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年06月26日

【지적장애인복지협회】2017 '발달장애인 인식개선 전시회'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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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발달장애인 인식개선 전시회, 금릉역 6/24
경기도지적장애인복지협회 파주시지부(지부장 엄미현)는 7월 4일 지적장애인의 날을 맞이하여 6월 24일 금릉역에서 인식개선 전시회 및 발달장애인들에게 희망메세지를 전달하는 행사를 개최했다.

발달장애인은 지적장애인과 자폐성 장애인을 지칭하며, 인지, 의사소통, 사회적 상호작용 능력이 부족하여 일상생활, 교육, 경제활동 등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특히 학대, 성폭력, 경제력 착취 등의 인권침해 피해에 노출되기 쉬운 취약계층을 말한다.

지적장애인의 날은 1968년 7월 4일 설립된 한국지적장애인복지협회가 2005년에 제정하여 매년 전국의 시 도협회 및 지부에서 다양한 기념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발달장애의 7가지 오해와 편견

- 지능지수(IQ)가 그 사람의 모든 능력은 아닙니다 : 지적장애인은 대부분 IQ가 낮지만 IQ는 지적 능력일뿐, 정서나 감정 등은 일반인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 지적장애인≠정신장애 : 지적장애인은 정신장애와 같은 질병이 아니기 때문에 적절한 교육과 지원을 통한 발달이 필요합니다.

- 가정생활이 가능합니다 : 지적장애인도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습니다.

- 모두 유전이 되지 않습니다 : 지적장애인의 원인으로 밝혀진 것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유전은 원인의 일부일 뿐, 모두 다 유전된다고 오해하지 마세요.

- 교육과 훈련은 중요합니다 : 지적장애인도 적절한 교육을 통해 지적능력을 발달시킬 수 있습니다.

- 의학적으로 치료하기는 어렵습니다 : 지적장애는 병이 아니기 때문에 병원에서 치료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 다르지 않습니다 : 배고프면 맛있는 것 먹고 싶고, 슬프면 눈물이 나고, 심심하면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고 싶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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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메시지를 남기는 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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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뉴스 김금산 대표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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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세미나】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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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年06月25日

【최준원 시민강좌】민주화와 한국 정치의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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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원 전 조선대 교수(앞열 중앙) 시민강좌, 파주성전 6/24
저는 1975년 유신 철폐와 민주 회복을 위한 대학 학내 시위를 주동한 이유로 대학에서 추방된 후, 강원도 최전방 부대에서 군복무를 마치고 10.26 이후 1980년 '서울의 봄' 시절에 대학에 복교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제 삶은 예상치 못했던 수많은 시련을 겪었지만 제 인생의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경찰서 유치장에 있을 때, 일요일 유치장을 방문하신 목사님께서 설교하신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씀은 의롭고 정의로운 하나님께서 우리와 언제나 함께 하심을 일깨워 주셨고, 유치장에 있는 동안 성경을 일독하며 무료함과 시련을 이겨내는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 해 4월말 유치장을 나서는 날, 경찰서 후문 뒤뜰에 피었던 화사하고 아름답던 복사꽃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자유의 소중함과 마음 상태에 따라 그동안 무심코 보아왔던 평범한 꽃도 지고의 아름다움으로 느낄 수 있음에 새삼 놀랐습니다.

1972년 유신이 일어났던 해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한 저는 한국정치의 소용돌이 속에서 시련이 끊이지 않았지만, 정치학도로서 부끄럽지 않게 살려고 부단히 노력해왔으며, 한국 정치의 발전을 보면서 영욕의 세월을 뒤돌아보는 기쁨도 없지 않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같은 해 경희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하여 75년 유신헌법 철폐와 민주 회복을 위한 학생시위로 대학에서 제적되어 서대문 교도소에 구속되었으며, 그후 공수특전사로 힘든 특전훈련이 연속되는 군복무를 마쳤습니다.

1980년 사법시험 합격 소식을 경찰서 유치장에서 받게 된 문 대통령은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수료했지만, 시위 전력을 이유로 본인이 원하던 판사 임용을 받지 못하고 고향 부산으로 낙향하여 노무현변호사와 함께 인권변호사로서 부산의 민주 시민운동에 참여하며 인권신장에 헌신적인 노력을 지속해왔습니다.

정치는 가장 아름다운 사회적 종합예술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정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공유하게 된 원인은 불행하게도 정치의 의미를 퇴색하게 만든 한국 정치의 현실에 그 근본 원인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민주적 헌정질서를 지혜롭게 발전시키지 못하고 권위주의 정치체제하에서 자유롭고 공정한 민주적인 경쟁과 국민의 정치참여를 제한했으며, 민주적인 제도를 운영해나갈 인물들을 키우지 못하고 지역적 균열 구조하에서 통합된 민주공동체를 키우고 가꾸는 데 실패해왔습니다.

대한민국의 민주적 발전의 첫걸음은 정치의 본령을 회복하는 데서 출발해야 할 것입니다. 민주적 발전의 요체는 집단적 예지의 발현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민주제도를 마련하여 인간성의 본질을 구현할 수 있는 민주적 인간공동체로 발전시켜야 할 것입니다.

식민통치하에서 중국 상하이에서 임시정부를 세워 자유롭고 독립된 나라의 이상과 꿈을 안고 황량한 만주 벌판에서 독립 투쟁을 멈추지 않았던 이 나라 건국의 아버지들이 소망했던 자유롭고 통일된 나라 통일 한국의 이상을 실현하고 사랑과 평화 그리고 복지를 함께 나누는 아시아 민주공동체를 지향하는 우리 시대 역사와 문명의 진보에 참여하는 우리 모두의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 우리 시대의 역사적 소명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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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문재인 대통령, 평창동계올림픽 '남북단일팀•공동응원단' 제안

PicsArt_06-25-07.07.24.jpg문재인 대통령이 24일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개막식에 참석해 북한의 장웅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과 악수하고 있다.
전북 무주군에 있는 '태권도의 성지' 태권도원에서 24일부터 30일까지 '2017 무주 세계태권도연맹(WTF)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가 열린 가운데, 유례없는 국내외 언론의 관심을 모았다.

세계태권도연맹(WTF)에 따르면 국내외 언론 120개사에서 284명이 취재를 신청했다. AP·AFP·신화·교도통신과 CNN, NHK월드, 알자지라, 로이터 TV를 비롯해 국제종합경기대회 뉴스 전문 매체인 어라운드더링스(ATR), 인사이드더게임스(Inside the Games)와 같은 외국 언론사가 다수 포함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개막식 축사를 통해 평창동계올림픽 남북단일팀 구성을 제안했다.
"평창동계올림픽에 북한 선수단이 참여한다면 인류화합과 세계평화 증진이라는 올림픽의 가치를 실현하는 데 크게 기여하리라 생각합니다. 바라건대 최초로 남북단일팀을 구성하여 최고의 성적을 거뒀던 1991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와 세계청소년축구대회의 영광을 다시 보고 싶습니다. 남북선수단 동시 입장으로 세계인의 박수갈채를 받았던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의 감동을 다시 느껴보고 싶습니다. 북한 응원단도 참가하여 남북 화해의 전기를 마련하면 좋겠습니다."

이번 WTF 세계선수권대회는 이날부터 30일까지 남녀 8체급씩, 총 16체급으로 나눠 열린다. WTF에 따르면 이번 대회에는 183개국에서 선수 971명과 임원 796명이 최종 참가등록을 해 역대 최대 규모라는 기록을 세웠다.
국제태권도연맹(ITF) 시범단. 장웅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 겸 국제태권도연맹 명예총재를 필두로 36명(북한 국적 32명 포함) 방한.
【Sports】국제프로레슬링페스티벌 in 평양
【Sports】PyeongChang Awaits You 平昌オリンピック 평창올림픽
【Nature】덕유산(德裕山)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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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年06月22日

【6.25특집】김백일 장군 "건군의 주역, 38선 돌파의 일등공신, 피난민의 아버지, 통일의 역군"

PicsArt_06-22-09.38.53.jpg21일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김백일 장군 순국 66주기(탄생100돌) 추모학술회의. (사)실향민중앙협의회(회장 노학우)•(사)한국문화안보연구원(원장 김동명) 주최 / (사)흥남철수작전기념사업회 후원.
일찍이 아버지를 여읜 김백일은 어려서부터 조부의 영향을 받으면서 성장했다. 조부인 김영학 선생은 1910년 한일합방 조약이 체결되자 이듬해 북간도로 이주하여 후일 '간도 3.1독립운동'의 기폭제 역할을 한 애국투사였다.

장래 조국을 위해 현대적인 군사교육을 받은 군인이 필요하다는 조부의 조언에 따라 김백일은 만주국의 봉천군사학교에 입학, 졸업 후 중국공산게릴라 색출을 위해 창설된 간도특설대에서 중대장으로 복무하다 해방을 맞이한다.

그런 와중에서 당시 인민군 창설을 위해 유능한 인물을 물색하던 김일성이 그를 찾아와 "나와 같이 인민군을 하자. 미군놈들을 몰아내고 미군에게 붙어먹는 민족 반역자를 싹쓸히 해야 통일이 된다"며 권총을 꺼내들고 위협했다. 이렇게 3일 동안 시달리던 김백일은 자신이 결코 공산주의자가 아니라고 밝힌 후 38선을 넘어 남하했다.

월남 후 군사영어학교를 졸업하고 전북 이리(익산)에서 창설된 제3연대 연대장을 거쳐 전투사령관, 학교장, 군수부대지휘관, 참모부장 등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이와 같은 그의 풍부한 전투 경험들은 후일 6.25전쟁 때 조국을 위기에서 구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전면 남침으로 서울이 함락되고 한강방어선이 붕괴되자 육군본부는 수원으로 옮겨지고, 김백일 작전참모부장은 개전 초기에 피해를 입은 국군을 재편성하여 8개 사단을 5개 사단으로 축소하고 국군 최초의 군단을 창설했다.

당시 1사단장이었던 백선엽 대령의 증언에 따르면 "수원의 한 초등학교로 이동한 육군본부에 들렀을 때 마침 작전참모장 김백일 대령이 흑판 위에 '국군재편성계획'을 작성하고 있었다. 한강이북에서 결단난 부대들을 합병•통합하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국군재편성계획을 마친 후 1군단 김홍일 군단장을 보좌하며 낙동강 동부전선에서 치열하게 접전을 벌이던 중 김백일 참모부장은 군단장으로 임명되어, 이후 낙동강전선에서 북한군 2개 사단을 격멸시키고 동부전선을 사수함으로써 반격작전을 개시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이윽고 총반격작전이 개시되자, 동해안을 따라 북상하던 제1군단 3사단은 가장 먼저 38선을 돌파했다. 이날을 기념하기 위해 정부는 10월 1일을 국군의 날로 정했다
PicsArt_06-22-09.44.44.jpg김백일 제1군단장(오른쪽)이 38선 돌파 직후 기념비를 세우고 있다. 기념비에는 ‘아아 感激(감격)의 三八線(38선) 突破(돌파)’라고 적혀 있다.
이어서 북한 제1의 항구인 원산 탈환작전이 개시되었다. 제1군단 산하의 수도사단과 제3사단이 각각 원산시의 서쪽과 동쪽을 협공하는 작전으로 오전부터 이루어진 두 사단의 공격으로 마침내 10월 11일 원산을 탈환했다.

원산 탈환 소식을 전해들은 맥아더 장군은 미 제10군단장 알몬드 장군을 통해 김백일 장군에게 '레전드 오브 메리트(Legion of Merit)'를 수여하고, "한국군 1군단 전 장병에게 최대의 경의를 표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제1군단이 함흥에 이어 청진과 해산진까지 진격하자, 이승만 대통령은 "이제 우리의 소원이던 국토통일을 눈 앞에 두게 됐습니다. 그러한 즉 우리는 잃었던 국토 위에 우리 스스로의 힘과 얼로써 훌륭히 정치해 나갈 수 있는 채비를 해야만 하는 것"이라며 함흥을 찾아 격려하기도 했다.

이제 모두가 통일이 목전에 다가왔다고 느낀 순간이었다. 그런데 이게 왠 날벼락이란 말인가? 갑자기 철수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중공군의 인해전술을 견디지 못해 서부전선이 붕괴되고, 특히 동부전선에서는 중공군의 교묘한 우회기동전략으로 아군의 피해가 속출했다.

통한의 철수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도 바다를 통한 해상철수였다. 하지만 김백일 장군은 북한 피난민 수송을 군 작전보다 중요시했다. 제3사단장 최석 준장, 수도사단장 송요찬 준장, 군단민사처장 유원식 중령 등을 긴급 소집하여 피난민 대책회의를 열었다.

김백일 : 우리 1군단이 피난민을 포기한다면 그것은 조국애와 인류문명에 반하는 행위다. 어떤 일이 있어도 그들을 데려가겠다. 그것이 구국의 사명이다.

최석 : 철수작전에 지장이 생긴다 해도 피난민을 저버릴 수는 없다.

유원식 : 처음에는 함경북도 지사와 시인 모윤숙의 숙부, 그리고 저명한 목사까지 단 3명만 데려가겠다고 하다가, 우리 민사처의 끈질긴 교섭 끝에 미 10군단이 3천 명까지는 태워주겠다고 합니다.

김백일 : 끝까지 교섭을 벌이시오. 정 못하겠다고 하면 그 자리에서 배를 갈라 보이시오. 귀관들은 부대로 돌아가는 즉시 해안의 모든 배를 징발하시오. 움직일 수 있는 모든 배를 징발하여 피난민을 태우시오.

송요찬 : 우리 대신에 피난민을 태워보내고 국군은 걸어서 원산을 돌파합시다. 수도사단이 앞장서겠소.

김백일 : 좋은 각오다. 나 자신도 그럴 각오로 있다. 애들(장병들)의 생각은 어떤가?

최석•송요찬 : 각급 지휘관, 분대장, 병사에 이르기까지 절대적이다. 동포애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피난민 후송 계획을 김백일 장군으로부터 전해들은 알몬드 소장은 "한국군이 그렇게까지 결심하고 있는 줄은 몰랐다"며 3천 명만 태우겠다던 기존의 방침을 바꿔 최대한 많이 태우기로 했다.

흥남 철수 작전 당시 군수참모였던 김용기 대령의 증언에 따르면 김백일 군단장은 참모장인 김종갑 준장과 운송책임관인 군수참모와 함께 끝까지 현장을 지키며 피난선의 승선과 수송을 지휘했다고 한다.

또한 헌병참모 김득모는 "우리는 소형 선박을 약 200척을 모아서 민간인 철수에 대비하였고, 나중에는 군단장 김백일 소장이 알몬드 소장과 협의하여 LST에도 태울 수 있는 대로 태웠는데, 최소한 15〜20만의 피난민을 수송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PicsArt_06-22-09.39.34.jpg주제발표 및 토론 : 왼쪽부터 이준구 박사•고우성 박사(김백일 장군의 가계와 건군활동), 온창일 박사(좌장), 이상호 박사•손경호 박사(기계-안강전투/북진작전과 흥남철수작전), 남정옥 박사•나종남 박사(김백일 장군의 건군과정과 6.25전쟁에서의 역할과 업적)
이와 같이 김백일 장군은 공적인 일에 있어서는 남을 의식하지 않고 오로지 주어진 직책과 책임감에 따라 행동하는 인물이었다. 합참의장을 역임한 한신 대장은 "지략과 용맹을 겸비한 그러면서도 돌아서서는 눈물도 흘릴 줄 아는 그야말로 인간적인 정감이 풍부했던 장군"이라고 그를 높이 평했다.

전쟁은 중공군 개입으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38선 부근에서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벌이면서 낙동강전투 이래 또다시 최대의 시련을 맞고 있었다. 38선을 넘어 다시 북진통일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그 어느 때보다도 김백일 장군의 지휘•통솔력이 절실한 때였다.

그런데 중공군의 공세에 대비하기 위해 군단장회의 참석 후 복귀하던 도중 김백일 장군은 타고 있던 비행기가 악천후로 인해 태백산 계곡(강원도 대관령 인근의 발왕산 중턱, 지금의 용평스키장)에서 추락함으로써 전사하고 말았다.

김백일 장군의 갑작스런 사망 소식을 접한 이승만 대통령은 군의 큰 별이 떨어졌다며 크게 애통해 하면서 "김 장군의 유일한 목적은 언제나 변함없이 남북을 통일해서 국권을 회복하는데 있었으니 김 장군을 사랑하는 우리로서는 그 정신을 받들어 같은 결심으로 끝까지 용감하게 싸워 김 장군이 다 이루지 못한 역사를 완성하기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고 위로했다.

육국본부는 비문을 세우고 "그 기개는 산하를 삼킬 듯하고, 용맹은 물불을 헤아리지 아니하였다. 장군의 외외(巍嵬)한 공훈과 충열은 길이 사기를 북돋아 줄 것이요, 또 영령은 호국의 신이 될 것이다"고 새겨넣어 그의 공을 기렸다.

김백일 장군은 34년의 삶과 5년간의 짧은 군 생활에도 대한민국 국방사와 6.25전쟁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또한 그는 국가와 군의 발전에 크게 쓰일 인재들을 눈여겨보고 있다가 그들을 과감히 발굴하여 국가의 대들보로 키운 교육자이기도 했다.

그가 제3연대장으로 있을 때 소대장으로 근무했던 장교들은 모두 대한민국을 이끈 동량이 되었다. 김종오 소위는 6.25전쟁 초기 춘천대첩을 통해 북한군 2군단의 한강이남 진출을 막고, 백마고지전투를 통해 중공군 3개 사단을 괘멸시킨 용장이었다. 이한림 소위는 전역 후 건설부장관으로 경부고속도로 건설의 주역이 되었으며 정래혁 소위는 국방부장관을 역임했다.

오늘날 김백일 장군은 건군의 주역, 최고의 야전 사령관, 낙동강에서 조국을 구한 지휘관, 38선 돌파의 일등공신, 북진작전의 선봉장, 피난민의 아버지, 통일의 역군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6.26를 앞두고 다시 한번 장군의 위국헌신의 애국정신을 되새기자.
추모시 '백일교의 꿈' 장순휘 교수
【종전 71주년 기념】 맥아더의 직속 통역관 키자키씨 "전후 평화의 원점을 직시해야"
【전후 70주년 역사 발굴】나는 맥아더의 '직속 통역관'이었다
【인물】GHQ 일본계 통역관이 최초로 공개하는 맥아더 장군의 진솔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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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年06月20日

【사법개혁】'엄정한 독립'과 '절대 고독'의 도를 닦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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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법관대표회의, 일산 사법연수원
19일 경기도 일산 사법연수원에서 3000명 판사를 대표하여 100명의 판사가 참석한 가운데 전국법관대표회의가 개최됐다.

이번 회의는 판사들의 인사를 주무르는 대법원 산하 법원행정처가 판사들의 사법개혁 움직임을 저지했다는 의혹에서 시작됐다. 올해 초 국제인권법연구회가 '사법독립과 법관 인사 제도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관련 학술행사를 준비하자, 법원행정처 차장이 행사 축소를 지시하는 등 외압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판사들이 이렇게 집단적인 행동을 취한 것은 지금까지 다섯 차례 정도 있었으며, '법원'과 '재판'이 외압을 거부하고 법관 인사의 다양성과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번 회의는 최근 확산되고 있는 사법개혁 논의를 공론화해 사법부 내에서 자체적으로 사법개혁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보인다.

판사의 청렴은 우리 사법체계의 마지막 보루이며 재판을 받게 되는 수많은 서민의 '승복' 문제와도 직결된다. 2004년 8월 17일 ‘청렴 법관’의 상징이었던 조무제 대법관은 퇴임식에서 후배 판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해관계에 얽힌 주변으로부터 초연하려면 고독이 따르게 마련이지만 법관은 고독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달갑지 않은 어둠 같지만 고독에 익숙해지면 미처 볼 수 없었던 은밀한 사물의 존재까지 알아보는 능력을 얻을 수 있다. 보편성을 잃은 주장이라면 눈앞에 다가오는 여론이라 할지라도 그로부터 초연할 수 있어야 한다. 법관은 깊이 있는 사색과 흔들리지 않는 자세와 보편적인 상식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이처럼 '엄정한 독립'과 '절대 고독'의 도를 닦아야 하는 판사들이지만, 현실적인 유혹들은 판사들을 결코 고독하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어느 순간 조직 논리를 앞세우는 권위적인 관료집단이 생기게 되고 청렴의 기준은 뒷순위로 밀리기 마련이다.

조 대법관이 수많은 유혹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어머니의 영향이 컷다고 한다. 아무리 어려워도 바른 길이 아니면 쳐다보지도 않고, 남한테 절대 신세를 지지 않았으며 차비를 아끼기 위해 단 한 번도 차를 타고 다닌 적이 없는 분이었다.

법원 설립 이래 세 번째로 열린 이날 회의에서 법관들은 전국법관대표회의의 상설화 필요성에 의견을 모았다. 대법원장에게 권한이 집중된 사법행정에 일선 판사들이 관여할 수 있는 '사법부 내 의회 역할' 기구를 만들겠다는 취지이다. '제왕적' 대법원장 및 법원행정처의 권한 축소에 대한 토론은 7월24일로 정한 2차 회의에서 계속하기로 했다.

이날 사법연수원 정문 앞에서는 민주적 사법개혁 실현을 위한 연석회의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전국법관대표회의 전 법관들에 요구한다'는 제목의 기자회견을 열고 사법부 개혁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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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국실천연대•구국실천국민연합 부정부패척결•적폐청산 국민대회에 처하여
【구국실천국민연합】6/24 제2회 부정부패 척결 3,000명 대회 및 구국비상국민총연합대책위원회 결성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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タグ:사법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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