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치호 선생 탄신 110주년】너와 나 구별 없는 인류대가족 지향한 '공생공화국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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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복지의 선구자인 윤치호 선생 탄신 110주년을 기념하는 추모 행사가 18일 목포 신안비치호텔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윤병태 전남도정무부지사를 비롯하여 김영진 전 농림부장관, 김성이 전 보건복지가족부 장관, 김종식 목포시장, 윤소하 국회의원, 서상목 한국사회복지협회장, 김휴환 목포시의회회장, 오병인 공생복지재단 대표, 신승남 공생복지재단 이사장 등 500여명이 참석했다.

1부 추도예배에서는 러브플러스 합창단의 'You raise me up' 특송에 이어 '한 알의 밀알'이라는 제목으로 홍정길 목사가 "밀알은 땅에 떨어져 무수한 사람들에게 양식을 공급한다. 오늘은 바로 그런 삶을 살다 가신 분을 마음으로부터 추모하는 날"이라고 설파했다.


2부 기념식은 추도사와 축사, 추모곡, 공로패 증정(임동신·배광언 전 공생복지재단 이사장) 및 장기근속 직원 표창(6명), 거주인(300명) 및 직원(150명) 선물증정, 윤학자 예술봉사 공로패(주금자 전 수선화합창단 지휘자)·감사패(작곡가 김현옥 씨, 정두리 새싹회 이사장)·공로패(이토 이사오 일본유니벨재단 이사장, 최성균 미래복지경영회장) 증정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이어진 3부 축하회는 전남예술고 북퍼포먼스, 광주여성필하모닉 연주, 윤병길 교수와 김우성 씨의 축가, 정홍률·민유기 씨의 트럼펫·섹스폰 연주, 공생가족·직원들의 공생원가 제창 순으로 진행됐고, 마지막으로 4부에서는 일본 공익재단법인 유니벨재단 주최로 '제11회 전문직 육성·국제교류 세미나(14〜20일)'가 열렸다.


신승남 공생복지재단 이사장은 인사말에서 "한국전쟁 중에서도 400여명의 고아들을 돌봤던 윤치호 선생은 "이 아이들에게 더이상 고통을 안겨줘서는 안 된다. 길 잃을 어린양들의 보금자리로 공생원을 일궈나가는 일에 내 전 생애를 바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약속임과 동시에 내 평생의 사명이다"라고 기도했다"고 밝혔다.

신 이사장은 "한일 간의 막힌 담은 정치나 외교만으로 뚫을 수 없다. 그 답은 바로 윤치호 선생과 윤학자 여사의 사랑을 실천하는 데 있다. 우리는 그 정신을 전국화하고 세계화하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오늘날 윤치호 선생은 한국 사회복지의 선구자로서, 윤학자 여사는 한국 고아의 어머니로서 추앙받고 있으며, 아들 윤기 공생복지재단 회장은 국제적인 소셜워커로서 한일 간의 민간외교 사절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고 역설했다.

아버지 윤치호 선생의 '용기'에 감탄했고 어머니 윤학자 여사의 '겸손' 앞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고 말하는 윤기 회장은 최근 출간한 '캉통인생, 빈 그릇을 채우리라'에서 '윤치호·윤학자 정신'을 소개했다.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인류애를 실천한 두 분의 삶 속에서 작금의 한일관계를 푸는 열쇠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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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윤치호 정신'

"아버지는 수없이 많은 남의 자식들을 데려와 키우면서도 정작 자기 자식을 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친자식이 태어나면 고아들을 키우는 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아버지만큼 스케일이 큰 사람을 지금껏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아이들 먹을 거리를 구하러 잠시 다녀온다고 나가면 한 달이고 두 달이고 걸렸다. 돌아오는 길에 어려운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에게 있는 것을 털어주고, 그것도 모자라 옷까지 벗어주는 통에 항시 빈털터리였다.

'너'와 '나'가 없었고 모두를 가족으로 여겼다. 공생공화국의 대통령이었고 거지들의 대장이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12제자보다 열심히 전도하는 전도사였다. 소방차를 멈춰 세우고 '불 끄는 일보다 예수 믿는 일이 더 급하다'며 전도하다가 경찰서 신세를 지기도 했다.

아버지는 국적도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일본 여자를 며느리로 맞이할 수 없다며 식음을 전폐하고 반대하는 어머니의 눈물도 소용없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모두가 형제자매라는 신앙이 아버지의 몸에 베어 있었다. 우리들의 국적은 천국에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해방 후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신탁과 찬탁으로 서로 갈라져 으르렁거리며 싸웠다.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 어느 쪽도 아니었다. 아버지에게는 사상의 경계선 같은 것은 없었다. 굳이 사상이 있었다면 그것은 세상 사람들이 모두 잘 사는 것이었다. 고아들에게 잘 먹여주고 잘 입혀서 나중에 사회의 일꾼으로 만드는 것이 아버지의 사상이었다.

그러다 6.25전쟁이 터졌고 누구의 안전도 장담할 수 없었다. 공산군은 기독교인도 싫어하고 일본인도 싫어하니 안전을 장담하지 못한다고 마을 사람들이 걱정했다. 아버지가 돌아왔다는 소문을 듣고 경찰서장이 찾아와 '사람들을 마구 죽인다고 들었다'며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죄 없는 사람 죽일 리가 없소'라고 태연하게 대답했다. 아버지는 언제나 그랬다. 아무리 큰 일이 생겨도 늘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처했다.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것도 무섭고 대단할 게 없었던 아버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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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관계 푸는 열쇠 '윤학자 정신'

"무남독녀 외동딸인 어머니는 엄한 교육을 받았다. 사물을 보는 법, 말하는 법, 식사할 때의 예절, 남의 말을 들을 때 갖추어야 할 몸가짐 등 모든 면에서 겸손한 태도를 배운 것이다. 몸과 마음의 관계를 중시하면서도 개성과 자유를 귀하게 생각하셨다. 타고난 재능이 많아 바느질이나 자수는 물론이고 서예, 그림, 음악에 이르기까지 솜씨와 재주가 뛰어났다.

그 당시 일본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을 천민시하며 차별했다. 어머니는 같은 사람을 차별하는 일본 사람들을 바라보며 왠지 부끄러워졌다.

어머니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말씀 그대로 실천하신 분이었다. 어머니의 입은 바위처럼 참으로 무거웠다. 결코 한쪽으로 기우는 법이 없이 중심이 있었고, 흐트러진 자세를 본 적이 없다. 언제나 일찍 일어나 머리를 잘 정리했고, 아프단 말은 좀처럼 하지 않았다. 그리고 거짓말을 못했다. 그것이 어머니의 천품이었다.

어머니는 아이들에게도 존댓말을 쓰셨다. 잘 보고, 듣고, 조용하게 생각하셨다. 온화한 표정으로 남에게 무엇 하나 요구하지 않았고, 손수 궂은 일을 먼저 하시는 성품이었다. 사시는 모습 자체가 감동이었고 교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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