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아이들의 학교'】왜 조선학교만 차별화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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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찬유 감독
日本語
논픽션 작가 고찬유 감독이 조선학교의 역사와 현황을 그린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 '아이들의 학교 100년의 차별 - 그 투쟁의 기억' 상영회가 11월 30일 K's Cinema(도쿄·신주쿠)에서 열렸다.

조선학교는 과거 일본의 식민지 정책으로 조선어 교육이 금지되고 일본어를 강요당한 코리안이 전후 일본에서 조선인 아이들에게 민족의 언어와 문화를 가르치기 위해 '전국국어강습소'를 설립하여 조선학교로 발전시킨 이래 약 70년의 역사를 걸어왔다.

이후 재일조선인은 어린이들의 꿈을 기르기 위해 유치원에서 대학에 이르기까지 세계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민족교육 사업을 실시하여 1948년 일본 전역에 556개의 조선학교를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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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가운데 연합국총사령부(GHQ)와 일본 정부는 사회주의 세력의 확장을 견제하기 위하여 '재일본조선인연맹(조련)'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이를 배경으로 1948년 1월 14일 '조선학교 폐쇄령'이 내려졌다.

이 조치에 격렬하게 저항한 재일조선인들은 4월 24일 효고현 1만 5천 동포들이 지사로부터 '양해'를 얻어냄으로써 민족교육을 인정받는 쾌거를 이루었다. 그런데 그날 밤 효고현 일대에 GHQ의 비상사태가 선포되고 투쟁을 주도한 재일조선인이 대대적으로 검거되었다.

이틀 후 이에 항의하는 오사카 동포들이 오사카 공원에서 펼친 시위에서 16살 김태일 소년이 총격으로 사망하고 동포 3천명이 검거되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일본정부는 한발 물러서 '각서'를 교환하여 '조선학교의 자주적 교육'을 인정하기에 이르렀으니 이것이 이른바 '4.24 교육투쟁'이다.

이후 1949년 GHQ는 조련을 강제해산한 뒤 '학교 폐쇄령(92개교)'과 '개편령(245개)'을 발령하여 조선학교를 폐쇄·해산함으로써 수많은 동포 어린이들이 일본 학교로 전학을 강요당했다.

고찬유 감독은 올해 제2차 조선학교 폐쇄령이 내려진지 70년을 맞이하여 일본 정부가 2010년부터 실시한 고교무상화 제도에서 조선학교를 배제하고 아직도 차별을 계속하고 있는 어리석음을 지적하기 위해 본작의 제작을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지금 '우리학교'(조선학교)는 강한 역풍을 맞고 있다. 일본 정부가 고교무상화 제도에서 '우리학교'를 배제한 후로 지방자치단체들도 속속 보조금을 중단했다. 이 영화는 재일코리안과 재외동포의 상황을 비교하기 위해 중국 조선족, 재미 한국인, 구소련 고려인의 실태를 취재한 역사적 자료와 증언을 토대로 '우리학교'의 진실을 부각시키고자 노력한 작품이다.

올해 1월 오사카시에서 개봉된 이래 입석까지 꽉 찰 정도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이번 작품은 현재 일본 국내 뿐만 아니라 미국, 독일, 중국 등지에서도 상영 협력 제안을 받고 있어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한국어와 영어 버전을 제작해 국제사회의 여론을 환기시켜갈 계획이다.

고 감독이 해외 상영에 집착하는 이유 중 하나는 현재 조선학교가 겪고 있는 고통은 재일한국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재일외국인에 공통되는 보편적 인권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본 내 외국인이 점점 더 늘어나는 추세 속에서 다민족 다문화 공생시대에 상응하는 교육제도를 확립하는 일이 시급한 과제로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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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감독은 영화 속에서 조선학교의 동아리 활동이나 운동회 등 있는 그대로의 소박한 풍경을 소개함으로써 조선학교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친숙해질 수 있도록 섬세하게 배려했다. 나아가서는 가능하면 실제로 조선학교를 방문해 아이들과 접촉하면서 조선학교의 교육이 어떤 것인지 관심을 가져주기를 어필하고 있다.

무상화 제도 설계에 관여했던 마에카와 기헤이 전 문부과학성 사무차관은 이 영화에 출연하여 조선학교가 고교무상화 제도에서 제외되는 현상에 대해 "왜 조선학교만 차별화되어 있는가"라는 의문을 던지며 '관제 헤이트(혐오)'라고 지적한다.

2018년 8월 제네바의 유엔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일본의 협약 이행보고서를 심사한 뒤 "코리안 학생들이 차별 없는 평등한 교육의 기회를 갖도록 보장하기 위해 고등학교 취학 지원금에 대해 '조선학교'가 불공평한 취급을 받지 않도록 당사국이 보장해야 한다"는 권고안을 발표했다. 즉, 조선학교를 무상화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일본 정부의 정책을 수정하도록 요구한 것이다.

PicsArt_12-07-01.01.39.jpg왼쪽부터 고찬유 감독, 아시아뉴스 김금산 대표, 지구인 정충자 대표. 도쿄 이께부쿠로(12/1)

고찬유(高賛侑) 감독 프로필

1947년 오사카 출생. 조선대학 졸업. 1983년 이후 정보지 '상봉' '미래' 편집장. 1999년 이후 논픽션 작가. 대학 비상근 강사. 2015년 '라이프영상워크' 대표. 재일·재외동포의 역사적 증언 영상 기록 다수. 부락해방문학상 수상. 저서로는 '미국 코리아타운' '르포 재일외국인' 등 다수.

'아이들의 학교' 감상문

〜이노우에 케이코〜

일본에는 조총련과 민단으로 나눠진 재일동포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분들이 어떤 사연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지 과연 일본 국민의 몇 퍼센트가 알고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나 또한 부끄럽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잘 몰랐던 사람 중 한 사람이었다.

알고 보니 보험 가입, 공단주택 입주, 국립대 입학, 공무원·국회의원·변호사 채용 등 일본인이라면 차별받지 않는 차별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취업, 결혼이라는 인생에서 가장 큰 일에 이르기까지 차별과 편견이 아직도 잔존하고 있다. 재일동포 1세 때부터 많은 희생의 대가를 치르면서 하나 하나 타파해왔다.

'정체성' 문제도 중요하다. 일본에 살고 있지만 일본인이 아니라고 차별받고, 한국에 가도 한국 사람이 아니라고 말한다. 붕 떠 있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나라도 없다. 최근에는 일본인으로 귀화하는 재일동포들도 많다고 들었다.

그런 와중에서도 이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정체성'을 지키려는 분들이다. 차별과 규제를 받으면서도 그에 굴하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에 감동했다. 유치원 시절부터 줄곧 함께 생활한 탓인지 결속력도 강하고 서로 사정을 공유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들이 엿보였다.

'어머니'들의 파워가 느껴졌다.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는 운동회 때 가족들과 이웃들이 모여 함께 즐겼는데, 언젠가부터 평일 열리는 체육 수업의 연장선처럼 학생들만 모이는 황량한 모습으로 변했다. 그런데 이 학교의 운동회를 보고 깜짝 놀랐다. 활기에 넘치는 연대감이 있었다. 축구, 복싱, 연주부의 수준도 상당히 높았다. 아이들이 자기 나름대로 재능을 충분히 발휘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인권문제가 다루어지게 된 현재,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고 주장하는 일은 당연하고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다.

사람들은 각자 사정을 안고 살아간다. 그 사정을 알 때 비로소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보고 느끼고 여론에 영향을 미치길 기대하는 바이다.

〜히가 쿠미코〜

다큐멘터리 '아이들의 학교'를 본 뒤 느낀 점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사랑한다'는 표현이다. 하나님이 하늘이 이 분들을 너무나도 '사랑한다'는 느낌이었다.

그토록 오랜 역사를 통해 민족성을 지켜온 아름답고 훌륭한 민족성과 한글을 지켜온 분들을 하늘은 정말로 '사랑한다'고 느꼈다.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필요한 언어를 빼앗기고 민족 문화를 배우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 그 얼마나 억울하고 슬픈 세월이었을까?

'4.24 교육투쟁' 당시 아직 10대 소년이었던 김태일 청년이 총살되는 사건! 총부리를 노려보며 "쏴라, 쏴 봐라"라고 외치는 사생결단의 투쟁 ... 얼마나 가슴 아파하며 고통을 감내해왔던가. 그런 생각에 나는 진심으로 응원하고 또 응원하고 싶은 마음에 절로 양손을 가슴에 모았다.

실은 나는 오키나와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이다. 오키나와도 예전에는 하나의 독립국이었다. 그러다가 강제로 일본화되었다. 언어를 빼앗기고 계속해서 죽임을 당하는 가운데 어쩔 수 없이 일본화되었다고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여러분들의 고통스럽고 분한 심정이 조금이나마 내 핏속에 전해져온 느낌이다.

나는 그 분들과는 반대로 한국에 시집온 일본인이라는 입장이다. 그런데 하늘을 모시고 사는 나라, 한국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 느낀 점은 내 조상을 찾았다는 직감이었다. 그 점을 정말 실감나게 느끼며 살고 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오랜 옛적 오키나와에는 이곳 한반도에서 건너간 분들이 많이 있었다고 한다. 오랜 역사, 수 십 세대를 거쳐 형성된 내 뿌리를 우연히 알게 된 것이다. 그런 사실을 피부로 느끼며 살고 있다. 내겐 너무나도 놀라운 사건이었다.

부디 여러분들은 나처럼 우회하지 말기 바랍니다. 용기를 잃지 말고 당당하게 살아가길 바랍니다. 그리고 언젠가 반드시 이 땅에 돌아오십시오. 일본에 그대로 살고 계셔도 상관없습니다. 마음은 자유이니까. 여러분들은 하늘이 사랑해 마지 않는 민족입니다. 그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하십시오. 마음 속 깊이 여러분들을 응원하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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