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年05月16日

【진상을 밝힌다】일본 일각에서 주장하는 [이토 히로부미 제3자 저격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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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신조 2013/12/5
일본에서는 '테러리스트', 한국에서는 '독립운동가'로 여겨지는 안중근! 그가 '친한파'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과연 그가 암살한 것일까? 토사구팽으로 개죽음당한 것은 아닐까?

1909년 10월 26일 히로부미 암살 당일, 히로부미(암살된 당시 추밀원 의장)는 만주와 조선 문제를 놓고 러시아의 재무장관 블라디미르 코코체후과 회담하기 위해 하얼빈에 왔다. 오전 9시 차내에서 코코체후의 인사를 받은 후, 역 홈에서 러시아군의 사열을 받은 히로부미는 군중을 가장해 접근한 안중근이 발사한 총탄 3발을 맞고 약 30분 후에 사망했다.

그때 안중근은 '코레야 우라!(Корея! Ура!)'라고 러시아어로 크게 외쳤다. 그런데 히로부미의 시신에서 발견된 총탄과 총상이 일치하지 않는다! 히로부미의 급소를 명중시킨 총탄은 케네디를 암살했던 '마법의 탄환'과 같은 종류이므로 앞뒤가 안 맞다. 안중근이 범행 당시 소지하고 있던 총은 7연발 브라우닝 권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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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우닝 권총
안중근이 사용한 브라우닝 권총은 벨기에 FN사 제품으로, 권총의 일련번호(262336)에서 1906년 9월 8일 '쿤후토사'에 팔린 것으로 판명됐다. '쿤후토사'의 납품처는 러시아 육군이다. 안중근은 히로부미를 암살한 범인을 숨기기 위한 존재에 지나지 않았으며 진범은 러시아에 있다.

히로부미에 명중된 총알은 프랑스 기병대의 카빈총 탄환이었다. 브라우닝 권총은 카빈총 탄알을 쏠 수 없다. 히로부미의 수행원이었던 무로타 요시후미 귀족원 의원은 히로부미의 몸에서 나온 총알은 안중근이 썼던 브라우닝 7연발 권총이 아니라 프랑스 기마병 총이라고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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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빈총
또한 부검 결과, 히로부미에게 치명상을 입힌 총알의 탄도가 위에서 아래로 향하고 있다. 즉, 암살자는 위쪽에서 쏜 것이다. 안중근은 히로부미와 비슷한 정도의 키였고, 요시후미 의원의 증언에 따르면, 안중근은 조금 주저앉은 자세로 쐈다. 즉, 아래쪽에서 위쪽을 향해 쏜 것이다.

요시후미 의원은 "역내 2층 식당에서 프랑스 기병총으로 쏜 사람이 있다. ... 오른쪽 어깨에서 대각선 방향 아래로 쏘려면 2층에서 쏘는 방법 외에 없다. 거기는 격자 모양으로 되어 있어 아래쪽으로 쏘기에는 안성마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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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부미와 함께 플랫폼으로 걸어나온 러시아 재무장관 코코후초후는 총격 당시 히로부미 바로 옆에 있었지만 긁힌 자국 하나 없었다.

외무성 외교자료관의 '이토 공작 만주시찰 건'에 이런 기록이 있다. "진짜 흉악범은 안중근이 성공하자 도망쳤는가. 블라디보스톡 방면의 소식통에 따르면 저격 주모자와 저격수 용의자로 지목된 사람들은 왼쪽의 몇 사람들이다." 그 중에 안중근의 이름도 포함돼 있고, 그들 25명은 러시아 특무기관의 영향하에 있던 '한민회'의 조직원들이었다.

러일전쟁 전 히로부미는 러시아와 협상을 맺으려 했지만, 그 후 영일동맹이 맺어져 러일전쟁 개전이 예상보다 빨라짐에 따라 결국 러시아가 패했다. 러시아는 히로부미가 반역했다고 판단해 복수한 것이다. 안중근은 히로부미의 얼굴을 몰랐으며, 히로부미는 키가 크다고 말한 본인의 증언으로 볼 때 요시후미 의원을 히로부미라고 착각했던 흔적이 있다.

히로부미는 일본제국이 한국을 보호하는 것은 '부강해질 때까지'라며 한국병합에 반대했던 초기 흥아론(興亜論)의 옹호자로서 안중근과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한국을 방문한 니토베 이나조(新渡戸稲造)가 한국통감으로 와 있던 히로부미를 면회했을 때 히로부미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조선으로 일본인를 이주시키자는 의견이 꽤 많은 것 같은데 나는 반대한다. 조선인은 대단해. 이 나라 역사를 봐도 일본보다 훨씬 더 발전했던 때도 있었다. 이 민족이 이 정도의 나라를 스스로 경영할 능력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재능면에서는 서로 결코 뒤지지 않는다. 오늘날 이 꼴이 된 것은 인민이 나빠서가 아니라 정치가 나빴기 때문이다. 나라를 잘 다스리면 인민은 양적인 면에서나 질적인 면에서나 부족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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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차림의 히로부미(정중앙)
히로부미가 암살된 다음날(10/27) 고종 황제는 히로부미를 '한국의 자부(慈父)'라고 불렀다

"히로부미를 잃은 것은 동양의 위인을 잃은 것이다. 그는 우리나라를 위해 충성와 정의의 정신으로 성의를 다했다. 자기 뼈를 장백산에 묻을 각오로 한국의 문명 발달에 이바지하겠다고 했다. 일본에 정치인이 많이 있지만, 히로부미처럼 국제정치를 이해하고 동양의 평화를 위해 기도한 사람은 없다. 진정 히로부미는 한국의 자부였다. 그 자부에게 위해를 가하려는 자가 있다면 그는 상황을 잘 모르는 떠돌이일 것이다. 이토를 잃은 것은 우리나라만의 불행도 일본만의 불행도 아니다. 동양의 불행이다. 그 폭도가 한국인이었다는 사실은 '부끄러움의 극치'다."

(참고 자료)
1. 리 하비 오즈월드, 안중근, 마법의 탄환 : 재일조선인의 희언
2. 오오마니(大摩邇) : 왜 일본은 안중근을 범인으로 단정하고 막을 내렸는가~이토 히로부미 암살
3. www.shinchosha.co.jp
4. Yahoo! 블로그 "이토 히로부미 암살의 진상은? - 일찍이 일본은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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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ultural Highway at 12:02| Comment(0) | TrackBack(0) | 정치 | 更新情報をチェックす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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