또한 19세기 말 서구 열강과 근대적 통상조약을 체결할 때까지 500년간 지속된 해금정책의 결과이기도 하다.

조선은 중화의 권위를 빌린 획일적인 안정성을 선호하고 통제하기 어려운 해양 세력의 불안정성을 기피했다. 해양 세력은 다국적 성향과 자율성·독자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해양을 통해 문화의 다양성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잃었을 뿐만 아니라 영토분쟁의 빌미를 제공했다.

1200년 전 장보고는 해양 네트워크를 잘 활용하여 동북아의 국경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면서 세계 각처에 거점을 만들고 새로운 글로벌 스탠더드를 창출했다. 오늘날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세계질서가 재편되고 있는 때를 맞이하여, 잠자고 있는 우리 민족의 개척정신을 다시 흔들어 깨움으로써 비로소 장보고의 해양강국의 혼이 부활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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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年06月15日

【한일교류】규슈 사가현(佐賀県) 나베시마(鍋島) 가문과 조선의 깊은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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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語
일본 규슈의 사가(佐賀) 하면 '나베시마 나오시게'(鍋島直茂, 1536〜1618)를 빼놓고 생각할 수 없다. 나베시마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가토 기요마사의 부장으로 조선을 침략했던 무장이다.

나오시게는 함경도까지 밀고올라가 조선의 왕자들을 붙잡는 등 그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 했으나 의병장 정문부(鄭文孚)와 싸워 크게 패했다. 그리고 당시 왜군을 격퇴시킨 공을 기려 세워졌던 북관대첩비(北關大捷碑)는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군이 전리품으로 가져다가 천황에게 바친 다음 야스쿠니 신사경내에 세워졌는데, 추후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총리의 합의에 따라 2006년 3월 1일 개성공단을 거쳐 100년만에 북한으로 반환되기도 했다.

한편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포로수는 10만〜15만 명에 달했으며 그들 중엔 기능인들이 다수 포함돼 있었다. 그들은 조선에서 천민 취급을 받았으나 일본에서는 사무라이와 같은 귀족 대접을 받으며 능력을 한껏 발휘해 각 분야에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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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나오시게가 데려온 도공 이삼평(李參平)이 개발한 명품도자기 '아리타야키(有田燒)'는 유럽 왕실과 귀족들의 인기가 높아 황금처럼 비싸게 거래되었다고 한다.

나오시게는 사가성을 구축해 히젠국(肥前國)의 실권을 장악하고 사가번(나베시마번)의 기틀을 다졌다. 또한 도자기로 벌어들인 자금으로 제철소를 만들고 서양의 신무기를 구입하여, 도쿠가와 막부를 무너뜨리고 메이지유신을 성공시켰다. 또한 1882년 사가번 출신 오쿠마 시게노부(大隈重信)는 와세다 대학을 설립하여 대담하게 교육개혁을 추진하며 인재를 양성했다.

한편 아리타야키와 더불어 쌍벽을 이루었던 나베시마번의 명검 히젠도(肥前刀)는 무사들이 허리에 한번 차보는 것을 더없는 자랑으로 여겼던 것으로, 낭인 '도 가쓰아키(藤勝顕)'가 명성황후를 베었던 바로 그 검이며, 현재 후쿠오카현의 구시다(櫛田) 신사에 보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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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구시다 신사의 '구시'는 가락국 김수로왕이 강림한 구지봉(亀旨峰)의 '구지'에서 유래한다. 신사 경내에 있는 구시모리(櫛'森'=우두'머리') 신사나 구시마루(櫛'丸'=산'마루') 신사, 그리고 신사 주변을 '구시산(櫛山)'이라고 부르는 등 모두 구지봉을 지칭하고 있어, 이 일대가 제철기술을 가진 도래인들이 많이 살았던 신성한 땅이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이처럼 사가현의 나베시마 가문은 조선과는 끈질긴 인연을 갖고 있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 이은(李垠) 공의 비가 된 이방자(李方子) 여사도 바로 사가번주 나베시마 나오히로(鍋島直大)의 손녀이다. 이방자 여사는 지극히 어려운 생활 여건 속에서도 한평생 사회봉사에 온 정열을 쏟으며 '한국 장애인들의 어머니'로 존경받았다.

아래 그림은 이방자 여사의 초충도(草蟲圖)이다. 지구를 상징하는 땅 위에 활짝 만개한 개나리꽃은 일본을 상징하고, 이제 꽃망울이 맺힌 국화꽃은 한국을 상징한다. 60, 70년대 경제부흥을 이룩한 일본과 이제 막 피어나는 한국이 함께 어울려 잘 살아보자는 염원이 담겨져 있어, 평생 불우한 한국인을 위해 희생했던 이방자 여사의 사상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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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韓交流】佐賀県・鍋家家と韓国の深い縁

PicsArt_06-15-06.01.53.jpg한국어
佐賀と言えば、鍋島直茂(1536〜1618)を抜きにしては語れない。鍋島は文禄・慶長の役の時、加藤清正の副隊長として朝鮮に出兵した武将である。

鍋島は、北朝鮮の咸鏡道まで進撃し、朝鮮の王子らを捕まえるなど大勝利を収めた鍋島軍はまさに天を突く勢いであったが、義兵隊長・鄭文孚(チョン・ムンブ)に遭遇し大敗した。当時、日本軍を撃退した功績をたたえて建てた「北関大捷碑(ほっかんたいしょうひ)」は、日露戦争で勝利した日本軍の戦利品として日本に持って帰られ、天皇に献上された後、靖国神社に置かれるようになった。後ほど盧武鉉大統領と小泉首相の合意によって、2006年3月1日、開城工業団地経由で100年ぶりに北朝鮮に返還された。

一方、文禄・慶長の役の時に日本に連行された朝鮮人捕虜は10万〜15万人に上り、その中には多くの職人たちが含まれていた。彼らは朝鮮では賤民の扱いを受けたが、日本ではサムライと同様の扱いを受け、精一杯才能を発揮しがら各分野で花を咲かせ、実を結んだ。

特に、鍋島が連れて来た陶工イ・サムピョン(李參平)が開発した陶磁器の名品「有田焼」は、ヨーロッパの王室や貴族たちにも人気が高く、黄金のように高く売買されたという。

鍋島は、佐賀城を構築した後、肥前國の実権を掌握し、佐賀藩(鍋島藩)の基礎を固めた。また、陶磁器で稼いだお金で製鉄所を作り、西洋の最先端武器を購入して、徳川幕府を崩し明治維新を成功に導いた。また、1882年、佐賀藩出身の大隈重信は早稲田大学を設立して、大胆な教育改革を推進しながら人材を養成した。

一方、有田焼と肩を並べた鍋島藩の「肥前刀」は、武士たちが一度腰に差すことを無上の誇りに思ったほどの名剣であった。実は、この肥前刀は朝鮮王朝 「明成皇后(聞妃)」 暗殺に使われた正にその刀であり、後ほど福岡県の櫛田神社に奉納され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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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海の亀旨(クジ)峰
さて、櫛田神社の「櫛」は加羅国キム・スロ(金首露)王の降臨地 「亀旨(クジ)峰」 の 「亀旨 (クジ) 」 の転靴だと言われている。また、神社の境内にある櫛森(韓国語「モリ」=「頭」)神社や櫛丸(韓国語「マル」=「山頂」)神社、そしてこの地域が「櫛山」と呼ばれているなど、等しく「亀旨峰」を指しており、この一帯が製鉄技術を持った渡来人が多く住んだ神聖な土地であったことを物語っている。

このように、佐賀県の鍋島家は、朝鮮とは粘り強い縁を持っている。大韓帝国の最後の皇太子・李垠(イ・ウン)の妃である李方子女史も、まさに佐賀藩主鍋島直大の孫娘である。李女史は厳しい生活環境の中でも社会奉仕の為に全ての情熱を注いで「韓国障害者の母」として尊敬された。

次の絵は、李方子女史の「草蟲圖」である。地球を象徴する丸い地の上にパッと満開したレンギョウの花は日本を象徴し、つぼみが出てきたばかりの菊の花は韓国を象徴している。 60、70年代に経済復興を成し遂げた日本と今から花咲く韓国が一緒に仲良く暮らそうという願いが込められている。生涯可哀想な韓国人のために一生懸命に尽くした李女史の思想がよく表れてい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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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年06月13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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ラベル:go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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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物】日韓の幸「福」の架け橋、「ふくかん(福韓)人」鄭玄実(チョン・ヒョンシル)さ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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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O法人「ふくかんねっと」鄭玄実理事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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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あははははは!いつもありがとね!」福島の空に元気いっぱい明るい声を響かせるのは、韓国人女性の鄭玄実(チョン・ヒョンシル)さん。一児の母であり、日韓の相互理解と友好親善の発展のために交流活動を推進するNPO法人「ふくかんねっと」の理事長であり、東日本大震災や原発事故の被災地・福島のために「癒し」を提供する「FUKUKANいやしカフェ」のオーナーでもある。

全てに日々全力で走り抜く鄭さんの周りにはいつも笑いがたえない。「大変なときこそ、楽しさを分かち合うことが大切ですよ。それが困難に打ち勝っていく力になりますから。」

鄭さんが来日したのは31年前の1984 年、芥川龍之介へのあこがれがきっかけで東京の大学に留学した。卒業後は東京で大学講師として働き、2000年に家族の都合で福島市郊外の庭坂地区に移り住んだ。

「庭坂に引っ越してきた頃は、その違いに驚きました。近所のお年寄りが子供を預かってくれたり、隣の家を訪ねると獲れたての野菜を両手いっぱいに持たせてくれたり。周囲の人の温かさが心に染みました。ここは幸『福』の『島』なんです。」

当時韓国語教室を開いていた鄭さんが、近所の人の真心へのお返しに手作りキムチをお裾分けしたところ、これが大評判。キムチ作り講習会や韓国料理教室も度々開催するようになり、地域の人との距離もぐっと縮まった。

「言葉や料理を超えて、もっと日韓交流を広げていきたい!」との思いから2006年にはNPO法人ふくかんねっとを設立。日本と韓国の子どもたちの相互派遣交流や、伝統楽器演奏会など、持ち前のバイタリティーで草の根交流の輪を大きく広げてきた。

そんな最中のことだった。2011年3月、東日本大震災と原発事故が突如として福島をおそった。震災によって家を流され、家族を亡くし、うちひしがれる被災者に、いてもたってもいられなくなった鄭さんは、手作りの韓国料理で被災者を必死に励まし続けた。

「私にできるのは、被災した人を食事で癒すこと。食は全ての基本。料理で福島の人に元気になってもらいたいんです。」

2012年11月には仲間とともに「FUKUKANいやしカフェ」を開店させた。ビビンバなどの代表的な韓国料理、健康を考えた薬膳料理、そして形が不揃いで出荷できない地元農産物を使ったオリジナル「フルーツキムチ」はどれも絶品だった。食べた人も、地域も、みんなを元気づけたいとの鄭さんの愛情が溢れていた。

2014年からは、韓国人に震災後の福島を正しく知ってもらうための「正しい福島を伝えようプロジェクト」を開始した。K-POPアーティストを招いて「福島復興ライブ」を開催した。彼らが、帰国後、福島での体験を発信してもらうなど、福島の安全性を広く韓国の人に伝える草の根交流活動だ。
전주-후쿠시마 청소년교류.jpg日韓国交正常化50周年に当たる2015年には、日韓文化交流基金で募集した「草の根青少交流事業実施団体」の一つとして同団体が選ばれ、8月には韓国全州(チョンジュ)から166名の青少年を福島に招待し、9月には福島の青少年80名が全州を訪問するという大型交流事業の架け橋を担った。

言葉も通じず、最初は顔を合わせるのも恥ずかしがっていた両国の子どもたち。日本といえば威圧的というイメージをもっていたと語る韓国の子も、直接ふれあう中で次第にその先入観が打ち破られていった。「みんな親切。日本のイメージが変わった」「言葉は通じなくても、心は通じることがわかった」。別れを惜しむ、強い絆で結ばれた友情を育んだ。

福島の放射能汚染による風評被害や韓国でのMERS(中東呼吸器症候群)の流行により一部、成功を疑問視する声もあったが、全ての逆境を乗り越えて収めた大成功に、鄭さんの思いもひとしおだ。

「韓国からの参加者を含め1,500人が一つになった様子を見て、心が熱くなりました。韓国の子どもたちが、帰国してから家族や友人に福島のありのままの姿を伝えてくれれば、これほど嬉しいことはありません。」

「韓国を愛する福島の仲間たちと日韓友好のために汗を流し、喜びを分かち合いたい。私はふくかん(福韓)人。韓国人、福島人としての誇りを胸に、これからも頑張ります!」
【人物】「大韓民国を輝かせた偉大な人物大賞」東西大学終身碩座教授・岩国哲人
【人物】「大韓民国を輝かせた偉大な人物大賞」社会福祉の歴史を築いた「心の家族」尹(田内)基理事長
【人物】2016大韓民国を輝かせた偉大な(誇らしい)人物大賞
【人物】セハン日報創刊12周年記念式及び2015大韓民国を輝かせた偉大な人物大賞授賞式
【人物】2015大韓民国を輝かせた偉大な人物大賞「この賞を頂くとすべて上手く行く」
【人物】「大韓国を輝かせた偉大な人物大賞」受賞者:李ジンス
【人物】「大韓国を輝かせた偉大な人物大賞」受賞者:バク・ユンソ
【人物】「大韓国を輝かせた偉大な人物大賞」司会:李相瀧(イ・サンヨン)
【人物】「大韓国を輝かせた偉大な人物大賞」受賞者:ソン・ヨンジェ選手
【人物】「大韓国を輝かせた偉大な人物大賞」受賞者:韓韓国(ハン・ハングック)
【人物】「大韓国を輝かせた偉大な人物大賞」
【人物】第2回「大韓民国を輝かせた誇らしい人物大賞」特別対象
【人物】第2回「尊敬される韓国人大賞」
【人物】2013年 世界食糧賞 受賞者(モンサント・ロバート・プレ、マーク・ヴァン・モンテギュ、メアリー・デル・チルト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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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한일 행복의 가교, '후쿠칸인(福韓人)' 정현실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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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O법인 후쿠칸네트 정현실 이사장
日本語
"아하하하하하! 언제나 감사합니다!" 일본 후쿠시마(福島)현에서 울려퍼지는 생기발랄한 밝은 목소리의 주인공은 한국 여성 정현실(鄭玄実) 씨다. 한 아이의 어머니로서 한일 양국간의 상호이해와 우호친선을 위해 교류활동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는 'NPO법인 후쿠칸네트'의 이사장이며, 동일본 대지진과 원전 사고의 피해지 후쿠시마를 위해 만든 'FUKUKAN 치유카페'의 오너이기도 하다.

하루 하루 만사에 최선을 다하는 정씨의 주변에서는 언제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힘들 때야말로 기쁨을 나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어려움을 극복하는 힘의 원천이 되기 때문입니다."

정씨가 일본에 온 것은 지금으로부터 33년 전인 1984년, 소설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의 매력에 사로잡혀 도쿄대로 유학을 왔다. 졸업 후 도쿄대에서 강사로 일하다 2000년 가족 사정으로 후쿠시마시 교외의 니와사카(庭坂)로 이사했다.

"처음 니와사카에 왔을 때 도쿄와 너무 달라 무척 놀랬어요. 노인들께서 애를 돌봐주기도 하고 이웃집을 방문하면 밭에서 따온 야채들을 한움쿰 담아주기도 했지요. 마을 사람들의 온정이 가슴속 깊이 스며들었어요. 여기는 행'복(福)'의 '섬(島)'이랍니다."

한국어 강사였던 정씨가 이웃의 다정함에 보답하고자 김치를 담아 나눠드린 것이 큰 호응을 얻었다. 그로부터 종종 김치담기 강습회와 한국요리 교실을 열어 지역 주민들과 소통하며 한층 더 거리를 좁혔다.

"한국어나 요리를 넘어 좀 더 한일교류의 폭을 넓혀가고 싶다"는 생각에 2006년에 NPO법인 '후쿠칸(福韓)네트'를 설립했다. 그리고 그녀 특유의 왕성한 활동력으로 한일 양국 어린이들의 교환방문과 전통악기 연주회를 개최하는 등 풀뿌리 교류의 폭을 크게 넓혔다.

그러던 와중에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과 원전 사고가 갑자기 후쿠시마를 덮치게 된다. 쓰나미로 집이 떠내려가 가족을 잃고 망연자실해진 사람들을 그냥 두고 볼 수만 없었던 정씨는 정성껏 한국요리를 만들어 피해자들을 필사적으로 위로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마음을 음식으로 치료하는 일이었습니다. 음식은 모든 것의 기본입니다. 음식을 통해 후쿠시마 사람들에게 다시 활기를 되찾아주고 싶었습니다."

2012년 11월 동료와 함께 'FUKUKAN 치유카페'를 개점했다. 비빔밥 등 대표적인 한국요리와 건강을 위한 약선요리, 그리고 모양이 불규칙해 출하할 수 없는 지역 농산물을 활용한 오리지널 '과일김치'는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주민들과 지역 모두에게 건강을 선사하고픈 정씨의 애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2014년에 들어와 한국 사람들에게 대지진 이후의 후쿠시마를 제대로 알리고자 '후쿠시마 바로 알리기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K-POP 아티스트를 초청해 '후쿠시마 부흥 라이브'를 개최했다. 그들이 한국에 돌아가 후쿠시마에서 보고 들은 내용들을 바르게 전달함으로써 후쿠시마의 안전성을 한국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한 풀뿌리 교류활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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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은 2015 년에는 한일문화교류기금에서 모집한 '풀뿌리 청소년 교류사업 실시 단체'의 하나로 선정됐다. 그해 8월 전주에서 166명의 청소년이 후쿠시마를 방문하고, 9월에는 후쿠시마의 청소년 80명이 전주를 방문하는 등 대형 교류사업의 일익을 담당했다.

말이 통하지 않아 서로 얼굴을 맞대는 일조차 부끄러워했던 양국의 어린이들! 평소 '일본' 하면 '위압적'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던 한국 어린이들도 직접 만나보고 접하는 가운데 선입견들이 하나씩 무너져갔다. "모두 친절하다. 일본에 대한 이미지가 달라졌다. 말은 통하지 않아도 마음은 통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느덧 이별을 아쉬워하는 그들의 마음 속에 끈끈한 우정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후쿠시마의 방사능 오염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과 한국의 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위협 때문에 성공을 의문시하는 목소리도 일부 있었지만, 그 모든 역경을 극복하고 대성공을 거둔 정씨의 마음은 한없이 뿌듯했다.

"한국에서 오신 분들과 함께 1,500명이 하나된 모습을 보고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한국 어린이들이 집에 돌아가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후쿠시마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전해준다면 더 이상 바랄게 없습니다."

"한국을 사랑하는 후쿠시마의 동료들과 함께 한일우호를 위해 땀을 흘리며 기쁨을 같이 나누고 싶습니다. 저는 '후쿠칸(福韓)인'입니다. 한국인+후쿠시마 사람이라는 긍지를 갖고 앞으로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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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年06月12日

【인신환 칼럼】심청전과 세월호의 '천지개벽'

PicsArt_06-12-05.18.46.png한반도 지도를 보면, 육지가 바다 쪽으로 크게 돌출해 있는 곳이 있는데 황해도 서쪽 끝 장산곶 일대와 또 하나는 전라남도 남서쪽 진도 부근이다.

인근 바다에는 지형적인 영향으로 물살이 빠르고 험한 곳이 있다고 한다. 장산곶과 백령도 사이에는 심청전의 배경이라 하는 '인당수'가 있고, 진도 앞바다에는 세월호 침몰사고가 일어난 '맹골수도'가 있다.

심청전 하면 우선 떠오르는 것이 '효녀 심청'이다. 그 다음으로 '공양미 300석'이다. 몰락 양반신세에 몸이 불편하여 경제력이 없던 심봉사에게는 도무지 감당이 안 되는 숫자다. 세월호 하면 먼저 '단원고 학생들'이 떠오른다. 심청과 비슷한 나이의 '300여명의 생명'을 앗아간 사고는 감당할 수 없는 큰 충격이었다.

심청전에서는 심봉사를 배반하고 도망친 '뺑덕어멈'이 등장하고, 세월호에서는 '유병언과 측근들'이 도망자로 등장한다. 몽운사, 화주승, 공양미, 연꽃 등 심청전은 '불교 색채'가 농후하고, 세월호는 구원파 등 '기독교 배경'이 엿보인다.

심청을 인당수에 뛰어들게 만든 원인 제공자는 시냇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심봉사'였고, 단원고 학생들이 맹골수도에 빠지게 된 원인 제공자는 물욕에 눈이 먼 우리 사회의 '부정부패 세력'이었다.

한국의 국가부패지수는 세계46위(55점)로 낙제점이다. 정권마다 부패척결을 약속했지만 만족할 만한 성적은 아니다. 10명중 7명이 건강한 시력을 잃어가는 한국 사회가 세월호 사건의 심봉사가 아닌가.

심청이 자기를 희생하고 바란 대가는 '아버지 심봉사가 눈을 뜨는 것'이었다. 세월호 희생자들의 마지막 바람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은 최후의 순간까지 구조의 희망을 버리지 않고, '어른들이 맡은 바 책임을 다해줄 것'을 간절히 원했을 것이다.

심봉사가 눈을 뜨자, 그때 울린 굉음에 놀라 잔치 현장의 맹인 전체가 동시에 눈을 떴다. 황궁 밖에 있는 전국의 모든 맹인들도 동시에 눈을 떴다. "맹인에게는 천지개벽이나 다름없었다"고 한다.

기적 같은 대반전이 후반에 이루어진 것처럼, 한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개과천선하여 투명하고도 공정한 사회로 거듭나야' 한다. 그래야만 심청이 연꽃을 타고 환생한 것처럼 희생자들의 못 다한 꿈과 염원이 연꽃을 타고 환생할 수 있을 것이다.

심청전 등장인물들은 옥황상제가 돕고 용왕님이 돕는 등, 체제외적(外的)이고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신분 이동'이 발생했다. 오늘날 급격하고도 대대적인 신분 이동은 한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 차원의 트렌드'이다. 

심청전의 마지막 대목이다. "어화, 세상 사람들아, 예와 지금이 다를 소냐. 부귀영화 한다 하고 부디 사람 가볍게 보지 마소. '흥진비래 고진감래(興盡悲來 苦盡甘來)'는 사람마다 겪는 일이라. 심 황후의 어진 이름 길이길이 남아 전한다." 

지금 당장의 모습만 보고 사람을 우습게보지 말라! '흥진비래 고진감래'라 했다. 즐거운 일이 다하면 슬픈 일이 오고, 괴로움이 다하면 즐거움이 오는 법이니, '기죽지 말고 열심히 살라'는 것이다.

【세월호】세월호와 솔개
【세월호】승객을 버린 선장과 백성을 버린 선조! 
【세월호】욕심이 부른 세월호 참사, "탈출자 외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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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年06月11日

【日韓交流】二階特使団、「韓国孤児の母」田内千鶴子女史のゆかりの地「木浦共生園」訪問、記念植樹

한국어
日本の安倍首相特使として文在寅(ムン·ジェイン)大統領を礼訪するために訪韓中の二階俊博自民党幹事長一行が、11日、全羅南道「木浦共生園」を訪問し記念植樹を行った。

絵のように美しい西海岸の島々を眺める儒達山中腹に位置する共生園は、1928年、「乞食大将」と呼ばれたキリスト教伝道師のユン·チホが親を親を失くした7人の子供たちと一緒に生活をしたことがきっかけだった。朝鮮総督府下級官吏の一人娘として高知県で生まれ、父親と一緒に木浦に来た田内千鶴子(韓国名 尹鶴子)は、ユン·チホの情熱に感動し、1938年に結婚することになる。

その後、尹鶴子(ユン·ハクジャ)女史は、日本が敗戦し皆が慌てて逃げていく最中でも、最後まで木浦を守り、韓国戦争中夫が行方不明になった後にも、真心を尽くして3000人余りの孤児たちを世話し続け、韓国と日本政府より勲章が授与された。

1968年10月31日、誕生日を迎えた尹女史が静かに永眠すると、木浦市の国民葬として行われた葬儀にはなんと3万人の弔問客が訪れ哀悼した。「韓国孤児の母」と呼ばれ、民族を超えた人類愛を実践した尹女史のストーリーは、日韓合作ドキュメンタリー映画「愛の黙示録」によって世に知らされ、1999年、日本文化解除禁止許可第1号として全国上映されることによって韓流ブームの元祖となった。

このような尹女史の善行が日本でも放送され、小淵惠三首相は「これから韓日文化交流の出発点となった」と語り、梅の名所として知られる自分の故郷群馬県の梅20本を共生園に送ることにした。

小渕首相と言えば、韓国では「周辺国によく配慮した首相」というイメージが強い。彼は、金大中大統領との共同宣言で「我が国が過去の一時期韓国国民に対し植民地支配により多大の損害と苦痛を与えたという歴史的事実を謙虚に受けとめ、これに対し、痛切な反省と心からのお詫び」を述べた。

今日、木浦共生園は、韓国社会福祉歴史の根となり、現在まで4千名の子供達がここで育ち、社会の一員として巣立っていった。11日、新安(シナン)ビーチホテルで開かれた歓迎会では、共生更生園と共生園の子供たちが、「故郷の春」などを韓国語と日本語で合唱しながら、360人余りの特使団一行を国境のない童心の世界へ導いた。

そして、現在民間次元で進められている「世界孤児の日」制定のための広報映像上映後、共生福祉財団·尹基会長、朴智元(パク·チウォン)議員、二階幹事長、長嶺保正在韓日本大使、ウ·ギジョン政務副知事、パク·ホンリュル木浦市長、尾﨑正直高知県知事、西森潮三全羅南道名誉道民などが韓日友好を新たに誓うメッセージを述べ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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歓迎会場
尹会長は、故金山政英駐韓日本大使は「死んでも日韓関係の発展を見守りたい」という遺言を残し、その遺志通りに韓国の地に眠られた。金山大使は生前、日韓友好の象徴である木浦に日本大使館を移さなければならないと言われたエピソードを紹介しながら、「今日の栄光は、木浦市民たちが守って下れたおかげであることを決して忘れてはならない」と強調した。

また、これまで日韓友好の為に先頭に立って働いたイ・ナギョン前全羅南道知事が、尹女史の故郷である高知県を訪問し、「全羅南道と高知は家族だ」と熱く人間愛をアピールしたように、「家族同士が力を合わせればどんなことがあっても乗り越えられる」と力説した。加えて、「母尹女史の生涯の願いは、青少年たちに職を与えることであった」とし「文大統領は有能な若者を発掘して、世界に向かって羽ばたいて行くようにしてほしい」と注文した。

朴智元議員は、自分の故郷である珍島倭徳山(チンド・ウェドクサン)にまつわるエピソードを披露した。「倭德山」は、丁酉再乱時、鳴梁(ミョンリャン)で朝鮮水軍と激戦の末、全滅した日本水軍の遺体が埋められている場所である。当時、朝鮮人が日本水軍の遺体を収拾して埋めてあげ、日本軍の為に徳を積んだという意味で、「倭德山」と名付けられたという。

朴議員は、400年の歳月が流れた今、日本軍の末裔たちが先祖の魂を慰めるために、「倭德山」を訪ね参拝するなど観光客の行列が後を絶たない。日本人皆が日韓平和の象徴として浮上した「珍島」と「木浦共生園」を訪問してほしいと述べた。

二階幹事長は、2015年の日韓国交正常化50周年を迎え、両国間の民間交流のエピソードを集めた小冊子発刊を外務省に提案し、日本全国47個所と20個政令指定都市から募集された数多くのエピソードのうち10個が選ばれ、尹女史のストーリーもその中に含まれており、今後も民間レベルの交流は継続的に行われなければならないと強調した。

最後に、特使団一行は共生園を見学し、記念植樹を終えた後、平和の象徴として300個の風船を放ち、日韓友好を天に誓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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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韓友好を天に誓い、風船を放つ皆さん

【人物】「大韓民国を輝かせた偉大な人物大賞」社会福祉の歴史を築いた「心の家族」尹(田内)基理事長
【書籍】「その時、その日本人たち」日韓の遺伝子をかき混ぜた人物たち
【書籍】社会福祉の歴史を立てた実践現場の人物たち、「心の家族」尹(田内)基理事長編
【故郷の家】多文化共生のモデル「故郷の家・東京」上棟式
【人物】「志高く」 国の壁を越えた、ジョン万次郎、坂本龍馬、田内千鶴子(尹鶴子)
【世界孤児の日】UN 「世界孤児の日」制定署名運動に協力しよう
【在日】「世界孤児の日」制定署名運動発足式、「韓国孤児の母」尹鶴子(田内千鶴子)女史の志を受け継ご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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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교류】니카이 특사단, '한국 고아의 어머니' 윤학자 여사의 제2의 고향 '목포 공생원' 방문 기념식수

日本語
일본 아베 총리 특사로 문재인 대통령을 예방하기 위해 방한 중인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일본 자민당 간사장 일행이 11일 목포 공생원을 방문해 기념식수를 했다.

그림 같이 아름다운 서해 바다의 작은 섬들을 바라다보는 유달산 중턱에 자리잡은 공생원은 1928년 '거지대장'으로 불렸던 기독교 전도사 윤치호가 부모 잃은 7명의 아이들과 같이 생활을 한 것이 그 계기였다. 조선총독부 관리의 외동딸로 태어나 아버지를 따라 목포로 온 일본 고치(高知)현 출신의 다우치 치즈코(田内千鶴子, 한국명 윤학자)는 윤치호의 열정에 반해 1938년 결혼하게 된다.

그후 윤 여사는 일본의 패전으로 일본인 모두가 서둘러 떠나가는 와중에도 마지막까지 목포를 지키며, 한국전쟁 중 남편이 행방불명된 후에도 열과 성을 다해 3000여 명의 고아들을 보살펴 한국과 일본 정부로부터 훈장을 수여받았다.

1968년 10월 31일 생일날 윤 여사가 조용히 숨을 거두자 목포시민장으로 치러진 장례식에는 무려 3만 여명의 조문객이 찾아와 애도했다. '한국 고아의 어머니'라 불리며 민족을 뛰어넘어 인류애를 실천한 윤 여사의 스토리는 한일 합작 다큐멘터리영화 '사랑의 묵시록'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으며, 1999년 일본문화해제금지 허가 제1호로 전국 상영되어 한류붐의 원조가 되었다.

이와 같은 윤 여사의 선행이 일본 방송에서 소개되자 당시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는 "이제부터 한일 문화교류의 출발점이 됐다"며 매화의 명소로 알려진 자신의 고향 군마현(群馬縣)의 매화나무 20여 그루를 공생원에 보내기로 했다.

오부치 총리라 하면 한국에선 '주변국을 잘 배려했던 총리'란 이미지가 강하다. 그는 김대중 대통령과의 공동선언에서 "일본이 과거 한때 식민지 지배로 인해 한국민에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주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이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오늘날 공생원은 한국 사회복지 역사의 뿌리가 되었으며, 지금까지 4천 여명의 아이들을 돌봐 어엿한 사회의 일원으로 길러냈다. 11일 신안비치호텔에서 열린 환영회에서는 공생재활원과 공생원 아이들이 '고향의 봄' 등을 한국어와 일본어로 합창하며 360여 명의 특사단 일행을 국경 없는 동심의 세계로 이끌었다.

이어 현재 민간 차원에서 주친되고 있는 '세계고아의날' 제정을 위한 홍보 영상이 상영되고, 공생복지재단 윤기 회장, 박지원 의원, 니카이 간사장,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일본대사, 우기종 정무부지사, 박홍률 목포시장, 오자키 마사나오 고치현 지사, 니시모리 시오조 전남명예도민 등이 한일 우호를 새롭게 다짐하는 메시지를 전달해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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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회장
윤기 회장은 故가나야마 마사히데(金山政英) 주한일본대사는 “죽어서도 한일관계 발전을 지켜보고 싶다”는 유언을 남기고 그 뜻대로 한국 땅에 묻혔다며, 살아 생전 한일 우호의 상징인 이곳 목포로 일본대사관을 옮겨야 한다고까지 말했던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오늘의 영광은 지금까지 목포 시민들이 지켜준 덕분임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동안 한일 우호증진를 위해 앞장선 이낙연 전 전남지사가 윤 여사의 고향인 고치현을 방문해 "전남과 고치는 한 가족이다"며 뜨거운 인간애를 어필한 것처럼, "가족끼리 힘을 합친다면 어떤 일도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더불어 어머니 윤 여사의 평생 소원은 청소년들에게 직업을 갖게 하는 것이었다며, 유능한 젊은이들을 발굴해 세계로 나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주문했다.

박지원 의원은 자신의 고향 진도 왜덕산에 얽힌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왜덕산(倭德山)은 정유재란 때 명량해전에서 조선 수군에 몰살당한 일본군들의 시신이 묻혀 있는 곳으로, 마을 사람들이 일본군의 주검을 수습해 묻어줌으로써 왜군에게 덕을 쌓았다는 뜻에서 왜덕산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박 의원은 40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일본군의 후손들이 조상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왜덕산을 찾아 참배하는 발길이 몇 해째 계속 이어지고 있다면서, "일본인 모두가 한일 평화의 상징으로 떠오르고 있는 진도와 목포 공생원을 꼭 방문해 달라"고 당부했다.

니카이 간사장은 지난 2015년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이해 양국 간 민간 교류의 에피소드를 모은 소책자 발간을 외무성에 건의하여, 일본 전국 47개 지역과 20개 정령지정도시에서 모집된 수많은 에피소드 중 10개가 선정됐다면서, 윤학자 여사 스토리도 그 중 하나이며, 앞으로도 그와 같은 민간 차원의 교류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특사단 일행은 공생원에 들러 견학 후 기념식수를 마치고 평화의 상징인 300여개의 풍선을 날리며 한일 우호를 하늘 앞에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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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우호를 다짐하는 풍선날리기
【인물】'대한민국을 빛낸 위대한 인물 대상' 사회복지 역사를 세운 '마음의 가족' 윤기 이사장
【서적】'그때 그 일본인들' 한일 유전자를 뒤섞이게 한 인물들
【서적】사회복지 역사를 세운 실천현장의 인물들, '마음의 가족' 윤기 이사장 편
【고향의 집】다문화 공생의 모델 '고향의 집 도쿄' 상량식
【인물】'높은 뜻' 품고 국가의 장벽을 뛰어넘은 존 만지로, 사카모토 료마, 윤학자(다우치 지즈코)
【세계 고아의 날】UN '세계 고아의 날' 제정 서명운동에 동참하자
【재일동포】'세계 고아의 날' 제정 서명운동 발족식, '韓 고아의 어머니' 윤학자 여사의 뜻을 기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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