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규호 칼럼】일본은 어떻게 53년간의 불평등조약을 극복하고 자주독립 국가가 되었나?

일본은 병자수호조약(1876년)보다 약 20년 앞선 1853년 미국의 페리제독이 이끄는 신식 군함에 놀라 손을 들고 불평등조약을 맺은 뒤로 서양의 모든 국가들과 불공정조약을 체결하여 식민지의 길을 걷게 된다.

그런 과정에서 일본의 젊은 청년들은 현실을 깨닫고 무일푼이었지만 서양 유럽으로 갔다. 우리도 익히 잘 아는 이토 히로부미, 도고 헤이하치로, 사이온지 기모치, 야마가타 아리토모 등 20대 젊은이들이다.

그들은 유럽에서 약 10년 동안 영국, 프랑스, 독일 등에서 신 지식, 과학, 군사, 기술을 제대로 그리고 확실히 배웠다. 이토 히로부미는 영국에서 국제법, 외교학을 10년 간, 사이온지 기모치는 프랑스에서 사회학을 같은 기간 철저히 공부했다. 이들이 1858년에 맺은 서양과의 불평등조약을 대등한 조약으로 수정, 자주독립 국가 일본으로 만든 것이다.

야마가타 아리토모는 당초 프랑스에서 나폴레옹 3세의 육군제도를 공부하다가, 프러시아가 보불전쟁에서 승리함에 따라 독일로 가서 다시 독일식 군대를 익혀, 세계 최강의 육군식 편제와 전술을 일본에 직도입하였다. 이후 청나라 60만 대군을 고작 10만 명의 신식 군대로 대파, 청일전쟁을 승리로 이끈다.

도고 헤이하치로는 영국 해군사관학교에 들어가 10년 간 장교 생활을 하면서 최강의 영국 해군의 전법을 제대로 배웠다. 이후 러일전쟁에서 서양의 전법에 더하여 이순신 전법을 활용하여 러시아 해군을 격멸시켰다.

이렇게 일본 젊은이들은 일본의 근대화에 박차를 가해 서양 제국과 맞설 정도로 국력을 회복하고, 1858년 불평등조약을 53년이 지난 1911년에 완전히 대등한 조약으로 변경, 자주독립 국가로 만들었다. 그리고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승리하여 동양에서 강대국으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PicsArt_07-05-07.20.35.jpg1871년 구미에 파견된 이와쿠라 사절단. 일본은 1958년 '안세이 5개국 조약'을 비롯한 불평등조약을 53년에 걸쳐 교섭, 치외법권 철폐(1894년)와 관세자주권 회복(1911년)에 성공함.
오늘날 일본은 한반도의 1.5배 정도 큰 영토이지만 예전에는 우리와 거의 비슷했다. 홋카이도는 본래 일본 땅이 아니라 거의 무주공산처럼 주인 없는 불모지였으나, 이후 개간해 일본 땅이 된 것이다.

다시 말해 조선과 똑같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 일본은 "정신만 차리면 살고 서양의 강대국처럼 될 수 있다는 희망 속에서 열심히 서양의 신식 문물을 제대로 배운 것이다. 그리고 대제국이었던 청나라, 러시아와 싸워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이겼다.

그러나 조선은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갈팡질팡하다가 망하고 말았다. 아직도 국토가 2분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백해무익한 보수니 진보니 이념 논쟁과 대결에 여념이 없다.
독일경제연구소(DIW)•전 유엔아시아지사(UN-ESCAP) 경제자문 황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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