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 특집2】김옥균과 후쿠자와 유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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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분쿄(文京)구에 위치하는 신죠지(眞淨寺) 경내에는 조선말기 개화파의 주역인 김옥균(金玉均)의 비석이 세워져 있다. 이 비석은 바로 일본 1만엔권 초상화의 주인공인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가 신죠지의 주지승에게 부탁해서 이 절에 안치한 것이라고 한다. 그 옆에는 '가이 군지(甲斐軍治)'라는 사람의 비석이 있는데, 김옥균을 흠모하여 머리카락과 의복 일부를 숨겨서 일본으로 가져온 인물로 "내가 죽으면 김옥균과 나란히 묻어달라"고 유언했다고 한다.

후쿠자와는 일본 최고(最古)의 사립대학인 게이오기주쿠(慶應義塾: 게이오기주쿠대학)와 지지신보(時事新報: 산케이신문의 전신)의 창설자이다. 일각에서는 그의 탈아론(脱亜論)과 조선 멸시를 근거로 조선 침략의 원흉이라고 비난하지만, 실은 조선말기 개화파들의 실질적인 스승이었다. 과연 그는 어떤 사람인가?

1835년 오사카에서 태어난 후쿠자와는 2세 때 아버지의 죽음으로 불우하고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다. 그의 아버지와 형은 대단히 뛰어난 소양을 갖췄지만 변변치 못한 가문 때문에 결국 재능을 인정받지 못했다. "문벌제도는 부모의 원수였다." 그런 아버지와 형을 보면서 일본의 신분체제를 개혁하기로 결심한다.

한편 임진왜란 이후 일본을 통일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퇴계 이황의 성리학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사농공상의 신분체계를 확립했다. 이것이 250년간 에도정권을 유지해 준다. 에도막부가 조선통신사를 열렬히 환영했던 이유는 바로 조선의 성리학적 윤리로 사무라이들을 제압하기 위해서였다.

후쿠자와는 "하늘은 사람 위에 사람을 만들지 않았고, 사람 밑에 사람을 만들지도 않았다"며 일본이 아시아를 넘어 서구와 대등하게 되자는 탈아입구론(脱亜入歐論)을 주장하여, 결국 도쿠가와 가문의 지배를 종식시키고 인재를 양성하는데 전념했다.

그리고 아시아연대론을 주장했다. 어느정도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을 중심으로 청과 조선이 개화될 수 있도록 도와서 이를 바탕으로 동아시아가 연대하여 서양세력을 방어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중일 3국이 각각 독립을 유지하면서 상호부조하여 서구열강의 식민주의에 대응해야 한다는 안중근의 동양평화론과도 일맥상통한다.

당시 조선에서는 메이지유신을 모델로 삼아 조선을 단시일 내에 근대국가로 개혁해야 한다는 뜻을 가진 젊은이들이 모였는데 이들이 바로 개화파이다.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서광범, 서재필 등과 같은 인물이며, 후쿠자와는 그들의 조언자이며 지원자였다. 언론의 중요성을 강조한 그의 조언에 따라 개화파들은 최초로 국한문혼용의 한성순보와 독립신문 등을 창간하기도 했다.

그런데 1884년 '조선판 메이지유신' 갑신정변이 실패하자 개화파들은 대부분 처형되고 친족들도 연좌제로 몰살당하고 만다. 중국사대주의로부터 탈피할 역사적인 순간이었으나, 청나라의 개입으로 실패한다. 그동안 후쿠자와는 아시아연대론을 주장한 온건주의자였으나, 이것을 계기로 태도를 180도 바꿔, 조선은 정상적인 방법으로 문명개화가 불가능한 나라로 보고, 이듬해 '탈아론'을 발표하여 일본은 조선이나 청나라 같은 미개인들과 섞이면 안된다고 주장했다. 후일 후쿠자와의 탈아론은 제국주의자들에 의해 왜곡되어 조선침략을 정당화하는 이론으로 이용되었다.

후쿠자와는 일본 뿐만아니라 조선의 독립자존을 그의 정치적 슬로건으로 삼고, 김옥균과 같은 개화파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했지만 끝내 결실을 보지 못한채 개화파가 모두 제거되자 격분했던 것이다. 개화파의 일원이었던 서재필은 갑신정변의 실패 원인에 대해 "개화파들의 계획에 까닭도 모르고 배일(排日)을 부르짖으며 반대하는 민중의 무지와 몰지각 때문"이라고 한탄했다. 말하자면 조선 민중의 무지와 편견이 김옥균 등의 인재들을 죽였다는 것이다.

신죠지의 김옥균의 비문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嗚呼, 抱非常之才. 遇非常之時, 無非常之功, 有非常之死"(아아, 비상한 재능으로, 비상한 시대를 만났으나, 비상한 공을 세우지 못하고, 비상한 죽음만 있었구나)

한민족의 전설 중에 가장 슬픈 '아기장수' 얘기가 있다. 장래 장수가 될 아기가 역적이 되어 화를 부를까봐 죽인다는 이야기이다. 남한에만 205편에 달하는데, '아기장수'를 죽인지 얼마 후 임진왜란이 터졌고, 전북 익산, 충남 아산 등지에서는 '아기장수(진인)'가 훗날 다시 와서 이 세상을 구하겠다며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무지와 편견으로 다시는 유능하고 참신한 인재를 죽여서는 안될 것이다.
※뛰어난 인재들을 죽여온 한국
https://youtu.be/pdqo3W-3HX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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