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年12月09日

【김정은 사로잡기】평창동계올림픽! 김정은의 결단은?

日本語
개인이 조직을 능가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미국에서는 트럼프가 나라를 바꾸고, 한국에서는 일본인 여성들이 남북의 문을 연다!?

재한일본인회 '라일락'(회장 기쿠치 에미)이 〈평창동계올림픽! 김정은의 결단은?〉이라는 제하의 미니드라마로 '김정은을 사로잡는다'며 대담하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라일락'은 '작은 꽃들이 모여 하나의 꽃을 이루는 것처럼, 각자의 재능을 살려 세상을 바꾸자'는 취지 아래 지난 11월 12일 창립되었다.

창립 기념사업으로 탈북자의 입장에서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를 호소하는 드라마를 제작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 직후 불어온 북한 병사의 탈북과 김연아의 유엔총회 연설 등 순풍에 힘입어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제1회 제작 완료, 이달 16일까지 마지막회를 마무리 지을 기세다.

줄거리를 요약하면 이렇다. 탈북자 지원센터에서 김연아의 유엔 연설을 듣고 난 여성 탈북자들은 북한에 대한 복잡한 심경을 토로한다. 마침내 탈북자들의 간절한 마음을 담은 편지를 김정은에게 전달하여 평창올림픽 참가를 호소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거리로 나와 시민들과 소통하며 남북통일과 평창올림픽에 대한 견해를 널리 청취한다. 이윽고 라일락 향기가 하늘에 닿고... ○○○가 깜짝 출연한다!! 과연 그녀들의 소프트 파워가 핵•미사일을 능가할 것인가!?

【재한일본인회】'나눔의 집' 방문, 봉사활동
【재한일본인회】위안부 문제를 발본색원할 궁극적 해결책은 무엇인가?
【서울숲 프랜드마켓】라일락 향기 가득한 5월, 다시 피우는 한일 우정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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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年11月14日

신사(神社)의 기원과 일본 민족의 혈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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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최고(最古)의 신사는 고노(籠)신사(교토의 단고(丹後)반도에 위치하며 본래 이세(伊勢)라 불림)의 본궁인 '아메노마나이(天の真名井)신사다. 창건자인 아마베(海部) 씨는 중국 진(秦)나라 시대에 진시황의 명에 따라 파견된 서복(徐福, 진시황의 친척)이 데려온 사람들이다.

서복은 몇 년 후 중국으로 돌아갔으나 다시 후일 모노노베(物部) 가문을 이루는 사람들을 데리고 후쿠오카현 가라츠(唐津)로 들어왔다. 아마베 씨나 모노노베 씨(야요이(弥生)인의 후손)는 모두 중국에 있을 당시 유대인이었다. 남유다 왕국의 후손으로서, 바빌론 포로시대 때 끌려갔다가 바빌론이 멸망한 뒤 유대 땅으로 돌아가지 않고 동쪽으로 이주한 유대인들이다.

남유다과 북이스라엘이 분열되기 전 이스라엘의 수도였던 예루살렘에 처음으로 고정식 솔로몬 신전이 창건되었다. 그 전까지는 예언자 모세 시대에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서 탈출할 때 하나님(야훼)의 지시에 따라 설계한 이동식 신전인 성막을 사용했다.

이 둘(이동식·고정식)을 결합한 다음 배전(拝殿) 앞에 시주함을 놓은 것이 오늘날 신사(신전)의 기원이다. 솔로몬 신전에는 시주함이 없었으나, 예수님이 유대에서 선교할 때 예루살렘의 헤롯 신전에는 시주함이 배전 앞에 놓여 있었다. 이 사실은 신약성서에 기술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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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전(拝殿) 앞의 시주함
본전(本殿)과 배전으로 구성되고 배전 앞에 시주함을 놓는 풍습은 고대 유대과 일본이 유일하다. 이것은 바빌론 포로시대를 마치고 유대로 돌아온 유대인 후손들 중 예수님의 가르침(복음)을 믿은 초기 기독교인들이 일본의 오진(応神)천황 때 한반도의 신라를 거쳐 일본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일명 진(秦) 씨라 불린 일족)

진 씨 일족의 조상은 예루살렘을 떠날 때(유대인들이 로마제국과 전쟁하기 전) 이동식 신전인 성막과 십계명 석판을 넣은 법궤(혼미코시(本御輿) 또는 가라비츠(唐柩)), 그리고 예수님이 못박혔던 십자가를 가져 왔다. 그들은 야마토(大和)시대에 우사(宇佐), 나중에 이세(伊勢)를 거쳐 현재 이세신궁 지하 신전에 안치되어 있다.

참고로 아이누인(죠몬(縄文)인의 후손) 이외의 일본인=야마토민족은 모두 이스라엘민족(유태인 포함)의 직계 후손이다. 야마토민족의 야마토는 본래 히브리어(아마베 씨·모노노베 씨)이며, 아람어(진 씨의 언어)이기도 하며, 그 뜻은 '야훼의 백성'이다. 야훼의 백성=고대 이스라엘민족(의 후손).

한반도에서 도래한 사람들은 오진천황(진무천황과 동일 인물)과 함께 온 북이스라엘의 후손들이다(예를 들면 한(漢) 씨 등). 북이스라엘은 남유다보다 먼저 우상숭배에 빠져 배교한 이후로 야훼를 모시는 신전을 짓지 않은 결과 신전에 하나님을 모시는 전통이나 맥도 끊어져 결과적으로 한반도에는 일본의 신사나 고대 이스라엘의 신전과 같은 신전이 없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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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진(応神)천황. 5세기 전후에 실존했던 최초의 천황으로서 일본 국가를 확립함.
【한일교류】한반도 유래 일본 지명
【석씨(昔氏)】일본에서 300년간 군림한 석탈해 후손 소가씨(蘇我氏)
【재일동포 미래창조포럼】유흥수(柳興洙) 주일대사 "한국과 일본은 일란성 쌍둥이"
【한일음악실크로드】3박자 리듬의 아리랑과 후루사토(故郷)
【한일교류】일본의 고대사 컴플렉스와 한국의 근대사 컴플렉스
ラベル:신사 神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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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年09月21日

【고마신사】일왕 부부 고마(고려)신사 참배, 한일 관계 반성•화해 메시지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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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왕 부부가 20일 사이타마현 히다카시(埼玉県日高市)를 찾아 고마(고려)신사를 참배했다. 일왕이 고구려 왕족을 모시고 있는 고마신사를 정식으로 참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고마신사는 고구려가 멸망한 7세기 전후에 일본에 정착한 유민(도래인)들이 고구려의 마지막 왕인 보장왕의 아들 '고잣코(高若光, 일본명:高麗若光)'을 맞이하기 위해 지어졌다.

일본에 망명한 고잣코가 716년 1799명의 도래인을 모아 고려군(高麗郡)을 설치한 히다카시 일대는 19세기 말까지 고려향 즉 '고구려 마을'이라 불렸다. 주변에는 '고려'라는 말이 지명·성·기업명 등으로 남아 있다. 고마역 앞에는 반도에서 유래한 기둥 부적이 세워져 있으며, 조선풍의 향토요리도 있다.

지난해에는 고려군 건군(建郡) 1300년을 맞이하여 기념식이 열리고 하세 히로시(馳浩) 전 문부과학상과 다카마도노 미야히 히사코(高円宮妃久子) 씨가 참석해 주목을 끌었다. 또 재일동포들이 800만엔을 모아 신사 입구에 고구려의 상징 '삼족오'가 새겨진 '고려군 건군 1300주년 기념비'를 세웠다.

일왕 부부가 내년 퇴위를 앞두고 일본 국내에 있는 한반도를 상징하는 고마신사를 방문한 것은 반성과 화해의 메시지를 보내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게다가 자신의 목숨을 걸고 한일 관계를 개선하려는 일왕의 심정은 황태자에게 그대로 계승되고 있다고도 한다.

일왕은 일본 황실과 한반도의 역사에 대해서 2001년 68세 생일 기자회견에서 "간무(桓武) 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놓고 볼 때 한국과의 깊은 인연을 느낀다"고 언급한 적도 있다.

잣코의 후손이자 고마 신사의 궁사(宮司)인 고마 후미야스(高麗文康) 씨(50)는 "저에겐 한반도 사람들이 이 땅에 이룩한 역사를 전해야 할 사명이 있다. 천황 폐하가 방문해 주신 것은 명예로운 일"이라고 말했다.

【고려군 건군 1300년 기념사업】사물놀이 in 고려 2016
【고마1300】'고마군 건군 1300년 기념제' 성대히 개최되다(5월 21일~22일)
【고마 쟛코우회(高麗若光会)】주몽의 심볼 '삼족오(八咫烏)' 새겨진 기념비 건립
【한일 우정 축제 2016】'5urprise' 서강준씨 등 한류스타 고마(高麗)신사 방문
【한일교류】1300년 전의 코리아타운 고마(高麗)군 '국제교류를 통한 지역활성화'
【한일교류】고마(高麗)군 건군(建郡) 1​​300년 기념 '고마왕 약광(若光) 걷기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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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年07月15日

【함께 말해봐요 한국어】2017~18 전국 7개 도시에서 개최! 참가자 대모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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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도쿄와 오사카에서 탄생한 '함께 말해봐요 한국어'는 2005년 '한일 우정의 해'를 계기로 매년 개최되는 도시가 지속적으로 증가해 올해는 전국 7개 도시에서 각 지역의 특색을 살린 대회가 개최된다.

'함께 말해봐요 한국어'에는 중고생, 대학생, 직장인, 주부 등 다양한 연령층이 참여하고 있으며, 초급 학습자는 물론 중급 이상의 학습자도 참여할 수 있어 평소 갈고닦은 한국어 실력을 선보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다.

응모 마감 등 상세한 내용은 ⇒ 여기









【훈민정음】간행 570주년 기념 특별기획전 '훈민정음과 한글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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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드라마 셀렉션 2017 in 센다이】한국드라마 상영 + 토크쇼 무료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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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한국문화원은 한국콘텐츠진흥원과 함께 한국 문화의 매력을 널리 알리기 위해 한국 드라마팬을 위한 기획시리즈 '한국 드라마 셀렉션 2017' 이벤트를 6월 도쿄 이벤트에 이어 센다이에서 개최합니다.

이번 이벤트에서는 시대극 작품인 '신사임당, 색상의 일기'와 로맨스 드라마 '질투의 화신〜사랑의 폭풍이 접근 중!〜'의 2작품을 대형 스크린으로 상영하고, 다양한 한국 관련 이벤트 및 프로그램 등에서 인기 MC로 활약하고 있는 한국 대중문화 저널리스트 후루야 마사유키 씨를 맞이해 한국 드라마의 매력 소개 및 뒷얘기 등 즐거운 토크를 전해드립니다.

본 이벤트의 관람을 희망하시는 분은 꼭 응모해 주십시오. 여러분의 방문을 진심으로 기다겠습니다.

【이벤트 개요】

❏ 이벤트 명칭 : 한국 드라마 셀렉션 in 센다이

❏ 일시 :
Part1 7월 24일 (월) 15 : 00〜 [신사임당, 색상의 일기]
Part2 7월 24일 (월) 18 : 00〜 [질투의 화신〜사랑의 폭풍이 접근 중!〜]
❏ 회장 : 센다이 전재부흥기념관(戦災復興記念館)
(미야기현 센다이시 아오바구 오마치 2-12-1 ☎ 022-263-6931)

❏ 관람 신청 요령
◎ 관람 무료 (사전 신청제)
◎ 모집 인원 : 각 회 270명 (신청은 일인당 한 번에 2명까지)
◎ 한국문화원 홈페이지 응모 코너에서 관람을 희망하시는 이벤트마다 (센다이 이벤트 Part1, Part2) 각각 신청해 주십시오. 이벤트에 응모하기 위해서는 회원등록이 필요합니다.
◎ 신청 마감 : 7월 17일 (월)
◎ 자세한 내용 ⇒ 여기

【한국드라마】'마의(馬医)' 마의에서 왕의 주치의로
【한국드라마】'대박' 사내는 목숨을 걸고 왕은 나라를 걸었다!
【한국드라마 셀렉션 2016】한국드라마 상영 + 토크쇼 무료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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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상영】2017년 하반기 한국영화 기획상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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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 코미디, 애정, 스포츠 등 다양한 테마의 명작 한국영화 특집 상영!


■ 기간 / 시간 : 7〜12월 (총 10작품, 각 작품 2회 상영)

① 주간 : 15:00 (입장 무료, 사전 신청 불요. 당일 선착순 300명)
② 야간 : 19:00 (입장 무료, 사전 신청제. 모집 인원 : 300명)

◇ 관람을 희망하시는 분은 홈페이지의 응모란에서 신청하세요. 응모에는 회원등록이 필요합니다.
◇ 신청 마감 : 각 회 1〜2개월 전부터 관람 모집을 시작하고 상영일로부터 1〜2주 전에 마감합니다.

■ 장소 : 한국문화원 한마당홀(도쿄도 신주쿠구 요츠야 4-4-10 TEL 03-3357-5970)

■ 기획상영회

★ 특집1 : 울고 웃기는 로맨틱 코미디 작품 특집(7월)
★ 특집2 : 다양한 사랑을 그린 감동 작품 특집(8월)
★ 특집3 : 뜨겁고 상쾌한 스포츠 작품 특집(11〜12월)

7월 «울고 웃기는 로맨틱 코미디 작품 특집»
웃음과 눈물의 스토리 전개로 인기를 얻고 있는 로맨틱 코미디영화. 그 매력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4작품을 선정 특집 상영. 로맨틱 코미디영화의 매력을 대형 스크린으로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7월 6일(목) [내 아내의 모든 것]
뜨거운 연애 후에 전격적으로 결혼한 남편 '두현'과 아내 '정인'. 7년 후 아내의 '본성'을 알고 이혼하고픈 충동에 사로잡힌 남편은 전설의 카사노바 '성기'에게 아내를 유혹해달라고 호소한다. 인생 마지막 일이라 결정한 카사노바는 그녀에게 거짓 사랑으로 접근하는데 뜻 밖에 사랑에 빠진다... 열렬한 연애 끝에 결혼하고도 어느새 서로 부딪히게 되는 부부의 모습을 그린 성인 러브 코메디.
7월 12일(수) [스파이]
어느날 북한의 중요 인물이 수수께끼의 테러 조직에 의해 암살한다. 안전보장의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는 그의 딸을 둘러싸고 세계적인 조직들이 쟁탈전을 벌이는데... 그러던 중 아내 몰래 민완 스파이로 활약하는 '철수'는 극비 지령을 받고 즉시 태국 방콕으로 날아간다. 그런데 거기에 없어야 될 아내를 만나고 게다가 그녀 곁에 수수께끼의 꽃미남까지... 국가의 명운을 쥔 스파이와 그를 엉덩이에 깔고 앉은 아내를 그린 액션 코미디.
7월 20일(목) [조선마술사]
천재 마술사로 인기 높은 '화니'는 어느날 밤 낯선 여성을 돕는다. 그녀가 정략 결혼을 위해 청나라에 시집갈 조선의 공주라고 사실도 모른 채 두 사람은 차츰 끌려만 간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맺어서는 안될 운명. '화니'를 노리는 마수가 다가오는 가운데 피할 수 없는 위기가 두 사람을 덮친다. 천재 마술사와 공주의 로맨스를 코믹한 터치로 그린 판타지 러브스토리.
7월 28일(금) [김종욱 찾기]
뮤지컬 무대감독으로 일하는 딸 '지우'는 아버지에게 결혼을 재촉당한다. 급기야 아버지는 '지우'가 결혼하지 않는 이유는 첫사랑을 잊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지우'를 '첫사랑 찾기 주식회사'에 데려간다. 그것은 착해빠진 나머지 여행사를 그만둔 '기준'이 일으킨 회사. '지우'의 첫사랑을 찾아주려는 의욕은 넘치나 아는 것은 이름 뿐.... 눈물의 뮤지컬을 영화화한 작품.

8월 «다양한 사랑을 그린 감동 작품 특집»

가족 사랑, 연애, 인간 사랑 등 다양한 사랑의 모습을 그린 따뜻한 감동 작품을 특집 상영. 영화를 통해 한국인의 애정 표현이나 정서 등을 피부로 느껴보십시오.
8월 3일(목) [우아한 거짓말]
남편을 잃고 슈퍼에서 일하며 생계를 꾸려나가는 언제나 침착하고 당당한 어머니 '현숙'. 타인에 대한 관심도 가족에게 붙임성도 없는 장녀 '만지'. 그런 어머니와 딸에게 항상 부드럽게 대하던 막내 '천지'가 어느날 갑자기 세상을 떠난다. 다정하고 명랑했던 '천지'의 갑작스런 죽음 앞에 '현숙'과 '만지'는 동요한다. 아무 말도 없이 세상을 떠난 동생의 비밀을 추적하던 '만지'는 '천지'가 남긴 메시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8월 24일(목) [반창꼬]
사랑하는 아내를 구하지 못했다는 상실감에서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마음을 닫아버린 소방관 '강일'. 의료사고를 일으킨 죄책감에서 미래의 자신상을 상실한 심장외과 여의사 '미수'. 생명의 구급 현장에 종사하며 밤낮으로 생사의 경계에 직면해온 두 사람은 자신들이 치료할 수 없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힌다. 두 사람의 반발과 공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상처투성이의 마음을 달래며 사랑을 찾아가는데...
8월 31일(목) [감기]
어느날 조류 독감 H5N1의 변종 바이러스가 맹위를 떨치자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기 위해 국가 재난 사태가 발령되고 한 지역이 봉쇄당한다. 주민들은 감염의 공포에 떨며 점점 포악해지고, 정의감 넘치는 구급대원 '지구'는 사랑하는 사람의 딸 '미르'를 위해 혈혈단신 마을에 갖힌 사람들을 구하러 뛰어든다. 그런데 국외 확산을 우려한 미군은 미사일로 마을을 통째로 소멸시킬 작전을 암암리에 추진한다...

11〜12월 «뜨겁고 상쾌한 스포츠 작품 특집»

스포츠를 통한 뜨겁고 상쾌한 인간 드라마를 감동적으로 그린 ​​작품들을 모아 특집 상영합니다. 2018년 2월 한국에서 개막되는 세계적인 스포츠 축제인 평창동계올림픽·장애인올림픽 개최 성공을 기원하며.
11월 14일(화) [맨발의 꿈]
한때 미래를 촉망받던 축구 선수였던 원간은 은퇴 후 벌인 사업에 실패하고 신천지를 찾아 동티모르로 이주한다. 그런데 마지막 승부처로 택한 땅은 이제 막 독립한 나라로 내전의 상처와 빈곤에 시달리고 있었다. 자갈밭에서 맨발로 공을 차는 소년들을 목격한 원간은 그들에게 축구를 가르친다. 그러던 어느날 국제대회가 개최된다는 사실을 알고 대회 출전을 위한 모금운동을 벌이는데....
11월 29일(수) [코리아]
1991년 한국의 스타 '현정화'의 활약으로 탁구붐이 일지만, 강호 중국을 꺽지는 못했다. 그러던 중 일본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를 앞두고 남북통일팀 '코리아'가 결성된다. 그러나 남북 선수들은 라이프 스타일과 연습 방법의 차이로 서로 부딪치기 일수.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사상 최초로 결성된 남북통일팀을 그린 실화.
12월 14일(목) [국가대표]
1996년 한국·전남 무주.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정식 종목 중 하나인 스키 점프 국가대표팀이 급조된다. 방 코치는 다양한 배경을 갖고있는 5명의 선수를 스카우트하는데.... 1998년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스키 점프 대표팀의 숨겨진 분투의 이야기를 그린 스포츠 코미디.

【영화상영】2016 한국영화 기획상영회(7월~12월)【영화상영】2016 한국영화 기획상영회(4월~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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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年06月18日

【재한일본인회】'나눔의 집' 방문, 봉사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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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일본인모임' 회원들이 6월 17일 경기도 광주시에 있는 '나눔의 집'을 방문해 봉사활동을 실시했다. 일본인 여성들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을 나눠드리고 노래와 춤으로 위로했다.

16세 때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李容洙) 할머니가 납치되어 보내진 곳은 대만의 신죽(新竹)라는 마을이었다고 한다.

대만까지는 배로 이송되었는데, 그 배 안에 할머니와 같은 5명의 소녀들이 타고 있었다. 제일 연장자는 18세였다.

마침내 대만에 도착한 할머니가 끌려간 곳은 특공대의 출격 기지였다. 그들은 오키나와 주변에 있던 미국 함대를 폭격하기 위해 끊임 없이 출격했지만, 대부분 미리 잠복해 있던 미군의 요격기에 격추당해 함대까지는 아예 접근도 하지 못했다. 처음부터 성공확률 0에 가까운 작전이었던 것이다.

어느날 한 병사가 "비행기로 특공 작전하러 간다. 두 명이 타고 간다. 나는 21살이다. 며칠 지나면 죽으러 갈 것이다"고 말을 꺼냈다. 할머니가 "나도 데려가요"라고 애원하자, "안돼" 하면서 노래 하나를 가르쳐주었다. 할머니는 지금도 그 노래를 일본어로 곧잘 부른다."

"간코(艦攻=艦上攻撃機) 이륙하네 대만을 떠나네 금빛 은빛으로 파도치는 구름을 헤치고 배웅해주는 이는 아무도 없고 울어주는 사람은 도시코(이용수)뿐이라네.

간코 이륙하네 신죽을 떠나네 금빛 은빛으로 파도치는 구름을 헤치고 배웅해주는 이는 아무도 없고 울어주는 사람은 이 아이(이용수)뿐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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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언하는 이용수 할머니(왼쪽열 중앙)
결국 그 병사와 할머니는 이틀 동안 같이 지내게 됐다. 그리고 병사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세면도구를 챙겨주면서 이렇게 다짐했다. "도시코 숨어 있어라. 내가 죽으면 하나님이 되어 너를 엄마 곁으로 데려다 줄게. 엄마 가슴에 안겨줄테니 도시코 죽지마. 그러니 꼭 숨어 있어라."

이 말을 남기고 떠난 그를 할머니는 눈물로 배웅했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잠시 후, 할머니가 있던 기지가 공습을 당해 숙소에 폭탄이 떨어졌다. 할머니는 지하 방공호에 몸을 피했기에 무사했지만, 그녀를 숨겨준 여성은 사망했다.

어느날 중국인이라는 남자가 찾아와 "전쟁은 끝났다. 더이상 이런 곳에 머물면 안돼"라며 할머니들을 수용소로 데려갔다. 그후 할머니들은 모두 해방되어 다시 고국 땅을 밟게 되었다고 한다.

이용수 할머니는 "위안부 피해자가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역사적 진상 규명과 진정성 있는 사죄"라며 "도쿄 한복판에 소녀상을 세워 자신들의 조상이 우리에게 저지른 만행을 후세 사람들이 보고 기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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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앞열 중앙)와 함께
그런데 일본인의 "마음으로부터의 반성과 진정성 있는 사과를 기대하며" 세워진 소녀상이 오히려 재일동포들에게 또 다른 고통을 안겨주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어, 금후 문재인 정부가 풀어야 할 난제의 하나로 남게 되었다. 재일본대한민국민단은 "한일관계의 악화에 따른 가장 큰 피해자는 우리 재일동포"라며 2015년 대국민호소문을 다음과 같이 전면 광고한 바 있다.

1.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같이 일제의 식민지 통치의 희생자이면서 일본에서 정착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 재일동포들이지만, 외교 교섭에 있어서 일방적인 승리는 있을 수 없는 만큼 지난 24년간 양국간 현안이었던 이 문제를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최선의 합의를 이룩한 본국 정부의 고충을 이해하고 이를 지지한다.

2. 금번 합의가 피해자들의 입장에서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과거 어느 정부도 하지 못했던 일본 정부의 책임 인정 등 결과를 이끌어낸 만큼, 합의에 대한 내부 분열로 영원히 미제(未濟)로 남기기보다는 금후 일본의 약속이행 여부를 지켜보면서 대승적 견지에서 합의안 수용을 본국 국민들에게 호소한다.

3. 일본 정부는 양국 간 합의사항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이행하여 고령의 피해자들이 하루라도 빨리 명예와 존엄을 회복하고 과거의 상처를 조금이라도 치유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할 것과 아울러 이 비참한 역사를 후세대까지 잊지 않도록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한다.

4. 지난 수년간 어려웠던 한일관계로 인해 재일동포의 생계가 큰 타격을 받고 생활의 터전인 동경 신오쿠보 거리를 비롯한 일본 각지에서 혐한(嫌韓) 시위가 넘쳐났던 사실을 상기하면서 금번 합의로 더 이상 양국관계가 경색되지 않고 미래지향적 관계로 발전해 나가기를 기대한다.

5. 우리 60만 재일동포들은 나라 잃은 설움을 뼈에 사무치게 겪어온 당사자들로서 양국 간 가교로서 역할을 충실히 이해하며 모국의 발전을 통한 진정한 극일(克日)의 날이 오기를 열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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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신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와 함께
【재한일본인회】위안부 문제를 발본색원할 궁극적 해결책은 무엇인가?
【서울숲 프랜드마켓】라일락 향기 가득한 5월, 다시 피우는 한일 우정의 꽃
【참 평화의 길 Ⅲ】역지사지(易地思之)
【남북분단과 통일】70년 포로 및 귀환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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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年06月15日

【한일교류】규슈 사가현(佐賀県) 나베시마(鍋島) 가문과 조선의 깊은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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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語
일본 규슈의 사가(佐賀) 하면 '나베시마 나오시게'(鍋島直茂, 1536〜1618)를 빼놓고 생각할 수 없다. 나베시마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가토 기요마사의 부장으로 조선을 침략했던 무장이다.

나오시게는 함경도까지 밀고올라가 조선의 왕자들을 붙잡는 등 그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 했으나 의병장 정문부(鄭文孚)와 싸워 크게 패했다. 그리고 당시 왜군을 격퇴시킨 공을 기려 세워졌던 북관대첩비(北關大捷碑)는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군이 전리품으로 가져다가 천황에게 바친 다음 야스쿠니 신사경내에 세워졌는데, 추후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총리의 합의에 따라 2006년 3월 1일 개성공단을 거쳐 100년만에 북한으로 반환되기도 했다.

한편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포로수는 10만〜15만 명에 달했으며 그들 중엔 기능인들이 다수 포함돼 있었다. 그들은 조선에서 천민 취급을 받았으나 일본에서는 사무라이와 같은 귀족 대접을 받으며 능력을 한껏 발휘해 각 분야에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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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나오시게가 데려온 도공 이삼평(李參平)이 개발한 명품도자기 '아리타야키(有田燒)'는 유럽 왕실과 귀족들의 인기가 높아 황금처럼 비싸게 거래되었다고 한다.

나오시게는 사가성을 구축해 히젠국(肥前國)의 실권을 장악하고 사가번(나베시마번)의 기틀을 다졌다. 또한 도자기로 벌어들인 자금으로 제철소를 만들고 서양의 신무기를 구입하여, 도쿠가와 막부를 무너뜨리고 메이지유신을 성공시켰다. 또한 1882년 사가번 출신 오쿠마 시게노부(大隈重信)는 와세다 대학을 설립하여 대담하게 교육개혁을 추진하며 인재를 양성했다.

한편 아리타야키와 더불어 쌍벽을 이루었던 나베시마번의 명검 히젠도(肥前刀)는 무사들이 허리에 한번 차보는 것을 더없는 자랑으로 여겼던 것으로, 낭인 '도 가쓰아키(藤勝顕)'가 명성황후를 베었던 바로 그 검이며, 현재 후쿠오카현의 구시다(櫛田) 신사에 보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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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구시다 신사의 '구시'는 가락국 김수로왕이 강림한 구지봉(亀旨峰)의 '구지'에서 유래한다. 신사 경내에 있는 구시모리(櫛'森'=우두'머리') 신사나 구시마루(櫛'丸'=산'마루') 신사, 그리고 신사 주변을 '구시산(櫛山)'이라고 부르는 등 모두 구지봉을 지칭하고 있어, 이 일대가 제철기술을 가진 도래인들이 많이 살았던 신성한 땅이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이처럼 사가현의 나베시마 가문은 조선과는 끈질긴 인연을 갖고 있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 이은(李垠) 공의 비가 된 이방자(李方子) 여사도 바로 사가번주 나베시마 나오히로(鍋島直大)의 손녀이다. 이방자 여사는 지극히 어려운 생활 여건 속에서도 한평생 사회봉사에 온 정열을 쏟으며 '한국 장애인들의 어머니'로 존경받았다.

아래 그림은 이방자 여사의 초충도(草蟲圖)이다. 지구를 상징하는 땅 위에 활짝 만개한 개나리꽃은 일본을 상징하고, 이제 꽃망울이 맺힌 국화꽃은 한국을 상징한다. 60, 70년대 경제부흥을 이룩한 일본과 이제 막 피어나는 한국이 함께 어울려 잘 살아보자는 염원이 담겨져 있어, 평생 불우한 한국인을 위해 희생했던 이방자 여사의 사상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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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年06月11日

【한일교류】니카이 특사단, '한국 고아의 어머니' 윤학자 여사의 제2의 고향 '목포 공생원' 방문 기념식수

日本語
일본 아베 총리 특사로 문재인 대통령을 예방하기 위해 방한 중인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일본 자민당 간사장 일행이 11일 목포 공생원을 방문해 기념식수를 했다.

그림 같이 아름다운 서해 바다의 작은 섬들을 바라다보는 유달산 중턱에 자리잡은 공생원은 1928년 '거지대장'으로 불렸던 기독교 전도사 윤치호가 부모 잃은 7명의 아이들과 같이 생활을 한 것이 그 계기였다. 조선총독부 관리의 외동딸로 태어나 아버지를 따라 목포로 온 일본 고치(高知)현 출신의 다우치 치즈코(田内千鶴子, 한국명 윤학자)는 윤치호의 열정에 반해 1938년 결혼하게 된다.

그후 윤 여사는 일본의 패전으로 일본인 모두가 서둘러 떠나가는 와중에도 마지막까지 목포를 지키며, 한국전쟁 중 남편이 행방불명된 후에도 열과 성을 다해 3000여 명의 고아들을 보살펴 한국과 일본 정부로부터 훈장을 수여받았다.

1968년 10월 31일 생일날 윤 여사가 조용히 숨을 거두자 목포시민장으로 치러진 장례식에는 무려 3만 여명의 조문객이 찾아와 애도했다. '한국 고아의 어머니'라 불리며 민족을 뛰어넘어 인류애를 실천한 윤 여사의 스토리는 한일 합작 다큐멘터리영화 '사랑의 묵시록'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으며, 1999년 일본문화해제금지 허가 제1호로 전국 상영되어 한류붐의 원조가 되었다.

이와 같은 윤 여사의 선행이 일본 방송에서 소개되자 당시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는 "이제부터 한일 문화교류의 출발점이 됐다"며 매화의 명소로 알려진 자신의 고향 군마현(群馬縣)의 매화나무 20여 그루를 공생원에 보내기로 했다.

오부치 총리라 하면 한국에선 '주변국을 잘 배려했던 총리'란 이미지가 강하다. 그는 김대중 대통령과의 공동선언에서 "일본이 과거 한때 식민지 지배로 인해 한국민에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주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이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오늘날 공생원은 한국 사회복지 역사의 뿌리가 되었으며, 지금까지 4천 여명의 아이들을 돌봐 어엿한 사회의 일원으로 길러냈다. 11일 신안비치호텔에서 열린 환영회에서는 공생재활원과 공생원 아이들이 '고향의 봄' 등을 한국어와 일본어로 합창하며 360여 명의 특사단 일행을 국경 없는 동심의 세계로 이끌었다.

이어 현재 민간 차원에서 주친되고 있는 '세계고아의날' 제정을 위한 홍보 영상이 상영되고, 공생복지재단 윤기 회장, 박지원 의원, 니카이 간사장,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일본대사, 우기종 정무부지사, 박홍률 목포시장, 오자키 마사나오 고치현 지사, 니시모리 시오조 전남명예도민 등이 한일 우호를 새롭게 다짐하는 메시지를 전달해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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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회장
윤기 회장은 故가나야마 마사히데(金山政英) 주한일본대사는 “죽어서도 한일관계 발전을 지켜보고 싶다”는 유언을 남기고 그 뜻대로 한국 땅에 묻혔다며, 살아 생전 한일 우호의 상징인 이곳 목포로 일본대사관을 옮겨야 한다고까지 말했던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오늘의 영광은 지금까지 목포 시민들이 지켜준 덕분임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동안 한일 우호증진를 위해 앞장선 이낙연 전 전남지사가 윤 여사의 고향인 고치현을 방문해 "전남과 고치는 한 가족이다"며 뜨거운 인간애를 어필한 것처럼, "가족끼리 힘을 합친다면 어떤 일도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더불어 어머니 윤 여사의 평생 소원은 청소년들에게 직업을 갖게 하는 것이었다며, 유능한 젊은이들을 발굴해 세계로 나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주문했다.

박지원 의원은 자신의 고향 진도 왜덕산에 얽힌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왜덕산(倭德山)은 정유재란 때 명량해전에서 조선 수군에 몰살당한 일본군들의 시신이 묻혀 있는 곳으로, 마을 사람들이 일본군의 주검을 수습해 묻어줌으로써 왜군에게 덕을 쌓았다는 뜻에서 왜덕산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박 의원은 40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일본군의 후손들이 조상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왜덕산을 찾아 참배하는 발길이 몇 해째 계속 이어지고 있다면서, "일본인 모두가 한일 평화의 상징으로 떠오르고 있는 진도와 목포 공생원을 꼭 방문해 달라"고 당부했다.

니카이 간사장은 지난 2015년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이해 양국 간 민간 교류의 에피소드를 모은 소책자 발간을 외무성에 건의하여, 일본 전국 47개 지역과 20개 정령지정도시에서 모집된 수많은 에피소드 중 10개가 선정됐다면서, 윤학자 여사 스토리도 그 중 하나이며, 앞으로도 그와 같은 민간 차원의 교류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특사단 일행은 공생원에 들러 견학 후 기념식수를 마치고 평화의 상징인 300여개의 풍선을 날리며 한일 우호를 하늘 앞에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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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우호를 다짐하는 풍선날리기
【인물】'대한민국을 빛낸 위대한 인물 대상' 사회복지 역사를 세운 '마음의 가족' 윤기 이사장
【서적】'그때 그 일본인들' 한일 유전자를 뒤섞이게 한 인물들
【서적】사회복지 역사를 세운 실천현장의 인물들, '마음의 가족' 윤기 이사장 편
【고향의 집】다문화 공생의 모델 '고향의 집 도쿄' 상량식
【인물】'높은 뜻' 품고 국가의 장벽을 뛰어넘은 존 만지로, 사카모토 료마, 윤학자(다우치 지즈코)
【세계 고아의 날】UN '세계 고아의 날' 제정 서명운동에 동참하자
【재일동포】'세계 고아의 날' 제정 서명운동 발족식, '韓 고아의 어머니' 윤학자 여사의 뜻을 기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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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교류】니카이 특사단 방한 "한국과 일본은 대국! 협력의 시대를 함께 열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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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카이 도시히로 자민당 간사장(앞열 우측에서 네번째)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 방문
日本語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특사 자격으로 한국을 방문한 일본 자민당의 니카이 도시히로 간사장이 10일 목포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을 방문했다. 니카이 씨는 전 전남지사 이낙연 총리, 박지원 국민의당 전 대표와 오랜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형제 같은 한국 친구'라며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을 비롯해 박지원 국회의원, 강동석 전 건설교통부 장관, 허남식 전 부산시장 등 한국 친구들과의 인연을 소개할 정도로 자민당을 대표하는 '친한파' 의원이기도 하다.

2003년 방한한 니카이 씨는 청와대에서 박지원 대통령 비서실장을 만나 재일 외국인의 참정권에 대해 "실현을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고 말했을 정도다. 이때 니카이 씨는 한국의 국립묘지 현충원에서 참배한 일을 소개하며 야스쿠니신사를 대체할 새로운 추도 시설에 대해서 "필요성을 재차 인식했다. 실현을 위해 노력하겠다"라고 언급했다.

2009년 일본이 전격적으로 여수세계박람회 참가를 표명했을 때도 그 중심인물은 바로 니카이 씨였다. 당시 독도 영유권 문제로 한일 양국이 외교적으로 대립하고 있었다. 경제산업상이었던 니카이 씨는 국회의원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 여수세계박람회 참가를 호소했다고 한다.

"한국이 제작한 여수세계박람회의 홍보지에 독도가 한국의 영토로 기재되어 있다는 이유로 의원들의 불만이 많은 것 같다. 지도를 보면 독도가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조그만 섬이 아닌가. 요란하게 호들갑떨지 말고 이웃나라 행사가 성공할 수 있도록 힘을 모으자"고 설득했다.

한편,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사과한 '고노 담화'와 식민지 지배와 침략을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의 재검토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자민당 내에서 일기 시작해 한일관계의 새로운 불씨가 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대다수의 의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담화를 재검토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정치인들이 분쟁의 불씨를 찾아 불을 붙이는 짓을 해서는 안된다"고 단언한다.

이처럼 이웃나라와의 관계를 중시하는 니카이 씨를 '친한·친중파'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이웃나라와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정치인이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까. 30년 이상 정계에 몸담았지만, 남 흉내를 내거나 누구의 지시를 받고 정치를 한 적은 없다"고 충고한다.

또 한국의 중국 중시정책이 반한 감정을 조장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한국의 외교정책에 대해서 일본이 방해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일본, 한국, 중국의 협력과 우호는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고 훈계한다.

니카이 씨가 한국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1982년이었다. 당시 와카야마(和歌山)의 현의원이었던 니카이 씨는 고교 필드하키팀을 이끌고 친선 경기를 위해 대구와 서울을 방문했다. "학생들은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몸짓이나 손짓으로 의사소통하면며 빨리 친해졌다. 학생들은 그때 경험으로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한국이 좋다"고 얘기한다."

그때부터 민간교류의 중요성을 실감한 니카이 씨는 약 5500개 여행업체가 가맹돼 있는 전국여행업협회(ANTA)의 회장을 20년간 맡으면서 "문화 수준이 높은 한국과 일본은 대국이다. 대립과 증오를 극복하고 협력의 시대를 함께 열어 가자"고 강조해 왔다.

니카이 씨는 한일 우호의 상징으로서 김충선(金忠善) 장군을 꼽는다. 김충선 장군의 본명은 사야카(沙也可)이며, 임진왜란 때 조선으로 건너와 "싸울 명분이 없다"며 조선에 투항해 귀화한 일본인이다. 니카이 씨는 2010년 일본 민간단체가 와카야마현에 세운 김충선 장군의 기념비 건립에도 조력한 바 있으며 기념비에 한일 우호를 기리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그는 "한국의 정치인을 만나면 자주 김충선 장군에 대해서 애기한다. 한일 양국이 공감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 이해의 폭을 넓혀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니카이 씨는 11일 '목포공생원'을 찾아 기념 식수를 한 다음 저녁에는 한국방문위원회가 주최하는 '한일우호의 밤' 행사에 참석한다. 12〜13일 양일간 문재인 대통령을 예방해 아베 총리의 친서를 전달할 예정이다.
【한일교류】정세균 국회의장 방일, 고향의 집 도쿄 방문 및 재일동포와 간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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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AO】'일본보아오회' 발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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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年06月09日

【한일교류】정세균 국회의장 방일, 고향의 집 도쿄 방문 및 재일동포와 간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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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자 복지시설 '고향의 집 도쿄' 방문
'소녀상 - 헤이트스피치 유발' 우려

오시마 다다모리(大島理森) 중의원 의장의 요청으로 일본을 공식 방문한 정세균 국회의장이 6월 7일 재일동포 고령자 복지시설인 '고향의 집 도쿄'를 방문해 관계자들은 격려했다.

정 의장은 "고령사회를 먼저 맞이한 일본의 발전된 노인복지제도를 잘 배워 한국 어르신들을 더 잘 모실 수 있는 지혜를 찾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고향의 집' 은 사회복지법인 '마음의 가족' 윤기 이사장이 재일동포 노인들이 차별받지 않고 일본인과 공생할 수 있도록 다문화 공생 모델로 설립한 노인복지시설이다. '고향의 집 도쿄'는 일본내 다섯번째 시설로 작년 10월에 개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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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호텔 뉴오타니 도쿄에서 열린 '재일동포 초청 간담회'에서 정 의장은 "지난 5년 동안 재일동포나 일본에서 사업을 하는 기업인 입장으로서는 참으로 혹한기와도 같은 기간을 보내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을 꺼냈다.

그리고 "내년 '김대중-오부치선언' 20주년을 맞아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가 돼야겠다. 그러기 위해서 금년부터 준비해야 하며, 그런 관계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참석자들은 위안부 문제로 양국 관계가 얼어붙은 데 대한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일한교류한마당 권용대 사무국장은 "외교 공관 앞에 소녀상을 세워놓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품위를 지켜야 하는 것 아닌가. 법률적으로 위반 아닌가. 다른 데 세우면 될 것이 아닌가. 위안부 합의가 이뤄진 뒤에 왜 치사하게 소녀상을 부산 일본공관 앞에 세우느냐"며 목소리를 높혔다.

이어 박유식 민단 청년회장은 "위안부 합의 성사 문제는 어떻게 돼 가고 있나? 앞으로 다시 한번 헤이트스피치(재일동포 혐오발언)를 유발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 의장은 "대한민국 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양국 간 외교 현안으로 만들고 싶었다기보다는, 국민들의 요구를 외면할 수 없어 정부도 같이 한 측면이 있다"며 "지금은 민권이 관권보다 더 강한 시대가 됐다"고 대답했다.

이어 "이게 옳으냐 그르냐는 칼로 무 자르듯 딱 판단할 수 없다. 사람 생각이 다 다르고, 경우에 따라서는 피해를 주는 게 아니면 행동의 자유가 보장될 수 있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리고 "과거를 무시하고 모른 척 할 수는 없다. 따질 건 따지고 문제를 제기할 건 하되, 다른 현안에 대해서는 한일이 협력해야 할 사안들이 많다"면서 "요즘 말로 '투트랙 접근'으로 가야 하는 것이 아니겠나"라고 밝혔다.

'투트랙 접근'이란 대일 외교에 있어서 '역사 인식'과 '경제·안보'를 각각 별개 사안으로 취급하는 접근방식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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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한일본인모임】위안부 문제를 발본색원할 궁극적 해결책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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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年06月07日

【재한일본인회】위안부 문제를 발본색원할 궁극적 해결책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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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뉴스 김금산 대표 초청강연(6/6 파주성전)
日本語
1. 일본군과 위안부

1918년 일본군의 시베리아 출병 때 7개 사단 가운데 1개 사단이 성병에 걸려 전멸했다. 이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1931년 9월 만주사변 당시 군인 전용 공창가(公娼街)가 생긴 후로 일본군이 가는 곳곳마다 위안소가 설치됐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위안부의 수요가 증가해 위안부 모집이 조선으로까지 확대되기 시작했다. 초기의 위안부 모집은 광고 등을 통한 공개 모집이었으며, 이때까지는 조선 처녀에게 강제성을 띠지 않았다.

그후 신문이나 언론을 통한 광고 뿐만 아니라 납치, 인신매매, 직업 알선 등 다양한 방법으로 위안부를 모집했으며, 그 중 일부는 여성 근로자를 선발한다고 허위 광고를 내기도 했다. (미국 의회조사국(CRS) 보고서)

소개업자 뿐만 아니라 동네 반장과 경찰 등 행정조직을 이용한 동원도 늘어났다. 위안부 모집업자들은 먼저 마을 이장과 순사들을 매수해 협조를 구했다. 마을 이장이 투전판에서 돈을 많이 잃어 빚이 많은 사람을 알선하면, 모집업자가 돈을 주고 딸을 팔아달라고 권유하고 그 옆에서 일본 순사가 압력을 넣는 식이었다. (유곽의 역사, 2012)

1941년 태평양전쟁 발발로 동남아시아와 남태평양으로까지 일본군의 전선이 확대되자, 마침내 일본군은 위안부 차출에 강제력을 발동하기 시작했다. 관동군(關東軍)이 24만 명에서 75만 명으로 증원되고 조선 처녀 1만 명이 관동군 쪽으로 끌려가기도 했다. (불충신민, 2004) 대만 총독부와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지에서도 위안부가 강제로 차출되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독립운동가가 위안부 모집에 앞장서기도 했다. 수카르노는 일본군의 점령이 독립을 앞당기는 길이라고 여기고 일본군에 대한 협력과 일본군을 상대로 하는 인도네시아인 위안부 모집에도 앞장섰다. (천 가지 얼굴의 이슬람 그리고 나의 이슬람, 2009)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안부에 대한 수요를 다 채울 수 없게 되자, 이번에는 여자 정신대 근무령을 만들어 만 12세~40세의 독신녀를 정신대의 대상자로 규정했다. 이렇게 차출된 정신대에서 위안부가 충당되기도 했다. 본래 '정신대'는 군수공장에서 일하는 여성 근로자이며 '위안부'와는 그 성격이 다르다. (불충신민, 2004)

일본군이 정복한 동남아시아에서 위안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1942년 일본인 주선인들이 한국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많은 돈, 가족의 부채를 없앨 기회, 쉬운 일' 등을 조건으로, 가난한 집안의 소녀들을 상대로 일본 등 공장 근로자로 알선한다고 속여 선금을 주고 데려갔다. (한국민족운동사론, 2008)

경성부 방산초등학교에서는 도덕 점수가 뛰어난 12살 여학생을 선발해 도쿄를 구경시켜 준다고 속여 6명을 정신대로 보냈고, 소학교 정신대 모집을 학교별로 배정하여 100명을 차출해 서울역에서 보냈다고 한다. 어린 여학생들에게 정신대에 가면 배고픈 일도 없고, 1주일에 한 번씩 영화를 볼 수 있고, 학교도 다닐 수도 있으며, 군수공장 같은 데서 일하면 돈도 벌 수 있다고 속여 데려갔다.(한누리미디어, 2004)

2. 위안부 문제와 한일관계

1993년 8월 일본 고노 관방장관은 "위안부의 모집에 대해서는 군의 요청을 받은 업자가 주로 이를 담당했으나 그 경우도 감언, 강압에 의거하는 등 본인들의 의사에 반하여 모집된 사례들도 많았으며, 관헌이 직접 이에 가담한 일도 있었다"고 공식 발표했다.

1995년 일본 시민단체들이 국민기금을 모아 위안부 피해 여성들에게 속죄금을 지급하는 아시아여성기금을 발족했으나, 한국은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이 분명치 않다며 수령을 거부했다.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등 위안부 관련 민간단체들이 일본 정부에게 법적 배상을 요구하면서 한국 외교부와 마찰을 빚기 시작했다. 위안부 피해자인 양금모씨는 한일기본조약 배상금으로 성장한 포스코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으나 패소했다.

한편 위안부 피해자인 심미자(2008년 사망) 씨 등은 "우리는 돈을 바라지 않는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명예다. 우리를 이용하여 국제적인 모금 활동을 하는 것은 우리를 두 번 모욕주는 행위"라고 비판하고, 2004년 기독교계 정대협과 불교계(조계종) ‘나눔의 집’을 상대로 '모금행위 및 시위동원 금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그리고 "우리 정부와 시민단체 등이 툭하면 위안부 할머니들을 내세워 일본을 비판하고 일본에게 배상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나, 정작 정부와 시민단체 등이 위안부 할머니에게 해준 일이 별로 없다. 오히려 일본인들이 위안부 할머니들의 건강과 소송문제, 또 장례식 등까지 세세한 부분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과 보살핌을 펴왔다"고 밝혔다.

2005년 한국 정부는 위안부 문제는 1965년 한일협정으로 해결되지 않았다고 입장을 밝히고, 2011년 헌재는 정부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서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고 결정함으로써 한일외교의 쟁점으로 부상했다.

2015년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이해, 위안부 문제를 "최종적·불가역적으로 해결"한다고 합의했으나,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우리 국민 대다수가 정서적으로 수용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재교섭의 의향을 피력함으로써 또다시 미궁에 빠지게 되었다.

3. 자각과 반성ㅡ한일 양국의 공동책임

2001년 한국의 한 조사에 따르면 일본인 모집업자에 의해 동원된 위안부는 16%인데 비해, 한국인 모집업자에 의해 동원된 여성은 29.4%였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일본인이 직접 동원한 경우에도 반드시 조선인들의 협조가 있었다고 한다. (민족과 페미니즘, 2003)

당시 위안부 모집에 앞장섰던 상당수의 지식인들은 기독교인이었으며, 많은 기독교 교단들은 일제가 강요하는 신사참배를 지지하고 위안부 모집과 전쟁물자 조달에 협조했다. (동아시아와 근대의 폭력1, 2001)

1938년 6월 이화여대의 김활란, 동아일보의 김성수, 조선일보의 방응모 등이 결성한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은 그 회원수가 무려 3만여 명에 달했다. 장면 전 총리가 간사를 맡고, 이광수, 최남선, 서정주, 모윤숙, 김동환 등의 작가들도 가세했다. 그들은 1939년 국민징용령이 공포되자 조선인을 일본의 탄광과 공장으로 보내는데 앞장섰으며, 자원입대와 일본군 위안부 모집에도 열을 올렸다.

1938년 9월 9일 조선 예수교장로회 총회에서 신사참배가 가결되고, 1943년 한국 기독교가 일본 기독교에 편입됨으로써 신앙의 주체성과 정절을 모두 잃고 말았다. 기독교 교단들은 위안부 모집과 전쟁물자 조달에 협조했으며(기독교 신학, 김균진), 청년들은 전쟁터로, 소녀들은 위안부로, 장년들은 탄광과 공장으로 끌려갔다.

이처럼 국가 공권력이 없어진 상황에서 가장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순진한 일반 백성들 뿐이었다. 그들에게는 교육의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으며,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한 행동은 감히 꿈도 꾸지 못했다. 그러므로 당시 국가를 이끌었던 지도층들에게 모든 책임을 물어야 한다.

따라서 위안부의 진상을 규명하고 일본 정부에게 그 책임을 물어야 마땅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들에게 동조한 조선인들의 책임도 똑같이 물어야 한다. 최근 양심선언하는 일본인들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비해, 강제동원과 인신매매를 주도하여 여성들의 인권을 짓밟은 한국인들은 한 명도 과거의 잘못을 고백하거나 처벌받지도 않았다. 

먼저 우리 스스로 지난날의 문제를 자각하고 근본적으로 반성할 때 비로소 위안부 문제에 대한 새로운 해결책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4. 원수에서 형제자매로ㅡ여성자매결연

통일교회 문선명 총재는 30만명의 위안부가 있었다고 언급하고, 1994년부터 1998년까지 세계평화여성연합(총재 한학자) 주최로 국제적인 여성자매결연을 추진한 바 있다. '한일 여성 32만 자매결연'을 비롯해, 일본-한국, 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 한국-대만, 한국-태국 등의 여성자매결연이 맺어졌다.

여성자매결연은 그 취지문에서 밝힌 바와 같이, 여성들이 '남성들에 의해 저질러진' 국가간의 증오와 갈등을 극복하고, '원수가 아닌 형제자매로서' 과거를 청산하여 '새로운 역사를 창조한다'는 취지였다. 그런 뜻에서 '6일째 창조된 인간과 6천년 인류역사를 되찾기 위해' 6년에 걸쳐 국제 자매결연이 추진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문선명 총재는 한국 기독교를 대신해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함으로써 위안부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한 것이다. 일본의 과오를 청산하기 위해 한국땅을 찾아온 일본 대표 16만명 여성지도자들은 한국 여성지도자 16만명과 함께 '남북통일과 아시아•세계평화를 위해 목숨을 다 바쳐 사생결단할 것'을 '하늘 앞에 서약'했다. 16세 소녀 유관순의 화신체로 부활하는 순간이었다.

결론적으로 여성자매결연은 소극적•과거지향적이 아닌 적극적•미래지향적인 대안이며, 일시적이 아닌 항구적인 해법으로서, 위안부 문제의 근본을 파헤쳐 발본색원한 궁극적인 해결책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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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만명 일본 여성지도자 교육(위) 한일여성자매결연(아래)
【참 평화의 길 Ⅲ】역지사지(易地思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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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年06月06日

【명성황후】참회와 화해의 상징으로 세워진 후쿠오카 셋신원(節信院)의 자안(子安)관음상

PicsArt_06-04-05.13.51.jpg6월 3일, 셋신원을 방문한 대한황실문화원 이원 총재와 홍릉봉향회 방일단 일행.
日本語
후쿠오카 시내의 작은 사찰 셋신원(節信院)의 정문 옆에 온화한 미소를 띤 석상이 하나 서 있다. 놀랍게도 이 석상은 일제에 의해 잔인하게 죽은 명성황후를 애도하는 관음보살상이다.

이 석상은 명성황후 암살 13년 후인 1908년에 세워진 것으로, 제작자는 다름 아닌 황후에게 직접 칼을 휘두른 '도 가츠아키(藤勝顕)로 알려져 있다. 당시 그는 일본 우익 민족주의 단체인 겐요샤(玄洋社) 소속 멤버였다.

겐요샤는 일본 극우단체의 시조인 도야마 미쓰루(頭山満)가 메이지유신으로 몰락한 무사계급 출신들을 모아 후쿠오카에서 조직한 것으로, 전후 맥아더 군정에 의해 해산됐으나 이후로도 일본 총리들이 그들의 조언을 구할 정도로 배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명성황후 시해 사건에 일본 정부가 직접 개입한 정황을 은폐하기 위해 사조직인 겐요샤 출신의 미우라 고로 조선 공사를 앞세워 그를 통해 낭인들이 동원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설에 따르면 도 가츠아키가 휘두른 두 번째 칼이 왕비를 절명시킨 것이라고 하나, 아직 그 사실을 단정할만한 증거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도 가츠아키가 명성황후 암살에 직접 관여한 것 만큼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사건이 발생한지 13년이 지난 뒤, 도 가츠아키는 범행에 사용된 자신의 일본도를 할머니가 평소 다니던 셋신원에 보관하려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암살에 사용되어 더러워진 칼을 불교에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금칙 조항 때문에 구시다(櫛田)신사로 옮겨지게 되었다.

그리고 "황후가 숨질 때의 얼굴이 자꾸 떠올라 마음이 편치 않다. 꼭 공양하고 싶다"며 도 가츠아키가 명성황후를 위해 관음보살상의 제작을 의뢰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한편으로는 황후를 살해했다는 얘기를 듣고 너무 놀란 나머지 장모가 공양을 제안했다는 설이 있다. "무사들과 함께 조선 왕궁에 쳐들어가 아무 죄도 없는 사람들을 베고 왕비를 죽인 것은 인정상 도저히 견딜수 없는 일"이라고 노했다고 한다.

그런데 당초 거액을 들여 제작된 청동관음상은 태평양전쟁 말기에 군수물자로 징발돼 녹아 없어지는 비운을 겪게 된다. 게다가 45년 미군의 후쿠오카 대공습으로 잿더미가 되는 바람에 셋신원마져 사라질 위기에 봉착하기도 했다. 

이 관음상이 다시 빛을 보게된 것은 대공습 다음날 어느 독지가 부부가 관음상이 있던 자리에 홀로 버려져 있는 여아를 발견한 것이 그 계기였다. 부부는 너무 안쓰러워 여아를 데려다가 친딸처럼 애지중지 키웠는데, 운명의 장난이런가 그마저 19살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오호라,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을 그 무엇에 비할 수 있으랴! 깊은 슬픔에 빠져 있던 부부는 딸의 명복을 빌어주기 위해 불상을 세우기로 했다. 셋신원에 불상을 기부하려다 딸을 처음 발견했던 그곳에 본래 관음상이 있었다는 사연을 듣고, 관음상의 형상과 딸을 형상화한 아기상을 석상으로 재현해 봉헌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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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 셋신원(節信院) 자안(子安)관음상
이처럼 한 손엔 여자 아이를 안고 또 한 손엔 연꽂을 들고 자비로운 미소를 띤 채 앉아 있는 자태의 '자안(子安)관음상'은 명성황후의 삶 만큼이나 애절한 곡절을 간직하고 있다. 

오늘날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일본에 알려지게된 계기는 지난 88년 일본의 저명한 전기작가인 쓰노다 후사코(角田房子) 씨가 '민비 암살'이라는 책을 펴내 큰 반향을 일으킨데서 비롯된다.

쓰노다 씨는 "한국에서는 누구라도 알고 있는 사건을 가해자측인 일본에서는 그런 사건이 있었는지조차 모르고 있다는 사실에 적지않게 놀랐다"며 한일친선, 상호이해 등의 단어가 공허하게 느껴졌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또한 "오래전 사건이지만 한국판 '추신구라(忠臣蔵, 47인 사무라이의 복수극)'이며, 한국의 국민감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에서, 나는 이것을 '오늘의 문제'로 생각하게 됐다"며, 극단적인 역사인식의 차이야말로 한일 양국을 가깝고도 먼 나라로 만드는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가토 마사히로(加藤昌弘) 셋신원 주지는 "민비는 당시 국제정세 속에서 억울하게 희생됐다"고 안타까워 하며, 명성황후를 상징화한 이 관음보살상은 이 지역에서 다시는 같은 죄를 반복할 수 없다는 참회와 화해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우연인지 필연인지, 명성황후 시해 사건의 배후였던 겐요샤의 도야마 미쓰루는 그가 평소 존경했던 가토 시쇼(加藤司書, 주지의 조부)가 잠들어 있는 셋신원에 자주 들러 그의 묘비 앞 석단 위에서 무릎을 꿇고 참배했다고 한다.

DSC_1089.JPG"절신원에 방문하여 기도합시다"라며 셋신원 가토 씨에게 우정을 전달한 황사손 이원 총재(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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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年06月04日

【불이지탑(不二之塔)】구마모토 정법사 아카보시 스님, 강제노동 희생자 공양탑 건립 '근원은 하나, 둘이 아니다'

DSC_1072.JPG6월 3일, 불이지탑·중국인 순난자 위령탑 앞. 정법사 아카보시 요시오 주지(뒷열 오른쪽에서 4번째), 대한황실문화원 이원 총재(뒷열 중앙) 및 홍릉봉향회 방일단 일행과 함께.
日本語
구마모토현 아라오시(熊本県荒尾市)에 있는 정법사(正法寺) 경내에는 2개의 비석이 세워져 있는데, '중국인 순난자 위령비'와 '불이지탑(不二之塔)'이라고 쓰여 있는 '조선인 순난자 위령비'이다. 1972년 이 절의 주지였던 아카보시 요시히로(赤星善弘) 명예주지가 미이케(三池)탄광으로 강제연행돼 사망한 조선인·중국인 노동자를 추모하기 위해 세웠다.

구마모토현에는 '달이 떳다 떳다 미이케탄광 위에 떳다'라는 '탄광 민요'로 유명한 '미츠이미이케(三井三池)탄광'이 있었다. 태평양전쟁 개전 후 일본의 탄광이 '내일 10톤보다 오늘 1톤'이라는 표어를 내걸고 증산을 강요하자 미이케탄광이 그 중추 역할을 했다. 농민, 학생, 미·영·호주의 연합군 포로는 물론 한반도와 대만에서까지 거의 강제적으로 노동력을 끌어모았다.

이 탄광에 강제연행된 조선인은 5000여명. 후쿠오카현 오무타시(福岡県大牟田市)와 구마모토현 아라오시의 19개소에 수용소가 있었으며, 작업 중 사고나 혹사 등으로 사망한 조선인·중국인 사망자수가 약 700명에 이른다. 이 사망률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그들은 단지 소모품에 불과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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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중국인이 강제노동으로 시달인 규슈지역 탄광 위치
아카보시 스님은 13세에 불가에 입문하여 고야산(高野山)에서 수행하면서 공해·홍법대사(空海·弘法大師)의 가르침을 전수받았다. "대사께서는 중국으로 건너가 밀교를 전했다. 만일 지금 살아계신다면, 틀림없이 조선인·중국인 희생자 공양을 하실 것이다. 이것이 내게 주어진 사명이다"라고 스스로 깨달았다.

공양탑 건립 비용은 탁발로 모으기로 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공양하는 마음을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취지문를 들고 스님들과 함께 걸어다니며 사람들에게 역사의 진실을 호소했다. 그런데 역사의 진실을 호소한다는 것은 곧 미츠이광산의 과거를 들춰내는 것이기도 했다. 탁발 나갔다가 돌에 맞기도 하고 공갈 협박을 받기도 했다. 우익들에게 "너는 공산당이냐" "미츠이광산의 지난 상처를 들추지 말라"고 공격당했다.

이렇게 3년 남짓 걸려 35만엔을 모았다. 1972년 4월 중국인 순난자 공양탑 제막식이 열렸고, 그로부터 5개월 뒤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栄) 총리가 방중, 중·일 공동성명이 발표되고 국교가 정상화되자, 이번에는 "아카보시 씨는 선견지명이 있다"며 칭찬을 들었다. 도쿄 우에노(上野)동물원에 중국 팬더가 들어오는 등 일본에서 갑자기 중국붐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한편, 조선인 희생자탑의 비명은 좀처럼 결정되지 않았다. 조총련은 '조선인 순난자비', 민단은 '한국인 순난자비'. 게다가 한 자리에 모여 의논하지 않았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양측 사무실을 15번씩 방문했지만 여전히 평행선이었다. 어느쪽도 타협하려 들지 않았다.

불교에 '불이(不二)'라는 말이 있는데, '근원은 하나이며 둘이 아니다'라는 뜻이다. 결국 '불이지탑'이라 정하고 양측의 동의를 얻어냈다. 비의 명칭을 둘러싼 민단과 조총련의 갈등 때문에 "결국은 평화적으로 통일될 것이라고 믿고" 그렇게 명명한 것이다. 남북이 하루속히 하나가 되길 바라는 간절한 염원이 담겨져 있다.

동년 10월 '불이지탑' 제막식 때는 조총련과 민단이 모두 참석했다. 그런데 이듬해 위령제 때부터 민단이 동석하지 않았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직후, "동서독도 통일하지 않는가. 여러분도 같이 공양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강제연행 때는 두 나라가 아니었잖습니까"라고 설득해 겨우 남·북·중 합동위령제가 실시됐다. 그 전통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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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남북조선인 순난자 합동위령제(2017.4.12)
아카보시 스님은 강제연행된 조선인·중국인의 공양 뿐만 아니라 매년 10월 서울을 방문해 일제시대의 정치범 수용소였던 서대문형무소에서 법회를 연다. 또한 난징과 서안 등 중국 각지와 미얀마, 필리핀,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이스라엘의 통곡의 벽 등을 방문하여 종교와 국경을 초월해 전쟁 희생자들을 위로해 왔다.

스님은 "일본은 전쟁의 부(負)의 역사를 가급적 건드리지 않고 일본의 근대화를 성취한 위대한 역사만을 전하려 든다. 하지만 가해자가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참회하는 마음이다. 그리고 나서 상대가 용서할 때 비로소 '진정한 우호친선'이 성립된다. 그런 참회의 마음을 담아 공양탑을 세웠다"고 한다.

그리고 '미츠이미이케탄광'의 세계유산 등록을 둘러싼 갈등에 대해서, "세계유산 등록이란 '세계유산 보호협약'에 따라 문화유산이나 자연유산을 '인류를 위한 세계유산'으로 보호하고 후세에 전하기 위한 것이다. '일본을 위해서'가 아니라 '전인류'의 재산으로 등록하는 것인 만큼, 더욱 역사의 다면성을 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일교류】다큐멘터리 영화 '꽃처럼, 있는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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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年06月03日

【한일교류】홍릉봉향회·명성황후를 생각하는 모임, 구마모토 한일심포지엄 개최

PicsArt_06-03-04.51.40.jpg日本語
6월 2일 일본 규슈 구마모토현 교육회관에서 '한일의 과거를 직시하고 새로운 우호 협력을'이라는 슬로건 아래, 한일심포지엄이 개최되었다. 이 심포지엄은 '명성황후를 생각하는 모임'이 주최하고, 재일본대한민국민단 구마모토지부·평화헌법 살리기 구마모토현민의 모임·구마모토현퇴직교직원등 연락협의회가 후원했다.

청일전쟁 종결 후, 1895년 10월 8일 일본 공사 미우라 고로의 지휘 아래 일본군 수비대와 '일본 낭인'이라 일컬는 민간인이 경복궁에 난입해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전대미문의 사건(을미사변)이 발생했다. 당시 일본 정부는 이 사건이 서양에 알려지는 것이 두려워 그 범인들을 일단 히로시마 감옥에 수감시켜 놓고, 그후 재판에서 미우라 고로 등 48명을 '증거불충분'으로 방면했다.

이렇게 현대의 한국과 일본의 비극은 을미사변으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가장 큰 이유도 '명성황후 시해죄'였다. 그런데 명성황후 시해 사건의 하수인이었던 48명 가운데 21명이 구마모토 출신 청년들이었다. 임진왜란 때 선봉장이었던 가토 기요마사의 본거지이기도 하다.

'명성황후를 생각하는 모임'은 2004년 구마모토의 교사 30여명을 중심으로 결성돼, 그 이듬해 소속 회원들이 명성황후 시해범의 후손들과 함께 명성황후릉 앞에서 사죄한 이후 매년 명성황후기신제를 위해 한국을 방문하여 참배하고 있다.
PicsArt_06-03-07.21.28-2.jpg명성황후를 생각하는 모임 후루사와 치요카츠 회장(왼쪽), 고종황제·명성황후의 제사를 총괄하는 홍릉봉향회 이동재 회장(오른쪽)
심포지엄을 주최한 후루사와 치요카츠 회장은 "2차대전 패전 후 교육계에 종사하면서 사회 과목을 담당했지만, 과거 일본이 저지른 일들에 대해서 그동안 잘 모르고 있었다는 점을 깊이 반성하고 있다. 명성황후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지 못했고 은퇴하고 나서 처음 알았다" 면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이 심포지엄을 기획했다"고 취지를 밝혔다.

이어 대한제국 고종황제의 증손자인 이원(李源) 대한황실문화원 총재는 "올해는 고종황제가 대한제국을 선포한지 120주년이 되는 해이다. 1807년 10월 12일 고종은 500여년에 걸친 중국과의 '사대관계'를 끊고, 원구단(圜丘壇, 제천의식이 거행된 사적, 대한민국사적 제157호)에 올라 천제를 지내고 황제에 등극하며 자주독립국임을 선명했다. 올해 10월에는 일본에 의해 제거된 원구단을 서울시청 광장에 세우고 원구대제를 봉행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고종황제·명성황후의 제사를 총괄하는 홍릉봉향회(洪陵奉香会)의 이동재 회장은 "2015년 도쿄의 퇴직교원총본부 회원들이 명성황후릉 앞에서 뒤늦게나마 시해사건에 대해서 일본인을 대표하여 사과했다"며 "이 모임은 구마모토의 활동을 계기로 집회를 열게 되었으며, 앞으로 한층 친밀한 모임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금번 대한제국의 적통이며 고종황제의 증손자인 이원(李源) 황사손(皇嗣孫)과 함께 17명이 방일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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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 총재(중앙), 후쿠오카공항
'일본의 근대화 과정과 한일관계'라는 주제로 발표한 오사카대학의 이카이 다카아키 명예교수는 "1894년 한반도에서 동학농민운동이라는 대농민투쟁이 전개되었다. 이를 두려워한 조선 정부가 큰 실수를 저질렀는데, 청나라 군대를 불러들여 농민군을 진압하려고 한 것이다. 이것이 일본군의 개입을 촉발한 결과 청일전쟁이 일어났다. 이 전쟁은 일본군의 왕궁 점령으로부터 시작돼 전쟁이 끝난 1895년 10월 왕궁에 침입한 일본인들에 의한 민비 시해사건으로 그 막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본 국민 전체가 일본 정부의 침략지향적인 대조선 정책을 지지한 것은 아니다. "다야마 마사나카(田山正中)라는 인물은 정한론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일본의 국내 문제를 이웃나라에 전가하여 해결하려는 수작이며, 조선을 정복해 우리 것으로 만들어 러시아를 막아보겠다는 속셈이다. 조선에서 내란을 일으켜 일본 국민들의 사기를 진작시키려는 일본의 태도는 열강들의 일본에 대한 태도와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조선의 인심은 '돈독한 신(信)을 좋아하고 의(義)를 견고히 지키며 그 기질의 아름다움이 실로 아시아의 으뜸'이라고 했는데, 이런 나라를 짓밟으려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역설했다.

이와 같은 양심·지성운동은 구마모토에서도 활발히 일어났다. "구마모토 실학파라는 개혁파를 만든 요코이 쇼난은 퇴계 이황의 학문적 계보를 이어받은 인물로서 "의로운 나라와는 교역하되 그렇지 않은 나라의 요구는 단연코 거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미야자키 다미조·야조·도텐 삼형제는 후쿠자와 유키치 등이 탈아론을 주장하며 조선·만주 침략을 자극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일생 동안 아시아 연대론을 주장하며 활동했다."

마지막으로 이카이 명예교수는 "구마모토에서 그간 13차례나 '명성태황후 사적 방문'이 실시되고 금년에도 추진되고 있다는 사실은, 이것이 바로 양심·지성운동의 계보 가운데 있기 때문"이라고 결론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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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포지엄 회장
패널토론회에서 홍릉봉향회 이광용 부회장은 "비통한 역사를 알고 돌아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보이지 않았던 긍정적인 면을 재조명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고종실록 36권에 기록된 명성황후의 인품에 관한 내용을 소개했다.

"효성이 지극하고 인정이 많다. 자녀교육에 대해 열성적이며, 책을 중심으로 토론하면서 판단력을 기른다. 현모양처이며 주변을 잘 살펴 분위기 파악을 잘한다. 국모로서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이 지극하여, 천재지변 등으로 백성들이 어려움을 겪을 때 잘 돌봐주고 배려하여, 칭송과 신뢰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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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릉봉향회 방일단은 3일 구마모토민단, 일본퇴직교직원연락협의회, 후쿠오카민단, 총영사관, 절신원(節信院), 정법사(正法寺) 등을 방문하여 우정을 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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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대학 이카이 다카아키 명예교수(왼쪽), 아시아뉴스 김금산 대표(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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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年05月22日

【서울숲 프랜드마켓】라일락 향기 가득한 5월, 다시 피우는 한일 우정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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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우정을 위해 출전한 일본 라일락팀
5월 20일〜21일 이틀간 성수동 서울숲 언더스탠드에비뉴에서 프랜드마켓이 열렸다. 이 거리는 하루 평균 4000〜5000명 이상의 유동인구가 확보된 공간으로서 프리마켓 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신개념 공익문화복합공간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성수동은 2011년 예술가들이 입주하면서부터 변화되기 시작해 차츰 젊은 창업자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어 지금은 ‘소셜벤처 밸리’가 형성됐다. 이번 제1회 프랜드마켓을 공동주최한 주식회사 라피스는 서울디자인재단에서 공모한 2017년 공예프리마켓 지원단체로 선정된 스타트업 기업이다.

특히 이번 프랜드마켓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한일 우정'을 위해 한국으로 시집온 일본 엄마들로 구성된 라일락(Lilac)팀이 출품한 것이다. 라일락 향기 가득한 5월, 한일 양국의 우정이 다시 꽃피우길 바라며 일본 특유의 소박하고 섬세한 미의식으로 빚어낸 핸드메이드 쿠키, 디저트, 공예품 등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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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도 쓸 수 있는 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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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모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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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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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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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팥 푸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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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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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年04月16日

【영화】한일합작 ‘킴오케‘ 영화제작의 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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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킴오케' 제작 발표회, 2016.5.12, 동대문 베니키아 호텔
日本語
영화 ‘킴오케‘는 1991년 동시통역사가 되기 위해 캐나다로 유학을 떠나 추방당할 위기등 온갖 역경을 딛고 수많은 유학생들과 이민자, 난민 등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준 김옥란의 감동스토리입니다.

특히 최초로 도움의 손길을 뻗쳐온 일본인 미즈에 씨를 비롯한 수많은 일본인 유학생들이 현지에서 보다 빨리 적응하여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헌신적으로 돌봐준 그녀를 그들은 ‘킴상‘이라 부르며 따랐습니다.

한일 합작 ‘킴오케’ 영화제작은 1965년 한일수교 이후 그동안 수많은 우여곡절 가운데 왜곡된 한일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시나리오를 각색하여 양국의 문화를 다양한 각도에서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상호이해의 증진을 꾀하고자 합니다.

또한 본 프로젝트는 경제회복 희망운동의 일환으로 문화공연 및 전시회, 강연회, 독후감 공모 및 발표회 등 한일 문화예술교류사업을 통해 정신적인 이유나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소중한 꿈을 잃어버린 양국의 서민들에게 '할 수 있다' '하면된다' '하자' '잘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줄 것입니다.

나아가 시대적 희망운동 차원에서 '드림빌더운동'을 전개함으로써 글로벌시대에 어울리는 차세대 한일 리더를 양성함과 동시에 세계인들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주는 최고작을 선사하여 한일영화계에 전무후무한 흥행기록을 세울 것입니다.

한일합작 ‘킴오케’ 영화의 흥행 후 꿈과 희망의 아이콘 ‘킴오케’ 브랜드의 상품화 및 각종 문화컨텐츠 사업(에니메이션•드라마•각종 케릭터 제작 등)을 대대적으로 전개하여 경제적 부가가치를 극대화할 것입니다.

~자서전 '킴오케' 중에서~

"저는 '희망을 알리는 종'이 되고 싶습니다. 제 부끄러운 이야기를 통해 작은 조각의 꿈과 희망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많은 이들이 자신이 안고 있는 갖가지 약점을 대면서 “난, 안 돼”라고 외치는 것을 숱하게 보아 왔습니다. 나이가 많아서, 돈이 없어서, 너무 바빠서 등등 그 이유는 참으로 다양합니다.

저는 꿈과 희망은 남녀노소, 동서남북을 조금도 편애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한계가 많은 사람이 가꾸는 꿈이 보다 가치 있는 성취일 것입니다. 희망을 향한 도전은 커녕 그나마 자신이 지니고 있는 잠재적인 가치마저 깍아내리는, 그래서 자신에게 스스로 족쇄를 채우는 사람들이 분명 있습니다.

에드먼턴에서 영어 공부를 하고 있을 때, 내 앞을 걸어가던 어떤 72살의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중풍이 들어 한쪽이 불편한 몸이었지만 그 할머니는 불어를 배우러 학교에 가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제 인생은 그 어떤 사람보다도 더 초라했습니다. 영주권을 얻기 위해 저는 캐나다에서 가정부 생활을 2년 반동안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움찔거려질 정도로 혹독한 노동의 시간들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사람을 짐승처럼 부리는 주인을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남의 짐 청소를 하면서 “나는 지금 이런 일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 이러려고 여기에 오지 않았어. 좀더 값진 일을 하고 있어야만 해”라는 생각들을 계속했습니다. 그러자 일은 더욱 힘이 들었습니다. 물론 희망의 빛줄기도 따라 줄어들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하찮은 일조차 제대로 못하는 자신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습니다. 어떤 일이든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면 그 일보다 나은 일을 시작할 수 없다는 점을 배워나갔습니다. 꿈은 먼 미래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일어서서 손을 뻗으면 곧바로 잡히는 바로 그런 거리에서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음 속에 희망의 씨앗이 심어져 있는 한 물과 거름을 주기만 하면 언제든 싹이 튼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짧지 않은 인생에 있어서 10년이 늦고 20년이 늦은 것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닙니다. 부귀와 권력이 영원하지 않듯 현실 역시 영원히 이어지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김옥란 프로필~

-킴오케드림빌더코리아(주) 대표
-킴오케드림빌더캐나다(주) 대표
-캐나다 밴쿠버 본사 '김옥란유학원' 21개 지사 설립
-벤쿠버 멀티컬츄럴 행사 주최(최대 규모 31개국 참가)
-매년 맥시칸 독립기념일 행사 주최
-밴쿠버 최대 교육박람회 주최
-아프리칸 비영리단체 설립
-'흑인 역사의 달' 이벤트 개최
-필리핀, 아프리카에 헌 옷 보내기
-YWCA 명예 여성상 Nominee

킴오케드림빌더운동 일본 총회장 김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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ラベル:킴오케 김옥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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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年03月03日

【구국합동기도대회/후쿠다 유키야스】한일신시대는 사상분야의 교류를 통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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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빌딩, 3월 3일
日本語
제98주년 3.1절을 기념하여 '구국합동기도대회'가 역사적인 장소인 태화빌딩에서 개최됨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저는 NPO법인 아시아공동체추진협회와 언론법연구실, 그리고 서도쿄일한친선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후쿠다 유키야스라고 합니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일우호친선을 위해 선두에 서서 이끌어온 (사)일한친선협회 회원들을 대신해 이렇게 초대해 주신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오늘날 한국인들 중에는 같은 동족인 북한에 대해서 친밀감을 느끼고 계신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와 더불어 일본에 대해서도 친근감을 갖고 계신 분들이 의외로 많이 계십니다. 예를들면 가라오케를 즐기는 동아리가 40여군데나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일부 언론들의 반일감정을 부추기는 보도와 우리들이 일반 대중들 속으로 느끼는 경험은 많은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한 반일감정의 배후에는 강렬한 반일조직이 움직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며, 위안부 문제를 정치쟁점화하려는 정대협이 바로 그 대표적인 조직입니다.

또한 북한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조직도 있습니다. 부산 일본대사관 앞에 소녀상을 세우려 했던 '겨레하나'라는 단체입니다. 그들은 정관에 친북 강령을 명시하고 일본 오키나와현 좌익들과 교류하고 있습니다.

대학가에도 '겨레하나' 조직이 있습니다. 어떤 사태가 발생하면 그 즉시 '친북•반일운동'을 전개할 단체입니다. 이런 단체들은 일본의 좌익세력과 반정부 세력, 그리고 아사히신문과 연계돼 있습니다. 친북•반일•반미 성향이 그들의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한일조약 파기, 한일 분단, 한미 분단, 최종적으로는 한반도의 공산화에 있으며, 결국에 한반도는 중국대륙에 먹히게 될 것입니다. 요컨대 일본발 반일운동으로 시작해 한국내에 좌파정권을 세우려는 것이 최종 목적입니다.

그러므로 한일 양국의 정부를 위시한 민간 단체들은 이와 같은 현실을 직시하고 정책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습니다. 새로운 한일시대 구축을 위해 과감하게 행동해야 할 시점입니다.

나아가서는 한일 양국이 공동으로 '아시아 승공자유해방운동'을 전개해야 할 때입니다. 양국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국수주의가 아닌 유신론에 입각한 대대적인 승공자유운동을 전개해야 합니다.

지금이야말로 한국인의 백절불굴의 정신과 일본의 축적된 기술과 자금이 하나돼 아시아의 해방과 평화 구축을 위해 긴밀히 협조해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을 능가하는 한일해저터널과 아시아 하이웨이를 건설하여 세계로 웅비해야 합니다.

본인은 지난 70년, 80년대 일본내 좌익세력이 가장 격렬했던 시절, 약 20여년 동안 앞장서서 자유반공운동을 전개한바 있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 일본내 좌익운동은 거의 소멸됐으며, 최근 그 역사를 한권의 책으로 정리했습니다.

앞으로 한일 양국이 공동으로 승공전선을 구축하는데 있어서, 행동지침을 제시하는 좋은 성공사례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지금까지 한일협정 이후 경제분야 교류가 주축을 이루었다고 한다면, 금후 전개될 새로운 한일시대는 사상분야의 교류를 통해 열릴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은 그 첫발은 내딛는 매우 뜻깊은 날이며, 한국의 독립을 넘어 아시아의 독립을 한일 공동으로 선언하는 역사적인 날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계신 여러분들이 바로 그 역사의 주인공들이며, 오늘 이 자리에 동참하게 된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하면서 축사에 가름하고자 합니다.
2017년 3월 3일 오후 2시, 태화빌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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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年01月26日

【후쿠다 유키야스 인터뷰】 한일 친선 위해 일한친선협회 한국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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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語
"정치적으로 혼란한 가운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 국민들을 위로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앞으로 한일 양국의 민간 단체들이 앞장서 소원했던 양국 관계를 친숙한 관계로 바꿔야 할 때입니다.

지난 20일 한국 방문을 계기로 새한일보를 방문한 후쿠다 유키야스(72) 서도쿄일한친선협회 이사장은"어려울 때일수록 이웃 국가인 한국과 일본이 서로 도움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도쿄일한친선협회'란 어떤 단체인가?

지난 76년 10월, 한국과 일본의 친선을 도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순수 민간단체이다. 모임 취지는 지난 70년대 초 우연히 한국을 방문했다가 한국 국민들이 남북으로 대치한 가운데 북한의 위협 속에서 정신적인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절감했다. 한국의 안보가 바로 이웃나라인 일본의 안보라는데 공감, 한국 국민들을 돕자는 취지에서 결성됐다. 당시 일본의 여당인 자민당은 공산당의 실체를 잘 몰라 경계심이 없었던 때라 순수한 민간인들이 나서서 모임을 만들었다.

모임은 어떤 사람들로 구성됐나?

처음에는 회원수 300명(일본인 220명, 재일동포 80명)으로 구성됐다. 일본측 회원은 정치계, 경제계의 리더들이 중심이 됐고, 재일동포측 회원은 민단 간부들이 주축을 이뤘다. 한일의원연맹 이병희 회장과 최영철 부회장이 주축이 돼 모임을 이끌었다.

그동안 양국의 교류활동 중 기억나는 것은?

지난 79년 4월 5일 식목일을 기해 일본측에서 벗꽃나무 1000그루를 한국에 기증했다. 지금 매년 봄 여의도 한강변에 피는 벗꽃은 그때 보낸 나무들이 자란 것입니다. 그리고 지난 82년부터 서울 성동구에 있는 한일친선협회(회원 90명)와 자매결연을 맺고 매년 30여명이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양국의 현안 문제에 대해 대화를 나누며 문화교류를 갖는 등 우정을 돈독히 하고 있다. 87년부터는 매년 일본 근해에서 잡은 참치를 한국에 가져와 불우 시설에 살고 있는 어려운 노인들에게 대접하고 있다. 최근에는 한일친선을 모체로 아시아공뎡체(한중일)를 만드는 일을 추진하고 있다.

모임을 운영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면?

처음 회원수가 300명이던 것이 민단 관계자 상당수가 빠져 지금은 50명이 줄어든 250명의 회원들만 참가하고 있다. 재일동포 간부들이 2, 3, 4세대로 내려가면서 애국이나 민족의식이 점차 희박해져 회원수가 줄어든 것이 너무 아쉽다. 최근에는 위안부나 독도 문제 등 양국 국민들 간에 대립된 견해가 많아짐에 따라 일본측 회원들 중 일부가 반한 감정을 갖는 경우도 있어 재교육을 하고 있다.

양국 간 상호친선을 위한 향후 계획은?

과거 한일 간 역사를 포함해 서로를 진실로 이해하는 사람들을 모아 한일 간의 진정한 교류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기존 조직이나 모임과는 달리 어려운 역사문제의 진위를 가리고 이해시키려 한다. 그리고 양국 국민들 간 보다 친숙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매년 한국 마라톤 선수를 초청해 서도쿄에서 개최했던 마라톤대회의 규모를 확대해 더 많은 선수를 초청해 우의를 다질 것이다. 그밖에 일본 국민들에게 한국의 안보가 곧 일본의 안보라는 공동체 인식을 확대시키는데 주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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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年01月22日

【한일공동기자회견】 오늘의 시대적 사명은 우리민족의 소원인 남북통일이다

1485038781463.jpeg왼쪽부터 김창환 코리아투데이 국제국장, 아시아뉴스 김금산 대표, 서도쿄일한친선협회후쿠다 유키야스 이사장, 일본복음교단 성도교회 시미즈 시로 목사、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개혁) 이종태 총회장 / 1월 21일 천도교중앙대교당(서울 종로구)日本語
코리아투데이 국제국장 김창환
한국의 촛불 시위와 그 어떤 데모도 즉시 중지하고 냉정하고 양심적으로 행동하기 바란다. 데모는 선동이다. 주위에 피해를 준다. 한국인은 먼저 자기 반성을 해야한다.

국정 안정과 국민대화합으로 남북통일을 준비하자. 한국이 혼란하면 일본도 혼란! 한국이 위험하면 일본도 위험! 한국과 일본은 같은 선조 같은 동족 형제이며 부부와도 같다. 한일은 영원한 동반자, 영원한 친구이며 가족이다. 한류붐이 일본을 시작으로 전세계로 확대돼 한국을 선전했다. 다시 한번 한류를 부활시키기 위해서 성숙된 한국인, 한국으로 거듭나자.

참된 민주주의를 위해서도 우선 각자의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데모에 의해 국가와 대통령이 좌우되면 안된다. 배후에 어떤 조직이나 사상적인 것이 있는지 잘 모르지만 즉시 중지하고 안정을 찾아야 한다. 촛불은 예로부터 원래 혼자서 정성을 드릴 때 사용한다. 진보나 보수 그룹들은 데모에 의해 혼란을 초래해선 안된다. 한국인들은 각자 일에 전념하고 아이들과 학생들은 공부해야 한다.

국가의 위신은 어떤가? 외국에서 본 한국과 한국인은 대단히 이상하다. 국제적인 망신이며 창피한 일이다. 왜 한국인은 상대방을 비난하고 끌어내리려고만 하는가? 모두가 자신이 제일이고 욕심만 많은가? 서로 양보하고 용서하고 위해서 살자.

일본도 매일 객관성이 결여된 홍미위주로 보도하고 있어 일본에 살고 있는 재일동포들 한국인들은 부끄러워서 도망가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굉장히 걱정하고 있다. 일본인들도 대부분 염려하고 있다. 그리고 일본을 언제까지 욕하고 비난할 것인가? 왜 중국한테는 한마디도 못하는가?

세계에서 한국에 가는 관광객도 줄어들 것이며 경제순환도 큰 걱정이다. 한국이 위험하면 일본도 위혐하고 아시아에도 영향이 있다. 한국과 일본이 형제 국가로서 더욱 친밀하고 협럭관계를 유지해 양국이 공영 공생 공화로 아시아와 세계를 리드해 나가야 한다. 남북평화 공존과 평화통일을 위해서, 2018년 평창올림픽과 2020년 도쿄올림픽 성공을 위해서도 국정안정과 국민대화합이 급선무다. 지금의 상황은 혼란과 분열이다. 과거 역사상 국론 분열로 나라가 망한 일로 뼈아픈 한맺힌 아픔을 수없이 경험했다. 한국민은 지혜를 가지고 단결 화합해 나가야 한다.

오늘의 시대적 사명은 우리민족의 소원인 남북통일이다. 2015년1월 5일 조선일보에 게재된 월악산의 퉁일예언(탄허ː 불교계 고승) 대로 박근혜 대통령은 지금의 난국을 수습하고 단결 화합 남북통일의 길을 열어나가야 한다.

이번 박대통령뿐만 아니라 국회의원 정치인들은 국민 앞에 사과하고 올바른 심판에 성숙한 국가, 부국 강병으로 조국통일 실현을 위해 새롭게 출발하기를 기대한다. 말 한마디가 천냥 빚을 갚고 행동 하나가 천년의 국운을 좌우할 수 있다. 우리는 단군의 자손으로 배달민족이며 백의민족이다. 경천애인•홍익인간 사상으로 하나가 돼 화백과 화합, 교류와 평화와 행복의 나라로 전진해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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