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年06月13日

【人物】日韓の幸「福」の架け橋、「ふくかん(福韓)人」鄭玄実(チョン・ヒョンシル)さ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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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O法人「ふくかんねっと」鄭玄実理事長
한국어
「あははははは!いつもありがとね!」福島の空に元気いっぱい明るい声を響かせるのは、韓国人女性の鄭玄実(チョン・ヒョンシル)さん。一児の母であり、日韓の相互理解と友好親善の発展のために交流活動を推進するNPO法人「ふくかんねっと」の理事長であり、東日本大震災や原発事故の被災地・福島のために「癒し」を提供する「FUKUKANいやしカフェ」のオーナーでもある。

全てに日々全力で走り抜く鄭さんの周りにはいつも笑いがたえない。「大変なときこそ、楽しさを分かち合うことが大切ですよ。それが困難に打ち勝っていく力になりますから。」

鄭さんが来日したのは31年前の1984 年、芥川龍之介へのあこがれがきっかけで東京の大学に留学した。卒業後は東京で大学講師として働き、2000年に家族の都合で福島市郊外の庭坂地区に移り住んだ。

「庭坂に引っ越してきた頃は、その違いに驚きました。近所のお年寄りが子供を預かってくれたり、隣の家を訪ねると獲れたての野菜を両手いっぱいに持たせてくれたり。周囲の人の温かさが心に染みました。ここは幸『福』の『島』なんです。」

当時韓国語教室を開いていた鄭さんが、近所の人の真心へのお返しに手作りキムチをお裾分けしたところ、これが大評判。キムチ作り講習会や韓国料理教室も度々開催するようになり、地域の人との距離もぐっと縮まった。

「言葉や料理を超えて、もっと日韓交流を広げていきたい!」との思いから2006年にはNPO法人ふくかんねっとを設立。日本と韓国の子どもたちの相互派遣交流や、伝統楽器演奏会など、持ち前のバイタリティーで草の根交流の輪を大きく広げてきた。

そんな最中のことだった。2011年3月、東日本大震災と原発事故が突如として福島をおそった。震災によって家を流され、家族を亡くし、うちひしがれる被災者に、いてもたってもいられなくなった鄭さんは、手作りの韓国料理で被災者を必死に励まし続けた。

「私にできるのは、被災した人を食事で癒すこと。食は全ての基本。料理で福島の人に元気になってもらいたいんです。」

2012年11月には仲間とともに「FUKUKANいやしカフェ」を開店させた。ビビンバなどの代表的な韓国料理、健康を考えた薬膳料理、そして形が不揃いで出荷できない地元農産物を使ったオリジナル「フルーツキムチ」はどれも絶品だった。食べた人も、地域も、みんなを元気づけたいとの鄭さんの愛情が溢れていた。

2014年からは、韓国人に震災後の福島を正しく知ってもらうための「正しい福島を伝えようプロジェクト」を開始した。K-POPアーティストを招いて「福島復興ライブ」を開催した。彼らが、帰国後、福島での体験を発信してもらうなど、福島の安全性を広く韓国の人に伝える草の根交流活動だ。
전주-후쿠시마 청소년교류.jpg日韓国交正常化50周年に当たる2015年には、日韓文化交流基金で募集した「草の根青少交流事業実施団体」の一つとして同団体が選ばれ、8月には韓国全州(チョンジュ)から166名の青少年を福島に招待し、9月には福島の青少年80名が全州を訪問するという大型交流事業の架け橋を担った。

言葉も通じず、最初は顔を合わせるのも恥ずかしがっていた両国の子どもたち。日本といえば威圧的というイメージをもっていたと語る韓国の子も、直接ふれあう中で次第にその先入観が打ち破られていった。「みんな親切。日本のイメージが変わった」「言葉は通じなくても、心は通じることがわかった」。別れを惜しむ、強い絆で結ばれた友情を育んだ。

福島の放射能汚染による風評被害や韓国でのMERS(中東呼吸器症候群)の流行により一部、成功を疑問視する声もあったが、全ての逆境を乗り越えて収めた大成功に、鄭さんの思いもひとしおだ。

「韓国からの参加者を含め1,500人が一つになった様子を見て、心が熱くなりました。韓国の子どもたちが、帰国してから家族や友人に福島のありのままの姿を伝えてくれれば、これほど嬉しいことはありません。」

「韓国を愛する福島の仲間たちと日韓友好のために汗を流し、喜びを分かち合いたい。私はふくかん(福韓)人。韓国人、福島人としての誇りを胸に、これからも頑張り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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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한일 행복의 가교, '후쿠칸인(福韓人)' 정현실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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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O법인 후쿠칸네트 정현실 이사장
日本語
"아하하하하하! 언제나 감사합니다!" 일본 후쿠시마(福島)현에서 울려퍼지는 생기발랄한 밝은 목소리의 주인공은 한국 여성 정현실(鄭玄実) 씨다. 한 아이의 어머니로서 한일 양국간의 상호이해와 우호친선을 위해 교류활동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는 'NPO법인 후쿠칸네트'의 이사장이며, 동일본 대지진과 원전 사고의 피해지 후쿠시마를 위해 만든 'FUKUKAN 치유카페'의 오너이기도 하다.

하루 하루 만사에 최선을 다하는 정씨의 주변에서는 언제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힘들 때야말로 기쁨을 나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어려움을 극복하는 힘의 원천이 되기 때문입니다."

정씨가 일본에 온 것은 지금으로부터 33년 전인 1984년, 소설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의 매력에 사로잡혀 도쿄대로 유학을 왔다. 졸업 후 도쿄대에서 강사로 일하다 2000년 가족 사정으로 후쿠시마시 교외의 니와사카(庭坂)로 이사했다.

"처음 니와사카에 왔을 때 도쿄와 너무 달라 무척 놀랬어요. 노인들께서 애를 돌봐주기도 하고 이웃집을 방문하면 밭에서 따온 야채들을 한움쿰 담아주기도 했지요. 마을 사람들의 온정이 가슴속 깊이 스며들었어요. 여기는 행'복(福)'의 '섬(島)'이랍니다."

한국어 강사였던 정씨가 이웃의 다정함에 보답하고자 김치를 담아 나눠드린 것이 큰 호응을 얻었다. 그로부터 종종 김치담기 강습회와 한국요리 교실을 열어 지역 주민들과 소통하며 한층 더 거리를 좁혔다.

"한국어나 요리를 넘어 좀 더 한일교류의 폭을 넓혀가고 싶다"는 생각에 2006년에 NPO법인 '후쿠칸(福韓)네트'를 설립했다. 그리고 그녀 특유의 왕성한 활동력으로 한일 양국 어린이들의 교환방문과 전통악기 연주회를 개최하는 등 풀뿌리 교류의 폭을 크게 넓혔다.

그러던 와중에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과 원전 사고가 갑자기 후쿠시마를 덮치게 된다. 쓰나미로 집이 떠내려가 가족을 잃고 망연자실해진 사람들을 그냥 두고 볼 수만 없었던 정씨는 정성껏 한국요리를 만들어 피해자들을 필사적으로 위로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마음을 음식으로 치료하는 일이었습니다. 음식은 모든 것의 기본입니다. 음식을 통해 후쿠시마 사람들에게 다시 활기를 되찾아주고 싶었습니다."

2012년 11월 동료와 함께 'FUKUKAN 치유카페'를 개점했다. 비빔밥 등 대표적인 한국요리와 건강을 위한 약선요리, 그리고 모양이 불규칙해 출하할 수 없는 지역 농산물을 활용한 오리지널 '과일김치'는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주민들과 지역 모두에게 건강을 선사하고픈 정씨의 애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2014년에 들어와 한국 사람들에게 대지진 이후의 후쿠시마를 제대로 알리고자 '후쿠시마 바로 알리기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K-POP 아티스트를 초청해 '후쿠시마 부흥 라이브'를 개최했다. 그들이 한국에 돌아가 후쿠시마에서 보고 들은 내용들을 바르게 전달함으로써 후쿠시마의 안전성을 한국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한 풀뿌리 교류활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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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은 2015 년에는 한일문화교류기금에서 모집한 '풀뿌리 청소년 교류사업 실시 단체'의 하나로 선정됐다. 그해 8월 전주에서 166명의 청소년이 후쿠시마를 방문하고, 9월에는 후쿠시마의 청소년 80명이 전주를 방문하는 등 대형 교류사업의 일익을 담당했다.

말이 통하지 않아 서로 얼굴을 맞대는 일조차 부끄러워했던 양국의 어린이들! 평소 '일본' 하면 '위압적'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던 한국 어린이들도 직접 만나보고 접하는 가운데 선입견들이 하나씩 무너져갔다. "모두 친절하다. 일본에 대한 이미지가 달라졌다. 말은 통하지 않아도 마음은 통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느덧 이별을 아쉬워하는 그들의 마음 속에 끈끈한 우정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후쿠시마의 방사능 오염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과 한국의 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위협 때문에 성공을 의문시하는 목소리도 일부 있었지만, 그 모든 역경을 극복하고 대성공을 거둔 정씨의 마음은 한없이 뿌듯했다.

"한국에서 오신 분들과 함께 1,500명이 하나된 모습을 보고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한국 어린이들이 집에 돌아가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후쿠시마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전해준다면 더 이상 바랄게 없습니다."

"한국을 사랑하는 후쿠시마의 동료들과 함께 한일우호를 위해 땀을 흘리며 기쁨을 같이 나누고 싶습니다. 저는 '후쿠칸(福韓)인'입니다. 한국인+후쿠시마 사람이라는 긍지를 갖고 앞으로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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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年06月12日

【인신환 칼럼】심청전과 세월호의 '천지개벽'

PicsArt_06-12-05.18.46.png한반도 지도를 보면, 육지가 바다 쪽으로 크게 돌출해 있는 곳이 있는데 황해도 서쪽 끝 장산곶 일대와 또 하나는 전라남도 남서쪽 진도 부근이다.

인근 바다에는 지형적인 영향으로 물살이 빠르고 험한 곳이 있다고 한다. 장산곶과 백령도 사이에는 심청전의 배경이라 하는 '인당수'가 있고, 진도 앞바다에는 세월호 침몰사고가 일어난 '맹골수도'가 있다.

심청전 하면 우선 떠오르는 것이 '효녀 심청'이다. 그 다음으로 '공양미 300석'이다. 몰락 양반신세에 몸이 불편하여 경제력이 없던 심봉사에게는 도무지 감당이 안 되는 숫자다. 세월호 하면 먼저 '단원고 학생들'이 떠오른다. 심청과 비슷한 나이의 '300여명의 생명'을 앗아간 사고는 감당할 수 없는 큰 충격이었다.

심청전에서는 심봉사를 배반하고 도망친 '뺑덕어멈'이 등장하고, 세월호에서는 '유병언과 측근들'이 도망자로 등장한다. 몽운사, 화주승, 공양미, 연꽃 등 심청전은 '불교 색채'가 농후하고, 세월호는 구원파 등 '기독교 배경'이 엿보인다.

심청을 인당수에 뛰어들게 만든 원인 제공자는 시냇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심봉사'였고, 단원고 학생들이 맹골수도에 빠지게 된 원인 제공자는 물욕에 눈이 먼 우리 사회의 '부정부패 세력'이었다.

한국의 국가부패지수는 세계46위(55점)로 낙제점이다. 정권마다 부패척결을 약속했지만 만족할 만한 성적은 아니다. 10명중 7명이 건강한 시력을 잃어가는 한국 사회가 세월호 사건의 심봉사가 아닌가.

심청이 자기를 희생하고 바란 대가는 '아버지 심봉사가 눈을 뜨는 것'이었다. 세월호 희생자들의 마지막 바람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은 최후의 순간까지 구조의 희망을 버리지 않고, '어른들이 맡은 바 책임을 다해줄 것'을 간절히 원했을 것이다.

심봉사가 눈을 뜨자, 그때 울린 굉음에 놀라 잔치 현장의 맹인 전체가 동시에 눈을 떴다. 황궁 밖에 있는 전국의 모든 맹인들도 동시에 눈을 떴다. "맹인에게는 천지개벽이나 다름없었다"고 한다.

기적 같은 대반전이 후반에 이루어진 것처럼, 한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개과천선하여 투명하고도 공정한 사회로 거듭나야' 한다. 그래야만 심청이 연꽃을 타고 환생한 것처럼 희생자들의 못 다한 꿈과 염원이 연꽃을 타고 환생할 수 있을 것이다.

심청전 등장인물들은 옥황상제가 돕고 용왕님이 돕는 등, 체제외적(外的)이고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신분 이동'이 발생했다. 오늘날 급격하고도 대대적인 신분 이동은 한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 차원의 트렌드'이다. 

심청전의 마지막 대목이다. "어화, 세상 사람들아, 예와 지금이 다를 소냐. 부귀영화 한다 하고 부디 사람 가볍게 보지 마소. '흥진비래 고진감래(興盡悲來 苦盡甘來)'는 사람마다 겪는 일이라. 심 황후의 어진 이름 길이길이 남아 전한다." 

지금 당장의 모습만 보고 사람을 우습게보지 말라! '흥진비래 고진감래'라 했다. 즐거운 일이 다하면 슬픈 일이 오고, 괴로움이 다하면 즐거움이 오는 법이니, '기죽지 말고 열심히 살라'는 것이다.

【세월호】세월호와 솔개
【세월호】승객을 버린 선장과 백성을 버린 선조! 
【세월호】욕심이 부른 세월호 참사, "탈출자 외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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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年06月11日

【日韓交流】二階特使団、「韓国孤児の母」田内千鶴子女史のゆかりの地「木浦共生園」訪問、記念植樹

한국어
日本の安倍首相特使として文在寅(ムン·ジェイン)大統領を礼訪するために訪韓中の二階俊博自民党幹事長一行が、11日、全羅南道「木浦共生園」を訪問し記念植樹を行った。

絵のように美しい西海岸の島々を眺める儒達山中腹に位置する共生園は、1928年、「乞食大将」と呼ばれたキリスト教伝道師のユン·チホが親を親を失くした7人の子供たちと一緒に生活をしたことがきっかけだった。朝鮮総督府下級官吏の一人娘として高知県で生まれ、父親と一緒に木浦に来た田内千鶴子(韓国名 尹鶴子)は、ユン·チホの情熱に感動し、1938年に結婚することになる。

その後、尹鶴子(ユン·ハクジャ)女史は、日本が敗戦し皆が慌てて逃げていく最中でも、最後まで木浦を守り、韓国戦争中夫が行方不明になった後にも、真心を尽くして3000人余りの孤児たちを世話し続け、韓国と日本政府より勲章が授与された。

1968年10月31日、誕生日を迎えた尹女史が静かに永眠すると、木浦市の国民葬として行われた葬儀にはなんと3万人の弔問客が訪れ哀悼した。「韓国孤児の母」と呼ばれ、民族を超えた人類愛を実践した尹女史のストーリーは、日韓合作ドキュメンタリー映画「愛の黙示録」によって世に知らされ、1999年、日本文化解除禁止許可第1号として全国上映されることによって韓流ブームの元祖となった。

このような尹女史の善行が日本でも放送され、小淵惠三首相は「これから韓日文化交流の出発点となった」と語り、梅の名所として知られる自分の故郷群馬県の梅20本を共生園に送ることにした。

小渕首相と言えば、韓国では「周辺国によく配慮した首相」というイメージが強い。彼は、金大中大統領との共同宣言で「我が国が過去の一時期韓国国民に対し植民地支配により多大の損害と苦痛を与えたという歴史的事実を謙虚に受けとめ、これに対し、痛切な反省と心からのお詫び」を述べた。

今日、木浦共生園は、韓国社会福祉歴史の根となり、現在まで4千名の子供達がここで育ち、社会の一員として巣立っていった。11日、新安(シナン)ビーチホテルで開かれた歓迎会では、共生更生園と共生園の子供たちが、「故郷の春」などを韓国語と日本語で合唱しながら、360人余りの特使団一行を国境のない童心の世界へ導いた。

そして、現在民間次元で進められている「世界孤児の日」制定のための広報映像上映後、共生福祉財団·尹基会長、朴智元(パク·チウォン)議員、二階幹事長、長嶺保正在韓日本大使、ウ·ギジョン政務副知事、パク·ホンリュル木浦市長、尾﨑正直高知県知事、西森潮三全羅南道名誉道民などが韓日友好を新たに誓うメッセージを述べ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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歓迎会場
尹会長は、故金山政英駐韓日本大使は「死んでも日韓関係の発展を見守りたい」という遺言を残し、その遺志通りに韓国の地に眠られた。金山大使は生前、日韓友好の象徴である木浦に日本大使館を移さなければならないと言われたエピソードを紹介しながら、「今日の栄光は、木浦市民たちが守って下れたおかげであることを決して忘れてはならない」と強調した。

また、これまで日韓友好の為に先頭に立って働いたイ・ナギョン前全羅南道知事が、尹女史の故郷である高知県を訪問し、「全羅南道と高知は家族だ」と熱く人間愛をアピールしたように、「家族同士が力を合わせればどんなことがあっても乗り越えられる」と力説した。加えて、「母尹女史の生涯の願いは、青少年たちに職を与えることであった」とし「文大統領は有能な若者を発掘して、世界に向かって羽ばたいて行くようにしてほしい」と注文した。

朴智元議員は、自分の故郷である珍島倭徳山(チンド・ウェドクサン)にまつわるエピソードを披露した。「倭德山」は、丁酉再乱時、鳴梁(ミョンリャン)で朝鮮水軍と激戦の末、全滅した日本水軍の遺体が埋められている場所である。当時、朝鮮人が日本水軍の遺体を収拾して埋めてあげ、日本軍の為に徳を積んだという意味で、「倭德山」と名付けられたという。

朴議員は、400年の歳月が流れた今、日本軍の末裔たちが先祖の魂を慰めるために、「倭德山」を訪ね参拝するなど観光客の行列が後を絶たない。日本人皆が日韓平和の象徴として浮上した「珍島」と「木浦共生園」を訪問してほしいと述べた。

二階幹事長は、2015年の日韓国交正常化50周年を迎え、両国間の民間交流のエピソードを集めた小冊子発刊を外務省に提案し、日本全国47個所と20個政令指定都市から募集された数多くのエピソードのうち10個が選ばれ、尹女史のストーリーもその中に含まれており、今後も民間レベルの交流は継続的に行われなければならないと強調した。

最後に、特使団一行は共生園を見学し、記念植樹を終えた後、平和の象徴として300個の風船を放ち、日韓友好を天に誓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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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韓友好を天に誓い、風船を放つ皆さん

【人物】「大韓民国を輝かせた偉大な人物大賞」社会福祉の歴史を築いた「心の家族」尹(田内)基理事長
【書籍】「その時、その日本人たち」日韓の遺伝子をかき混ぜた人物たち
【書籍】社会福祉の歴史を立てた実践現場の人物たち、「心の家族」尹(田内)基理事長編
【故郷の家】多文化共生のモデル「故郷の家・東京」上棟式
【人物】「志高く」 国の壁を越えた、ジョン万次郎、坂本龍馬、田内千鶴子(尹鶴子)
【世界孤児の日】UN 「世界孤児の日」制定署名運動に協力しよう
【在日】「世界孤児の日」制定署名運動発足式、「韓国孤児の母」尹鶴子(田内千鶴子)女史の志を受け継ご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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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교류】니카이 특사단, '한국 고아의 어머니' 윤학자 여사의 제2의 고향 '목포 공생원' 방문 기념식수

日本語
일본 아베 총리 특사로 문재인 대통령을 예방하기 위해 방한 중인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일본 자민당 간사장 일행이 11일 목포 공생원을 방문해 기념식수를 했다.

그림 같이 아름다운 서해 바다의 작은 섬들을 바라다보는 유달산 중턱에 자리잡은 공생원은 1928년 '거지대장'으로 불렸던 기독교 전도사 윤치호가 부모 잃은 7명의 아이들과 같이 생활을 한 것이 그 계기였다. 조선총독부 관리의 외동딸로 태어나 아버지를 따라 목포로 온 일본 고치(高知)현 출신의 다우치 치즈코(田内千鶴子, 한국명 윤학자)는 윤치호의 열정에 반해 1938년 결혼하게 된다.

그후 윤 여사는 일본의 패전으로 일본인 모두가 서둘러 떠나가는 와중에도 마지막까지 목포를 지키며, 한국전쟁 중 남편이 행방불명된 후에도 열과 성을 다해 3000여 명의 고아들을 보살펴 한국과 일본 정부로부터 훈장을 수여받았다.

1968년 10월 31일 생일날 윤 여사가 조용히 숨을 거두자 목포시민장으로 치러진 장례식에는 무려 3만 여명의 조문객이 찾아와 애도했다. '한국 고아의 어머니'라 불리며 민족을 뛰어넘어 인류애를 실천한 윤 여사의 스토리는 한일 합작 다큐멘터리영화 '사랑의 묵시록'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으며, 1999년 일본문화해제금지 허가 제1호로 전국 상영되어 한류붐의 원조가 되었다.

이와 같은 윤 여사의 선행이 일본 방송에서 소개되자 당시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는 "이제부터 한일 문화교류의 출발점이 됐다"며 매화의 명소로 알려진 자신의 고향 군마현(群馬縣)의 매화나무 20여 그루를 공생원에 보내기로 했다.

오부치 총리라 하면 한국에선 '주변국을 잘 배려했던 총리'란 이미지가 강하다. 그는 김대중 대통령과의 공동선언에서 "일본이 과거 한때 식민지 지배로 인해 한국민에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주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이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오늘날 공생원은 한국 사회복지 역사의 뿌리가 되었으며, 지금까지 4천 여명의 아이들을 돌봐 어엿한 사회의 일원으로 길러냈다. 11일 신안비치호텔에서 열린 환영회에서는 공생재활원과 공생원 아이들이 '고향의 봄' 등을 한국어와 일본어로 합창하며 360여 명의 특사단 일행을 국경 없는 동심의 세계로 이끌었다.

이어 현재 민간 차원에서 주친되고 있는 '세계고아의날' 제정을 위한 홍보 영상이 상영되고, 공생복지재단 윤기 회장, 박지원 의원, 니카이 간사장,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일본대사, 우기종 정무부지사, 박홍률 목포시장, 오자키 마사나오 고치현 지사, 니시모리 시오조 전남명예도민 등이 한일 우호를 새롭게 다짐하는 메시지를 전달해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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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회장
윤기 회장은 故가나야마 마사히데(金山政英) 주한일본대사는 “죽어서도 한일관계 발전을 지켜보고 싶다”는 유언을 남기고 그 뜻대로 한국 땅에 묻혔다며, 살아 생전 한일 우호의 상징인 이곳 목포로 일본대사관을 옮겨야 한다고까지 말했던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오늘의 영광은 지금까지 목포 시민들이 지켜준 덕분임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동안 한일 우호증진를 위해 앞장선 이낙연 전 전남지사가 윤 여사의 고향인 고치현을 방문해 "전남과 고치는 한 가족이다"며 뜨거운 인간애를 어필한 것처럼, "가족끼리 힘을 합친다면 어떤 일도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더불어 어머니 윤 여사의 평생 소원은 청소년들에게 직업을 갖게 하는 것이었다며, 유능한 젊은이들을 발굴해 세계로 나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주문했다.

박지원 의원은 자신의 고향 진도 왜덕산에 얽힌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왜덕산(倭德山)은 정유재란 때 명량해전에서 조선 수군에 몰살당한 일본군들의 시신이 묻혀 있는 곳으로, 마을 사람들이 일본군의 주검을 수습해 묻어줌으로써 왜군에게 덕을 쌓았다는 뜻에서 왜덕산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박 의원은 40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일본군의 후손들이 조상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왜덕산을 찾아 참배하는 발길이 몇 해째 계속 이어지고 있다면서, "일본인 모두가 한일 평화의 상징으로 떠오르고 있는 진도와 목포 공생원을 꼭 방문해 달라"고 당부했다.

니카이 간사장은 지난 2015년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이해 양국 간 민간 교류의 에피소드를 모은 소책자 발간을 외무성에 건의하여, 일본 전국 47개 지역과 20개 정령지정도시에서 모집된 수많은 에피소드 중 10개가 선정됐다면서, 윤학자 여사 스토리도 그 중 하나이며, 앞으로도 그와 같은 민간 차원의 교류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특사단 일행은 공생원에 들러 견학 후 기념식수를 마치고 평화의 상징인 300여개의 풍선을 날리며 한일 우호를 하늘 앞에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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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우호를 다짐하는 풍선날리기
【인물】'대한민국을 빛낸 위대한 인물 대상' 사회복지 역사를 세운 '마음의 가족' 윤기 이사장
【서적】'그때 그 일본인들' 한일 유전자를 뒤섞이게 한 인물들
【서적】사회복지 역사를 세운 실천현장의 인물들, '마음의 가족' 윤기 이사장 편
【고향의 집】다문화 공생의 모델 '고향의 집 도쿄' 상량식
【인물】'높은 뜻' 품고 국가의 장벽을 뛰어넘은 존 만지로, 사카모토 료마, 윤학자(다우치 지즈코)
【세계 고아의 날】UN '세계 고아의 날' 제정 서명운동에 동참하자
【재일동포】'세계 고아의 날' 제정 서명운동 발족식, '韓 고아의 어머니' 윤학자 여사의 뜻을 기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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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韓交流】二階俊博特使団訪韓、「韓国と日本は大国! 協力の時代を共に切り開いていこ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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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階俊博·自民党幹事長(前列右から4人目)、金大中ノーベル平和記念館訪問
한국어
日本の安倍晋三首相の特使として韓国を訪れた自民党の二階俊博幹事長が10日に、全羅南道にある金大中ノーベル平和賞記念館を訪れた。二階氏は前全羅南道知事の李洛淵(イ·ナクヨン)首相、同道出身の野党「国民の党」の朴智元(パク·ジウォン)前代表と親交があるとされる。

二階氏は自身のホームページで、「兄弟のような韓国の友人」とする朴三求(パク·サムグ)錦湖アシアナグループ会長をはじめ、朴智元国会議員、姜東錫(カン·ドンソク)元建設交通部長官、許南植(ホ·ナムシク)元釜山市長ら、韓国の友人たちとの縁を紹介するほど、自民党を代表する「親韓派」議員として知られている。

2003年、訪韓した二階氏は、青瓦台で朴智元·大統領秘書室長と会談し、在日外国人に対する参政権について「実現に向け、引き続き努力する」と述べたほどの親韓派である。この際、二階氏は韓国の国立墓地「顕忠院」に参拝したことを紹介し、靖国神社に代わる新たな追悼施設について「必要性をあらためて認識した。実現のために努力したい」とも述べた。

2009年、日本が麗水国際博への参加を真っ先に表明した時も、その中心人物は二階氏だった。当時、竹島の領有権問題で、韓日両国は外交的に対立していたが、経済産業相だった二階氏は、国会議員一人一人に会い、麗水国際博への参加を呼び掛けたという。

「韓国が製作した麗水国際博の広報紙に、竹島が韓国の領土として記載されているとの理由で、議員たちの不満が多い。地図をみると、竹島はどこにあるか見えないほど小さな島じゃないか。大げさに振る舞うのではなく、隣国のイベントの成功に向け力を合わせよう」と説得した。

一方、旧日本軍の慰安婦問題を謝罪した「河野談話」と、植民地支配と侵略を謝罪した「村山談話」の見直しを求める声が自民党内で上がり、日韓関係の新たな火種となっていることについて、二階氏は「大多数の議員はそう考えていない。談話を見直すことはないだろう。政治家が争いの火種を探し、火をつけるようなことをしてはいけない」と断言する。

このように、隣国との関係を重視する二階氏を「親韓·親中派」と非難する人に対しては、「隣国との関係を悪化させる政治家が国民の信頼を得られるだろうか。30年以上政治に携わってきたが、他人のまねをしたり、誰かの指示を受けて政治をしたりしたことはない」と忠告する。また、韓国の中国重視政策が反韓感情を煽っているとの主張に対しても「韓国の外交政策に日本が干渉する必要も理由もない。日本、韓国、中国の協力と友好は言うまでもなく皆にとって利益になる」と力説する。

二階氏が韓国と初めて縁を結んだのは、1982年のことだった。和歌山県議会議員として地元高校のフィールドホッケーチームを率い、親善試合のため韓国南部の大邱とソウルを訪れた。「生徒たちは、言葉は通じなくても身振り手振りでコミュニケーションし、すぐに親しくなった。当時の生徒たちは、そのときの経験から数十年経った今でも『韓国が好きだ』と言う。」

この時から民間交流の大切さを実感した二階氏は、約5500社の旅行業者が加盟する全国旅行業協会(ANTA)の会長を20年間務めながら、「文化の水準が高い韓国と日本は大国だ。対立と憎悪を乗り越え、協力の時代を共に切り開いていこう」と強調してきた。

二階氏は日韓友好のシンボルとして、金忠善(キム·チュンソン)将軍を挙げる。金忠善将軍の本名は沙也可(さやか)で、壬辰倭乱(文禄·慶長の役)で朝鮮に渡ったものの「戦いに大義がない」として朝鮮に投降し、帰化した日本人である。二階氏は2010年、日本の民間団体による和歌山県での金忠善将軍の記念碑建立に助力し、記念碑に韓日友好を願う文章も残した。同氏は「韓国の政治家に会うとよく金忠善将軍を言及する。日韓が共感できる分野を探し、理解を広げていくことが重要だ」と強調する。

二階氏率いる特使団は、11日に「木浦共生園」を訪れ、記念植樹を行った後、夕方韓国訪問委員会が主催する「日韓友好の夜」行事に出席する。12~13日には、文在寅(ムン·ジェイン)大統領に安倍首相の親書を渡す予定である。
【日韓交流】丁世均(チョン·セギュン)国会議長訪日、「故郷の家·東京」訪問及び在日同胞懇談会出席
【在韓日本人の集い】慰安婦問題を抜本的に解決する究極の解決策はあるのか?
【真の平和の道Ⅲ】易地思之(相手の立場に立って考える)
【BOAO】 「日本ボアオ会」発足
タグ:二階俊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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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교류】니카이 특사단 방한 "한국과 일본은 대국! 협력의 시대를 함께 열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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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카이 도시히로 자민당 간사장(앞열 우측에서 네번째)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 방문
日本語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특사 자격으로 한국을 방문한 일본 자민당의 니카이 도시히로 간사장이 10일 목포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을 방문했다. 니카이 씨는 전 전남지사 이낙연 총리, 박지원 국민의당 전 대표와 오랜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형제 같은 한국 친구'라며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을 비롯해 박지원 국회의원, 강동석 전 건설교통부 장관, 허남식 전 부산시장 등 한국 친구들과의 인연을 소개할 정도로 자민당을 대표하는 '친한파' 의원이기도 하다.

2003년 방한한 니카이 씨는 청와대에서 박지원 대통령 비서실장을 만나 재일 외국인의 참정권에 대해 "실현을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고 말했을 정도다. 이때 니카이 씨는 한국의 국립묘지 현충원에서 참배한 일을 소개하며 야스쿠니신사를 대체할 새로운 추도 시설에 대해서 "필요성을 재차 인식했다. 실현을 위해 노력하겠다"라고 언급했다.

2009년 일본이 전격적으로 여수세계박람회 참가를 표명했을 때도 그 중심인물은 바로 니카이 씨였다. 당시 독도 영유권 문제로 한일 양국이 외교적으로 대립하고 있었다. 경제산업상이었던 니카이 씨는 국회의원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 여수세계박람회 참가를 호소했다고 한다.

"한국이 제작한 여수세계박람회의 홍보지에 독도가 한국의 영토로 기재되어 있다는 이유로 의원들의 불만이 많은 것 같다. 지도를 보면 독도가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조그만 섬이 아닌가. 요란하게 호들갑떨지 말고 이웃나라 행사가 성공할 수 있도록 힘을 모으자"고 설득했다.

한편,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사과한 '고노 담화'와 식민지 지배와 침략을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의 재검토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자민당 내에서 일기 시작해 한일관계의 새로운 불씨가 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대다수의 의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담화를 재검토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정치인들이 분쟁의 불씨를 찾아 불을 붙이는 짓을 해서는 안된다"고 단언한다.

이처럼 이웃나라와의 관계를 중시하는 니카이 씨를 '친한·친중파'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이웃나라와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정치인이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까. 30년 이상 정계에 몸담았지만, 남 흉내를 내거나 누구의 지시를 받고 정치를 한 적은 없다"고 충고한다.

또 한국의 중국 중시정책이 반한 감정을 조장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한국의 외교정책에 대해서 일본이 방해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일본, 한국, 중국의 협력과 우호는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고 훈계한다.

니카이 씨가 한국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1982년이었다. 당시 와카야마(和歌山)의 현의원이었던 니카이 씨는 고교 필드하키팀을 이끌고 친선 경기를 위해 대구와 서울을 방문했다. "학생들은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몸짓이나 손짓으로 의사소통하면며 빨리 친해졌다. 학생들은 그때 경험으로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한국이 좋다"고 얘기한다."

그때부터 민간교류의 중요성을 실감한 니카이 씨는 약 5500개 여행업체가 가맹돼 있는 전국여행업협회(ANTA)의 회장을 20년간 맡으면서 "문화 수준이 높은 한국과 일본은 대국이다. 대립과 증오를 극복하고 협력의 시대를 함께 열어 가자"고 강조해 왔다.

니카이 씨는 한일 우호의 상징으로서 김충선(金忠善) 장군을 꼽는다. 김충선 장군의 본명은 사야카(沙也可)이며, 임진왜란 때 조선으로 건너와 "싸울 명분이 없다"며 조선에 투항해 귀화한 일본인이다. 니카이 씨는 2010년 일본 민간단체가 와카야마현에 세운 김충선 장군의 기념비 건립에도 조력한 바 있으며 기념비에 한일 우호를 기리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그는 "한국의 정치인을 만나면 자주 김충선 장군에 대해서 애기한다. 한일 양국이 공감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 이해의 폭을 넓혀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니카이 씨는 11일 '목포공생원'을 찾아 기념 식수를 한 다음 저녁에는 한국방문위원회가 주최하는 '한일우호의 밤' 행사에 참석한다. 12〜13일 양일간 문재인 대통령을 예방해 아베 총리의 친서를 전달할 예정이다.
【한일교류】정세균 국회의장 방일, 고향의 집 도쿄 방문 및 재일동포와 간담회
【재한일본인모임】위안부 문제를 발본색원할 궁극적 해결책은 무엇인가?
【참 평화의 길 Ⅲ】역지사지(易地思之)
【BOAO】'일본보아오회' 발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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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年06月09日

【한일교류】정세균 국회의장 방일, 고향의 집 도쿄 방문 및 재일동포와 간담회

PicsArt_06-09-08.38.18.jpg日本語
고령자 복지시설 '고향의 집 도쿄' 방문
'소녀상 - 헤이트스피치 유발' 우려

오시마 다다모리(大島理森) 중의원 의장의 요청으로 일본을 공식 방문한 정세균 국회의장이 6월 7일 재일동포 고령자 복지시설인 '고향의 집 도쿄'를 방문해 관계자들은 격려했다.

정 의장은 "고령사회를 먼저 맞이한 일본의 발전된 노인복지제도를 잘 배워 한국 어르신들을 더 잘 모실 수 있는 지혜를 찾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고향의 집' 은 사회복지법인 '마음의 가족' 윤기 이사장이 재일동포 노인들이 차별받지 않고 일본인과 공생할 수 있도록 다문화 공생 모델로 설립한 노인복지시설이다. '고향의 집 도쿄'는 일본내 다섯번째 시설로 작년 10월에 개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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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호텔 뉴오타니 도쿄에서 열린 '재일동포 초청 간담회'에서 정 의장은 "지난 5년 동안 재일동포나 일본에서 사업을 하는 기업인 입장으로서는 참으로 혹한기와도 같은 기간을 보내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을 꺼냈다.

그리고 "내년 '김대중-오부치선언' 20주년을 맞아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가 돼야겠다. 그러기 위해서 금년부터 준비해야 하며, 그런 관계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참석자들은 위안부 문제로 양국 관계가 얼어붙은 데 대한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일한교류한마당 권용대 사무국장은 "외교 공관 앞에 소녀상을 세워놓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품위를 지켜야 하는 것 아닌가. 법률적으로 위반 아닌가. 다른 데 세우면 될 것이 아닌가. 위안부 합의가 이뤄진 뒤에 왜 치사하게 소녀상을 부산 일본공관 앞에 세우느냐"며 목소리를 높혔다.

이어 박유식 민단 청년회장은 "위안부 합의 성사 문제는 어떻게 돼 가고 있나? 앞으로 다시 한번 헤이트스피치(재일동포 혐오발언)를 유발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 의장은 "대한민국 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양국 간 외교 현안으로 만들고 싶었다기보다는, 국민들의 요구를 외면할 수 없어 정부도 같이 한 측면이 있다"며 "지금은 민권이 관권보다 더 강한 시대가 됐다"고 대답했다.

이어 "이게 옳으냐 그르냐는 칼로 무 자르듯 딱 판단할 수 없다. 사람 생각이 다 다르고, 경우에 따라서는 피해를 주는 게 아니면 행동의 자유가 보장될 수 있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리고 "과거를 무시하고 모른 척 할 수는 없다. 따질 건 따지고 문제를 제기할 건 하되, 다른 현안에 대해서는 한일이 협력해야 할 사안들이 많다"면서 "요즘 말로 '투트랙 접근'으로 가야 하는 것이 아니겠나"라고 밝혔다.

'투트랙 접근'이란 대일 외교에 있어서 '역사 인식'과 '경제·안보'를 각각 별개 사안으로 취급하는 접근방식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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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분단과 통일】70년 포로 및 귀환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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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韓交流】丁世均(チョン·セギュン)国会議長訪日、「故郷の家·東京」訪問及び在日同胞懇談会出席

PicsArt_06-09-08.38.18.jpg한국어
高齢者福祉施設「故郷の家·東京」訪問
「少女像 - ヘイトスピーチ誘発」懸念

大島理森·衆議院議長の要請を受け、日本を公式訪問した韓国の丁世均(チョン·セギュン)国会議長が6月7日、在日同胞高齢者福祉施設である「故郷の家東京」を訪れた。

チョン議長は「高齢社会を先に迎えた日本の進んだ老人福祉制度をよく学んで、お年寄りへのおもてなしの知恵を得るきっかけになってほしい」と関係者らを激励した。

「故郷の家」は、社会福祉法人「心の家族」の尹基(ユン·ギ)理事長が、在日同胞高齢者たちが日本社会の中で差別されることなく、日本人と一緒に共生できるように、「多文化共生モデル」として設立した老人福祉施設である。「故郷の家·東京」は昨年10月に開館された5番目の「故郷の家」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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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日、ホテルニューオータニ東京で開かれた「在日同胞招請晩餐懇談会」で、チョン議長は「過去5年間は、在日同胞や日本で事業をしている企業家にとって酷寒期のような期間であっただろう」と慰めた。

そして、「来年は「金大中 - 小渕宣言」20周年を迎え、「近くて近い国」にならなければない。そのためには今年から準備しなければならない。そういう関係は空から落ちてくるものではない」と強調した。

参加者らは、慰安婦問題によって日韓関係が冷え込んだことに対して強い不満を表した。日韓交流お祭りのクォン·ヨンデ事務局長は「外国公館前に少女像を建てたことについてどう思うのか?品位を守るべきではないか。法律違反ではないか。他の場所に建てても良いのではないか。慰安婦合意がなされた後に日本公館前に少女像を建てることは卑怯ではないか」と声をあげた。

また、パク·ユシク民団青年会長は「慰安婦合意遵守の進み具合はどうなっているのか?今度、再びヘイトスピーチ(在日嫌悪発言)を誘発するだろう」と厳しく指摘した。

チョン議長は「大韓民国政府が慰安婦問題を両国間の外交懸案にしたかったのではなく、国民の声を無視できなかったため、政府もこれに同調した側面がある」とし「今は、民権が官権より強い時代になっている」と応えた。

続いて「これが正しいかどうかは、包丁で大根を切るようにきっちりと分けることができない。人によって考え方が違うし、場合によっては被害さえ与えなければ、行動の自由は保障されるべき」と強調した。

そして、「過去を無視して知らないふりをするわけにはいかない。清算すべきことはしっかりと清算し、他の懸案については日韓が協力しなければならないことが多い」とし「いわゆる「ツートラック·アプローチ」で対応すべきではないか」と明らかにした。

「ツートラック·アプローチ」とは、対日外交において「歴史認識」と「経済·安保」を別途に扱って是々非々で外交を行うこ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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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在韓日本人の集い】慰安婦問題を抜本的に解決する究極の解決策はあるのか?
【真の平和の道Ⅲ】易地思之(相手の立場に立って考える)
【南北分断と統一】70年捕虜及び帰還時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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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年06月07日

【在韓日本人の集い】慰安婦問題を抜本的に解決する究極の解決策はあるの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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アジアニュース・金金山代表招請講演(6/6, 韓国・坡州聖殿)
한국어
1.日本軍と慰安婦

1918年、日本軍のシベリア出兵時に7個師団の内1個師団が性病にかかって全滅した。このような事態を未然に防ぐために、1931年9月、満州事変時に軍人専用の公娼街が定着し、それ以降日本軍が行く所々に慰安所が設けられた。

1937年、日中戦争が勃発し、慰安婦の需要が増加したため慰安婦募集が朝鮮にまで拡大された。初期頃の慰安婦募集は、広告などを通じた公開募集だった。この時までは朝鮮の処女に対する強制はなかった。

その後、新聞やマスコミを通じた広告だけではなく、拉致、人身売買、職業斡旋など、さまざまな手段で慰安婦を募集し、時には女性労働者募集という虚偽の広告を出して誘ったりした。(米国議会調査局(CRS)レポート)

慰安婦募集業者は先ず村長と巡査を買収して協力を求めた。村長が、博打でお金を失くし借金に悩んでいる村人を斡旋すると、募集業者がお金を差し出して娘を売ってくれと誘い、その隣で日本人の巡査が圧力を加えるという手口だった。(遊郭の歴史、2012年)

1941年、太平洋戦争が勃発し、東南アジアと南太平洋まで日本軍の戦線が拡大され、ついに日本軍は慰安婦募集のために強制力を発動し始めた。関東軍が24万人から75万人に増員され、朝鮮の処女1万人が関東軍の方に連れられて行った。(不忠臣民、2004)台湾総督府とフィリピン、インドネシアなどでも慰安婦が強制的に集められた。

インドネシアでは独立運動家が先頭に立って慰安婦を募集した。スカルノは、日本軍の占領こそがインドネシアの独立を早める道であると思い、日本軍への協力やインドネシア人慰安婦募集にも積極的に取り組んだ。(千の顔のイスラム、そして自分のイスラム教、2009)

それにも関わらず、慰安婦の需要をすべて満たすことができなかったため、今度は女子挺身隊勤務令を策定し、12歳〜40歳の独身女を挺身隊の対象者として定めた。そして募集された挺身隊が慰安婦に回されたりした。「挺身隊」とは軍需工場で働く女性労働者であり、「慰安婦」とは元々性格が違う。(不忠臣民、2004)

日本軍に占領された東南アジア地域で慰安サービスを提供するために、1942年、日本人の斡旋人が韓国に渡り始めた。彼らは、貧しい家庭の少女たちを相手に、「沢山のお金、家族の借金をなくすチャンス、簡単な仕事」「日本などの工場を斡旋する」など、様々な嘘をついて前金を払って連れて行った。(韓国の民族運動サロン、2008年)

京城府(ソウル)のパンサン小学校では、道徳の成績が優秀な12歳の女の子だけを選んで、「東京観光に連れて行く」と嘘をついて、6人の女子生徒を挺身隊に送った。また、小学生挺身隊募集を学校別に割り当て、100人をソウル駅で送り出した。「挺身隊に行けばお腹が空くことはない。週に一度映画を見ることもでき、学校にも通える。軍需産業工場のようなところで働けばお金も稼げる」と女子生徒らを騙して連れて行った。(ハンヌリメディア、2004)

2.慰安婦問題と日韓関係

1993年8月、日本の河野官房長官は「慰安婦の募集については、軍の要請を受けた業者が主としてこれに当たったが、その場合も、甘言、強圧による等、本人たちの意思に反して集められた事例が数多くあり、更に、官憲等が直接これに加担したこともあったことが明らかになった」と公式に発表した。

1995年、日本の市民団体が国民基金を集めて慰安婦被害女性たちに贖罪金として支給するアジア女性基金を発足したが、韓国は日本政府の法的責任が明確ではないという理由で受領を拒否した。

挺身隊問題対策協議会(挺対協)など、慰安婦関連の民間団体が日本政府に法的賠償を要求し、韓国外交部との間に摩擦が生じ始めた。慰安婦被害者であるヤン・グムモ氏は日韓基本条約の賠償金で成長したポスコ(POSCO)を相手に訴訟を起こしたが、敗訴した。

一方、慰安婦被害者であるシム・ミジャ(沈美子)氏などは、「私たちはお金を望まない。我々が望むのは名誉だ。私たちを利用して国際的に資金調達をすることは私たちを2度侮辱する行為だ」と批判し、 2004年にキリスト教系「挺対協」と大韓仏教曹渓宗「ナヌム(分け合い)の家」を相手に「募金行為とデモ集会動員禁止仮処分申請」を出した。

また「我々の政府と市民団体などが、元慰安婦おばあさんを立てて日本を批判して日本に賠償させようと要求しているが、肝心の政府や市民団体などが私たちにしてくれたことはあまりない。むしろ日本人が元慰安婦おばあさんたちの健康と訴訟問題、更には葬儀まで継続的な関心と世話をしてくれた」と明らかにした。

2005年、韓国政府は日韓基本条約(1965年)で慰安婦問題は解決されていないと立場を明らかにし、2011年、韓国憲裁は政府が慰安婦問題を解決するために積極的に取り組まないことは違憲であると判決したことで、日韓外交の争点として浮上した。

2015年、日韓国交正常化50周年を迎えて、慰安婦問題を「 最終的かつ不可逆的に解決」すると合意したが、文在寅(ムン・ジェイン)大統領は「韓国国民が情緒的に受け入れられない現実認めよ」 と再交渉の意向を表明し、再び迷宮に陥った。

3.自覚と反省一日韓の共同責任

2001年に行われた調査によると、日本人の募集業者によって動員された慰安婦は16%、韓国人の募集業者によって動員された女性は29.4%だった。慰安婦被害者たちの証言によると、日本人が直接動員した場合でも、必ず朝鮮人たちの協力があったという。(民族とフェミニズム、2003年)

当時、慰安婦募集の先頭に立った多くの知識人たちはクリスチャンであった。また、多くのキリスト教の教団が強制的な神社参拝を支持し、慰安婦募集と戦争物資の調達に協力した。(東アジアと近代の暴力1、2001)

1938年6月、梨花女子大学のキム・ファルラン(金活蘭)、東亜日報のキム・ソンス、朝鮮日報のパン・ウンモなどによって結成された国民精神総動員朝鮮連盟は、その会員数が3万人に達した。チャン・ミョン(張勉)元首相が幹事を務め、イ・グァンス、チェ・ナムソン、ソ・ジョンジュ、モ・ユンスク、キム・ドンファンなどの作家が加わった。1939年に国民徴用令が公布されると、彼らは先頭に立って朝鮮人を日本の炭鉱や工場に送り、志願入隊と慰安婦募集にも熱を上げた。

1938年9月9日、朝鮮イェス教長老会の総会で神社参拝が可決され、1943年、日本キリスト教に韓国キリスト教が編入されることによって信仰の主体性と貞操を全て失った。キリスト教の教団は慰安婦募集と戦争物資の調達に協力し(キリスト教神学、キム・ギュンジン)、青年たちは戦場へ、少女たちは慰安所へ、壮年たちは炭鉱や工場へ連れて行かれた。

このように、国の公権力がなくなった状況の中で、最も被害を受けたのは罪のない一般民衆だった。彼らは、教育を受ける機会も与えられず、敢えて自分の権利を主張することは想像ですら考えられなかった。言うまでもなく国を動かした指導層に全ての責任を問わなければならない。

従って、慰安婦問題の真相を究明し、日本政府の責任を追求することは当たり前だが、それと同時に彼らに同調して協力した朝鮮人たちの責任も一緒に問われなければならない。最近日本では良心宣言をする人も現れているが、強制動員や人身売買を主導して女性の人権を踏み潰した韓国人は誰一人過去の過ちを告白せず、処罰されなかった。

韓国人が先ず過去の問題について自ら自覚し、根本的に反省することによってはじめて慰安婦問題の新しい解決策を見出すことが出来るだろう。

4.恩讐から兄弟姉妹へㅡ女性姉妹結縁

統一教会の文鮮明総裁は、30万人の慰安婦がいたと主張し、1994年から1998年まで世界平和女性連合(総裁 韓鶴子)主催の下、国際的な女性姉妹結縁を結んだことかある。「韓日女性32万姉妹結縁」をはじめ、日本-韓国、オーストラリア-ニュージーランド、韓国-台湾、韓国-タイなどの女性姉妹結縁が結ばれた。

女性姉妹結縁は、その趣旨文で明らかにしたように、女性が「男性によって作られた」国家間の憎悪と対立を克服し、「恩讐ではなく、兄弟姉妹として」過去を清算し、「新しい歴史を創造する」という趣旨で行われた。そのために、「6日目に創造された人間と6千年の人類歴史を取り戻す」という意味で、6年間に渡って姉妹結縁が行われたと言える。

このように、文鮮明総裁は韓国のキリスト教に代わって「敵を愛しなさい」というイエス様の教えを実践することによって、慰安婦問題に対する根本的な解決策を提示したわけである。日本の過ちを清算するために韓国の地を訪れた日本代表16万人の女性指導者たちは、16万人の韓国女性指導者たちと手を繋ぎ、「南北統一とアジア•世界平和のために命を懸けて死生決断する」ことを「神の前で誓った」。16歳の少女「柳寛順(ユ・グァンスン)の化身体」として生まれ変わる瞬間であった。

結論的に、女性姉妹結縁は、消極的な過去志向ではなく、積極的な未来志向の代案であり、一時的ではなく、恒久的な解法として、慰安婦問題を抜本的に解決した究極の解決策であったと評価することが出来る。
한일여성자매결연.jpg
16万人日本女性指導者教育(上)、韓日女性姉妹結縁(下)
【真の平和の道Ⅲ】易地思之(相手の立場に立って考える)
【南北分断と統一】70年捕虜及び帰還時代
posted by Cultural Highway at 08:19| Comment(0) | TrackBack(0) | 日韓交流 | 更新情報をチェックす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