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年05月14日

북한 주민들, 통일교(가정연합)는 '참된 기독교' '고마운 기독교' '행동으로 실천하는 기독교'

북한이 갑작스럽게 붕괴됐을 때 가장 먼저 들어갈 수 있는 종교는 통일교(가정연합)일 가능성이 높다. <무너지는 장벽>(홍성사)의 저자 데이브(NKmission 총책임자) 씨는 종교단체로서는 유일하게 통일교가 평양 한복판에 교회를 세우는 등 통일 이후에 북한에 가장 먼저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한다. 

문선명 총재의 구순 잔치에 김정일 위원장이 축하선물로 산삼을 보낼 만큼 통일교는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그 선물 보따리에는 90년, 80년, 60년 된 산삼 세 뿌리와 함께 축하의 글을 자수로 새긴 리본, 장미꽂 90송이, 백합 90송이를 담은 화병과 화환 등이 가득했다. 김 위원장은 문 총재의 90회 생일 뿐만 아니라 매년 생일 때마다 선물을 보내왔다. 이처럼 양측은 대를 이어 끈끈한 우정과 의리를 나누며 밀착관계와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PicsArt_05-14-01.34.04.jpg2009년 1월 김정일 위원장이 문선명 총재의 90회 생일잔치에 90년근 산삼을 전달하고 있는 장면

북한 인민들이나 관리들은 '고난의 행군' 시기와 그 이후 북이 사회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을 때 통일교에서 보건, 복지, 식량 등을 지속적으로 지원해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간직하고 있고, 통일교가 여러 가지 대북사업을 통해 북 경제에 큰 기여를 하며 도움을 주고 있기 때문에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통일교를 '참된 기독교''고마운 기독교''행동으로 실천하는 기독교'로 알고 있는 것이다. 또한 2012년 문선명 총재의 유지에 따라 '평화자동차'와 '보통강호텔'마저 북측에 양도하는 바람에 통일교에 대해 큰 호감을 갖게 되었고 신뢰도 더 두터워졌다고 한다.
     
통일교가 북에 뿌리내리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문 총재가 1991년 11월 30일〜12월 7일까지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 단독회담을 갖고 남북교류 합의서에 서명한 이후부터이다. 김 주석은 문 총재의 생가를 잘 보존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이때부터 생가를 복원해 통일교 성지로 만들고 인근에 세계평화를 상징하는 종합공원을 개발하는 사업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PicsArt_05-14-02.03.31.jpg평안북도 정주에 있는 문선명 총재 생가

북한 당국은 국가차원에서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마치 북측과 통일교가 공생하고 있는 모습으로 비춰지기까지 한다. 이미 통일교 포교의 전초기지로서 '평양가정연합교회'가 세워져 있다. 또 그 교회가 입주해 있는 엄청난 규모의 '평양세계평화센터(이하 평화센터)'가 있고 정주시에 '문선명 총재 생가 코스'와 '세계평화공원' 등이 있다.

통일교 교회가 평양에 세워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문 총재가 김 주석과 단독회담을 하는 날 협상과정에서 성사됐다. 평양에 통일교 목사의 파견을 요청한 문 총재의 요구를 김 주석이 공식적으로 승인한 것이다. 이로써 통일교는 분단 이후 최초로 북에 선교사를 공식적으로 파송한 종교라는 기록을 보유하게 됐으며, 북측도 분단 이후 최초로 해외 선교사를 공식적으로 수용한 역사를 남겼다.

PicsArt_05-14-01.32.20.jpg'평화센터'(왼쪽) 3층에 입주한 통일교 ‘평양가정연합교회’(오른쪽)의 예배당 내부 모습

초현대식 국제 컨벤션센터로 건축된 평화센터는 800석 규모의 대형 연회장을 두 개나 갖추고 있으며 각종 회의실, 강의실, 연회장, 동시통역실, 숙박시설 등을 구비했다. 남북의 각 기관과 시민단체가 평양에서 문화, 학술, 종교 교류 행사를 개최할 때 누구든지 이용하도록 지원한다는 취지이며, 아울러 통일교 측에서 남북의 가교 역할을 하거나 남북관계를 주도하겠다는 의도이다.

또한 각종 시설들은 이산가족 상봉 시 북측 화상 상봉 장소로도 제공되며, 세계적인 과학자 등을 초빙해 전문 인력을 양성하거나 평양 시민들을 위한 외국어 교육이나 컴퓨터 교육장으로 활용한다는 취지이다.

IMG_2524-1세계평화센터3.jpg준공식 당시 ‘평화센터’ 1층 로비에 마련된 사진전

일평생 '반공(反共)'과 '승공(勝共)'으로 일관하며 통일교를 이끌던 문선명 총재가 1990년부터 갑자기 '친공(親共)'과 '연공(連共)'으로 급선회한 걸 보면 '극과 극은 통하고,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는 말을 실감나게 한다. '국제승공연합'이라는 기구는 남북관계가 극단으로 치닫던 1968년에 창설됐는데, '반공' 또는 '멸공'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공산주의를 극복하자는 뜻에서 '승공'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렇게 공산주의를 반대하고 대적하는 운동을 활발하게 펼쳐오던 통일교가 1987년 '남북통일운동국민연합'을 출범시켜, '승공'에서 '남북평화통일운동'으로 방항을 전환하기 시작했다. 1991년 소련을 방문해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회담을 열어 국제적인 관심을 끌었고, 북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을 만나 세계를 놀라게 했다.

문선명 총재와 김일성 주석과의 회담 이후 시작된 양측의 핫라인은 최근까지 작동되고 있으며, 1994년 미국 카터 대통령이 김일성 주석과 김영삼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주선해 남북화해 무드를 조성한 때도 문 총재의 역할이 컸다.

1994년 김일성 주석이 갑작스럽게 타계하자 문 총재는 남측의 국가보안법을 어기면서까지 자신의 최측근인 박보희 회장을 평양에 조문사절로 보내는 등 북 최고지도자와의 의리를 보여주며 특별한 협력관계임을 각인시켰다.

그후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의 방북과 남북정상회담,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의 방북과 남북정상회담 과정에서도 문 총재 측의 핫라인 역할이 일정 부분 작용했는데, 이런 밀착관계는 지금까지 유효하다.

PicsArt_05-14-03.49.01.jpg문 총재가 1989년 2월 세계일보 창간 리셉션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한 장면

이처럼 남북관계 변화와 상관없이 서로 꾸준한 신뢰관계를 보여주던 양측은 2007년 10월 노무현 대통령의 방북 기간 중 남포에 있는 평화자동차 공장을 참관하도록 주선해 역대 남한 정권들과 통일교와의 협력이 지속되고 있음을 과시하기도 했다.

PicsArt_05-14-01.34.31.jpg노무현 대통령이 통일교가 설립한 남포의 평화자동차 공장을 방문해 양정만 지배인의 설명을 듣고 있다.(2007.10.4)

또한 2011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갑자기 타계하자 문형진 통일교 세계회장 일행을 조문사절로 보내 금수산 태양궁전 빈소와 김일성 광장에 마련된 조문소를 방문하게 하는 등 의리를 지켜왔다.

PicsArt_05-14-01.35.53.jpg문형진 통일교 세계회장 일행이 김일성 광장에 마련된 김정일 위원장 조문소에 조화를 운반하고 있다.(2011/12/24)

2012년 9월 문 총재가 타계하자 이번에는 당시 김정은 제1위원장이 본인 명의의 조화와 조의문을 장성택 부위원장을 통해 평양조문소로 보냈으며, 북 최고인민회의는 문 총재에게 '조국통일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PicsArt_05-14-01.33.13.jpg
한편 2013년 2월 김정은 위원장은 풍산개 암수 두 마리를 한학자 총재에게 선물로 보내기도 했는데, 통일교 절기 중에 하나인 기원절 경축 오찬에 직접 전달한 것이다. 한 총재는 2015년 5월 국내 최초로 일반 언론 기자들과의 간담회를 통해 향후 대북사업에 대한 생각과 더불어 이미 김정은 위원장으로부터 초청장을 받아놓은 상태라고 밝혔다.

"나는 평생 위하는 삶을 살아왔어요. 나라를 위한다면 못할게 없죠. (방북) 시기를 보고 있어요. 되도록이면 양쪽(남북한정부)을 세워줘야 하잖아요. 북한은 (우리에게) 지극 정성이에요. 문 총재님과 김일성 주석과의 관계는 굉장히 끈끈했어요. 김정일, 김정은 위원장이 다 (통일교에 대한 김일성의) 유지를 받들었어요.”

PicsArt_05-14-03.49.35.jpg2013년 2월 김정은 위원장이 한학자 총재에게 선물로 보낸 풍산개 암수 두 마리

새로운 대북사업을 모색하고 있는 통일교는 현재 평양시내에 이마트와 비슷한 형태의 대형 유통사업을 검토하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으며, 이런 조직적인 유통업에 투자할 경우 북인민들에게 미치는 영항력은 이전보다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여진다.

북한은 그동안 자주적인 남북통일을 이루기 전까지는 기독교를 포함한 대부분의 종교들이 자국에 유입되거나 확산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이는 북이 종교 자체를 무조건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남한이나 미국에서 유입된 종교들을 통해 자칫 인민들이 잘못된 사대주의에 물들거나 그동안 지켜왔던 반일반미정신이 쇠퇴해지는 것을 경계하고자 했던 것이다.

종교가 통일지향적인 민족정신과 자주정신을 갉아먹을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며, 선교를 빌미로 북 영토에 지하 교회를 조직해 북체제를 비판하거나 전복하려 든다는 기독교에 대한 인식 때문에, 북한은 쉽사리 남한이나 미국 교회를 허락하지 않았으나 유독 통일교 만큼은 예외로 대해주었던 것이다.

이제 통일교는 남과 북 양쪽에 교두보를 확보했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통일교 왕국(천일국)을 건설하기 위해 사회 각 분야에 전면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통일교의 막강한 북 진출 사업들은 종교적 목적 실현을 염두에 둔 하나의 과정이며, 교리 내용의 변화가 아닌 포교 형식의 변화에 불과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나 해외 한인교회들은 아직도 구태의연하게 북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오류 투성이의 대북자료와 정보를 바탕으로 선교정책을 펴고 있다. 고도로 압축된 통일교의 적극적이고 헌신적인 대북사역 전략과 비교해 볼 때 기존 한국교회의 대북사역 전략과 노력은 매우 낭만적이고 고비용, 저효율 단계에 머물러 있으며 아직도 허상을 잡고 있는 듯하다.

여기서 유념해야 할 것은 비록 통일교가 아직 국내외 기성교회들로부터 이단 종교로 비판받는 상황이지만, 종교의 순기능과 역기능의 측면에서 볼 때, 남북의 평화통일 조성에 긍정적인 기여를 한 사실이 객관적으로 확인이 될 경우에는 종교적인 측면을 떠나 통일지향적 관점에서 올바로 평가돼야 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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タグ:통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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