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동포】민단 부인회 최금분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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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 경상북도 의성 출신이었던 최금분(崔金粉 여,85세) 고문은 도쿄에서 1929년에 태어났다. 민단 부인회에서 55년간 일했다. 80살이 넘은 나이에도 대중교통을 이용해 몇 시간씩 이동을 하고, 외모 또한 매우 젊어 보인다. 그 비결은 20만 명에 이르는 조직을 이끌다보니 인내심도 갖게 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살아서 그렇다고 한다.

그녀의 아버지가 스웨터를 만드는 기술을 가지고 있어서 그렇게 어렵지 않게 살았다. 특히 ‘손맛’이 좋아 주변 일본인들의 잔병도 치료해 주었다. 동네에서 “저 집에 가면 아이를 살릴 수 있다”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 게다가 아버지의 인덕이 좋아 주변 일본인들로부터 차별이나 천대를 덜 받았다. 그녀의 어머니는 양반가문 출신이다. 항상 다듬이질을 하고 풀을 먹인 깨끗한 저고리를 입고 계셨고, 한국 음식을 해주셨다. 나중에 어머니의 고향집을 가봤다. 생전 어머니는 고향집이 매우 크다고 했었는데, 막상 가니 크지 않았다. 그래도 어머니의 집을 보니 가슴이 찡했다고 한다.

민단 활동을 하면서 지문날인운동 반대 등 한국인의 권리를 찾는 운동을 많이 했다. 70년대에는 육영수여사의 초청으로 모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2012년에는 투표도 하고 제작년(2013년)에는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받아 여의도에도 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해본 투표는 매우 감격스러웠다. 그녀는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6년간 진행한 하루에 10엔 모으기 운동을 통해 얻은 3억엔을 기부하여 이동화장실과 고정화장실을 만들었다.

어린 시절 그녀의 아버지는 술을 드시면 “아리랑이란 노래인데, 세상이 다 아는 노래란다”하며 아리랑을 불러주셨다. 처음 듣는 순간 왠지 슬프기도 하고 ‘야사시까한’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부인회에서는 모임 시작에 애국가를 부르고, 끝날 때 같이 아리랑을 부르고 있다.

지금은 고인이 된 그녀의 남편은 경상남도 출신으로 빠징고와 금융회사를 운영했다. 그녀의 남편은 술을 마시면 고향 생각이 났는지 아리랑을 불렀다. 그녀에게 아리랑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며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누구나 부를 수 있는 노래이다. 그래서 예전에는 많은 동포들이 아리랑을 듣고 나서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데 요즘 젊은 재일한인들은 한국어를 잘 안배우다가 K-POP이 유행하자 열심히 배운다. 한류 STAR덕에 한국말과 글을 배우는 게 요즘 세태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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