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年03月19日

【방문기】재한일본인회 '라일락', 대구 위안부역사관 '희움'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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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7일 재한일본인회 '라일락' 회원 여섯 명이 대구에 있는 위안부역사관 '희움'을 찾았다. 꽤 오래된 건물들이 많이 남아 있는 동네라서 그런지 회원들은 잠시 길을 헤매다가 빙 돌아 겨우 박물관에 도착한 다음, 한 시간 가량 관내를 견학한 뒤 마침내 이인순 관장을 만날 수 있었다.

에미 : 수고하십니다. 박물관 운영이 그리 쉽지는 않을텐데 어떤가요?

관장 : 대구는 매우 보수적인 지역입니다. 이런 곳에서 위안부역사관을 열고 지금까지 운영해왔다는 것은 정말 '기적 같은 일'입니다. 공사 자금을 만들기 위해 1년 이상 거리에서 모금하기도 했습니다.

에미 : 지금까지 일본의 역대 총리들이 공식적으로 몇 번이나 사과를 표명한 적이 있는데 그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관장 : 확실히 말해 일본 총리들의 사과는 한국의 입을 막기 위한 형식적인 사과에 불과했지 내용은 없었다고 봅니다. 독일에서는 나치나 히틀러를 찬양하는 사람을 공적인 위치에 세우지도 않을 뿐더러, 만일 공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이 그런 발언을 하면 처벌합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총리는 사과하는데 다른 정치인들이 공적인 자리에서 태연히 그에 반하는 말들을 서슴없이 하기 때문에 국가가 진정으로 사과한 것이 아니라고 보는 겁니다.

에미 : 그럼,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관장 : 먼저 범죄에 대한 책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일본 정부가 위안소를 만들고 운영했다는 사실과 위안부 피해자들 본인의 의지가 아니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또 피해자의 숫자 등 아시아 각국의 피해 상황을 정확히 파악해 발표해 줘야 합니다.

그리고 더 이상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줘야 합니다. 위안부에 대한 내용을 역사 교과서에 기술하고 국민 교육을 실시하고 위령비와 기념관 등을 세워 추모제도 지내야 합니다.

에미 : 그렇게 벽이 높으면 일본 정부와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고 할머니들이 살아계시는 동안 해결되기는 어렵지 않을까요?

관장 : 일본인이나 한국인들으로부터 "왜 일본의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느냐"고 무수히 비판을 받아왔지만, 이것이 바로 할머니들이 바라는 '사과'이기 때문에 양보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에미 : 피해자들과 개인적으로 만날 수 있습니까?

관장 : 경북 지역 피해자들은 공공시설이 아니라 가족과 함께 살고 있고, 신분이 노출되는 것을 꺼리기 때문에 개인 면회는 어렵다고 봅니다. 또 국가가 아니라 개인이 피해자에게 사과하는 것도 별로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연화보살 :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지만 할머니들과 만나 마음을 위로해 드리고 싶네요.

관장 : 지금은 저희들이 도와드릴 수 없지만 개인 면회라면 '나눔의 집'에 가셔서 알아보시는 게 좋을듯 합니다.

연화보살 : 오늘 만나 뵙게 되어 기쁩니다. 관장님은 심기가 강한 분이고 가슴 속에 쌓여 있던 것들을 확실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서로 기탄없이 하고 싶은 말들을 다 했으니 여기까지 온 보람이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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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을 마치고〜
에미 : 이 분들이 일본에 요구하는 내용이 그렇게 많을 줄 몰랐습니다. 하지만 할머니들도 같은 생각인지 궁금합니다. 정말 할머니들을 대변하고 있는지, 아니면 할머니들이 그 분들을 대변하고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연화보살 : 할머니들은 그렇게 어렵게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좋았다고 그렇게 느끼고 싶을 것입니다. 이 동네는 온통 한으로 맺혀 있는 동네입니다. 할머니들도 마치 공산주의자처럼 분노를 에너지로 삼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김금산 : 예전에 대구가 독립운동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뼛속 깊이 반일감정을 품고 있는 후손들이 아직도 영적인 독립운동에 정열을 불 태우고 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지금 시대정신이 남북통일이기 때문에, 언제까지나 한에 사로잡혀 멈춰 있으면,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고 맙니다. 반일감정만으로는 한이 쌓일 뿐 결코 해방되지 못 합니다.

일본은 과거지향적인 사과에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남북통일을 위해 거국적으로 협조해야만 합니다. 그리하여 과거의 실패를 만회해야 합니다. 그러면 독립운동가들의 소원도 이뤄지고 그들도 해방받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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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한일본인회 '라일락'】위안부 문제를 생각하는 아시아연대회의를 마치고
【위안부 사죄 담화】'말 한마디로 천냥 빚 갚는' 보기드문 일본 정치인
【한일 역사를 극복하고 우호를 추진하는 모임】위안부 문제에 대하여 진심으로 사죄합니다
【재한일본인회】'나눔의 집' 방문, 봉사활동
【재한일본인회】위안부 문제를 발본색원할 궁극적 해결책은 무엇인가?
【서울숲 프랜드마켓】라일락 향기 가득한 5월, 다시 피우는 한일 우정의 꽃
【참 평화의 길 Ⅲ】역지사지(易地思之)
【남북분단과 통일】70년 포로 및 귀환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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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年03月18日

【공생복지재단】10•15뉴욕세계대회 발대식, 'UN 세계고아의 날' 제정운동 본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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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생복지재단, '10•15뉴욕세계대회' 발족식
日本語
목포공생원 설립 90주년을 맞아 '고아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UN 세계고아의 날' 제정 청원운동이 본격화된다.

UN세계고아의날제정추진위원회(위원장 정종득)는 3월15일 컨퍼런스 하우스(서울 중구)에서 발대식을 갖고, 오는 10월 15일 뉴욕에서 세계대회를 개최해 UN차원에서 세계 고아의 날을 제정하도록 추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 날 행사에는 윤기 공생복지재단 회장을 비롯하여 손봉호 국제기아대책기구 이사장, 홍정길 밀알복지재단 이사장, 신승남 공생복지재단 이사장, 최서면 국제한국연구원 이사장, 김영진 전 농림부장관, 정종득 전 목포시장 등 약 90여명의 저명 인사가 함께했다.

윤기 회장은 인사말에서 1968년 'UN 세계고아의 날'을 꼭 만들어 달라는 목포 시민들의 당부의 말이 귓전에 맴돈다며, "UN 인권선언 70주년을 맞이하는 2018년 UN총회에 'UN 세계고아의 날' 제정을 청원할 것"이라며 "혼자 꾸는 꿈은 꿈으로 끝나지만 모두가 함께 꾸는 꿈은 실현된다는 복지인생 50년간의 체험을 바탕으로, 필요한 일이라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는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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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 세계고아의 날' 제정 추진대회(2012)
이와 같은 'UN 세계고아의 날' 제정 운동의 배경에는 일본인 여성으로서 사랑과 희생의 정신으로 한국 고아 3천여 명을 길러낸 윤학자 여사가 있다. '고아 없는 세상'을 염원했던 어머니의 뜻을 이어받은 윤 회장은 "어머니의 생일이자 기일인 10월 31일을 'UN 세계고아의 날'로 제정하는 것이 소망"이라며, 2012년 윤학자여사 탄신 100주년을 맞아 'UN 세계고아의 날 제정 청원 결의문'을 채택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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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인위원회 발족식(2014)
이어 2014년 10월에는 세계 각국의 인사들이 참여한 가운데 High Level Forum이 서울에서 개최되고 백인위원회가 발족되었다. 영국의 상원의원인 Lord. David Alton 씨를 비롯하여 Jehan Perera 스리랑카국민평화협의회 전무이사, Kishikawa Yoji 일본 요코즈카 기독교사회관장, Hetherwick Ntaba 재영말라위 고등판무관, Kathleen Bergquist 교수 등이 고아의 인권보호 및 정책에 대해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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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 세계고아의 날' 제정을 추진하는 국제학술세미나(2017)
지난해 12월에는 오 준 前 UN대사를 비롯하여 한국과 일본, 미국의 사회복지·아동전문가, 아동시설 관계자 등 2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제학술세미나가 목포에서 열린 바 있다. 참가자들은 고아 문제 해결을 위해 국가·인종·종교를 초월하여 전 세계적인 네트워크가 필요한 시점이라는데 뜻을 같이 했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는 고아 발생률이 현저히 줄었으나, 전 세계적으로는 여전히 전쟁과 기근, 빈곤, 사회문제 등으로 고아나 집 없는 어린이들이 급증하고 있다. 유엔에이즈(UNAIDS) 발표에 따르면 부모 중 어느 한쪽을 잃은 18세 미만의 아동이 현재 약 1억 5,300만 명에 달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이 생애 내내 차별과 편견으로 고통받으며, 자존감마저 상실한 채 무기력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고아들을 위한 뚜렷한 대안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윤기 회장은 "1억5000만명에 달하는 고아에 대해 전 세계가 관심을 갖고 돕기 위해서는 UN이 고아의 날을 제정 선포하고 고아기금을 조성해야 한다"며 "한국은 전쟁고아에 대해 국제사회로부터 받은 빚이 있는 만큼 빚을 갚고 국격을 높이는 측면에서도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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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하는 공생복지재단 윤기 회장
【한일교류】니카이 특사단, '한국 고아의 어머니' 윤학자 여사의 제2의 고향 '목포 공생원' 방문 기념식수
【인물】'대한민국을 빛낸 위대한 인물 대상' 사회복지 역사를 세운 '마음의 가족' 윤기 이사장
【서적】'그때 그 일본인들' 한일 유전자를 뒤섞이게 한 인물들
【서적】사회복지 역사를 세운 실천현장의 인물들, '마음의 가족' 윤기 이사장 편
【고향의 집】다문화 공생의 모델 '고향의 집 도쿄' 상량식
【인물】'높은 뜻' 품고 국가의 장벽을 뛰어넘은 존 만지로, 사카모토 료마, 윤학자(다우치 지즈코)
【세계 고아의 날】UN '세계 고아의 날' 제정 서명운동에 동참하자
【재일동포】'세계 고아의 날' 제정 서명운동 발족식, '韓 고아의 어머니' 윤학자 여사의 뜻을 기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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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年03月13日

【재한일본인회 '라일락'】위안부 문제를 생각하는 아시아연대회의를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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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8일부터 9일까지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주최 '위안부 문제를 생각하는 아시아연대회의'가 하이서울유스호스텔에서 개최되었다. 이번 회의는 특히 한국에서 '미투 운동'이 촉발된 직후에 개최되었다는 점에서 예전과는 달리 전환적 성격을 띤 이벤트였다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는 한국쪽에서 일본 정부에게 사죄와 법적 배상을 요구하면, 일본의 우익 단체들이 조선시대의 여성차별이나 미군 기지촌 위안부,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의 성폭력 등 한국내 여성인권 문제를 지적하며 역공을 퍼붓는 소모전이 반복되는 양상이었다. 사실 한국의 여성인권 문제는 '상대방은 내 거울'이라는 입장에서 볼 때 위안부 이슈의 가장 큰 약점이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이 어느쪽 음란죄가 더 무거운가를 따지며 심판하는 폭로전이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며 첨예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돌연 한국에서 '미투 운동'이 폭발적으로 일어나 그간 외부로만 향하던 손가락이 내부로 향하게 되었다는 것은 금후 위안부 이슈가 '일방주의'에서 '상호주의'로 방향을 전환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획기적이다.

이 같은 '상호주의' 입장에서 바라볼 때 먼저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호칭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 즉 일본 정부에게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을 바라기 전에 먼저 한국에서 그 본을 보여주는게 바람직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렇게 볼 때 '성노예'라는 호칭은 일본의 위신 뿐만 아니라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마저도 추락시키는 자충수가 아니겠는가?

지난 1992년부터 정대협을 비롯한 여성단체들과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매주 수요일 길거리에 나와 마치 유관순 열사처럼 여성인권을 부르짖었다. 그 몸부림의 결과 오늘날 '미투 운동'이 전국을 휩쓸게 된 것이다. 따라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야말로 진정한 여성해방(독립)운동 즉 '미투 운동'의 선구자라 할 수 있다. 미래지향적인 '선구자'가 훨씬 더 명예로운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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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후 위안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본사회의 낮은 여성인권 의식을 개선하는데 한국이 견인차 역할을 해야 한다. 사실 일본은 경제대국이라고 하나 여성인권이라는 측면에서는 아직도 세계에서 하위권에 속하는 후진국이다. 심지어 일본에서 '미투'를 말하면 위험하다고까지 한다.

사실 일본의 가부장적 문화는 한국보다 훨씬 더 강한 편이다. 고발당한 남성이 처벌받는 경우는 거의 없고, 오히려 고발한 여성들이 직장에서 따돌림당하고 악성 댓글로 시달리기 십상이다. 그런 분위기 때문에 일본 국민들은 '미투 운동'이나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 하고 침묵하고 마는 실정이다.

이런 일본의 낮은 여권 의식이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한 위안부 피해 사례를 국제적으로 어필하는 것만으로 일본 여론을 바꾸는 데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위안부 이슈가 일본의 여론을 환기시켜 국민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여권신장운동으로 승화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위안부 이슈가 주로 사죄와 피해배상을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Win-Lose방식이었다면, 앞으로는 일본이 여권 선진국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협조하는 Win-Win방식이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일본이 세계가 부러워하는 '여권대국'으로 거듭나게 될 때 비로소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일본의 영원한 은인으로서 그 명예가 부활될 것이다.
■참가자의 목소리\야마시타

〜아베 총리에게 드리는 글〜

일본은 용기를 내어 바른 것을 바르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베 총리께서는 "지난날 우리가 부끄러운 일을 저질렀으나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책임을 지겠습니다"고 선언해야 합니다. 그러면 한국도 용서할 것입니다. 일본은 용기 있게 잘못을 인정하고 세계인 앞에서 당당하게 여성의 인권 회복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세계로부터 인정받지 못 할 것입니다.

어디까지나 여성들의 해방을 위해서입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희생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세계인들 앞에 보여 주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일본에게 그런 용기가 없습니다. 진실로 지난날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고 거짓말로 일관한다면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것입니다. 미래를 위해 용기를 내야 합니다.

아베 총리께서는 "제가 책임을 지고 해결하겠습니다" 하고 용서를 구하고 과오를 인정하십시오. 재임 중에 마무리해야 합니다. 그러면 길이길이 영웅으로 남을 것입니다. 사실 죄를 인정하는 것처럼 용기가 필요한 일도 없습니다. 예전에 제게 위안부 영이 들아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내 몸에 손대지 마' 하고 남편한테 외쳤던 적이 있습니다. 그 경험 때문에 저는 할머니들이 얼마나 괴로운지 그 심정을 잘 압니다. 그 분들은 저보다 훨씬 더 괴롭지 않겠습니까.

〜천황에게 드리는 글〜

하루속히 한국을 방문하셔서 할머니들과 만나 주십시오. 그것만으로도 무척 기뻐하실 겁니다. 아무도 책임추궁 같은 것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천황의 말 한마디에 할머니들이 얼마나 위로받으실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할머니들의 상처입은 마음을 치료해 드릴 분은 오직 천황뿐입니다.

천황은 하나님의 혈통으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귀한 핏줄을 타고나셨기에 천황이 움직이면 세상도 따라 움직입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할머니를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한마디 위로의 말을 건네십시오. 진정 천황이시라면 이 정도는 해주실 줄로 믿습니다. 금년에 꼭 한국에 오시기 바랍니다.
【위안부 사죄 담화】'말 한마디로 천냥 빚 갚는' 보기드문 일본 정치인
【한일 역사를 극복하고 우호를 추진하는 모임】위안부 문제에 대하여 진심으로 사죄합니다
【재한일본인회】'나눔의 집' 방문, 봉사활동
【재한일본인회】위안부 문제를 발본색원할 궁극적 해결책은 무엇인가?
【서울숲 프랜드마켓】라일락 향기 가득한 5월, 다시 피우는 한일 우정의 꽃
【참 평화의 길 Ⅲ】역지사지(易地思之)
【남북분단과 통일】70년 포로 및 귀환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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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年03月06日

【위안부 사죄 담화】'말 한마디로 천냥 빚 갚는' 보기드문 일본 정치인

日本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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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8월26일 -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 관방장관, 역사 교과서에 대한 담화

"일본 정부와 일본 국민은 과거 일본의 행위가 한국·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여러 나라 국민들에게 다대한 고통과 손해를 준 것을 깊이 자각하고, 이런 일을 두 번 다시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반성과 함께 결의를 다지며 평화국가로서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일본은 한국에 대해서는 1965년 한일공동선언에서 "유감스러운 과거의 관계를 깊이 반성한다"는 인식을, 중국에 대해서는 중일공동성명에서 "과거 일본이 전쟁으로 인해 중국 국민에게 막대한 피해를 준 책임을 통감하며 깊이 반성한다"는 인식을 표명한 바, 이는 앞에서 언급한 일본의 반성과 결의를 확인한 것이며, 지금도 그 인식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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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9월6일 - 히로히토(裕仁) 일왕, 전두환 대통령 방일 만찬사

"금세기의 한 시기에 있어서 양국간에 불행한 역사가 있었던 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며, 다시 되풀이 돼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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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9월7일 -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曽根康弘) 총리, 전두환 대통령 방일 오찬사

"귀국 및 귀국민에게 크나큰 고통을 주었습니다. 일본 정부 및 우리 국민들은 그 잘못에 대해 깊은 유감의 뜻을 표함과 동시에, 장래에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굳게 다짐하고 있음을 표명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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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5월24일 - 아키히토(明仁) 일왕, 노태우 대통령 방일 만찬사

"쇼와천황(히로히토 일왕)이 '금세기 한 시기에 양국간에 불행했던 과거가 있었던 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며 다시 되풀이 돼서는 안된다'고 말씀하셨던 것을 상기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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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5월24일 - 가이후 도시키(海部俊樹) 총리, 노태우 대통령 방일 정상회담

"저는 (노태우) 대통령 각하를 모신 이 기회에 과거의 한 시기에 한국인들이 일본의 행위로 인하여 견디기 어려운 괴로움과 슬픔을 체험한 것에 대해 겸허히 반성하며 솔직하게 사죄의 마음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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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1월16일 - 미야자와 기이치 총리 공식방한 환영만찬회

"일본 국민은 무엇보다도 먼저 과거의 한 때에 귀국 국민들께서 일본으로 인하여 견디기 어려운 고통과 슬픔을 경험했던 사실을 상기하고 반성하는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총리로서 다시 한번 귀국 국민께 반성과 사죄의 뜻을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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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1월17일 - 미야자와 기이치 총리 공식방한 국회 연설

"일본과 귀국과의 관계에 있어서 잊어서는 안 될 것은 수 천 년에 걸친 교류 속에서 역사상 한 시기에 우리 나라가 가해자였고 귀국이 피해자였다는 사실입니다. 그간 한반도의 여러분들이 우리 나라의 행위로 인하여 견디기 어려운 고통과 슬픔을 체험했다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마음으로부터 반성과 사죄의 뜻을 밝히는 바입니다.

최근 이른바 '종군위안부' 문제가 거론되고 있는 바, 진실로 가슴 아픈 일로서 참으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우리 세대의 잘못이 두 번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21세기를 담당하는 차세대에 역사를 바르게 전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느끼며 이는 본인을 포함한 우리 세대의 책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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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7월 6일 - 관방장관 가토 고이치(加藤紘一)

"정부로서는 국적 및 출신지를 불문하고 소위 종군위안부로서 필설로 다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을 겪으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죄와 반성의 뜻을 전합니다. 그와 같은 잘못을 또다시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뼈저린 반성과 결의를 다지며, 평화국가로서 미래지향적으로 새로운 한일관계 및 아시아 각국과 지역과의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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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8월 4일 - 관방장관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고노담화

"본 건은 당시 군의 관여 아래 다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입니다. 정부는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출신지를 불문하고 이른바 종군위안부로서 많은 고통을 겪고 몸과 마음에 치유되기 힘든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께 마음으로부터 사죄와 반성의 뜻을 밝히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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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8월31일 -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총리 소신 표명 연설

"소위 종군위안부 문제는 여성의 명예와 존엄을 심각하게 훼손한 문제이며,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진심으로 깊은 반성과 함께 사죄의 뜻을 전합니다. 우리 나라는 이 문제를 포함한 과거의 역사를 직시하고 후세에게 바르게 전함과 동시에 관계국들과 상호이해를 한층 증진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우리 나라의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나타내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1995년 6월 9일 - 일본 중의원 결의

"세계의 근대사에 있어서 수많은 식민지 지배나 침략 행위에 대해 상기하고 우리 나라가 과거에 범한 이러한 (침략, 식민지 지배) 행위나 타국민 특히 아시아 여러 나라 국민에게 준 고통을 인식하고 깊은 반성의 마음을 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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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7월 - 무라야마 토미이치 수상,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기금' 발족 인사

"이른바 종군 위안부의 문제도 그 중 하나입니다. 이 문제는 일본군이 관여해 많은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사안이며 도저히 용서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종군 위안부로서 심신에 걸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으신 모든 분들께 깊이 사과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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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8월15일 -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 전후 50주년 특별담화

"일본은 멀지 않은 과거의 한 시기에 국가정책을 그르쳐 전쟁의 길로 나아가 국민을 존망의 위기에 빠뜨렸으며,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나라, 특히 아시아 각국에 크나큰 피해와 고통을 주었습니다. 후세에 그 같은 잘못이 반복돼서는 안 되겠기에, 의심할 여지 없는 이 역사의 진실을 겸허히 받아들여 다시 한번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의 뜻을 표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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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6월23일 -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郎) 수상, 방한 한일 공동 기자회견

"예를 들어 창씨개명과 같은 것은 우리들이 완전히 학교의 교육에서는 배운 적이 없었던 것이고, 그것이 얼마나 많은 한국인들의 마음에 상처를 입혔는가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중략) (종군위안부) 문제만큼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상처를 입힌 문제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진심어린 사과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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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10월 8일 - 아키히토 천황, 김대중 대통령 국빈 방일 궁중 만찬회

"이러한 밀접한 교류의 역사 있는 반면, 한 시기에 일본이 한반도의 사람들에게 큰 괴로움을 준 시기가 있었습니다. 제 마음 속에 그 일에 대한 깊은 슬픔을 늘 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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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10월8일 -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 한일공동선언 '21세기를 향한 새로운 일한 파트너십'

"양국(한일) 정상은 한일 양국이 21세기에 확고한 선린 우호 협력 관계를 구축해 나가기 위해서는, 양국이 과거를 직시하고 상호 이해와 신뢰에 근거한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에 의견의 일치를 보았습니다. 오부치 총리 대신은 20세기의 한일 양국 관계를 회고하고, 일본이 과거의 한 시기에 한국 국민에 대해 식민지 지배로 인해 많은 피해와 고통을 주었다고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그 사실에 대해 통절한 반성과 진심어린 사죄의 뜻을 표명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와 같은 오부치 총리 대신의 역사 인식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높이 평가하고, 양국이 과거가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고 화해와 선린 우호 협력에 근거한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서로 노력하는 것이 시대의 요청이라고 표명했습니다."

■1998년 11월 26일 - 국무총리 오부치 게이조, 중일 관계 선언

"양 쪽은 정면으로 과거를 응시하는 것과 정확하게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 일본과 중국 사이의 발전하는 관계를 위한 중요한 토대라고 믿습니다. 일본 측은 1972년 일본 정부와 중국 정부의 공동 성명과 1995년 8월 15일 이전 국무총리 무라야마 도미이치의 성명을 준수합니다. 일본 측은 과거 특정 기간 동안 중국에 맞선 공격을 통해 중국 국민들에게 야기한 심각한 피해와 곤궁에 대한 책임을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이것에 대해 깊은 사죄를 표명합니다. 중국 측은 일본 측이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고, 평화와 발전의 길에 붙길 희망합니다. 이것에 기초해서, 양쪽은 우정의 오래된 관계를 발전시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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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8월 30일 - 외무부장관 고노 요헤이, 중국 방문 중 연설

"난 일본의 역사의 자각이 2차 세계 대전 종전 5주년 기념일에서 내각 결정에 따라 국무총리 무라야마 도미이치가 제기했던 성명 속에서 분명하게 출발됐다고 믿습니다. 내각의 구성원으로서 그 성명의 초안에 참석했습니다.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이후 성공적인 관리에 의해 가결되었고 지금은 일본 국민들 대다수의 일반적인 관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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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4월 3일 - 관방장관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일본은 멀지 않은 과거의 기간 동안, 많은 나라의 국민들에게 특히 아시아 국가들에게 식민 통치와 공격을 통해 큰 피해와 고통을 일으켰던 것을 겸손히 인정하며, 이에 대해 깊은 참회와 마음으로 사죄를 표합니다. 이것은 이후 내각에 의해 계승되었고 현 내각에서 이에 대한 변화는 없습니다."

■2001년 4월 5일 - 고이즈미 준이치로 수상, 전 종군 위안부 분들에게 드리는 편지

"이른바 종군 위안부 문제는 당시의 군 관여 아래 다수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게 상처를 준 문제였습니다. 저는 일본국의 내각총리대신으로서 다시 이른바 종군 위안부로서 많은 고통을 겪으시고 심신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으신 모든 분들에게 마음속으로부터 사과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합니다. 우리들은 과거에 대한 책임과 미래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피할 길이 없습니다. 일본으로서는 도의적인 책임을 통감하면서 사과와 반성의 마음을 바탕으로 과거의 역사를 직시하고 정확하게 이것을 후세에 전하고, 정당치 못한 폭력 등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관련된 여러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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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 8일 - 외무부 장관 다나카 마키코(田中真紀子)

"우리는 지난 전쟁 동안 일본이 많은 나라의 국민들에게 큰 피해와 고통을 준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많은 이가 그들의 소중한 생활을 잃었고 부상당했습니다. 전쟁은 이전 전쟁 포로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치료할 수 없는 상처를 남겼습니다. 겸손한 정신으로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대면하면서, 오늘 1995년 무라야마의 성명에서 표현된 우리의 깊은 참회와 가슴 속 깊은 사죄를 재확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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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0월 15일 -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 수상, 한일정상화담

"일본의 식민지 통치로 인해 한국 국민에게 막대한 피해와 고통을 준 것에 대해 진심어린 반성과 사죄의 마음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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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9월 17일 - 고이즈미 준이치로 수상, 조일평양선언

"일본은 과거의 식민지 지배로 인해 조선 사람들에게 엄청난 손해와 고통을 주었다는 역사의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통절한 반성과 진심어린 사죄의 마음을 표명했습니다.

■2005년 4월 22일 - 고이즈미 준이치로 수상, 아시아-아프리카 회의

"일본은 과거의 식민지지배와 침략에 의해, 많은 나라, 특히 아시아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막대한 피해와 고통을 주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의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통절한 반성과 진심어린 사죄의 뜻을 항상 마음에 새기며,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일관하게 경제 대국이 되어도 군사대국은 되지 않고, 어떠한 문제도 무력에 의존하지 않고  평화적으로 해결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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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8월 15일 - 고이즈미 준이치로 수상, 고이즈미담화

"일본은 예전에 식민지지배와 침략에 의해 많은 나라들, 특히 아시아 여러 나라 사람에게 막대한 피해와 고통을 주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의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다시 통절한 반성과 진심어린 사죄의 마음을 표명하며, 제2차 대전에서 돌아가신 국내외의 모든 희생자에게 삼가 애도의 뜻을 표합니다. (중략) 전후 일본의 전후 60년은 정말로 전쟁에 대한 반성을 행동으로 나타낸 평화의 60년입니다. (중략) 특히 '일의대수'의 관계를 가진 중국이나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각국과 서로 협력하며 이 지역의 평화를 유지하고 발전을 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거를 직시하고, 역사를 바로 인식하고, 아시아 여러 나라와 상호 이해와 신뢰에 근거한 미래 지향적인 협력 관계를 구축해 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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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11일 -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NHK '일요토론' 출연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담화를 그대로 계승하겠습니다.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와 하시모토 류타로 전 총리도 위안부 피해자들께 (사죄의) 편지를 보낸 바 있으며, 그 마음은 본인도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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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26일 - 아베 신조 총리, 참의원 예산위

"거듭 말씀드린 바와 같이 고노담화를 계승해 가겠습니다. 위안부 피해자들이 쓰라린 경험을 한 데 대해 동정의 마음을 표하며, 당시 그런 처지에 놓인 것에 대해서 사죄드리는 바입니다. 지금 저는 이 자리에서 총리로서 사죄의 마음을 표하며, '고노 요헤이 담화'에서 언급한 그대로입니다."

■2007년 4월 28일 - 아베 신조 총리, 미·일정상회담 후 기자회견

"위안부의 문제에 대해서는 어제 의회에서도 말씀드렸습니다. 온갖 고통을 겪은 위안부 피해자분들께 인간으로서 또한 총리로서 마음으로부터 동정하며, 그처럼 지극히 고통스러운 상황에 처한 것에 대해 죄송하다는 마음뿐입니다. 20세기는 인권침해가 많았던 세기였으나, 21세기는 인권침해가 없는 위대한 세기가 될 수 있도록 일본도 공헌하고 싶습니다. 이 말을 오늘 부시 대통령에게도 전했습니다."
【한일 역사를 극복하고 우호를 추진하는 모임】위안부 문제에 대하여 진심으로 사죄합니다
【재한일본인회】'나눔의 집' 방문, 봉사활동
【재한일본인회】위안부 문제를 발본색원할 궁극적 해결책은 무엇인가?
【서울숲 프랜드마켓】라일락 향기 가득한 5월, 다시 피우는 한일 우정의 꽃
【참 평화의 길 Ⅲ】역지사지(易地思之)
【남북분단과 통일】70년 포로 및 귀환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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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年12月19日

【김정은 사로잡기〜제2회〜】평창동계올림픽! 김정은의 결단은?

日本語
드디어 재한일본인회 '라일락'이 미니드라마 "평창동계올림픽! 김정은의 결단은?" 제2탄을 발표했다.

김연아의 유엔연설을 듣고 김정은에게 편지를 써 북한 선수들의 평창올림픽 참가를 호소하기로 결심한 여성 탈북자들이 편지를 전달하는 방법을 놓고 고심한다. 이때 떠오른 기발한 아이디어!!

한편 모 방송사가 '과연 북한이 평창올림픽에 참가할까요'라는 질문으로 시민들을 인터뷰하며 평창올림픽과 남북통일에 대한 견해를 널리 청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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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방송사 리포터 '과연 북한이 평창올림픽에 참가할까요?'
ㅡ시민의 목소리ㅡ
"올림픽은 세계평화를 위한 것이다.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남북통일이 이루어졌으면 한다."

"국가를 대표하여 올림픽을 준비한 선수라면 목숨을 걸고 연습했을 것이다. 그 선수들을 생각해서라도 꼭 출전하도록 해줬으면 한다."

"선수들은 죄가 없고 일반 시민들도 선수단이 참가하길 원할 것이다. 그게 정상이다."

"예전에 한반도기를 들고 같이 입장한 적이 있다. 그 모습을 다시 보고 싶다. 서로 손잡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통일하면 인건비도 싸지고 외국에서 자본이 들어와 공장도 늘어날 것이다. 건물이 들어서면 건설 경기가 좋아져 나라 경기도 많이 호전될 것이다."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남북이 다시 사이가 좋아져 핵 위협 없이 국민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기를 바란다."

"북한이 미사일을 자주 쏘긴 하지만 북한도 사실은 전쟁보다는 내심 평화를 원할 것이다. 평창올림픽 참가를 위해 용단을 내려주기를 바란다."

"바로 코앞인데 국경으로 막혀 있다니 너무 가슴이 아프다. 정말 큰 용기가 필요하지만, 심적 부담을 극복하고 선수들이 평창에 오면 남한은 둘째치고라도 응원하겠다."

"평창올림픽 참가 외에 살 길은 없다. 지난번 미사일 발사로 트럼프가 잔득 화가 나 '가만 두지 않겠다'고 벼르고 있다. 18일쯤 군사행동이 있을 거라는 정보도 나돌고 있어, 되도록 빨리 참가 의사를 표명하지 않으면 위험하다."

TV에서 인터뷰를 보고 분노를 삭이지 못해 손을 부르르 떠는 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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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정은
과연 김정은의 결단은!?
제3회(마지막회) ○○○ 깜짝 출현!!!
【김정은 사로잡기〜제1회〜】평창동계올림픽! 김정은의 결단은?
【김정은 사로잡기〜제2회〜】평창동계올림픽! 김정은의 결단은?
【김정은 사로잡기〜마지막회〜】평창동계올림픽! 김정은의 결단은?
【재한일본인회】'나눔의 집' 방문, 봉사활동
【재한일본인회】위안부 문제를 발본색원할 궁극적 해결책은 무엇인가?
【서울숲 프랜드마켓】라일락 향기 가득한 5월, 다시 피우는 한일 우정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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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年12月16日

【김정은 사로잡기〜마지막회〜】평창동계올림픽! 김정은의 결단은?

日本語
지난회 줄거리 : 김정은에게 보내는 편지가 기자를 통해 조총련에 전해지고, 조총련에서 북한으로 밀사가 파견된다. 한편 김정은은 모 방송사가 제작한 '과연 북한이 평창올림픽에 참가할까요?' 시민 인터뷰 프로그램을 보고 격노한다. 갑자기 선수들을 찾은 김정은은 그들의 결의에 찬 모습을 보고 심기일전하여 평창올림픽 참가여부를 고민한다. 그때 조총련에서 한 장의 편지가 날아드는데...

그것은 탈북자의 편지였다. 거기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제 동포이며 자식 같은 젊은이들이 맘껏 날개를 펴고 힘껏 날개짓하는 모습을... 북과 남에 사는 형제가 손에 손을 잡고 함께 기뻐하는 모습을... 당신이 원한다면 그것이 가능합니다."

갈등하며 몸부림치는 김정은! 그때 문득 떠오른 백두산!! "거기에 분명 답이 있을 거야." 살을 에이는 듯한 백두산의 세찬 바람 속에서 할아버지(김일성) 음성이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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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루지 못한 꿈이 있느니라. 조국통일! 그 꿈을 네가 이루어 다오. 평창올림픽은 통일을 향한 첫 걸음이니라. 남북이 하나 돼 조국이 하나된 모습을 세계인들 앞에 보여 다오."

그것은 마치 계시와도 같은 영감이었다. 갈 길을 찾은 김정은은 전혀 다른 사람처럼 새롭게 태어난다. 그리고 결심한다. "가자 평창으로! 조국을 위해 분골 쇄신하라! 난 전쟁따윈 원치 않는다. 동지들이 통일의 가교가 돼주면 그것으로 족하다. 제군들을 믿는다!"

이윽고 찾아온 북한 선수단! 이 날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헤어졌던 이산가족들도 극적으로 다시 상봉한다. 서울도 울고 평양도 울고 눈물바다가 된다. 평창올림픽, 앞으로 5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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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드라마는 끊임없이 강함을 추구하는 김정은의 마음을 사로잡는 비결은 더 강한 힘이 아니라 그에게 결핍되어 있는 부드러운 모성을 채워주는 것이라는 전제하에 제작되었다.

김정은은 일찍이 생모를 잃었다. 재일동포 출신이었던 그의 어머니 고영희는 북한에서 용납되기 어려운 입장에서 유선암으로 고생 고생하다 2004년에 숨졌다. 김정은은 그렇게 중병을 앓던 어머니에게 강하게 집착한 반면 자기의 심리적 경쟁자였던 아버지를 닮아서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려는 '오디푸스 콤플렉스'를 갖고 있었을 것이다.

아버지라는 강력한 존재를 닮는 것이 가장 안전한 상태임을 습득한 김정은은 아버지 김정일의 성격과 매우 닮아, 겉으로는 강하고 어른스러워 보이지만 속으로는 유년 혹은 모성에 대한 결핍이 존재할 수 있다. 모성애가 결핍된 지도자들은 흔히 여성에게 적대의식을 갖기도 한다.

또한 유달리 경쟁의식이 강했던 김정은은 형에게 강한 라이벌 의식을 가졌을 것이다. 형제 관계가 복잡하면 형제들 사이에서 서로 중심이 되려는 강한 권력의지가 발동한다. 선의의 경쟁보다는 형제를 제압하고 완벽한 1인자가 되려는 욕구가 강해진다.

김정은은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한 만큼 영웅주의와 폐쇄적 신비주의에 빠질 위험도 있다. 폐쇄적 신비주의는 처음에는 사람들을 열광시키지만, 장기화되면 소통 부족으로 국민들 사이에서 불만이 커져 급기야 파국을 맞게된다.

【김정은 사로잡기〜제1회〜】평창동계올림픽! 김정은의 결단은?
【김정은 사로잡기~제2회~】평창동계올림픽! 김정은의 결단은?
【김정은 사로잡기-마지막회-】평창동계올림픽! 김정은의 결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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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年12月15日

【김정은 사로잡기〜제2회〜】평창동계올림픽! 김정은의 결단은?

日本語
드디어 재한일본인회 '라일락'이 미니드라마 "평창동계올림픽! 김정은의 결단은?" 제2탄을 발표했다.

김연아의 유엔연설을 듣고 김정은에게 편지를 써 북한 선수들의 평창올림픽 참가를 호소하기로 결심한 여성 탈북자들이 편지를 전달하는 방법을 놓고 고심한다. 이때 떠오른 기발한 아이디어!!

한편 모 방송사가 '과연 북한이 평창올림픽에 참가할까요'라는 질문으로 시민들을 인터뷰하며 평창올림픽과 남북통일에 대한 견해를 널리 청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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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방송사 리포터 '과연 북한이 평창올림픽에 참가할까요?'
ㅡ시민의 목소리ㅡ
"올림픽은 세계평화를 위한 것이다.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남북통일이 이루어졌으면 한다."

"국가를 대표하여 올림픽을 준비한 선수라면 목숨을 걸고 연습했을 것이다. 그 선수들을 생각해서라도 꼭 출전하도록 해줬으면 한다."

"선수들은 죄가 없고 일반 시민들도 선수단이 참가하길 원할 것이다. 그게 정상이다."

"예전에 한반도기를 들고 같이 입장한 적이 있다. 그 모습을 다시 보고 싶다. 서로 손잡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통일하면 인건비도 싸지고 외국에서 자본이 들어와 공장도 늘어날 것이다. 건물이 들어서면 건설 경기가 좋아져 나라 경기도 많이 호전될 것이다."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남북이 다시 사이가 좋아져 핵 위협 없이 국민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기를 바란다."

"북한이 미사일을 자주 쏘긴 하지만 북한도 사실은 전쟁보다는 내심 평화를 원할 것이다. 평창올림픽 참가를 위해 용단을 내려주기를 바란다."

"바로 코앞인데 국경으로 막혀 있다니 너무 가슴이 아프다. 정말 큰 용기가 필요하지만, 심적 부담을 극복하고 선수들이 평창에 오면 남한은 둘째치고라도 응원하겠다."

"평창올림픽 참가 외에 살 길은 없다. 지난번 미사일 발사로 트럼프가 잔득 화가 나 '가만 두지 않겠다'고 벼르고 있다. 18일쯤 군사행동이 있을 거라는 정보도 나돌고 있어, 되도록 빨리 참가 의사를 표명하지 않으면 위험하다."

TV에서 인터뷰를 보고 분노를 삭이지 못해 손을 부르르 떠는 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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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정은
과연 김정은의 결단은!?
제3회(마지막회) ○○○ 깜짝 출현!!!
【김정은 사로잡기〜제1회〜】평창동계올림픽! 김정은의 결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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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年12月09日

【김정은 사로잡기〜제1회〜】평창동계올림픽! 김정은의 결단은?

日本語
개인이 조직을 능가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미국에서는 트럼프가 나라를 바꾸고, 한국에서는 일본인 여성들이 남북의 문을 연다!?

재한일본인회 '라일락'(회장 기쿠치 에미)이 〈평창동계올림픽! 김정은의 결단은?〉이라는 제하의 미니드라마로 '김정은을 사로잡는다'며 대담하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라일락'은 '작은 꽃들이 모여 하나의 꽃을 이루는 것처럼, 각자의 재능을 살려 세상을 바꾸자'는 취지 아래 지난 11월 12일 창립되었다.

창립 기념사업으로 탈북자의 입장에서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를 호소하는 드라마를 제작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 직후 불어온 북한 병사의 탈북과 김연아의 유엔총회 연설 등 순풍에 힘입어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제1회 제작 완료, 이달 16일까지 마지막회를 마무리 지을 기세다.

줄거리를 요약하면 이렇다. 탈북자 지원센터에서 김연아의 유엔 연설을 듣고 난 여성 탈북자들은 북한에 대한 복잡한 심경을 토로한다. 마침내 탈북자들의 간절한 마음을 담은 편지를 김정은에게 전달하여 평창올림픽 참가를 호소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거리로 나와 시민들과 소통하며 남북통일과 평창올림픽에 대한 견해를 널리 청취한다. 이윽고 라일락 향기가 하늘에 닿고... ○○○가 깜짝 출연한다!! 과연 그녀들의 소프트 파워가 핵•미사일을 능가할 것인가!?

【김정은 사로잡기〜제1회〜】평창동계올림픽! 김정은의 결단은?
【김정은 사로잡기〜제2회〜】평창동계올림픽! 김정은의 결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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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年11月14日

신사(神社)의 기원과 일본 민족의 혈통

PicsArt_11-14-02.19.15.jpg日本語
일본 최고(最古)의 신사는 고노(籠)신사(교토의 단고(丹後)반도에 위치하며 본래 이세(伊勢)라 불림)의 본궁인 '아메노마나이(天の真名井)신사다. 창건자인 아마베(海部) 씨는 중국 진(秦)나라 시대에 진시황의 명에 따라 파견된 서복(徐福, 진시황의 친척)이 데려온 사람들이다.

서복은 몇 년 후 중국으로 돌아갔으나 다시 후일 모노노베(物部) 가문을 이루는 사람들을 데리고 후쿠오카현 가라츠(唐津)로 들어왔다. 아마베 씨나 모노노베 씨(야요이(弥生)인의 후손)는 모두 중국에 있을 당시 유대인이었다. 남유다 왕국의 후손으로서, 바빌론 포로시대 때 끌려갔다가 바빌론이 멸망한 뒤 유대 땅으로 돌아가지 않고 동쪽으로 이주한 유대인들이다.

남유다과 북이스라엘이 분열되기 전 이스라엘의 수도였던 예루살렘에 처음으로 고정식 솔로몬 신전이 창건되었다. 그 전까지는 예언자 모세 시대에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서 탈출할 때 하나님(야훼)의 지시에 따라 설계한 이동식 신전인 성막을 사용했다.

이 둘(이동식·고정식)을 결합한 다음 배전(拝殿) 앞에 시주함을 놓은 것이 오늘날 신사(신전)의 기원이다. 솔로몬 신전에는 시주함이 없었으나, 예수님이 유대에서 선교할 때 예루살렘의 헤롯 신전에는 시주함이 배전 앞에 놓여 있었다. 이 사실은 신약성서에 기술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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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전(拝殿) 앞의 시주함
본전(本殿)과 배전으로 구성되고 배전 앞에 시주함을 놓는 풍습은 고대 유대과 일본이 유일하다. 이것은 바빌론 포로시대를 마치고 유대로 돌아온 유대인 후손들 중 예수님의 가르침(복음)을 믿은 초기 기독교인들이 일본의 오진(応神)천황 때 한반도의 신라를 거쳐 일본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일명 진(秦) 씨라 불린 일족)

진 씨 일족의 조상은 예루살렘을 떠날 때(유대인들이 로마제국과 전쟁하기 전) 이동식 신전인 성막과 십계명 석판을 넣은 법궤(혼미코시(本御輿) 또는 가라비츠(唐柩)), 그리고 예수님이 못박혔던 십자가를 가져 왔다. 그들은 야마토(大和)시대에 우사(宇佐), 나중에 이세(伊勢)를 거쳐 현재 이세신궁 지하 신전에 안치되어 있다.

참고로 아이누인(죠몬(縄文)인의 후손) 이외의 일본인=야마토민족은 모두 이스라엘민족(유태인 포함)의 직계 후손이다. 야마토민족의 야마토는 본래 히브리어(아마베 씨·모노노베 씨)이며, 아람어(진 씨의 언어)이기도 하며, 그 뜻은 '야훼의 백성'이다. 야훼의 백성=고대 이스라엘민족(의 후손).

한반도에서 도래한 사람들은 오진천황(진무천황과 동일 인물)과 함께 온 북이스라엘의 후손들이다(예를 들면 한(漢) 씨 등). 북이스라엘은 남유다보다 먼저 우상숭배에 빠져 배교한 이후로 야훼를 모시는 신전을 짓지 않은 결과 신전에 하나님을 모시는 전통이나 맥도 끊어져 결과적으로 한반도에는 일본의 신사나 고대 이스라엘의 신전과 같은 신전이 없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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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진(応神)천황. 5세기 전후에 실존했던 최초의 천황으로서 일본 국가를 확립함.
【한일교류】한반도 유래 일본 지명
【석씨(昔氏)】일본에서 300년간 군림한 석탈해 후손 소가씨(蘇我氏)
【재일동포 미래창조포럼】유흥수(柳興洙) 주일대사 "한국과 일본은 일란성 쌍둥이"
【한일음악실크로드】3박자 리듬의 아리랑과 후루사토(故郷)
【한일교류】일본의 고대사 컴플렉스와 한국의 근대사 컴플렉스
ラベル:신사 神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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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年09月21日

【고마신사】일왕 부부 고마(고려)신사 참배, 한일 관계 반성•화해 메시지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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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왕 부부가 20일 사이타마현 히다카시(埼玉県日高市)를 찾아 고마(고려)신사를 참배했다. 일왕이 고구려 왕족을 모시고 있는 고마신사를 정식으로 참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고마신사는 고구려가 멸망한 7세기 전후에 일본에 정착한 유민(도래인)들이 고구려의 마지막 왕인 보장왕의 아들 '고잣코(高若光, 일본명:高麗若光)'을 맞이하기 위해 지어졌다.

일본에 망명한 고잣코가 716년 1799명의 도래인을 모아 고려군(高麗郡)을 설치한 히다카시 일대는 19세기 말까지 고려향 즉 '고구려 마을'이라 불렸다. 주변에는 '고려'라는 말이 지명·성·기업명 등으로 남아 있다. 고마역 앞에는 반도에서 유래한 기둥 부적이 세워져 있으며, 조선풍의 향토요리도 있다.

지난해에는 고려군 건군(建郡) 1300년을 맞이하여 기념식이 열리고 하세 히로시(馳浩) 전 문부과학상과 다카마도노 미야히 히사코(高円宮妃久子) 씨가 참석해 주목을 끌었다. 또 재일동포들이 800만엔을 모아 신사 입구에 고구려의 상징 '삼족오'가 새겨진 '고려군 건군 1300주년 기념비'를 세웠다.

일왕 부부가 내년 퇴위를 앞두고 일본 국내에 있는 한반도를 상징하는 고마신사를 방문한 것은 반성과 화해의 메시지를 보내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게다가 자신의 목숨을 걸고 한일 관계를 개선하려는 일왕의 심정은 황태자에게 그대로 계승되고 있다고도 한다.

일왕은 일본 황실과 한반도의 역사에 대해서 2001년 68세 생일 기자회견에서 "간무(桓武) 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놓고 볼 때 한국과의 깊은 인연을 느낀다"고 언급한 적도 있다.

잣코의 후손이자 고마 신사의 궁사(宮司)인 고마 후미야스(高麗文康) 씨(50)는 "저에겐 한반도 사람들이 이 땅에 이룩한 역사를 전해야 할 사명이 있다. 천황 폐하가 방문해 주신 것은 명예로운 일"이라고 말했다.

【고려군 건군 1300년 기념사업】사물놀이 in 고려 2016
【고마1300】'고마군 건군 1300년 기념제' 성대히 개최되다(5월 21일~22일)
【고마 쟛코우회(高麗若光会)】주몽의 심볼 '삼족오(八咫烏)' 새겨진 기념비 건립
【한일 우정 축제 2016】'5urprise' 서강준씨 등 한류스타 고마(高麗)신사 방문
【한일교류】1300년 전의 코리아타운 고마(高麗)군 '국제교류를 통한 지역활성화'
【한일교류】고마(高麗)군 건군(建郡) 1​​300년 기념 '고마왕 약광(若光) 걷기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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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年07月15日

【함께 말해봐요 한국어】2017~18 전국 7개 도시에서 개최! 참가자 대모집!!

日本語
2003년 도쿄와 오사카에서 탄생한 '함께 말해봐요 한국어'는 2005년 '한일 우정의 해'를 계기로 매년 개최되는 도시가 지속적으로 증가해 올해는 전국 7개 도시에서 각 지역의 특색을 살린 대회가 개최된다.

'함께 말해봐요 한국어'에는 중고생, 대학생, 직장인, 주부 등 다양한 연령층이 참여하고 있으며, 초급 학습자는 물론 중급 이상의 학습자도 참여할 수 있어 평소 갈고닦은 한국어 실력을 선보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다.

응모 마감 등 상세한 내용은 ⇒ 여기









【훈민정음】간행 570주년 기념 특별기획전 '훈민정음과 한글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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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드라마 셀렉션 2017 in 센다이】한국드라마 상영 + 토크쇼 무료초대

日本語
주일한국문화원은 한국콘텐츠진흥원과 함께 한국 문화의 매력을 널리 알리기 위해 한국 드라마팬을 위한 기획시리즈 '한국 드라마 셀렉션 2017' 이벤트를 6월 도쿄 이벤트에 이어 센다이에서 개최합니다.

이번 이벤트에서는 시대극 작품인 '신사임당, 색상의 일기'와 로맨스 드라마 '질투의 화신〜사랑의 폭풍이 접근 중!〜'의 2작품을 대형 스크린으로 상영하고, 다양한 한국 관련 이벤트 및 프로그램 등에서 인기 MC로 활약하고 있는 한국 대중문화 저널리스트 후루야 마사유키 씨를 맞이해 한국 드라마의 매력 소개 및 뒷얘기 등 즐거운 토크를 전해드립니다.

본 이벤트의 관람을 희망하시는 분은 꼭 응모해 주십시오. 여러분의 방문을 진심으로 기다겠습니다.

【이벤트 개요】

❏ 이벤트 명칭 : 한국 드라마 셀렉션 in 센다이

❏ 일시 :
Part1 7월 24일 (월) 15 : 00〜 [신사임당, 색상의 일기]
Part2 7월 24일 (월) 18 : 00〜 [질투의 화신〜사랑의 폭풍이 접근 중!〜]
❏ 회장 : 센다이 전재부흥기념관(戦災復興記念館)
(미야기현 센다이시 아오바구 오마치 2-12-1 ☎ 022-263-6931)

❏ 관람 신청 요령
◎ 관람 무료 (사전 신청제)
◎ 모집 인원 : 각 회 270명 (신청은 일인당 한 번에 2명까지)
◎ 한국문화원 홈페이지 응모 코너에서 관람을 희망하시는 이벤트마다 (센다이 이벤트 Part1, Part2) 각각 신청해 주십시오. 이벤트에 응모하기 위해서는 회원등록이 필요합니다.
◎ 신청 마감 : 7월 17일 (월)
◎ 자세한 내용 ⇒ 여기

【한국드라마】'마의(馬医)' 마의에서 왕의 주치의로
【한국드라마】'대박' 사내는 목숨을 걸고 왕은 나라를 걸었다!
【한국드라마 셀렉션 2016】한국드라마 상영 + 토크쇼 무료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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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상영】2017년 하반기 한국영화 기획상영회

日本語
로맨틱 코미디, 애정, 스포츠 등 다양한 테마의 명작 한국영화 특집 상영!


■ 기간 / 시간 : 7〜12월 (총 10작품, 각 작품 2회 상영)

① 주간 : 15:00 (입장 무료, 사전 신청 불요. 당일 선착순 300명)
② 야간 : 19:00 (입장 무료, 사전 신청제. 모집 인원 : 300명)

◇ 관람을 희망하시는 분은 홈페이지의 응모란에서 신청하세요. 응모에는 회원등록이 필요합니다.
◇ 신청 마감 : 각 회 1〜2개월 전부터 관람 모집을 시작하고 상영일로부터 1〜2주 전에 마감합니다.

■ 장소 : 한국문화원 한마당홀(도쿄도 신주쿠구 요츠야 4-4-10 TEL 03-3357-5970)

■ 기획상영회

★ 특집1 : 울고 웃기는 로맨틱 코미디 작품 특집(7월)
★ 특집2 : 다양한 사랑을 그린 감동 작품 특집(8월)
★ 특집3 : 뜨겁고 상쾌한 스포츠 작품 특집(11〜12월)

7월 «울고 웃기는 로맨틱 코미디 작품 특집»
웃음과 눈물의 스토리 전개로 인기를 얻고 있는 로맨틱 코미디영화. 그 매력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4작품을 선정 특집 상영. 로맨틱 코미디영화의 매력을 대형 스크린으로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7월 6일(목) [내 아내의 모든 것]
뜨거운 연애 후에 전격적으로 결혼한 남편 '두현'과 아내 '정인'. 7년 후 아내의 '본성'을 알고 이혼하고픈 충동에 사로잡힌 남편은 전설의 카사노바 '성기'에게 아내를 유혹해달라고 호소한다. 인생 마지막 일이라 결정한 카사노바는 그녀에게 거짓 사랑으로 접근하는데 뜻 밖에 사랑에 빠진다... 열렬한 연애 끝에 결혼하고도 어느새 서로 부딪히게 되는 부부의 모습을 그린 성인 러브 코메디.
7월 12일(수) [스파이]
어느날 북한의 중요 인물이 수수께끼의 테러 조직에 의해 암살한다. 안전보장의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는 그의 딸을 둘러싸고 세계적인 조직들이 쟁탈전을 벌이는데... 그러던 중 아내 몰래 민완 스파이로 활약하는 '철수'는 극비 지령을 받고 즉시 태국 방콕으로 날아간다. 그런데 거기에 없어야 될 아내를 만나고 게다가 그녀 곁에 수수께끼의 꽃미남까지... 국가의 명운을 쥔 스파이와 그를 엉덩이에 깔고 앉은 아내를 그린 액션 코미디.
7월 20일(목) [조선마술사]
천재 마술사로 인기 높은 '화니'는 어느날 밤 낯선 여성을 돕는다. 그녀가 정략 결혼을 위해 청나라에 시집갈 조선의 공주라고 사실도 모른 채 두 사람은 차츰 끌려만 간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맺어서는 안될 운명. '화니'를 노리는 마수가 다가오는 가운데 피할 수 없는 위기가 두 사람을 덮친다. 천재 마술사와 공주의 로맨스를 코믹한 터치로 그린 판타지 러브스토리.
7월 28일(금) [김종욱 찾기]
뮤지컬 무대감독으로 일하는 딸 '지우'는 아버지에게 결혼을 재촉당한다. 급기야 아버지는 '지우'가 결혼하지 않는 이유는 첫사랑을 잊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지우'를 '첫사랑 찾기 주식회사'에 데려간다. 그것은 착해빠진 나머지 여행사를 그만둔 '기준'이 일으킨 회사. '지우'의 첫사랑을 찾아주려는 의욕은 넘치나 아는 것은 이름 뿐.... 눈물의 뮤지컬을 영화화한 작품.

8월 «다양한 사랑을 그린 감동 작품 특집»

가족 사랑, 연애, 인간 사랑 등 다양한 사랑의 모습을 그린 따뜻한 감동 작품을 특집 상영. 영화를 통해 한국인의 애정 표현이나 정서 등을 피부로 느껴보십시오.
8월 3일(목) [우아한 거짓말]
남편을 잃고 슈퍼에서 일하며 생계를 꾸려나가는 언제나 침착하고 당당한 어머니 '현숙'. 타인에 대한 관심도 가족에게 붙임성도 없는 장녀 '만지'. 그런 어머니와 딸에게 항상 부드럽게 대하던 막내 '천지'가 어느날 갑자기 세상을 떠난다. 다정하고 명랑했던 '천지'의 갑작스런 죽음 앞에 '현숙'과 '만지'는 동요한다. 아무 말도 없이 세상을 떠난 동생의 비밀을 추적하던 '만지'는 '천지'가 남긴 메시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8월 24일(목) [반창꼬]
사랑하는 아내를 구하지 못했다는 상실감에서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마음을 닫아버린 소방관 '강일'. 의료사고를 일으킨 죄책감에서 미래의 자신상을 상실한 심장외과 여의사 '미수'. 생명의 구급 현장에 종사하며 밤낮으로 생사의 경계에 직면해온 두 사람은 자신들이 치료할 수 없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힌다. 두 사람의 반발과 공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상처투성이의 마음을 달래며 사랑을 찾아가는데...
8월 31일(목) [감기]
어느날 조류 독감 H5N1의 변종 바이러스가 맹위를 떨치자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기 위해 국가 재난 사태가 발령되고 한 지역이 봉쇄당한다. 주민들은 감염의 공포에 떨며 점점 포악해지고, 정의감 넘치는 구급대원 '지구'는 사랑하는 사람의 딸 '미르'를 위해 혈혈단신 마을에 갖힌 사람들을 구하러 뛰어든다. 그런데 국외 확산을 우려한 미군은 미사일로 마을을 통째로 소멸시킬 작전을 암암리에 추진한다...

11〜12월 «뜨겁고 상쾌한 스포츠 작품 특집»

스포츠를 통한 뜨겁고 상쾌한 인간 드라마를 감동적으로 그린 ​​작품들을 모아 특집 상영합니다. 2018년 2월 한국에서 개막되는 세계적인 스포츠 축제인 평창동계올림픽·장애인올림픽 개최 성공을 기원하며.
11월 14일(화) [맨발의 꿈]
한때 미래를 촉망받던 축구 선수였던 원간은 은퇴 후 벌인 사업에 실패하고 신천지를 찾아 동티모르로 이주한다. 그런데 마지막 승부처로 택한 땅은 이제 막 독립한 나라로 내전의 상처와 빈곤에 시달리고 있었다. 자갈밭에서 맨발로 공을 차는 소년들을 목격한 원간은 그들에게 축구를 가르친다. 그러던 어느날 국제대회가 개최된다는 사실을 알고 대회 출전을 위한 모금운동을 벌이는데....
11월 29일(수) [코리아]
1991년 한국의 스타 '현정화'의 활약으로 탁구붐이 일지만, 강호 중국을 꺽지는 못했다. 그러던 중 일본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를 앞두고 남북통일팀 '코리아'가 결성된다. 그러나 남북 선수들은 라이프 스타일과 연습 방법의 차이로 서로 부딪치기 일수.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사상 최초로 결성된 남북통일팀을 그린 실화.
12월 14일(목) [국가대표]
1996년 한국·전남 무주.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정식 종목 중 하나인 스키 점프 국가대표팀이 급조된다. 방 코치는 다양한 배경을 갖고있는 5명의 선수를 스카우트하는데.... 1998년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스키 점프 대표팀의 숨겨진 분투의 이야기를 그린 스포츠 코미디.

【영화상영】2016 한국영화 기획상영회(7월~12월)【영화상영】2016 한국영화 기획상영회(4월~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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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年06月18日

【재한일본인회】'나눔의 집' 방문, 봉사활동

日本語
'주한일본인모임' 회원들이 6월 17일 경기도 광주시에 있는 '나눔의 집'을 방문해 봉사활동을 실시했다. 일본인 여성들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을 나눠드리고 노래와 춤으로 위로했다.

16세 때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李容洙) 할머니가 납치되어 보내진 곳은 대만의 신죽(新竹)라는 마을이었다고 한다.

대만까지는 배로 이송되었는데, 그 배 안에 할머니와 같은 5명의 소녀들이 타고 있었다. 제일 연장자는 18세였다.

마침내 대만에 도착한 할머니가 끌려간 곳은 특공대의 출격 기지였다. 그들은 오키나와 주변에 있던 미국 함대를 폭격하기 위해 끊임 없이 출격했지만, 대부분 미리 잠복해 있던 미군의 요격기에 격추당해 함대까지는 아예 접근도 하지 못했다. 처음부터 성공확률 0에 가까운 작전이었던 것이다.

어느날 한 병사가 "비행기로 특공 작전하러 간다. 두 명이 타고 간다. 나는 21살이다. 며칠 지나면 죽으러 갈 것이다"고 말을 꺼냈다. 할머니가 "나도 데려가요"라고 애원하자, "안돼" 하면서 노래 하나를 가르쳐주었다. 할머니는 지금도 그 노래를 일본어로 곧잘 부른다."

"간코(艦攻=艦上攻撃機) 이륙하네 대만을 떠나네 금빛 은빛으로 파도치는 구름을 헤치고 배웅해주는 이는 아무도 없고 울어주는 사람은 도시코(이용수)뿐이라네.

간코 이륙하네 신죽을 떠나네 금빛 은빛으로 파도치는 구름을 헤치고 배웅해주는 이는 아무도 없고 울어주는 사람은 이 아이(이용수)뿐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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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언하는 이용수 할머니(왼쪽열 중앙)
결국 그 병사와 할머니는 이틀 동안 같이 지내게 됐다. 그리고 병사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세면도구를 챙겨주면서 이렇게 다짐했다. "도시코 숨어 있어라. 내가 죽으면 하나님이 되어 너를 엄마 곁으로 데려다 줄게. 엄마 가슴에 안겨줄테니 도시코 죽지마. 그러니 꼭 숨어 있어라."

이 말을 남기고 떠난 그를 할머니는 눈물로 배웅했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잠시 후, 할머니가 있던 기지가 공습을 당해 숙소에 폭탄이 떨어졌다. 할머니는 지하 방공호에 몸을 피했기에 무사했지만, 그녀를 숨겨준 여성은 사망했다.

어느날 중국인이라는 남자가 찾아와 "전쟁은 끝났다. 더이상 이런 곳에 머물면 안돼"라며 할머니들을 수용소로 데려갔다. 그후 할머니들은 모두 해방되어 다시 고국 땅을 밟게 되었다고 한다.

이용수 할머니는 "위안부 피해자가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역사적 진상 규명과 진정성 있는 사죄"라며 "도쿄 한복판에 소녀상을 세워 자신들의 조상이 우리에게 저지른 만행을 후세 사람들이 보고 기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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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앞열 중앙)와 함께
그런데 일본인의 "마음으로부터의 반성과 진정성 있는 사과를 기대하며" 세워진 소녀상이 오히려 재일동포들에게 또 다른 고통을 안겨주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어, 금후 문재인 정부가 풀어야 할 난제의 하나로 남게 되었다. 재일본대한민국민단은 "한일관계의 악화에 따른 가장 큰 피해자는 우리 재일동포"라며 2015년 대국민호소문을 다음과 같이 전면 광고한 바 있다.

1.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같이 일제의 식민지 통치의 희생자이면서 일본에서 정착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 재일동포들이지만, 외교 교섭에 있어서 일방적인 승리는 있을 수 없는 만큼 지난 24년간 양국간 현안이었던 이 문제를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최선의 합의를 이룩한 본국 정부의 고충을 이해하고 이를 지지한다.

2. 금번 합의가 피해자들의 입장에서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과거 어느 정부도 하지 못했던 일본 정부의 책임 인정 등 결과를 이끌어낸 만큼, 합의에 대한 내부 분열로 영원히 미제(未濟)로 남기기보다는 금후 일본의 약속이행 여부를 지켜보면서 대승적 견지에서 합의안 수용을 본국 국민들에게 호소한다.

3. 일본 정부는 양국 간 합의사항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이행하여 고령의 피해자들이 하루라도 빨리 명예와 존엄을 회복하고 과거의 상처를 조금이라도 치유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할 것과 아울러 이 비참한 역사를 후세대까지 잊지 않도록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한다.

4. 지난 수년간 어려웠던 한일관계로 인해 재일동포의 생계가 큰 타격을 받고 생활의 터전인 동경 신오쿠보 거리를 비롯한 일본 각지에서 혐한(嫌韓) 시위가 넘쳐났던 사실을 상기하면서 금번 합의로 더 이상 양국관계가 경색되지 않고 미래지향적 관계로 발전해 나가기를 기대한다.

5. 우리 60만 재일동포들은 나라 잃은 설움을 뼈에 사무치게 겪어온 당사자들로서 양국 간 가교로서 역할을 충실히 이해하며 모국의 발전을 통한 진정한 극일(克日)의 날이 오기를 열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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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신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와 함께
【재한일본인회】위안부 문제를 발본색원할 궁극적 해결책은 무엇인가?
【서울숲 프랜드마켓】라일락 향기 가득한 5월, 다시 피우는 한일 우정의 꽃
【참 평화의 길 Ⅲ】역지사지(易地思之)
【남북분단과 통일】70년 포로 및 귀환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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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年06月15日

【한일교류】규슈 사가현(佐賀県) 나베시마(鍋島) 가문과 조선의 깊은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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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語
일본 규슈의 사가(佐賀) 하면 '나베시마 나오시게'(鍋島直茂, 1536〜1618)를 빼놓고 생각할 수 없다. 나베시마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가토 기요마사의 부장으로 조선을 침략했던 무장이다.

나오시게는 함경도까지 밀고올라가 조선의 왕자들을 붙잡는 등 그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 했으나 의병장 정문부(鄭文孚)와 싸워 크게 패했다. 그리고 당시 왜군을 격퇴시킨 공을 기려 세워졌던 북관대첩비(北關大捷碑)는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군이 전리품으로 가져다가 천황에게 바친 다음 야스쿠니 신사경내에 세워졌는데, 추후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총리의 합의에 따라 2006년 3월 1일 개성공단을 거쳐 100년만에 북한으로 반환되기도 했다.

한편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포로수는 10만〜15만 명에 달했으며 그들 중엔 기능인들이 다수 포함돼 있었다. 그들은 조선에서 천민 취급을 받았으나 일본에서는 사무라이와 같은 귀족 대접을 받으며 능력을 한껏 발휘해 각 분야에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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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나오시게가 데려온 도공 이삼평(李參平)이 개발한 명품도자기 '아리타야키(有田燒)'는 유럽 왕실과 귀족들의 인기가 높아 황금처럼 비싸게 거래되었다고 한다.

나오시게는 사가성을 구축해 히젠국(肥前國)의 실권을 장악하고 사가번(나베시마번)의 기틀을 다졌다. 또한 도자기로 벌어들인 자금으로 제철소를 만들고 서양의 신무기를 구입하여, 도쿠가와 막부를 무너뜨리고 메이지유신을 성공시켰다. 또한 1882년 사가번 출신 오쿠마 시게노부(大隈重信)는 와세다 대학을 설립하여 대담하게 교육개혁을 추진하며 인재를 양성했다.

한편 아리타야키와 더불어 쌍벽을 이루었던 나베시마번의 명검 히젠도(肥前刀)는 무사들이 허리에 한번 차보는 것을 더없는 자랑으로 여겼던 것으로, 낭인 '도 가쓰아키(藤勝顕)'가 명성황후를 베었던 바로 그 검이며, 현재 후쿠오카현의 구시다(櫛田) 신사에 보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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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구시다 신사의 '구시'는 가락국 김수로왕이 강림한 구지봉(亀旨峰)의 '구지'에서 유래한다. 신사 경내에 있는 구시모리(櫛'森'=우두'머리') 신사나 구시마루(櫛'丸'=산'마루') 신사, 그리고 신사 주변을 '구시산(櫛山)'이라고 부르는 등 모두 구지봉을 지칭하고 있어, 이 일대가 제철기술을 가진 도래인들이 많이 살았던 신성한 땅이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이처럼 사가현의 나베시마 가문은 조선과는 끈질긴 인연을 갖고 있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 이은(李垠) 공의 비가 된 이방자(李方子) 여사도 바로 사가번주 나베시마 나오히로(鍋島直大)의 손녀이다. 이방자 여사는 지극히 어려운 생활 여건 속에서도 한평생 사회봉사에 온 정열을 쏟으며 '한국 장애인들의 어머니'로 존경받았다.

아래 그림은 이방자 여사의 초충도(草蟲圖)이다. 지구를 상징하는 땅 위에 활짝 만개한 개나리꽃은 일본을 상징하고, 이제 꽃망울이 맺힌 국화꽃은 한국을 상징한다. 60, 70년대 경제부흥을 이룩한 일본과 이제 막 피어나는 한국이 함께 어울려 잘 살아보자는 염원이 담겨져 있어, 평생 불우한 한국인을 위해 희생했던 이방자 여사의 사상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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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참회와 화해의 상징으로 세워진 후쿠오카 셋신원(節信院)의 자안(子安)관음상
【한일교류】홍릉봉향회·명성황후를 생각하는 모임, 구마모토 한일심포지엄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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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年06月11日

【한일교류】니카이 특사단, '한국 고아의 어머니' 윤학자 여사의 제2의 고향 '목포 공생원' 방문 기념식수

日本語
일본 아베 총리 특사로 문재인 대통령을 예방하기 위해 방한 중인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일본 자민당 간사장 일행이 11일 목포 공생원을 방문해 기념식수를 했다.

그림 같이 아름다운 서해 바다의 작은 섬들을 바라다보는 유달산 중턱에 자리잡은 공생원은 1928년 '거지대장'으로 불렸던 기독교 전도사 윤치호가 부모 잃은 7명의 아이들과 같이 생활을 한 것이 그 계기였다. 조선총독부 관리의 외동딸로 태어나 아버지를 따라 목포로 온 일본 고치(高知)현 출신의 다우치 치즈코(田内千鶴子, 한국명 윤학자)는 윤치호의 열정에 반해 1938년 결혼하게 된다.

그후 윤 여사는 일본의 패전으로 일본인 모두가 서둘러 떠나가는 와중에도 마지막까지 목포를 지키며, 한국전쟁 중 남편이 행방불명된 후에도 열과 성을 다해 3000여 명의 고아들을 보살펴 한국과 일본 정부로부터 훈장을 수여받았다.

1968년 10월 31일 생일날 윤 여사가 조용히 숨을 거두자 목포시민장으로 치러진 장례식에는 무려 3만 여명의 조문객이 찾아와 애도했다. '한국 고아의 어머니'라 불리며 민족을 뛰어넘어 인류애를 실천한 윤 여사의 스토리는 한일 합작 다큐멘터리영화 '사랑의 묵시록'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으며, 1999년 일본문화해제금지 허가 제1호로 전국 상영되어 한류붐의 원조가 되었다.

이와 같은 윤 여사의 선행이 일본 방송에서 소개되자 당시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는 "이제부터 한일 문화교류의 출발점이 됐다"며 매화의 명소로 알려진 자신의 고향 군마현(群馬縣)의 매화나무 20여 그루를 공생원에 보내기로 했다.

오부치 총리라 하면 한국에선 '주변국을 잘 배려했던 총리'란 이미지가 강하다. 그는 김대중 대통령과의 공동선언에서 "일본이 과거 한때 식민지 지배로 인해 한국민에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주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이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오늘날 공생원은 한국 사회복지 역사의 뿌리가 되었으며, 지금까지 4천 여명의 아이들을 돌봐 어엿한 사회의 일원으로 길러냈다. 11일 신안비치호텔에서 열린 환영회에서는 공생재활원과 공생원 아이들이 '고향의 봄' 등을 한국어와 일본어로 합창하며 360여 명의 특사단 일행을 국경 없는 동심의 세계로 이끌었다.

이어 현재 민간 차원에서 주친되고 있는 '세계고아의날' 제정을 위한 홍보 영상이 상영되고, 공생복지재단 윤기 회장, 박지원 의원, 니카이 간사장,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일본대사, 우기종 정무부지사, 박홍률 목포시장, 오자키 마사나오 고치현 지사, 니시모리 시오조 전남명예도민 등이 한일 우호를 새롭게 다짐하는 메시지를 전달해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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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회장
윤기 회장은 故가나야마 마사히데(金山政英) 주한일본대사는 “죽어서도 한일관계 발전을 지켜보고 싶다”는 유언을 남기고 그 뜻대로 한국 땅에 묻혔다며, 살아 생전 한일 우호의 상징인 이곳 목포로 일본대사관을 옮겨야 한다고까지 말했던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오늘의 영광은 지금까지 목포 시민들이 지켜준 덕분임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동안 한일 우호증진를 위해 앞장선 이낙연 전 전남지사가 윤 여사의 고향인 고치현을 방문해 "전남과 고치는 한 가족이다"며 뜨거운 인간애를 어필한 것처럼, "가족끼리 힘을 합친다면 어떤 일도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더불어 어머니 윤 여사의 평생 소원은 청소년들에게 직업을 갖게 하는 것이었다며, 유능한 젊은이들을 발굴해 세계로 나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주문했다.

박지원 의원은 자신의 고향 진도 왜덕산에 얽힌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왜덕산(倭德山)은 정유재란 때 명량해전에서 조선 수군에 몰살당한 일본군들의 시신이 묻혀 있는 곳으로, 마을 사람들이 일본군의 주검을 수습해 묻어줌으로써 왜군에게 덕을 쌓았다는 뜻에서 왜덕산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박 의원은 40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일본군의 후손들이 조상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왜덕산을 찾아 참배하는 발길이 몇 해째 계속 이어지고 있다면서, "일본인 모두가 한일 평화의 상징으로 떠오르고 있는 진도와 목포 공생원을 꼭 방문해 달라"고 당부했다.

니카이 간사장은 지난 2015년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이해 양국 간 민간 교류의 에피소드를 모은 소책자 발간을 외무성에 건의하여, 일본 전국 47개 지역과 20개 정령지정도시에서 모집된 수많은 에피소드 중 10개가 선정됐다면서, 윤학자 여사 스토리도 그 중 하나이며, 앞으로도 그와 같은 민간 차원의 교류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특사단 일행은 공생원에 들러 견학 후 기념식수를 마치고 평화의 상징인 300여개의 풍선을 날리며 한일 우호를 하늘 앞에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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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우호를 다짐하는 풍선날리기
【인물】'대한민국을 빛낸 위대한 인물 대상' 사회복지 역사를 세운 '마음의 가족' 윤기 이사장
【서적】'그때 그 일본인들' 한일 유전자를 뒤섞이게 한 인물들
【서적】사회복지 역사를 세운 실천현장의 인물들, '마음의 가족' 윤기 이사장 편
【고향의 집】다문화 공생의 모델 '고향의 집 도쿄' 상량식
【인물】'높은 뜻' 품고 국가의 장벽을 뛰어넘은 존 만지로, 사카모토 료마, 윤학자(다우치 지즈코)
【세계 고아의 날】UN '세계 고아의 날' 제정 서명운동에 동참하자
【재일동포】'세계 고아의 날' 제정 서명운동 발족식, '韓 고아의 어머니' 윤학자 여사의 뜻을 기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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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교류】니카이 특사단 방한 "한국과 일본은 대국! 협력의 시대를 함께 열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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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카이 도시히로 자민당 간사장(앞열 우측에서 네번째)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 방문
日本語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특사 자격으로 한국을 방문한 일본 자민당의 니카이 도시히로 간사장이 10일 목포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을 방문했다. 니카이 씨는 전 전남지사 이낙연 총리, 박지원 국민의당 전 대표와 오랜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형제 같은 한국 친구'라며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을 비롯해 박지원 국회의원, 강동석 전 건설교통부 장관, 허남식 전 부산시장 등 한국 친구들과의 인연을 소개할 정도로 자민당을 대표하는 '친한파' 의원이기도 하다.

2003년 방한한 니카이 씨는 청와대에서 박지원 대통령 비서실장을 만나 재일 외국인의 참정권에 대해 "실현을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고 말했을 정도다. 이때 니카이 씨는 한국의 국립묘지 현충원에서 참배한 일을 소개하며 야스쿠니신사를 대체할 새로운 추도 시설에 대해서 "필요성을 재차 인식했다. 실현을 위해 노력하겠다"라고 언급했다.

2009년 일본이 전격적으로 여수세계박람회 참가를 표명했을 때도 그 중심인물은 바로 니카이 씨였다. 당시 독도 영유권 문제로 한일 양국이 외교적으로 대립하고 있었다. 경제산업상이었던 니카이 씨는 국회의원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 여수세계박람회 참가를 호소했다고 한다.

"한국이 제작한 여수세계박람회의 홍보지에 독도가 한국의 영토로 기재되어 있다는 이유로 의원들의 불만이 많은 것 같다. 지도를 보면 독도가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조그만 섬이 아닌가. 요란하게 호들갑떨지 말고 이웃나라 행사가 성공할 수 있도록 힘을 모으자"고 설득했다.

한편,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사과한 '고노 담화'와 식민지 지배와 침략을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의 재검토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자민당 내에서 일기 시작해 한일관계의 새로운 불씨가 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대다수의 의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담화를 재검토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정치인들이 분쟁의 불씨를 찾아 불을 붙이는 짓을 해서는 안된다"고 단언한다.

이처럼 이웃나라와의 관계를 중시하는 니카이 씨를 '친한·친중파'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이웃나라와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정치인이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까. 30년 이상 정계에 몸담았지만, 남 흉내를 내거나 누구의 지시를 받고 정치를 한 적은 없다"고 충고한다.

또 한국의 중국 중시정책이 반한 감정을 조장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한국의 외교정책에 대해서 일본이 방해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일본, 한국, 중국의 협력과 우호는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고 훈계한다.

니카이 씨가 한국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1982년이었다. 당시 와카야마(和歌山)의 현의원이었던 니카이 씨는 고교 필드하키팀을 이끌고 친선 경기를 위해 대구와 서울을 방문했다. "학생들은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몸짓이나 손짓으로 의사소통하면며 빨리 친해졌다. 학생들은 그때 경험으로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한국이 좋다"고 얘기한다."

그때부터 민간교류의 중요성을 실감한 니카이 씨는 약 5500개 여행업체가 가맹돼 있는 전국여행업협회(ANTA)의 회장을 20년간 맡으면서 "문화 수준이 높은 한국과 일본은 대국이다. 대립과 증오를 극복하고 협력의 시대를 함께 열어 가자"고 강조해 왔다.

니카이 씨는 한일 우호의 상징으로서 김충선(金忠善) 장군을 꼽는다. 김충선 장군의 본명은 사야카(沙也可)이며, 임진왜란 때 조선으로 건너와 "싸울 명분이 없다"며 조선에 투항해 귀화한 일본인이다. 니카이 씨는 2010년 일본 민간단체가 와카야마현에 세운 김충선 장군의 기념비 건립에도 조력한 바 있으며 기념비에 한일 우호를 기리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그는 "한국의 정치인을 만나면 자주 김충선 장군에 대해서 애기한다. 한일 양국이 공감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 이해의 폭을 넓혀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니카이 씨는 11일 '목포공생원'을 찾아 기념 식수를 한 다음 저녁에는 한국방문위원회가 주최하는 '한일우호의 밤' 행사에 참석한다. 12〜13일 양일간 문재인 대통령을 예방해 아베 총리의 친서를 전달할 예정이다.
【한일교류】정세균 국회의장 방일, 고향의 집 도쿄 방문 및 재일동포와 간담회
【재한일본인모임】위안부 문제를 발본색원할 궁극적 해결책은 무엇인가?
【참 평화의 길 Ⅲ】역지사지(易地思之)
【BOAO】'일본보아오회' 발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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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年06月09日

【한일교류】정세균 국회의장 방일, 고향의 집 도쿄 방문 및 재일동포와 간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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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자 복지시설 '고향의 집 도쿄' 방문
'소녀상 - 헤이트스피치 유발' 우려

오시마 다다모리(大島理森) 중의원 의장의 요청으로 일본을 공식 방문한 정세균 국회의장이 6월 7일 재일동포 고령자 복지시설인 '고향의 집 도쿄'를 방문해 관계자들은 격려했다.

정 의장은 "고령사회를 먼저 맞이한 일본의 발전된 노인복지제도를 잘 배워 한국 어르신들을 더 잘 모실 수 있는 지혜를 찾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고향의 집' 은 사회복지법인 '마음의 가족' 윤기 이사장이 재일동포 노인들이 차별받지 않고 일본인과 공생할 수 있도록 다문화 공생 모델로 설립한 노인복지시설이다. '고향의 집 도쿄'는 일본내 다섯번째 시설로 작년 10월에 개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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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호텔 뉴오타니 도쿄에서 열린 '재일동포 초청 간담회'에서 정 의장은 "지난 5년 동안 재일동포나 일본에서 사업을 하는 기업인 입장으로서는 참으로 혹한기와도 같은 기간을 보내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을 꺼냈다.

그리고 "내년 '김대중-오부치선언' 20주년을 맞아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가 돼야겠다. 그러기 위해서 금년부터 준비해야 하며, 그런 관계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참석자들은 위안부 문제로 양국 관계가 얼어붙은 데 대한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일한교류한마당 권용대 사무국장은 "외교 공관 앞에 소녀상을 세워놓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품위를 지켜야 하는 것 아닌가. 법률적으로 위반 아닌가. 다른 데 세우면 될 것이 아닌가. 위안부 합의가 이뤄진 뒤에 왜 치사하게 소녀상을 부산 일본공관 앞에 세우느냐"며 목소리를 높혔다.

이어 박유식 민단 청년회장은 "위안부 합의 성사 문제는 어떻게 돼 가고 있나? 앞으로 다시 한번 헤이트스피치(재일동포 혐오발언)를 유발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 의장은 "대한민국 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양국 간 외교 현안으로 만들고 싶었다기보다는, 국민들의 요구를 외면할 수 없어 정부도 같이 한 측면이 있다"며 "지금은 민권이 관권보다 더 강한 시대가 됐다"고 대답했다.

이어 "이게 옳으냐 그르냐는 칼로 무 자르듯 딱 판단할 수 없다. 사람 생각이 다 다르고, 경우에 따라서는 피해를 주는 게 아니면 행동의 자유가 보장될 수 있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리고 "과거를 무시하고 모른 척 할 수는 없다. 따질 건 따지고 문제를 제기할 건 하되, 다른 현안에 대해서는 한일이 협력해야 할 사안들이 많다"면서 "요즘 말로 '투트랙 접근'으로 가야 하는 것이 아니겠나"라고 밝혔다.

'투트랙 접근'이란 대일 외교에 있어서 '역사 인식'과 '경제·안보'를 각각 별개 사안으로 취급하는 접근방식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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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한일본인모임】위안부 문제를 발본색원할 궁극적 해결책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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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年06月07日

【재한일본인회】위안부 문제를 발본색원할 궁극적 해결책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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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뉴스 김금산 대표 초청강연(6/6 파주성전)
日本語
1. 일본군과 위안부

1918년 일본군의 시베리아 출병 때 7개 사단 가운데 1개 사단이 성병에 걸려 전멸했다. 이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1931년 9월 만주사변 당시 군인 전용 공창가(公娼街)가 생긴 후로 일본군이 가는 곳곳마다 위안소가 설치됐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위안부의 수요가 증가해 위안부 모집이 조선으로까지 확대되기 시작했다. 초기의 위안부 모집은 광고 등을 통한 공개 모집이었으며, 이때까지는 조선 처녀에게 강제성을 띠지 않았다.

그후 신문이나 언론을 통한 광고 뿐만 아니라 납치, 인신매매, 직업 알선 등 다양한 방법으로 위안부를 모집했으며, 그 중 일부는 여성 근로자를 선발한다고 허위 광고를 내기도 했다. (미국 의회조사국(CRS) 보고서)

소개업자 뿐만 아니라 동네 반장과 경찰 등 행정조직을 이용한 동원도 늘어났다. 위안부 모집업자들은 먼저 마을 이장과 순사들을 매수해 협조를 구했다. 마을 이장이 투전판에서 돈을 많이 잃어 빚이 많은 사람을 알선하면, 모집업자가 돈을 주고 딸을 팔아달라고 권유하고 그 옆에서 일본 순사가 압력을 넣는 식이었다. (유곽의 역사, 2012)

1941년 태평양전쟁 발발로 동남아시아와 남태평양으로까지 일본군의 전선이 확대되자, 마침내 일본군은 위안부 차출에 강제력을 발동하기 시작했다. 관동군(關東軍)이 24만 명에서 75만 명으로 증원되고 조선 처녀 1만 명이 관동군 쪽으로 끌려가기도 했다. (불충신민, 2004) 대만 총독부와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지에서도 위안부가 강제로 차출되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독립운동가가 위안부 모집에 앞장서기도 했다. 수카르노는 일본군의 점령이 독립을 앞당기는 길이라고 여기고 일본군에 대한 협력과 일본군을 상대로 하는 인도네시아인 위안부 모집에도 앞장섰다. (천 가지 얼굴의 이슬람 그리고 나의 이슬람, 2009)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안부에 대한 수요를 다 채울 수 없게 되자, 이번에는 여자 정신대 근무령을 만들어 만 12세~40세의 독신녀를 정신대의 대상자로 규정했다. 이렇게 차출된 정신대에서 위안부가 충당되기도 했다. 본래 '정신대'는 군수공장에서 일하는 여성 근로자이며 '위안부'와는 그 성격이 다르다. (불충신민, 2004)

일본군이 정복한 동남아시아에서 위안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1942년 일본인 주선인들이 한국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많은 돈, 가족의 부채를 없앨 기회, 쉬운 일' 등을 조건으로, 가난한 집안의 소녀들을 상대로 일본 등 공장 근로자로 알선한다고 속여 선금을 주고 데려갔다. (한국민족운동사론, 2008)

경성부 방산초등학교에서는 도덕 점수가 뛰어난 12살 여학생을 선발해 도쿄를 구경시켜 준다고 속여 6명을 정신대로 보냈고, 소학교 정신대 모집을 학교별로 배정하여 100명을 차출해 서울역에서 보냈다고 한다. 어린 여학생들에게 정신대에 가면 배고픈 일도 없고, 1주일에 한 번씩 영화를 볼 수 있고, 학교도 다닐 수도 있으며, 군수공장 같은 데서 일하면 돈도 벌 수 있다고 속여 데려갔다.(한누리미디어, 2004)

2. 위안부 문제와 한일관계

1993년 8월 일본 고노 관방장관은 "위안부의 모집에 대해서는 군의 요청을 받은 업자가 주로 이를 담당했으나 그 경우도 감언, 강압에 의거하는 등 본인들의 의사에 반하여 모집된 사례들도 많았으며, 관헌이 직접 이에 가담한 일도 있었다"고 공식 발표했다.

1995년 일본 시민단체들이 국민기금을 모아 위안부 피해 여성들에게 속죄금을 지급하는 아시아여성기금을 발족했으나, 한국은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이 분명치 않다며 수령을 거부했다.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등 위안부 관련 민간단체들이 일본 정부에게 법적 배상을 요구하면서 한국 외교부와 마찰을 빚기 시작했다. 위안부 피해자인 양금모씨는 한일기본조약 배상금으로 성장한 포스코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으나 패소했다.

한편 위안부 피해자인 심미자(2008년 사망) 씨 등은 "우리는 돈을 바라지 않는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명예다. 우리를 이용하여 국제적인 모금 활동을 하는 것은 우리를 두 번 모욕주는 행위"라고 비판하고, 2004년 기독교계 정대협과 불교계(조계종) ‘나눔의 집’을 상대로 '모금행위 및 시위동원 금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그리고 "우리 정부와 시민단체 등이 툭하면 위안부 할머니들을 내세워 일본을 비판하고 일본에게 배상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나, 정작 정부와 시민단체 등이 위안부 할머니에게 해준 일이 별로 없다. 오히려 일본인들이 위안부 할머니들의 건강과 소송문제, 또 장례식 등까지 세세한 부분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과 보살핌을 펴왔다"고 밝혔다.

2005년 한국 정부는 위안부 문제는 1965년 한일협정으로 해결되지 않았다고 입장을 밝히고, 2011년 헌재는 정부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서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고 결정함으로써 한일외교의 쟁점으로 부상했다.

2015년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이해, 위안부 문제를 "최종적·불가역적으로 해결"한다고 합의했으나,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우리 국민 대다수가 정서적으로 수용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재교섭의 의향을 피력함으로써 또다시 미궁에 빠지게 되었다.

3. 자각과 반성ㅡ한일 양국의 공동책임

2001년 한국의 한 조사에 따르면 일본인 모집업자에 의해 동원된 위안부는 16%인데 비해, 한국인 모집업자에 의해 동원된 여성은 29.4%였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일본인이 직접 동원한 경우에도 반드시 조선인들의 협조가 있었다고 한다. (민족과 페미니즘, 2003)

당시 위안부 모집에 앞장섰던 상당수의 지식인들은 기독교인이었으며, 많은 기독교 교단들은 일제가 강요하는 신사참배를 지지하고 위안부 모집과 전쟁물자 조달에 협조했다. (동아시아와 근대의 폭력1, 2001)

1938년 6월 이화여대의 김활란, 동아일보의 김성수, 조선일보의 방응모 등이 결성한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은 그 회원수가 무려 3만여 명에 달했다. 장면 전 총리가 간사를 맡고, 이광수, 최남선, 서정주, 모윤숙, 김동환 등의 작가들도 가세했다. 그들은 1939년 국민징용령이 공포되자 조선인을 일본의 탄광과 공장으로 보내는데 앞장섰으며, 자원입대와 일본군 위안부 모집에도 열을 올렸다.

1938년 9월 9일 조선 예수교장로회 총회에서 신사참배가 가결되고, 1943년 한국 기독교가 일본 기독교에 편입됨으로써 신앙의 주체성과 정절을 모두 잃고 말았다. 기독교 교단들은 위안부 모집과 전쟁물자 조달에 협조했으며(기독교 신학, 김균진), 청년들은 전쟁터로, 소녀들은 위안부로, 장년들은 탄광과 공장으로 끌려갔다.

이처럼 국가 공권력이 없어진 상황에서 가장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순진한 일반 백성들 뿐이었다. 그들에게는 교육의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으며,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한 행동은 감히 꿈도 꾸지 못했다. 그러므로 당시 국가를 이끌었던 지도층들에게 모든 책임을 물어야 한다.

따라서 위안부의 진상을 규명하고 일본 정부에게 그 책임을 물어야 마땅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들에게 동조한 조선인들의 책임도 똑같이 물어야 한다. 최근 양심선언하는 일본인들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비해, 강제동원과 인신매매를 주도하여 여성들의 인권을 짓밟은 한국인들은 한 명도 과거의 잘못을 고백하거나 처벌받지도 않았다. 

먼저 우리 스스로 지난날의 문제를 자각하고 근본적으로 반성할 때 비로소 위안부 문제에 대한 새로운 해결책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4. 원수에서 형제자매로ㅡ여성자매결연

통일교회 문선명 총재는 30만명의 위안부가 있었다고 언급하고, 1994년부터 1998년까지 세계평화여성연합(총재 한학자) 주최로 국제적인 여성자매결연을 추진한 바 있다. '한일 여성 32만 자매결연'을 비롯해, 일본-한국, 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 한국-대만, 한국-태국 등의 여성자매결연이 맺어졌다.

여성자매결연은 그 취지문에서 밝힌 바와 같이, 여성들이 '남성들에 의해 저질러진' 국가간의 증오와 갈등을 극복하고, '원수가 아닌 형제자매로서' 과거를 청산하여 '새로운 역사를 창조한다'는 취지였다. 그런 뜻에서 '6일째 창조된 인간과 6천년 인류역사를 되찾기 위해' 6년에 걸쳐 국제 자매결연이 추진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문선명 총재는 한국 기독교를 대신해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함으로써 위안부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한 것이다. 일본의 과오를 청산하기 위해 한국땅을 찾아온 일본 대표 16만명 여성지도자들은 한국 여성지도자 16만명과 함께 '남북통일과 아시아•세계평화를 위해 목숨을 다 바쳐 사생결단할 것'을 '하늘 앞에 서약'했다. 16세 소녀 유관순의 화신체로 부활하는 순간이었다.

결론적으로 여성자매결연은 소극적•과거지향적이 아닌 적극적•미래지향적인 대안이며, 일시적이 아닌 항구적인 해법으로서, 위안부 문제의 근본을 파헤쳐 발본색원한 궁극적인 해결책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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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만명 일본 여성지도자 교육(위) 한일여성자매결연(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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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ultural Highway at 07:44| Comment(0) | TrackBack(0) | 한일교류 | 更新情報をチェックす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