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年07月16日

【후쿠다 유키야스 칼럼】문재인 좌익정권의 동향과 한국 개혁을 위한 제언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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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위대한 한국 건국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
1. 일반론으로서 한국이 위대한 나라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 개인을 놓고 생각해 보기로 하자. 자신이 친구로부터 학대를 받고 있다고 가정하자. 무시당하고 있다고 하자. 이와 같은 굴욕적인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그러려면 자기자신이 먼저 강해져 존경받는 사람이 돼야 한다. 그러면 괴로운 일들도 다 초월할 수 있게 된다.

2. 국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외국으로부터 무시당하고 침략을 받은 경우도 개인의 경우와 마찬가지이다. 먼저 나라의 경제력과 방위력, 외교력을 튼튼히 다져야 한다. 두말할 필요없이 이것은 누구나 다 아는 상식이다.

3. 왜 대일 감정이 나쁜가?

(1) 고대부터 도쿠가와 시대까지

고대에는 많은 조선인들이 일본으로 건너와 에조(蝦夷) 등 원주민들을 정복하고 독립국가로서 일본을 건국했다.

그후 명나라로부터 들어오는 기독교 세력을 두려워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명나라를 정복하기 위해 조선을 침략했다. 도쿠가와 시대에 이르러 이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조선통신사 외교를 통해 조일관계는 다시 회복됐다.

(2) 도쿠가와 후기 = 이씨 조선 말기 = 메이지 초기의 조일관계

도쿠가와 후기 = 이씨 조선 말기 = 메이지 초기에 있어서 서양 제국들과의 국교수립 과정에서 보인 조선과 일본의 대응은 엄연히 달랐다. 일본은 개국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 반면에 조선은 쇄국정책을 견지했으며 결국 그 때문에 갈등이 불거졌다. 일본은 부국강병 정책으로 근대 국가로 성장했고 해를 거듭할수록 서구문명화되었다.

(3) 조선국의 악정

조선은 서양을 멸시하고 기존 체제를 고수했다. 그 결과 경제는 정체되고 군대도 약한 약소국으로 전락했다. 가난했기 때문에 정부나 왕실은 자금난에 시달렸다. 결국 삼림벌채권, 철도부설권, 해산물채취권, 광물채취권 등을 중국, 러시아, 영국, 독일에 팔아넘겨 어느정도 자금을 확보했지만, 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일차적으로 왕실에 그 책임을 물어야 하고 다음은 무능한 정부다.

그런데 조선에는 이와 같은 간단한 이론만으로 선악을 논할 수 없는 사회제도가 존재했다. 유교의 전통을 바탕으로 왕권을 정점으로 하는 반석 같은 지배구조가 바로 그것이다. 그 아래 본관, 족보 등으로 엮어진 일족들이 왕실 관료와 정부 관료, 지방 관료의 대부분을 지배하며 이권을 탐하고 권력을 독점하고 있었다. 간단히 무너지지 않는 철옹성 같은 지배구조였다. 반대파들은 유배나 숙청 등으로 완전히 말살되었다. 국민들의 80%는 권리를 주장할 수 없는 노예나 다름없었다. 그들은 백정이라 불렸다. 이와 같이 비정상적인 나라였던 것이다. 이처럼 철옹성 같이 폐쇄된 국가를 스스로 개혁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왕실과 정부가 자금난을 해결하기 위해 외국에 각종 이권을 팔아넘기자 서양제국들은 이권을 쟁취하기 위해 벌떼처럼 몰려들었다. 조선 스스로 독립국가이기를 포기하고 나라 자원들을 팔았먹었던 것이다. 이런 사실들을 한국과 북조선의 학생들에게 바르게 가르쳐줘야 한다.

(4) 보호국이 된 경위

일본은 착실히 근대화의 길을 걷고 있었지만 아직 미약했기 때문에 당시 군사 대국이었던 러시아에게 홋카이도와 대마도를 점령당해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한편, 당시 한반도는 가난한데다 군대도 약한 상황에서 정치는 어수선했고 세계의 분쟁 지역이었다. 당시 선진 제국이었던 러시아, 미국, 영국 등은 합의에 따라 일본에게 조선을 지배하도록 했다. 그 당시에는 세계적으로 식민주의, 제국주의가 국제법상 인정되던 시절이었다. 말하자면 약육강식의 시대였던 것이다. 일본 자체도 러시아 제국의 위협에 노출돼 있었고,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뒤에야 러시아의 식민지를 모면했던 것이다. 일본은 민관이 거국적으로 하나돼 부국강병에 매진했기 때문에 식민지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천황도 일본 정부 요인들도 일본의 각종 이권들을 외국에 팔아넘기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았다. 그 반면에 조선은 왕궁이 앞장서서 그렇게 했다. 왕비 민비는 막대한 이권을 팔아넘겨 나라가 휘청거렸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당시 약소국이었던 조선이 전쟁터로 화했기 때문에 선진국들의 합의에 따라 일본이 조선을 통치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대일 감정이 악화된 원인이 되었다. 이와 같은 사실을 놓고 볼 때 일본의 지배를 받게 된 근본원인은 바로 조선 자체내에 있었던 것이다. 이런 말을 하면 조선 사람들로부터 맹렬한 비판과 공격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오늘날 당면한 한일간의 갈등 문제를 해결하려면 원점에서부터 다시 출발할 수밖에 없다. 서로 자기부정에서부터 출발한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있어야 가능한 알이다. 하지만 언젠가 누군가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다. 객관적인 사실들을 직시할 수 있는 한국인, 조선인, 일본인 지식인이라면 이해할 수 있으리라.

(5) 일본이 조선을 보호국으로 삼았을 당시의 상황

그런데 일본이 조선국을 보호국으로 삼했을 당시 방법적인 측면에서 도를 넘었다. 금후 역사적인 자료들을 자세히 검토하고 원문들을 철저히 검증할 필요가 있다. 당시 덕수궁이 바로 그 무대였다.

조선에게 있어서 1905년 11월 이토 히로부미를 위시한 일본 군부의 압력에 굴복하고 을사보호조약을 체결해 외교권을 박탈당하고 일본의 보호국이 된 것은 죽음 그 이상의 굴욕적인 사건이었다. 그런 면에서 한국인이나 조선인이 일본을 미워하는 것도 어떤 면에서 당연하다. 당시 군중들이 궁궐을 둘러싸고 거세게 항의하자 군대가 출동했다. 그때 조약에 서명했던 다섯 명의 장관은 을사오적로 규정되었고 오늘날에도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 후손들은 법적으로 재산을 몰수당했다. 그 만큼 일본에 대한 한맺힌 악감정이 있다. 이것이 전후 한일관계의 출발점이었다. 약육강식의 식민지시대에 만일 일본이 아니었더라면 조선은 그때 러시아령이 되었을 것이라고 영국의 맥켄지가 지적한 바 있다. 만일 러시아령이 되었다면 제2의 몽골이 되었을 것이다. 역사도 문화도 다 파괴되고 나라마저 빼앗겼을지도 모른다.

4. 증오로 가득한 대일 감정

한국인 조선인의 일본에 대한 감정은 다른 나라에 대한 감정에 비해 유독 심한 데가 있다. 증오가 그 근저에 깔려 있고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가. 일본의 불상을 훔치고 야스쿠니 신사에 화약을 설치하고 일본내에서 절도와 사기 등이 놀라울 정도로 빈발하고 있다. '일본에게 무슨 짓을 해도 괜찮아. 반일은 무죄다.' 한국인•조선인들이 이런 말을 입에 담지는 않지만 속내는 그렇다고 본다. 오선화 씨의 표현을 빌리자면 '반일의 피가 끓는다'고 할 정도로 이것은 정말 골치아픈 문제다.

그러면 이런 답답한 상황을 어떻에 타개할 것인가? 일본인으로서 어떻게 해야 하며, 한국인•조선인으로서 어떻게 해야 알지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5. 한일 양국의 화해는 가능한가? 이 난국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이하 다섯 가지 측면에서 고찰해보자.

지금껏 일본은 한국에 사과하고 막대한 자금을 대고 기간 기술들을 제공하면서 묵묵히 한국의 발전에 기여해 왔다. 만일 일본이 아니었더라면 한국이 이렇게 성장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런 말을 하면 피가 역류할 정도로 화을 낼지 모른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전후 일본의 도움이 컸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제 이쯤해서 "그동안 일본은 잘 해주었다. 용서하자. 지난 일들은 다 잊자. 이제부터 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함께 노력하자"라는 제안을 한국인이 먼저 해주길 바란다.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주길 바란다. 큰 정치의 틀 속에서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줬으면 한다. 먼저 일본을 아는 지일파 사람들이 나서야 한다.

(1) 한국의 역사 교육 개혁, 특히 조선총독부 시대의 '7탈정책(七奪政策)'에 대한 검증과 교육 개선을 해야 한다.

(2) 공산주의 극복 정책

한국의 공산주의와 좌익의 역사를 밝혀야 한다.
한국의 공산주의와 좌익을 극복할 이론을 구축해야 한다.
한국의 전통적인 반공정책과 역사를 밝혀야 한다,
공산주의자와 반일 세력이 한통속이 되어 반일•반미운동을 벌이고 있는 실정을 명백하게 밝혀야 한다.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문재인 씨가 대통령이 되었다는 사실을 밝히고, 문재인 정권을 비판함으로써 공산화의 길로 폭주하지 않도록 감시햬야 한다.

(3) 금후 아시아 자유•해방운동을 한일공동으로 추진한다.

한일이 주도적인 입장에서 동아시아의 자유와 해방을 위해 친미 기조의 자유반공 활동을 전개하지 않으면 안된다. 지금 그 때를 맞이했다. 그러면 한국은 위대해질 것이다. 그를 위해 금후의 행동 방침을 수립하지 않으면 안된다.

아시아의 자유와 해방을 위해 한일 우호협력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평화롭고 자유로운 아시아 건설을 위해 힘을 합친다면 한국인과 조선인의 일본에 대한 원한은 사라지고 서로 존경하게 될 것이다. 수십 년이 걸리더라도 참을성 있게 추진해나가야 한다.

(4) 한국은 세계에 통용될 수 있는 민주주의 정치 개혁을 실현해야 한다.

한국의 정치철학, 민주주의 이론, 민족주의론, 뿌리 깊은 반일주의와 사대주의의 폐해, 양반 지상주의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한 제언을 해야 한다. 경제자립을 통해 자력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자연과학의 기초를 착실히 다져 자연과학 분야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배출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5) 자유반공주의의 토대 위에 남북통일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남북통일이 왜 안 되는가? 지금은 냉전시대가 아니다. 배후에서 간섭하는 대국도 없다. 같은 민족끼리 얘기하면 될 일이다. 결국 민족성의 문제다. 사대주의, 의존 습성, 독립심 결핍, 구국 사상이 결여돼 있다. 처음부터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정신적이며 현실적인 지도자가 절실히 필요하다.

6 한일협력을 방해하는 세력은 누구인가?

(1) 오늘날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하고 체포하고 기소한 것을 전후 일관되게 한반도 공산화를 획책해온 종북 공산 세력이 노려왔던 목표였다. 하지만 한국의 자유보수반공 세력은 한치도 물러서서는 안된다. 치밀하게 준비하여 반격해야 한다.

(2) 70년대 북한의 공산 세력은 일본을 경유해 한국을 공산화하려 했다. 그 모체는 일본의 좌익 세력과 조총련이었다.

(3) 작금의 한국 공산화와 북한화 과정

◆일본의 좌익 세력 즉 '사민당의 후쿠시마 미즈호(福島瑞穂), 아사히신문, 반일성향 의원, 귀화한 의원들'을
통해 위안부와 강제노동을 쟁점화시켜, 한국내의 반일감정을 부추겼다.
◆한국은 전후 반일 교육을 철저히 해왔기 때문에 60세까지의 사람들을 위주로 세 살 버릇 여든가지 간다는 말처럼 반일 운동이 급속도로 번져갔다.
◆일본에서는 혐한 분위가가 일어났다. 지금 이와 같은 한일 분단 공작이 착착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공산주의자들이 목적한 대로 공작이 진행되고 있다.

7. 한국의 보수 세력들은 정권을 재탈환하기 위해 세력 확대를 도모해야 함은 당연하지만, 가장 시급히 한국의 좌경화 방지를 위해 다음 정책들이 실행하되도록 집여하게 압력을 행사해야 한다.

(1)반일 교육 개선
(2)일본의 파방법(破防法) 같은 법을 통한 공산 세력 규제

글을 마치면서

지금까지 거듭 언급한 바와 같이 오늘날 한반도는 큰 위기를 맞고 있다. 북한의 미사일 문제, 중국의 패권 압력, 러시아의 확대 진출 등이다. 그 와중에서 문재인 좌익 정권이 탄생했다. 어떻게 살아남을지 중차대한 문제이다. 문재인 좌익 정권이 미일과 거리를 둔다면 중국권에 흡수될 것이다. 한국 스스로가 주체적으로 국가의 나아갈 방향을 결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영광스러운 독립국으로서의 길을 걸어야 한다. 지금까지 대국들에게 농락당한 역사를 반복해서는 안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미국은 중국과 러시아에 비해 국민들이 자유라는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다. 일본도 같은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은 미국과 세계적인 전략을 공유하면서 일본과 동맹을 강화해 일본의 자금과 기술을 활용하여 아시아대륙의 자유•해방을 위해 공헌해아 한다. AIIB는 중국의 패권주의적 발상이다. 경계하지 않으면 안된다. 세계 각국도 예의 주시하고 있는 모습이다.

미국의 전략과 연동하면서 한일이 아시아의 해방을 위해 보조를 맞춰야 한다. 자유를 사랑하는 한국 국민들은 다음 정권을 잡기 위해 지금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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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ultural Highway at 08:55| Comment(0) | TrackBack(0) | 칼럼 | 更新情報をチェックす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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