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年06月18日

【주한일본인의모임】 '나눔의 집' 방문, 봉사활동

日本語
'주한일본인모임' 회원들이 6월 17일 경기도 광주시에 있는 '나눔의 집'을 방문해 봉사활동을 실시했다. 일본인 여성들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을 나눠드리고 노래와 춤으로 위로했다.

16세 때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李容洙) 할머니가 납치되어 보내진 곳은 대만의 신죽(新竹)라는 마을이었다고 한다.

대만까지는 배로 이송되었는데, 그 배 안에 할머니와 같은 5명의 소녀들이 타고 있었다. 제일 연장자는 18세였다.

마침내 대만에 도착한 할머니가 끌려간 곳은 특공대의 출격 기지였다. 그들은 오키나와 주변에 있던 미국 함대를 폭격하기 위해 끊임 없이 출격했지만, 대부분 미리 잠복해 있던 미군의 요격기에 격추당해 함대까지는 아예 접근도 하지 못했다. 처음부터 성공확률 0에 가까운 작전이었던 것이다.

어느날 한 병사가 "비행기로 특공 작전하러 간다. 두 명이 타고 간다. 나는 21살이다. 며칠 지나면 죽으러 갈 것이다"고 말을 꺼냈다. 할머니가 "나도 데려가요"라고 애원하자, "안돼" 하면서 노래 하나를 가르쳐주었다. 할머니는 지금도 그 노래를 일본어로 곧잘 부른다."

"간코(艦攻=艦上攻撃機) 이륙하네 대만을 떠나네 금빛 은빛으로 파도치는 구름을 헤치고 배웅해주는 이는 아무도 없고 울어주는 사람은 도시코(이용수)뿐이라네.

간코 이륙하네 신죽을 떠나네 금빛 은빛으로 파도치는 구름을 헤치고 배웅해주는 이는 아무도 없고 울어주는 사람은 이 아이(이용수)뿐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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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언하는 이용수 할머니(왼쪽열 중앙)
결국 그 병사와 할머니는 이틀 동안 같이 지내게 됐다. 그리고 병사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세면도구를 챙겨주면서 이렇게 다짐했다. "도시코 숨어 있어라. 내가 죽으면 하나님이 되어 너를 엄마 곁으로 데려다 줄게. 엄마 가슴에 안겨줄테니 도시코 죽지마. 그러니 꼭 숨어 있어라."

이 말을 남기고 떠난 그를 할머니는 눈물로 배웅했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잠시 후, 할머니가 있던 기지가 공습을 당해 숙소에 폭탄이 떨어졌다. 할머니는 지하 방공호에 몸을 피했기에 무사했지만, 그녀를 숨겨준 여성은 사망했다.

어느날 중국인이라는 남자가 찾아와 "전쟁은 끝났다. 더이상 이런 곳에 머물면 안돼"라며 할머니들을 수용소로 데려갔다. 그후 할머니들은 모두 해방되어 다시 고국 땅을 밟게 되었다고 한다.

이용수 할머니는 "위안부 피해자가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역사적 진상 규명과 진정성 있는 사죄"라며 "도쿄 한복판에 소녀상을 세워 자신들의 조상이 우리에게 저지른 만행을 후세 사람들이 보고 기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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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앞열 중앙)와 함께
그런데 일본인의 "마음으로부터의 반성과 진정성 있는 사과를 기대하며" 세워진 소녀상이 오히려 재일동포들에게 또 다른 고통을 안겨주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어, 금후 문재인 정부가 풀어야 할 난제의 하나로 남게 되었다. 재일본대한민국민단은 "한일관계의 악화에 따른 가장 큰 피해자는 우리 재일동포"라며 2015년 대국민호소문을 다음과 같이 전면 광고한 바 있다.

1.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같이 일제의 식민지 통치의 희생자이면서 일본에서 정착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 재일동포들이지만, 외교 교섭에 있어서 일방적인 승리는 있을 수 없는 만큼 지난 24년간 양국간 현안이었던 이 문제를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최선의 합의를 이룩한 본국 정부의 고충을 이해하고 이를 지지한다.

2. 금번 합의가 피해자들의 입장에서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과거 어느 정부도 하지 못했던 일본 정부의 책임 인정 등 결과를 이끌어낸 만큼, 합의에 대한 내부 분열로 영원히 미제(未濟)로 남기기보다는 금후 일본의 약속이행 여부를 지켜보면서 대승적 견지에서 합의안 수용을 본국 국민들에게 호소한다.

3. 일본 정부는 양국 간 합의사항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이행하여 고령의 피해자들이 하루라도 빨리 명예와 존엄을 회복하고 과거의 상처를 조금이라도 치유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할 것과 아울러 이 비참한 역사를 후세대까지 잊지 않도록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한다.

4. 지난 수년간 어려웠던 한일관계로 인해 재일동포의 생계가 큰 타격을 받고 생활의 터전인 동경 신오쿠보 거리를 비롯한 일본 각지에서 혐한(嫌韓) 시위가 넘쳐났던 사실을 상기하면서 금번 합의로 더 이상 양국관계가 경색되지 않고 미래지향적 관계로 발전해 나가기를 기대한다.

5. 우리 60만 재일동포들은 나라 잃은 설움을 뼈에 사무치게 겪어온 당사자들로서 양국 간 가교로서 역할을 충실히 이해하며 모국의 발전을 통한 진정한 극일(克日)의 날이 오기를 열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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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신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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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在韓日本人の集い】「ナヌム(分け合い)の家」訪問、奉仕活動

한국어
「在韓日本人の集い」のメンバーらが、6月17日、京畿道広州市にある「ナヌム(分け合い)の家」を訪問し奉仕活動を行った。日本人女性たちは、慰安婦被害者ハルモニの為に準備したプレゼントを渡し、歌と踊りで慰めた。

16歳のときに拉致された韓国人慰安婦被害者のイ•ヨンス(李容洙)ハルモニが連れて行かれたところは、台湾の新竹だったという。

台湾には船で移送されたが、同じ船にハルモニを合わせて5人の少女たちが乗っていた。一番年上は18歳だった。

やがて台湾に着いたハルモニが連れていかれたのは特攻隊の出撃基地だった。彼らは、沖縄周辺にいたアメリカ艦隊を攻撃するために次々と特攻機が出撃したが、そのほとんどは既に上空で待ち伏せしていたアメリカ軍の迎撃機に落とされ、艦隊にたどり着くことすらできなかった。元々成功率ゼロの作戦に過ぎなかった。

ある兵士は、「飛行機で特攻に行く。二人で乗っていく。僕は21歳だ。何日かすると僕は死にに行く」と言った。ハルモニが「私も連れて行って」と哀願すると「ダメだ」と言いながら、こんな歌を教えてくれた。ハルモニは今もそれを日本語で朗々とうたうことができる。

「カンコウ(艦攻=艦上攻撃機)離陸よ 台湾離れ 金波銀波の雲乗り越えて 誰だって見送る人さえなけりゃ 泣いてくれるは としこ(イ•ヨンス)が一人だ」

「カンコウ離陸よ 新竹離れ 金波銀波の雲乗り越えて 誰だって見送る人さえなけりゃ 泣いてくれるは この子(イ•ヨンス)が一人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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証言するイ•ヨンス(李容洙)ハルモニ(左列中央)
結局、その兵士とハルモニは二日間、一緒に過ごすことになった。最後に、兵士は自分の洗面道具を渡してこう約束した。「としこ、隠れていろ。僕が死んだら僕が神様になってお前をお母さんの元へ連れて行ってあげる。お母さんの胸に託してやるから、としこ、死なないで。どうか人に見つからないで。」

そう言い残して去っていった彼をハルモニは泣きながら見送った。

そんなことがあってから暫くして、ハルモニのいた基地は空襲を受け、ハルモニたちの建物にも爆弾が落ちた。ハルモニは地下の防空壕にいて無事だったが、彼女をかくまってくれた女性は死んでしまった。

その後のある日、中国人を名乗る男性がやってきて、「戦争は終った。もうこんなところにいてはいけない」と語り、ハルモニたちを収容所に連れて行った。その後、ハルモニたちはようやく解放され、朝鮮の故郷へと連れ返されたという。 

イ・ヨンスハルモニは、「慰安婦被害者が望むのはカネではなく歴史的な真相究明と心からの謝罪だ」と訴えながら、「東京のど真ん中に少女像を建て、自分たちの先祖が私たちに行った蛮行を後世の人たちが見て記憶できるようにすべきだ」と述べたりす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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慰安婦被害者ハルモニ(前列中央)と一緒に
しかし、日本人に「心からの反省や真の謝罪をさせるために」建てられた少女像が、逆に在日韓国人に新たなる苦痛を与える結果を招いており、これは今後文在寅政府が解決しなければならない難題として残った。在日本大韓民国民団は、「日韓関係悪化による一番の被害者は我々在日同胞だ」と訴え、2015年、次のように国民向け談話を全面広告したことがある。

1.慰安婦被害者ハルモニたちのように日帝の植民地統治の犠牲者であり、日本で定着するしかなかった私たち在日同胞だが、外交交渉において一方的な勝利はありえない。過去24年間両国間の懸案だったこの問題を、様々な困難にもかかわらず、最善の合意を成し遂げた本国政府の苦しい胸の内を理解し、これを支持する。

2.今回の合意が被害者達の立場としては満足できるほどの水準でないとしても、過去どの政府もできなかった日本政府の責任認定など、結果を導き出した。合意に対する内部分裂で永遠に未解決で残すよりも今後日本が約束履行をするかどうか見守りながら、大局的見地から合意案を受け入れるよう本国の国民に訴える。

3.日本政府は両国間合意内容を迅速かつ正確に履行し、高齢の被害者たちが一日も早く名誉と尊厳を回復し、過去の傷を少しでも治癒することができるよう積極努力することとあわせて、この悲惨な歴史を後の世代まで忘れないよう適切な措置を行うよう訴える。

4.過去数年間、厳しかった韓日関係によって在日同胞の生計が大きな打撃を受け、生活の基盤である東京・新大久保の街をはじめ日本各地で嫌韓デモがあふれた事実を想起しながら、今回の合意でこれ以上両国関係が梗塞せず、未来志向的な関係に発展していくよう期待する。

5.私たち60万在日同胞は国を失った悲しみを骨身にしみて味わった当事者として、両国間の懸け橋として役割を忠実に履行し、母国の発展を通じた真の克日の日が来ることを熱望す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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亡くなったハルモニたちと一緒に
【在韓日本人の集い】慰安婦問題を抜本的に解決する究極の解決策はあるのか?
【真の平和の道Ⅲ】易地思之(相手の立場に立って考える)
【南北分断と統一】70年捕虜及び帰還時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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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강국의 개척정신】"안정성에서 불안정성으로" "획일성에서 다양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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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국토 면적 당 해안선 길이가 일본이나 영국보다 길고, 미국-일본-한반도-중국-동남아-유럽으로 가는 항로의 중심지에 위치하고 있다. 세계 주요 도시들이 대부분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이와 같은 지리적 특성을 잘 활용하면 우리나라는 동북아 물류 중심지로 부상할 수 있는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왜 아직까지 해양강국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통일신라 때만 해도 장보고는 바다를 통해 동북아시아의 국제무역을 장악했다. 왕건 가문도 해상세력이었다. 고려시대에는 아랍과의 교역도 왕성하여 조선 세종 때까지 우리나라에 회교도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조선시대에 들어와 장보고의 해양강국의 맥이 끊어지고 만다.

조선의 이른바 '공도(空島)정책' 때문이다. '섬을 비워둔다'는 공도 조치는 고려 말부터 나타났다. 서남해 해상세력이 삼별초 세력에 동조할 것에 대한 우려와 왜구와의 연대 가능성에 대한 불안감에서 나온 조치였다. 이 조치는 조선시대에 들어와 국가 정책으로 전면적으로 실시된다.

조선은 정기적으로 '수토관'을 각 섬에 파견해 섬에 사는 주민이 있으면 육지로 데려왔다. 게다가 허락없이 섬에 몰래 들어간 자는 곤장 1백대의 형을 받는 것으로 규정하고, 심지어 섬에 도피·은닉한 죄는 본국을 배반한 죄에 준하는 것으로 다스려져야 한다고 했다.

이처럼 공도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했던 배경에는 모든 백성이 국왕의 지배와 보호하에 편제되어야 한다는 통치이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섬은 원칙적으로 국왕의 지배와 보호가 미치는 통치의 대상이 아니었으며 행정 편제의 대상에서도 배제되었다. 따라서 육지를 떠나 섬으로 들어가 거주하는 행위는 국왕의 통치권에서 벗어난 범법행위로 다스려졌다.

조선은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공도정책 뿐만 아니라 명의 '해금(海禁)정책'도 그대로 수용했다. '해금'이란 바다로 나아가 외국과 통교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하해통번지금(下海通番之禁)'의 약칭이다. 해상무역·해상교통 뿐만 아니라 어업까지도 규제하는 해양 통제정책이다. 바다에 나가 무역하는 것은 물론 아예 바다에 나가는 것조차 금했다.

중국은 당·송·원 때까지만 해도 다른 나라와의 교역에 적극적이었다. 그런데 명을 건국한 주원장은 동남의 해상 세력을 견제하고 탄압하기 위해 해금정책을 폈다. 송·원이 대외교역으로 실리를 중시하는 개방정책을 폈다면, 명은 농업 위주의 폐쇄정책을 폈다. 명은 조공무역만 제한적으로 허용했으며, 이것이 조선의 해금정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다.

바다에 나가는 것을 금하다 보니 많은 사람이 바다를 꺼리게 되고 바다를 장애물로 여기게 됐다. 바다를 막은 조선은 경제·문화적 자폐주의에 깊이 빠져들었고, 조선 초기의 지도에서조차 섬을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조선방역지도'에 표기된 섬은 제주도·대마도·진도뿐이다. 또 '동람도'에 나온 섬은 제주도·군산도·흑산도·남해·거제도·대마도에 불과하다.

통상도 중국과 일본에 한정됐다. 당시 일본은 북해도와 네덜란드, 중국은 동남아시아와 서양 각국과도 접촉하던 때였다. 장보고가 동남아뿐 아니라 이슬람 상인과 거래한 것과 비교하면 해양무역사 측면에서 커다란 후퇴였다. 또 중국과 조선의 강력한 해금정책으로 일본인들의 무역 욕구가 차단되면서 그들의 욕구를 불법적이고 약탈적인 형태로 표출한 것이 왜구의 침탈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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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와중에서 임진왜란은 해양에 대한 관심을 새롭게 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일방적인 열세에서 벗어나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수군의 공이 컷고, 그동안 방기했던 섬들이 왜구들의 근거지로 활용되었다는 점 등이 반영되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해양문화를 적극적으로 발전시키지 못했다.

실학자들은 해금정책을 비판하며 바다를 이용할 것을 주장했다. 박제가는 "조선 400년간 딴 나라의 배가 한 척도 들어오지 않았다"고 한탄하고 바닷길을 활용한 통상을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조선의 해양력은 갈수록 축소됐고, 섬과 바다, 연해지역을 왜구에게 내주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오늘날 일본은 독도가 일본의 고유영토였다고 주장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한국은 독도의 존재를 몰랐고 설사 알았더라도 이를 이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일본이 일찍부터 독도를 발견하고 이용해 왔으므로 독도는 일본의 고유영토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울릉도 공도정책이 실시되고 있었을 때, 울릉도와 독도 모두 일본 어부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이용되었다며, 1618년 다케시마 도해면허, 1660년 마쓰시마 도해면허, 1836년 하치에몽에 대한 판결문을 그 증거로 제시하고 있다.

이렇게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바로 태종 때부터 시작된 '울릉도 공도정책'에 기인한다. 1884년 울릉도 개척정책이 실시될 때까지 유지되었다. 또한 19세기 말 서구 열강과 근대적 통상조약을 체결할 때까지 500년간 지속된 해금정책의 결과이기도 하다.

조선은 중화의 권위를 빌린 획일적인 안정성을 선호하고 통제하기 어려운 해양 세력의 불안정성을 기피했다. 해양 세력은 다국적 성향과 자율성·독자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해양을 통해 문화의 다양성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잃었을 뿐만 아니라 영토분쟁의 빌미를 제공했다.

1200년 전 장보고는 해양 네트워크를 잘 활용하여 동북아의 국경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면서 세계 각처에 거점을 만들고 새로운 글로벌 스탠더드를 창출했다. 오늘날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세계질서가 재편되고 있는 때를 맞이하여, 잠자고 있는 우리 민족의 개척정신을 다시 흔들어 깨움으로써 비로소 장보고의 해양강국의 혼이 부활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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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왕 장보고】현대판 '해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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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年06月15日

【한일교류】규슈 사가현(佐賀県) 나베시마(鍋島) 가문과 조선의 깊은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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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語
일본 규슈의 사가(佐賀) 하면 '나베시마 나오시게'(鍋島直茂, 1536〜1618)를 빼놓고 생각할 수 없다. 나베시마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가토 기요마사의 부장으로 조선을 침략했던 무장이다.

나오시게는 함경도까지 밀고올라가 조선의 왕자들을 붙잡는 등 그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 했으나 의병장 정문부(鄭文孚)와 싸워 크게 패했다. 그리고 당시 왜군을 격퇴시킨 공을 기려 세워졌던 북관대첩비(北關大捷碑)는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군이 전리품으로 가져다가 천황에게 바친 다음 야스쿠니 신사경내에 세워졌는데, 추후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총리의 합의에 따라 2006년 3월 1일 개성공단을 거쳐 100년만에 북한으로 반환되기도 했다.

한편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포로수는 10만〜15만 명에 달했으며 그들 중엔 기능인들이 다수 포함돼 있었다. 그들은 조선에서 천민 취급을 받았으나 일본에서는 사무라이와 같은 귀족 대접을 받으며 능력을 한껏 발휘해 각 분야에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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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나오시게가 데려온 도공 이삼평(李參平)이 개발한 명품도자기 '아리타야키(有田燒)'는 유럽 왕실과 귀족들의 인기가 높아 황금처럼 비싸게 거래되었다고 한다.

나오시게는 사가성을 구축해 히젠국(肥前國)의 실권을 장악하고 사가번(나베시마번)의 기틀을 다졌다. 또한 도자기로 벌어들인 자금으로 제철소를 만들고 서양의 신무기를 구입하여, 도쿠가와 막부를 무너뜨리고 메이지유신을 성공시켰다. 또한 1882년 사가번 출신 오쿠마 시게노부(大隈重信)는 와세다 대학을 설립하여 대담하게 교육개혁을 추진하며 인재를 양성했다.

한편 아리타야키와 더불어 쌍벽을 이루었던 나베시마번의 명검 히젠도(肥前刀)는 무사들이 허리에 한번 차보는 것을 더없는 자랑으로 여겼던 것으로, 낭인 '도 가쓰아키(藤勝顕)'가 명성황후를 베었던 바로 그 검이며, 현재 후쿠오카현의 구시다(櫛田) 신사에 보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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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구시다 신사의 '구시'는 가락국 김수로왕이 강림한 구지봉(亀旨峰)의 '구지'에서 유래한다. 신사 경내에 있는 구시모리(櫛'森'=우두'머리') 신사나 구시마루(櫛'丸'=산'마루') 신사, 그리고 신사 주변을 '구시산(櫛山)'이라고 부르는 등 모두 구지봉을 지칭하고 있어, 이 일대가 제철기술을 가진 도래인들이 많이 살았던 신성한 땅이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이처럼 사가현의 나베시마 가문은 조선과는 끈질긴 인연을 갖고 있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 이은(李垠) 공의 비가 된 이방자(李方子) 여사도 바로 사가번주 나베시마 나오히로(鍋島直大)의 손녀이다. 이방자 여사는 지극히 어려운 생활 여건 속에서도 한평생 사회봉사에 온 정열을 쏟으며 '한국 장애인들의 어머니'로 존경받았다.

아래 그림은 이방자 여사의 초충도(草蟲圖)이다. 지구를 상징하는 땅 위에 활짝 만개한 개나리꽃은 일본을 상징하고, 이제 꽃망울이 맺힌 국화꽃은 한국을 상징한다. 60, 70년대 경제부흥을 이룩한 일본과 이제 막 피어나는 한국이 함께 어울려 잘 살아보자는 염원이 담겨져 있어, 평생 불우한 한국인을 위해 희생했던 이방자 여사의 사상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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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韓交流】佐賀県・鍋家家と韓国の深い縁

PicsArt_06-15-06.01.53.jpg한국어
佐賀と言えば、鍋島直茂(1536〜1618)を抜きにしては語れない。鍋島は文禄・慶長の役の時、加藤清正の副隊長として朝鮮に出兵した武将である。

鍋島は、北朝鮮の咸鏡道まで進撃し、朝鮮の王子らを捕まえるなど大勝利を収めた鍋島軍はまさに天を突く勢いであったが、義兵隊長・鄭文孚(チョン・ムンブ)に遭遇し大敗した。当時、日本軍を撃退した功績をたたえて建てた「北関大捷碑(ほっかんたいしょうひ)」は、日露戦争で勝利した日本軍の戦利品として日本に持って帰られ、天皇に献上された後、靖国神社に置かれるようになった。後ほど盧武鉉大統領と小泉首相の合意によって、2006年3月1日、開城工業団地経由で100年ぶりに北朝鮮に返還された。

一方、文禄・慶長の役の時に日本に連行された朝鮮人捕虜は10万〜15万人に上り、その中には多くの職人たちが含まれていた。彼らは朝鮮では賤民の扱いを受けたが、日本ではサムライと同様の扱いを受け、精一杯才能を発揮しがら各分野で花を咲かせ、実を結んだ。

特に、鍋島が連れて来た陶工イ・サムピョン(李參平)が開発した陶磁器の名品「有田焼」は、ヨーロッパの王室や貴族たちにも人気が高く、黄金のように高く売買されたという。

鍋島は、佐賀城を構築した後、肥前國の実権を掌握し、佐賀藩(鍋島藩)の基礎を固めた。また、陶磁器で稼いだお金で製鉄所を作り、西洋の最先端武器を購入して、徳川幕府を崩し明治維新を成功に導いた。また、1882年、佐賀藩出身の大隈重信は早稲田大学を設立して、大胆な教育改革を推進しながら人材を養成した。

一方、有田焼と肩を並べた鍋島藩の「肥前刀」は、武士たちが一度腰に差すことを無上の誇りに思ったほどの名剣であった。実は、この肥前刀は朝鮮王朝 「明成皇后(聞妃)」 暗殺に使われた正にその刀であり、後ほど福岡県の櫛田神社に奉納され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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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海の亀旨(クジ)峰
さて、櫛田神社の「櫛」は加羅国キム・スロ(金首露)王の降臨地 「亀旨(クジ)峰」 の 「亀旨 (クジ) 」 の転靴だと言われている。また、神社の境内にある櫛森(韓国語「モリ」=「頭」)神社や櫛丸(韓国語「マル」=「山頂」)神社、そしてこの地域が「櫛山」と呼ばれているなど、等しく「亀旨峰」を指しており、この一帯が製鉄技術を持った渡来人が多く住んだ神聖な土地であったことを物語っている。

このように、佐賀県の鍋島家は、朝鮮とは粘り強い縁を持っている。大韓帝国の最後の皇太子・李垠(イ・ウン)の妃である李方子女史も、まさに佐賀藩主鍋島直大の孫娘である。李女史は厳しい生活環境の中でも社会奉仕の為に全ての情熱を注いで「韓国障害者の母」として尊敬された。

次の絵は、李方子女史の「草蟲圖」である。地球を象徴する丸い地の上にパッと満開したレンギョウの花は日本を象徴し、つぼみが出てきたばかりの菊の花は韓国を象徴している。 60、70年代に経済復興を成し遂げた日本と今から花咲く韓国が一緒に仲良く暮らそうという願いが込められている。生涯可哀想な韓国人のために一生懸命に尽くした李女史の思想がよく表れてい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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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年06月13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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