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年04月20日

「第六回民族邦風大同祭」天と地と人の和合を図る天祭「民族邦風大同祭」ソウルで開催、六十余団体参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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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六回民族邦風大同祭、ソウル光化門(4.18)
한국어
四月十八日(旧暦三月三日)、国民和合と豊作を祈る大同祭りである「二〇一八第六回民族邦風大同祭」がソウルの光化門世宗大王銅像前で開催された。 

高句麗の建国日である旧暦三月三日の「サムジンナル」は、三数が重なる陽気溢れる最高の吉日であり、伝統的に踏靑節(草を踏む風習)、時祭事、農耕祭など様々な風習と祭りを楽しみながら田植えの季節を知らせた。この「サムジンナル」を民族の祝日として祝いなからまごころをこめて、天を仰ぎ奉り、国泰民安(国が安泰で民は平穏である)と世界平和を祈るために「邦風大同祭」が行われる。

「邦」は上古時代から多くの国を治めた韓民族の彊域を意味し、「邦風」は祭りに参加した様々な地域の人々が楽器を演奏しながら舞を踊った文化を「邦風」と呼んだ伝統に由来する。いろんな国が一つになって、天と地と人の和合を図り、絆を深め、「弘益人間、理化世界」の楽園を築き上げようという趣旨で行われた大祭事であった。

今回のイベントは、民族邦風大同祭運営委員会の主催の下、多勿興邦団(睦榮徳総裁)、(社)韓国プリ文化保存会(石岷永事務総長)、(社)ソウルアリラン保存会(ユ·ミョンオク理事長)、弘益人間生命サラン会(チョン·ユングン会、(社)国際青少年文化交流連盟(ク·ヨンボン会長)の共同主管と五十余市民団体の後援で盛大に開かれた。

多勿興邦団の睦榮徳総裁は「我が天孫民族は常に節季に合わせて天に祈りを上げ、神の御心に従って生きてきた」とし「今日の大変化の時代こそ新たな国民的覚醒のための知恵が必要なときだ。「邦風大同祭」を通じて韓国と周辺国、そして世界平和のために神様の御前に尊き祈りを捧げる」と開会の辞を述べた。

この日は、無所有公演団の農楽とパレード、アリラン保存会のパンソリとダンス、そして国泰民安と世界平和を祈る「天祭」、太平歌と青春歌の民謡、ソウルアリラン保存会の天符経アリラン、体·音·木舞踊団の踊りと太鼓、無所有公演団のソンビダンス、キム·ジョンフン名人の長丞(韓国の民間信仰「守護神」)作り試演、京畿民謡、気功体操、フルート·大琴演奏、モダンダンス、アリラン体操など様々な祝賀公演が行われ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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多勿興邦団の睦榮徳総裁(中央)と記念撮影
アリラン/ユ·ミョンオク
パンソリ/ユ·ミョンオク
ソウルアリラン保存会の天符経アリラン
無所有公演団のソンビダンス
体·音·木舞踊団の太鼓
アリラン踊り
トラジタリョン
西道民謡
アリラン扇子踊り
チンドアリラン
体·音·木舞踊団
ホルロアリラン
気功体操/鍾路救国学気功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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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민족방풍대동제】하늘과 땅과 사람의 화합을 기원하는 천제 '민족방풍대동제' 열려, 60여개 시민단체 참가

民族邦風大同祭運営委員会の記念撮影.png
제6회 민족방풍대동제, 광화문광장(4.18)
日本語
4월18일(음력 3월3일), 국민 화합과 풍년을 기원하는 대동 행사인 '2018 제6회 민족방풍대동제'가 서울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거행됐다.

고구려의 건국일인 음력 3월3일 '삼짇날'은 3수가 겹쳐 양기(陽気)가 왕성한 최고의 길일이며, 전통적으로 답청절(踏靑節, 잔디를 밟는 풍습), 시제사, 농경제 등 다양한 풍습과 축제를 즐기며 농업의 시작을 알렸다. 이 '삼짇날'을 민족의 명절로 축하하며 정성을 모아 하늘의 뜻을 받들고자 국태민안과 세계평화를 기원하는 '방풍대동제(邦風大同祭)'를 올리는 것이다.

'방(邦)'은 상고시대로부터 여러 나라를 거느렸던 한민족의 강역(彊域)을 의미하며, '방풍(邦風)'은 축제에 참가한 여러 나라 사람들이 풍악을 즐기며 춤을 추었던 문화를 '방풍'이라고 불렀던 전통에서 유래한다. 여러 나라가 함께 어울어져 하늘과 땅과 사람의 화합을 도모하여 '홍익인간, 이화세계'의 낙원을 건설하자는 취지에서 열리는 대제전이다.

이번 행사는 민족방풍대동제 운영위원회의 주최 아래, 다물흥방단(多勿興邦団, 총재 목영덕), (사)한국뿌리문화보존회(사무총장 석민영), (사)서울아리랑보존회(이사장 유명옥), 홍익인간생명사랑회(회장 정윤근), (사)국제청소년문화교류연맹(회장 구용본)의 공동주관과 50여개 시민단체의 후원으로 성대하게 열렸다.

다물흥방단의 목영덕 총재는 개회사에서 "우리 천손민족은 항상 절기에 맞춰 하늘에 기도를 올리고 응답을 받아 생활했다"며 "오늘날 변화무쌍한 시대야말로 새로운 국민적 대각성을 위한 지혜가 절실한 때이다. '방풍대동제'를 통해 한국과 주변국들과 전 세계의 평화를 위해 하늘 앞에 큰 기도를 올린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이 날은 무소유공연단의 농악과 길놀이, 아리랑보존회의 소리와 춤, 국태민안과 세계평화를 기원하는 '천제'에 이어, 민요(태평가·청춘가), 서울아리랑보존회의 천부경(天符経)아리랑, 몸·소리·나무 무용단의 춤과 설북, 무소유공연단의 선비춤, 김종흥 명인의 장승깍기, 경기민요, 기공체조, 피리·대금 연주, 모던 댄스, 아리랑 체조 등 다양한 축하공연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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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물흥방단 목영덕 총재(중앙)와 기념촬영
아리랑/유명옥
소리/유명옥
천부경아리랑
선비춤
설북
아리랑춤
도라지 타령
서도민요
아리랑부채춤
진도아리랑
몸•소리•나무 무용단
홀로아리랑
기공체조/종로구국학기공협회
세계 최대 규모의 빛테마파크 '충주라이트월드' 개관, 성베드로 성당 '루미나리에' 등 선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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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年04月14日

세계 최대 규모의 빛테마파크 '충주라이트월드' 개관, 성베드로 성당 '루미나리에' 등 선보여

성베드로 성당 '루미나리에'
4월 13일 충북 충주시 남한강로에 위치한 '충주 라이트월드(대표 이원진)'가 개관했다. 

지난 2015년 첫 삽을 뜬 후로 3년 동안 약 450억원이 투입돼 80여명의 해외기술진과 국내기술진의 협업으로 조성된 라이트월드는 촛불에서 LED, 가상현실까지 빛을 소재로 한 스토리와 메시지를 담고 있는 테마파크다. 

20만여 ㎡의 충주세계무술공원 자리에 들어선 라이트월드는 세계테마존, 충주테마존, 생명테마존, 메탈아트 라이트테마존, 어린이 테마존, 테크노 라이트존, 충주 플라자존, 엔터네인먼트존, 빛 캠핑존 등을 조성해 세계 최대 규모의 '빛테마파크'가 될 전망이다.

라이트월드의 백미는 15층 건물 높이의 웅장한 바티칸 성베드로 성당을 빛으로 생생하게 재현한 '루미나리에'이며, 100m 구간에 걸쳐 100만 개 이상의 LED 조명이 신비로운 빛 터널을 연출하여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이 빛 터널은 세계 최고 기술력을 가진 이탈리아의 파울리 첼리 라이트 디자인이 직접 설계·시공한 것으로 세계에서 유일하게 음악과 주제에 따라 밝기와 색이 달라지는 기술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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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에펠탑과 우리나라의 다보탑 그리고 고려청자는 오묘한 빛을 발하며 동서양의 조화를 보여준다. 또 가족관람객을 위한 Cats & Dog 빌리지는 개와 고양이가 사는 동화 속 나라를 조성해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관람객이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도록 연출했다.

공원 내 모든 등들은 디지털화되어 있으며 온도제어는 물론 어느 방향으로도 연출할 수 있도록 컴퓨터에 연결돼 있다. 디즈니월드를 추월할 수 있는 천지개벽 수준의 K-Park를 꿈꿔온 이원진 대표는 앞으로 중국과 필리핀, 일본 등에 한국 기술로 제2, 제3의 라이트월드를 건립해나갈 계획이다.
축하공연/글로리아찬양단
이 날 충주세계무술공원 대공연장에서 개최된 개관 기념식은 공원 내 3천평 부지에 건립될 예정인 노아방주 건립위원회 조직위원장을 맡은 심영식 목사의 사회로 진행됐다. 감리교단 강문호 목사의 설교에 이어 마정렬 목사의 건립 취지 설명, 마이네 건축•설계사무소 김용태 소장의 브리핑, 라이트월드 이원진 대표의 기념사, 국제성서박물관 임봉대 관장의 격려사, 종교위원장인 우주그룹 김시몽 원장의 축사, 권유순 목사의 축도 순으로 이어졌다.

노아방주건립위원회 위원장인 강문호 목사는 "남한의 중심지인 충주에 우리나라 전 국민 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와 세계를 향하여 빛 되신 예수님을 전하는 라이트월드가 개관된 것은 참으로 가슴 벅찬 일이다"며 "예수님은 '나는 빛이니'라고 말씀하셨다"고 역설했다.

이어 기획위원장인 마정렬 목사는 "노아방주는 노아의 생각대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하늘의 뜻이 그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노아방주는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며, 세계인들이 완성된 방주를 바라보면서 참 빛 되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방주를 통해 구원을 완성하려는 계획이 있음을 명심하자"고 건립 취지를 설명했다.

마이네 건축•설계사무소 김용태 소장은 "설계비용만 3억 이상이 소요되는 노아방주는 길이 135미터, 폭 40미터, 높이 13.5미터이다. 1층에는 예루살렘 다목적 강당과 동물의 기획전시물, 2층에는 성막과 상설전시관, 3층에는 카페테리아 등 부대시설과 남한강 전망대가 설치될 예정이다"고 건축개요를 브리핑했다.

라이트월드 이원진 대표는 "충주시에서 250억을 투자하여 호수를 개발하는 등 라이트월드를 계기로 다양한 사업이 진행될 예정이다. 노아방주는 세계적인 관광지가 될 것이며 라이트월드가 곧 노아방주이다"며 "오늘 작는 촛불 하나가 켜졌으니 앞으로 점점 불타올라 세계적인 방주가 만들어질 것이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국제성서박물관 임봉대 관장은 "노아가 방주를 지을 때 하나님의 아들과 사람의 딸들이 관계하여 거인이 태어나고 인구가 늘어나 죄가 번성했다. 당시의 인구과잉이나 반신반인의 등장은 오늘날의 시대적 상황과 매우 흡사하다"며 "인구과잉으로 인한 환경파괴와 기후변화, 그리고 가상현실과 인공지능, 줄기세포 등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신이 되려는 온갖 시도들이 만연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개관기념 감사예배
끝으로 종교위원장인 우주그룹 김시몽 원장은 '심판하러 오십니다'라는 주제로 "오늘 라이트월드에 불이 켜진 것은 조상들과 천군천사와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이 있었기에 성취된 역사적인 프로젝트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적 사명을 반드시 이루어 드리겠다는 책임감을 갖어야 한다"며 "이원진 대표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주)우주실락원이 오픈된 것이다. 2천년 전 인류를 살리고자 빛으로 오셨던 예수님께서 못 다 이룬 뜻을 우리들이 이루어 드리자"고 호소했다.

라이트월드 기념식이 끝나자 (주)우주실락원 오픈식이 열렸다. (주)우주실락원 고문인 목영덕 다물흥방단 총재는 "이 자리에 노아의 방주가 건립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충주는 우리나라 배꼽에 해당하는 위치에 있으며, 배짱이 있어야 한다는 말처럼 충청도가 배부르게 잘 살아야 우리나라가 제대로 돌아간다"며 "이곳은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는 자리이며, 격암유록에 예언된 '인종구어양백(人種求於兩白)'이라는 말처럼 여기에서 사람들이 다시 구원받게 될 것이다"고 축사를 전했다.
축사 김시몽 우주그룹 원장(노아방주건립위원회 종교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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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年04月04日

천안함-잠수함 충돌설

'천안함-잠수함 충돌설'은 백령도 앞바다에서 작전 중이던 미국 잠수함이 천안함과 충돌하는 바람에 천안함이 침몰했다는 가설이다. 

원래 잠수함은 엄청난 해저수압에 견딜 수 있도록 설계 제작되어 있어 수상함에 비해 훨씬 더 견고하고 강하기 때문에, 잠수함과 수상함이 충돌할 경우 수상함이 훨씬 더 많은 손상을 입게 마련이다.

과연 첨단장비를 갖춘 미 잠수함이 충돌사고를 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으나, 사실은 과거에 드물지 않게 발생했던 일들이다. 2005년 괌 남쪽에서 샌프란시스코호가 암초를 들이받아 한 명이 사망하고 스물 네 명이 다쳤다. 2009년 호르무즈 해협에서는 하트포드호가 초대형 상륙수송함 뉴올리언즈호와 충돌해 디젤유 95,000리터가 바다로 쏟아졌다. 

우리 나라 동•서•남해에서도 충돌사고를 낸 적이 있다. 1998년 남해에서 라 홀라호가 어선 영창호와 충돌했고, 2002년 한미합동훈련 중 헬레나호가 어선 두 척과 충돌했다. 2004년에는 미군 대잠수함 훈련 중에 한국 해군 특수선박이 잠수함과 충돌해 침몰한 적도 있다.

한편으로는 미국 잠수함이 수심이 얕은 서해에서 잠항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있을 법하나, 미 군사전문지 '글로벌 밀리터리'(2009/10/18)에 따르면 2009년 서해에 출동한 미 잠수함이 서해위성발사기지가 있는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앞바다에서 '북코리아의 턱밑까지 가까이(close to North Korea under the nose)' 접근하여 정보를 수집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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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해군 보도국에 의하면, 천안함 사고 발생 당시 미 7함대 소속 잠수함 콜럼비아호가 최무선함과 함께 서해에서 실시된 한미합동훈련에 참가해 백령도 '인근에서' 대잠수함 훈련을 실시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콜럼비아호는 세계에서 가장 다방면적인 전함 중 하나로서 서해 연안에서 작전을 수행하기에 적합하게 설계된 잠수함이다. 

당시 대잠 훈련은 백령도 쪽으로 북상하는 인민군 잠수함으로 가정한 최무선함을 추적, 격파하는 식으로 전개되었다. 콜럼비아호는 백령도 앞바다 쪽으로 북상하고, 천안함은 백령도 앞바다에서 대북경계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한국 언론들도 동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해상까지 북상하면서 대잠 훈련이 실시되었다고 보도했다.

2010년 3월 25일 밤 10시부터 이튿날 밤 9시까지 대잠 훈련을 마친 후, 콜럼비아호와 천안함의 승조원들은 휴식시간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당시 승조원들의 진술에 따르면 운동실에 있거나 세탁을 하거나 휴대전화로 통화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콜럼비아호 승조원들도 휴식을 취하며 방심 상태에 있었을 것이다.

더우기 사고 해역의 수심이 50m 정도였기 때문에 콜럼비아호가 해수면 가까이 상승해 잠항할 경우 천안함과의 충돌 가능성은 매우 높아진다. 또 콜럼비아호 함체가 스텔스 기능을 갖춘 타일로 덮여 있어, 천안함의 수중음파탐지기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은 연고로 콜럼비아호의 접근을 전혀 감지하지 못 했다고 볼 수 있다.

만일 콜럼비아호와 천안함이 충돌했다면 콜럼비아호의 전망탑이나 상단부가 큰 손상을 입고 잠수함에 타고 있던 승조원들도 부상당하거나 사망할 수도 있었다. 이런 상황이 발생했다면 미국은 시급히 해저에 가라앉은 잠수함 파편들을 수거하고 잠수함 승조원 시신을 인양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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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사고 직후 해군작전사령부가 합동참모본부에 상신한 보고서에 따르면 밤 9시 15분에 사고가 발생했다고 기록돼 있다. 그런데 합동참모본부는 15분이라는 글자에 볼펜으로 'ㄴ'자를 그려넣어 9시 45분으로 고쳐놓았다. 당시 합참의장은 저녁회식에서 술을 마시고 만취상태에 있어, 실제로 합참본부 지휘통제실에 보고가 전해진 시각은 밤 9시 45분이었다.

그 결과 해군과 해경이 사고현장으로 출동한 시각도 늦춰져 사고가 발생한 때로부터 무려 1시간 10분이 지난 뒤에야 해군 고속정 다섯 척과 해경 501함이 사고현장에 나타났다. 매우 이례적인 늑장대응이었다. 이처럼 합동참모본부가 사고발생 시각을 조작한 것과 해군과 해경이 사고현장에 늦게 나타난 것은 콜럼비아호가 상황을 서둘러 수습하고 사고현장을 빠져나갈 수 있도록 시간적 여유를 주기 위한 조치였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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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은 먼저 사고현장 일대를 차단하기 위해 함수를 사고현장에서 6.4km나 떨어진 먼 곳으로 끌어다 놓았다. 따라서 언론들의 취재활동은 3월 27일부터 사흘 동안 함수가 침몰한 엉뚱한 곳에서 벌어졌고, 그 사이에 미군은 함미가 침몰한 사고현장에서 콜럼비아호 파편을 수거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즉각 7함대 상륙군사령관을 사고현장 지휘관으로 임명하는 특별대책을 강구했다. 1,600명이 넘는 방대한 병력과 각종 군사장비들을 사고현장에 집중 투입했으며, 특히 제25해상전투헬기대대 병력을 동원해 씨호크라고 불리는 다목적 군용헬기가 25일 동안 총 350회 이상 출격했다. 콜럼비아호 잔해들을 실어나른 것이다. 

당시 7함대 홍보실의 보도 자료에는 사고현장에서 다목적 군용헬기가 들것을 긴 줄에 매달아 해수면으로 내리는 장면이 찍힌 사진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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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적십자 표식을 한 미국군 의료헬기와 적십자 표식을 한 병사가 갑판에서 대기하는 장면도 찍혀 있다. 이런 사진들은 사망한 승조원들을 바다에서 인양하는 장면으로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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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구조작업 중 순직한 한준호 준위의 영결식 때에는 모든 미국 전함들이 일제히 1분 동안 애도 경적을 울리고, 현장 지휘관 리처드 랜돌트, 하퍼스 페리호 함장 에드 톰슨, 제11상륙대대 함장 마크 웨버가 바다쪽을 향해 도열하여 거수경례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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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대사관도 4월 26일부터 29일까지 5일 동안 조기(弔旗)를 게양했다. 이와 같은 이례적인 애도행위는 미국군이 사망한 경우에만 있을 수 있는 행동이다. 

미 해군 보도 자료에 따르면 콜럼비아호는 여섯 달 동안 수행한 작전을 마치고 복귀했다. 하지만 천안함 사고가 일어난 3월 26일부터 하와이 모항에 복귀한 5월 3일까지 37일 동안 콜럼비아호가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PicsArt_04-04-11.44.38.jpg타이타닉호 생존 부선장이 공개한 침몰 이야기
【인신환 칼럼】심청전과 세월호의 '천지개벽'
【세월호】세월호와 솔개
【세월호】승객을 버린 선장과 백성을 버린 선조! 
【세월호】욕심이 부른 세월호 참사, "탈출자 외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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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年03月30日

타이타닉호 생존 부선장이 공개한 침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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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해안, 타이타닉호의 마지막 모습
1912년 4월 14일은 공포의 날이었다. 사고로 1,514명이 사망했고 710명이 구조되었다. 사고 당시 38세였던 타이타닉호의 이등 항해사 찰스 래히틀러씨는 구조된 승객을 책임지기 위해 선원 중 유일하게 구조된 승무원이었다. 아래는 래히틀러 씨의 타이타닉호 참사의 자세한 사정을 담은 17페이지 분량의 회고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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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장 에드워드 스미스
"선장이 침몰을 앞두고 여성과 아이를 먼저 구조하라는 명령을 내리자, 많은 여성 승객들이 가족과의 이별 대신 남아있기를 선택했습니다.

저는 높은 소리로 "여성과 아이들은 이리 오세요!" 라고 불렀지만, 가족을 버리고 혼자 구명보트에 오르려는 여성과 아이는 몇 명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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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래히틀러(오른쪽)
래히틀러씨는 "살아 있는 동안 그 밤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첫 구명보트가 바다로 내려가고, 저는 갑판 위에 있는 한 여성에게 말했습니다. "부인, 어서 구명보트에 오르세요!"

그녀는 뜻밖에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아니요, 저는 배에 남겠어요." 이 말을 들은 여성의 남편이 "그러지말고 어서 타요! 여보!"라고 말하자, 여성은 차분한 어조로 대답했습니다

"혼자 가지 않겠어요. 당신과 함께 이 배에 남을거에요." 그것이 제가 본 그 부부의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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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스터 부부
애스터(당시 세계 최고 부자)씨는 임신 5개월 된 아내를 구명보트에 태워 보내며 갑판 위에 앉아, 한 손에는 강아지를 안고 다른 한 손에는 시가 한 대를 피우면서 멀리 가는 보트를 향해 외쳤습니다.

"사랑해요 여보!"

승객들을 대피시키던 선원 한 명이 애스터 씨에게 보트에 타라고 하자, 애스터 씨는 일언지하에 거절했습니다.

"사람이 최소한 양심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나서 마지막으로 남은 한 자리를 곁에 있던 한 아일랜드 여성에게 양보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배의 파편들에 의해 찢겨진 애스터 씨의 시신을 생존자 수색 중이던 승무원이 발견했습니다.

그는 타아타닉호 10대도 만들 수 있는 자산을 가진 부호였지만, 살아남을 수 있는 모든 기회를 거절했습니다. 자신의 목숨으로 양심을 지킨 위대한 사나이의 유일한 선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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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겐하임
성공한 은행가였던 구겐하임 씨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순간에도 화려한 이브닝 드레스로 갈아 입으며 이처럼 말했습니다.

"죽더라도 체통을 지키고 신사로 죽겠습니다."

구겐하임 씨가 아내에게 남긴 쪽지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이 배에는 나의 이기심으로 구조받지 못하고 죽어간 여성은 없을 것이오. 나는 금수만도 못한 삶을 살 바에야 신사 답게 죽을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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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트라우스 부부
미국 메이시즈(Macy's)백화점 창업자 슈트라우스 씨는 세계 2번째 부자였습니다. 그가 어떤 말로 설득해도 아내 로잘리 씨를 구명보트에 태우지 못했습니다.

아내 로잘리 씨는 "당신이 가는 곳에 항상 함께 갔어요. 세상 어디든지 당신과 함께  갈 거예요"라며 남편을 두고 배에 오르는 것을 완강히 거부했습니다.

8번 구명보트의 책임 선원이 67세의 슈트라우스에게 "누구도 어르신이 보트를 타는 것을 반대하지 않을 것입니다"라며 구명정 탑승을 권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슈트라우스 씨는 단호한 말투로 "다른 남성들보다 먼저 보트에 타라는 제의는 거절하겠습니다"라며 생사의 순간에도 초연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63세의 아내 로잘리 씨의 팔을 잡고 천천히 갑판 위의 의자에 앉아 최후의 순간을 기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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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Macy's 백화점 벽에 걸려 있는 기념비
현재 뉴욕 브롱크스에 슈트라우스 부부를 기리는 기념비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습니다. '바닷물로 침몰시킬 수 없었던 사랑.'

프랑스 상인 와트열 씨는 두 아이를 보트에 탄 여인들에게 부탁하고 배 위에 남아 아이들과 작별했습니다. 두 아들은 이렇게 구조되었고 세계 각지의 신문사들이 어머니를 찾을 수 있도록 연달아 사진을 실어주어 어머니와는 재회할 수 있었지만, 배에 남겨진 아버지와는 다시는 볼 수 없었습니다.

남편과 미국으로 신혼여행을 떠난 리더파스는 남편을 꼭 껴안고 혼자 살아남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남편은 주먹으로 그녀를 기절시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신이 돌아왔을 때 그녀는 이미 바다 위에 떠 있는 구명보트 안이었습니다. 그녀는 평생 재가하지 않았으며 남편을 그리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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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자 Miss Mabel Francatelli의 편지
그리스 로잔의 생존자모임에서 스미스 부인이 자신에게 자리를 양보한 여성을 회고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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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제 두 아이가 구명보트에 오르자, 만석이 돼서 제 자리는 없었습니다. 이때 한 여성 분이 일어나서 저를 구명보트로 끌어당기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올라오세요. 아이들은 엄마가 필요합니다!"

그 대단한 여성은 이름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그녀를 위해 '이름없는 어머니'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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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태닉 희생자들 121명의 묘지
희생자 중에는 억만장자 아스테드, 저명 신문가 헴스테드, 육군 소령 바트, 저명 엔지니어 루오부어 등 사회의 저명인사가 많았지만, 이들 모두 곁에 있던 가난한 농촌 부녀들에게 자리를 양보했습니다.

타이타닉호의 주요 승무원 50여 명도 구조를 책임졌던 이등 항해사 래히틀러씨 외에는 전부 자리를 양보하고 배와 함께 생을 마감했습니다.

새벽 2시, 각자 도망가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1번 전산사 존 필립스는 여전히 전산실에 앉아 마지막 순간까지 'SOS'를 입력하며 자신의 보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선미가 물에 가라앉기 시작했을 때, 삶과 죽음의 마지막 순간, 사람들이 서로에게 외쳤습니다.

"당신을 사랑해요! 당신을 사랑해요!"

그날, 우리 모두 위대한 사랑이 무엇인지 보여줬습니다. 제가 당신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아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예외도 있었습니다. 일본 철도원 차장인 호소 노텍스트 씨는 여장을 한 채 여성과 어린이들로 채워진 10번 구명보트에 올랐습니다. 그는 귀국 후 바로 퇴직당했습니다. 모든 일본 신문사와 여론은 그를 공개적으로 비난했으며, 그는 십여 년 뒤 후회와 수치로 가득 찬 삶을 마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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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소노 마사부미(細野 正文)
호소노 마사부미는 타이타닉에 탑승했던 유일한 일본인이었습니다.그는 메이지(明治)시대의 철도관료로 러시아에서 2년간의 유학을 끝내고 지인이 있는 영국을 방문후 뉴욕으로 가기 위해 타이타닉에 탑승하게 됩니다.

타이타닉이 빙산과 충돌한 그때, 승무원의 외침에 깨어나 구명조끼를 받아든 그는 구명정 근처까지 갔다가 보트가 부족한 것을 보고 좌절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운좋게 눈앞의 구명정에 두명이 더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생겼고 그는 기적처럼 살아남았습니다.

구조 후 미국에 도착했을때 그는 '행운의 일본인'으로 명명되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유일한 일본인이라는 것이 불행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얼마 후 도쿄에서 발행된 잡지에 그의 이야기가 실리면서 그는 나락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잡지에는 영국의 윤리교수 로렌스 비슬리 (Lawrence Beasley)가 "사람들을 밀쳐내고 보트에 탄 비열한 일본인이 있었다"라는 증언이 실려 있었습니다. '창피한 일본인'이라는 비난과 함께 그는 직장을 잃었고 언론에 의해 오랫동안 겁쟁이로 비난받습니다.

'일본 남자라면 명예롭게 죽어서 돌아와야 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호소노는 평생 비난속에 살면서도 변명 한마디 없이 자식들에게도 많은 이야기를 남기지 않은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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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존 조그힌(Charles John Joughin)
찰스 존 조그힌(Charles John Joughin)은 타이타닉의 제빵사였습니다. 배가 빙산에 충돌했을때 취침 중이던 조그힌은 급히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구명정을 내리는 작업에 동참하였 승객들에게 빵을 나눠주며 패닉에 빠진 사람들을 진정시켰습니다. 또한 수십개의 의자를 바다로 집어던져 사람들이 잡고 떠 있을 수 있게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이런 헌신적인 행동 덕에 구명정에 탑승하라는 권유를 받습니다. 하지만 더 많은 사람을 구하기를 바란다며 그는 그 기회를 사양합니다. 이제 죽음을 직감한 그는 '술이나 먹자' 라는 결심을 하고는 술을 꺼내 퍼마시기 시작합니다. 마지막 구명정이 떠나고 결국 타이타닉은 침몰했습니다.

조그힌은 거의 두시간동안 차가운 바다속에 몸을 담그고 있었는데 그의 주장에 따르면 술 덕분에 거의 추위를 느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물 위에 떠있는 생존한 승객들을 구하기 위해 돌아온 구명정에 의해 구조되었는데, 실은 머리가 물에 젖지 않아 저체온으로 죽음에 이르지 않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술이 나를 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1912년 타이타닉호를 기리는 자리에서 타이타닉호를 건조한 선박회사 White Star Line는 희생자들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남성들의 희생을 요구하는 해상 규칙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단지 그들의 행동은 약자들에 대한 배려이자, 그들의 개인적인 선택이었습니다."
【인신환 칼럼】심청전과 세월호의 '천지개벽'
【세월호】세월호와 솔개
【세월호】승객을 버린 선장과 백성을 버린 선조! 
【세월호】욕심이 부른 세월호 참사, "탈출자 외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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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年03月29日

【서적】강신호 저 '생활한자 3000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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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쏘시오그룹(옛 동아제약) 강신호 회장

"한자가 경쟁력이다."

한자 애호가로 유명한 동아쏘시오그룹(옛 동아제약) 강신호 회장이 '생활한자 3000자'를 펴냈다. '생활한자 3000자'는 훈독과 음독은 물론 외국인도 읽을 수 있게 영어, 중국어, 일본어 발음까지 추가했다.

여러 방면에서 재주가 뛰어나 '팔방미인'으로 통하는 강 회장은 일본어, 영어, 독일어, 중국어 등 외국어에 매우 능통하다. 특히 그가 한자를 강조하는 이유는 한글은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는데 반해 동음이의어가 많아 그 뜻이 전혀 다른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한자를 숙지하는 것이야말로 우리말을 정확히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평소 이러한 이유로 한자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강 회장의 방침에 따라 동아제약은 입사 지원서를 한자로 기입해 제출하도록 하고 있고, 대리 승진 시험 때에는 반드시 한자 시험에 통과해야 한다. 현재 한자 자격증을 우대하는 곳은 국가정보원, LH(한국토지주택공사), 한국정책금융공사 등 공공기관 12곳과 삼성전자, 삼성물산, 우리은행 등 10개 기업체이다. 또 입시 때 우대하는 대학은 49군데이며 학점 취득이나 졸업 때 우대하는 곳은 18군데이다.

전문가들은 한글의 우수성과 한자의 장점을 결합해 언어생활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권한다. 하지만 한·중·일 삼국 중 오직 한국만이 한자와 멀어지는 길을 걷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계황 전통문화연구회 회장은 "결국엔 삼국(三國)이 하나라고 봐야 한다"며 "한자는 중국 글자니까 사용하면 안 되고, 한글을 사용하는 것이 애국하는 길이라는 논리로 한자를 버리면 삼국 중 한국만 도태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 책의 수익금은 전액 수석문화재단을 통해 사회봉사기금으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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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서적】김슬옹 저 '훈민정음 해례본 입체강독본'
【김주호 칼럼】훈민정음 창제원리 복원이 한글 세계화 열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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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年03月25日

【植村裁判を支える市民の会】櫻井よしこ氏の「捏造決めつけ」の根拠否定され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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地裁に向かう植村さんと弁護団
元朝日新聞記者で慰安婦報道に関わった植村隆氏(59)が、記事を「捏造」と書かれ名誉を傷つけられたとして、ジャーナリストの櫻井よしこ氏や出版社3社に損害賠償などを求めた訴訟で、植村氏と櫻井氏双方の本人尋問が23日、札幌地裁(岡山忠広裁判長)であった。

この尋問で、櫻井氏は、いくつかの記述に誤りがあることを認めた。この記述は捏造決めつけの根拠となるものであるため、植村氏に対する誹謗中傷が根も葉もないものであることがはっきりした。櫻井氏本人がウソを認めたことにより、櫻井氏の根拠は大きく揺らぎ、崩れた。植村裁判は終盤のヤマ場で、核心部分に関わる重大な展開をみせた。

植村氏は朝日新聞記者だった平成3年8月、元慰安婦が「『女子挺身隊』の名で連行された」とした大阪本社発行の記事について、「連れていかれた所で監禁され意に反して慰安婦にさせられた。だまされて戦場に連れて行かれた。一連の行為で『連行』と書いた」とした。また、「当時の韓国では慰安婦が『挺身隊』を意味していた」と証言し、意図的に慰安婦と挺身隊を結びつけたのではないと主張した。

一方、櫻井氏は、後に作り話と判明した吉田清治氏の「女子挺身隊の名のもとで強制連行された」に呼応する形で植村氏の記事が書かれたと主張。「植村氏は(吉田氏の)作り話の被害者が実際にいると書いた」とその影響力の大きさを指摘した上で「植村氏は公開討論の呼びかけにも応じてこなかった」と批判した。

次回は7月6日(金)。この日の最終弁論で結審することにな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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記者会見する櫻井よしこ氏
【訪問記】在韓日本人会「ライラック」、韓国・大丘「慰安婦歴史館・ヒウム」訪問
【在韓日本人会「ライラック」】慰安婦問題を考えるアジア連帯会議を終えて
【慰安婦謝罪談話】「一言で千両の借りを返す」日本には珍しい良心ある政治家
【植村裁判を支える市民の会】慰安婦記事「櫻井氏らの「捏造」決めつける根拠なし」元ソウル特派員・喜多義憲氏が証言
【植村裁判を支える市民の会】不当なバッシングを許さない!
【在韓日本人会】「ナヌム(分け合い)の家」訪問、奉仕活動
【在韓日本人会】慰安婦問題を抜本的に解決する究極の解決策はあるのか?
【真の平和の道Ⅲ】易地思之(相手の立場に立って考える)
【南北分断と統一】70年捕虜及び帰還時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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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年03月19日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지구촌 전쟁종식 평화 선언문(DPCW) 2주년 기념식 "DPCW 10조 38항 국제법 제정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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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전쟁종식 평화 선언문(DPCW)' 2주년 기념행사
日本語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 대표 이만희)이 주최하고 (사)세계여성평화그룹(IWPG)과 국제청년평화그룹(IPYG)이 공동주관한 '지구촌 전쟁종식 평화 선언문(DPCW)' 공표 2주년 기념행사가 '평화세계 구축과 정의 실현을 위한 외침'이라는 주제로 3월 14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렸다.

이 행사에는 뚜라 땃 우 마웅 주한 미얀마 대사, 롱 디망 주한 캄보디아 대사, 아비다 이슬람 주한 방글라데시 대사, 라울 실베로 주한 파라과이 대사, 국제법 제정 평화 위원회, 한국노벨재단, 임덕규 월간 디플로머시 회장, 김문구 국가유공자협회 회장 등 1천여 명의 국내외 인사들이 참석했다. 또한 인터넷 중계를 통해 참관한 71개국 166개 도시 11만 6천여 명이 DPCW 국제법 제정에 지지를 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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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전쟁종식 평화 선언문(DPCW)' 10조 38항 공표
2016년 3월14일 공표된 DPCW는 UN헌장과 무력의 위협 및 사용 금지, 전력 및 군대 축소, 평화문화 전파 등 평화를 이루는 핵심 원칙을 담은 10조 38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년 7월에는 중미의회의 회원국인 과테말라, 온두라스, 니카라과, 엘살바도르, 도미니카공화국이 DPCW를 지지하는 결의문을 채택하고 유엔에 통보한 바 있다. 올해는 구속력 있는 국제법 제정을 위해 유엔총회 상정을 목표로 추진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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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회사하는 HWPL 이만희 대표
이만희 HWPL 대표는 개회사에서 평화 세계의 구축은 지구촌 모든 사람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강조하고, "가만히 앉아서 평화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모두 한 마음 한 뜻으로 인류와 지구를 지켜야 한다. 우리가 평화의 사자가 되어 전쟁종식과 평화를 이루어 후대의 유산으로 남겨주자"고 호소했다.

전쟁 없는 평화의 세계를 후손에게 유업으로 물려주기 위해 설립된 HWPL은 UN경제사회이사회로부터 인정받은 NGO로서 현재 170개국에 지부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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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살바도르에 건립된 HWPL 평화기념비
이러한 HWPL의 설립취지에 따라 이만희 대표는 지난 2014년 종교와 정치의 분쟁지역인 필리핀 민다나오섬을 방문하여 가톨릭과 이슬람의 평화협정을 주선한 바 있으며, 그 뜻을 기리기 위해 평화공원과 기념비가 조성되고 모로이슬람해방전선 주둔지에는 세계평화선언문 전문이 새겨진 HWPL평화기념비가 건립되었다. 이후 미국, 남아프리카공화국, 필리핀, 엘살바도르, 중국 등 해외 각지에서도 세계평화선언문 선포일인 5월 25일과 종교대통합 만국회의 개최일인 9월 18일을 HWPL의 날로 지정하고 평화기념비를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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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38개 학교가 HWPL 평화학교로 지정됨
또한 이스라엘, 스리랑카, 코소보, 인도, 필리핀, 중국, 미얀마, 인도네시아의 138개 학교가 HWPL 평화학교로 지정되고 평화교육을 위한 MOU를 체결했다. 특히 올해 1월에는 필리핀 고등교육위원회와 MOA를 체결하여 필리핀 각 대학에서 평화교육을 실시하기로 했으며, 인도네시아의 대학 총장과 학장들이 HWPL 평화학교의 교사로 임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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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전 대통령이 보낸 축하 메시지
한편 이날 행사를 위해 오바마 전 대통령은 축하의 메시지를 보내 HWPL의 활동을 격려했다.

"평화와 정의를 위한 HWPL의 변함없는 행보는 제게도 큰 귀감이 되었습니다. 변화는 쉽게 찾아오지 않으며 때로는 그 과정 또한 일직선이 아닙니다. 두 걸음 전진하기 위해 한 발 물러설지언정 역사는 자유와 정의 그리고 번영의 길로 나아가고 있음을 굳게 믿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HWPL과 함께 다양한 배경과 삶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 외치고 더 높은 이상을 위해 일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지구촌을 위해 실천하는 여러분들의 모든 일에 저와 미셸도 기쁘게 동참할 것입니다."
左からイム・ドクギュ会長、プラビン・パレク代表、ツラ・タッ・ウ・マウン大使.jpg왼쪽부터 임덕규 회장, 프라빈 파렉 대표, 뚜라 땃 우 마웅 주한미얀마 대사
이어 축사에서는 세계국제법협회 62대 회장을 역임한 임덕규 월간 디플로머시 회장이 "국제법을 통한 세계평화야말로 가장 현실적이며 실현가능성이 높은 주장이다"며 "큰 일을 추진하는 이만희 대표에게 용기를 드린다는 의미에서 기립박수를 부탁한다"고 청중들에게 주문해 회장을 뜨겁게 달궜다.

프라빈 파렉 인도변호사연합회 대표는 "이만희 대표는 6.25전쟁 때 특전사로 참전하여 전쟁의 참혹함을 직접 체험하고 평화의 필요성을 절실히 깨달았다. 지금이야말로 세계평화가 가장 절실한 때이다. 대량살상 무기가 그 어느 때보다도 위협적이다. 누군가 보턴을 잘못 누르면 인간도 동물도 살아남지 못한다. 이런 무기들이 모두 제거되도록 각처에서 평화를 위해 매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뚜라 땃 우 마웅 주한 미얀마 대사는 "평창올림픽은 내실 있는 평화를 구축하고 궁극적으로는 한반도 통일까지 이루어낼 수 있다고 본다. 국가의 활동은 평화 없이 이뤄질 수 없으며 경제발전에도 필수적이다. HWPL이 DPGW을 현실화해 모든 전쟁을 종식시키고 세계인들과 함께 평화를 이뤄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격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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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WPG 윤현숙 본부장
IWPG 윤현숙 본부장은 "우리 아이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고 전쟁 없는 세상에서 살 수 있기를 바란다"며 "세계 37억 여성이 IWPG와 하나 되어 목소리를 높여 DPCW를 지지하자"고 호소했다. 또한 "DPCW 10조 38항을 자세히 읽어 달라. 어떠한 사심도, 불순한 사상도 전혀 들어있지 않은 가장 순수한 평화의 재료이자 평화의 해답이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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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자유를 위한 종교지도자 공동성명' 채택
이어서 기독교, 불교, 유교, 힌두교 등 6개 종단 대표가 '종교 자유를 위한 종교지도자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서는 ▲종교는 하늘의 가르침이다 ▲종교와 정치는 분리되어야 한다 ▲종교 탄압과 인권 탄압을 일으키는 강제개종은 근절되어야 한다 ▲종교 차별과 종교 극단주의 근절을 위해 DPCW 9조를 현실화하는 강제개종금지법 제정을 촉구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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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대한민국평화상'을 수상하는 이만희 대표
이날 이만희 대표는 한국노벨재단(총재 임기옥)으로부터 '2018년 대한민국평화상'을 수상했다. 이만희 대표는 "독일은 정치나 법으로 통일된 게 아니라 동독의 작은 성당에서 비롯됐습니다. 저는 북한에서 평화운동의 마침표를 찍기로 다짐했습니다. 큰 일을 하다보면 목숨을 잃을 수도 얻을 수도 있습니다. 부산 유엔공동묘지에 잠들어 있는 동료들에게 "그대들의 소원을 목숨걸고 이루어 드리겠노라"고 약속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들의 꿈도 생각도 노력도 오직 평화를 위해 바쳐야 할 것입니다"라고 호소했다.

'종교 자유를 위한 종교지도자 공동성명' 전문

하나. 종교는 하늘의 가르침이다.
종교 지도자는 경서의 가르침대로 생명을 존중하고 사랑해야 하며, 평화를 실현해야 한다.

하나. 종교와 정치는 분리되어야 한다.
서로의 이권을 위해 종교와 정치가 하나 되어 편향적 치리를 하기 때문에, 종교가 부패하고 불법이 성해진다. 이로 인해 두 가지 국민, 두 가지 시민을 만들게 된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고 명시되어 있다. 정치인도 종교인도 하늘의 법과 땅의 법을 지켜야 한다.

하나. 종교 탄압과 인권 탄압을 일으키는 강제개종은 근절되어야 한다.
DPCW 8조, 종교의 자유는 타인으로부터 종교를 강요 받지 않을 자유이다. 인권유린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종교를 강제적으로 바꾸게 하는 것은 반사회적 범죄 행위이다.

하나. 종교 차별과 종교 극단주의 근절을 위해 DPCW 9조를 현실화하는 강제개종금지법 제정을 촉구한다.
DPCW 9조, 종교적 신념으로 폭력 행위가 벌어진다면 국가에서는 그 행위에 대한 기소 및 처벌이 따르는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 정부는 종교 차별과 강제 개종을 더 이상 묵과해서는 안 되고, 강제개종금지법이 제정되도록 해야 한다.
【평창올림픽 응원합니다】신천지예수교회 창립 35주년 기념 심요한 도쿄지부장 인터뷰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제2주년 9·18 국제법 제정 종교대통합 만국회의 기념식' 개최
【세계여성평화그룹(IWPG)】세계여성의 날 평화캠페인 "평화의 꽃이 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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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の文化世界平和光複(HWPL)】「地球村戦争終息平和宣言文(DPCW)」ニ周年、六大宗教代表共同声明「DPCW十条三八項を国際法として制定しよ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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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地球村戦争終息平和宣言文(DPCW)」2周年記念行事
한국어
天の文化世界平和光複(HWPL、代表イ・マニ)が主催し、(社)世界女性平和グループ(IWPG)と国際青年平和グループ(IPYG)が共同主管した「地球戦争終息平和宣言文(DPCW)」公表2周年記念行事が「平和世界構築と正義実現の叫び」をテーマに3月14日、ソウル・ロッテホテルで開かれた。

このイベントには、ツラ・タッ・ウ・マウン駐韓ミャンマー大使、ロン・ディマン駐韓カンボジア大使、アビタ・イスラム駐韓バングラデシュ大使、ラウル・シルベロ駐韓パラグアイ大使、国際法制定平和委員会、韓国ノーベル財団、月刊ディプロマシーイム・ドクギュ会長、国家有功者協会キム・ムング会長など国内外より1000人が参加した。又、インターネットを通じて71カ国166カ都市のDPCW支持者11万6000人に同時中継され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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地球村戦争終息平和宣言文(DPCW)10条38項公表
2016年3月14日に公表されたDPCWは、UN憲章をはじめ武力の脅威と使用の禁止、戦力と軍隊の縮小、平和文化伝播など、平和を築くための重要な原則を盛り込ん10条38項で構成されている。昨年7月には、中米議会の加盟国であるグアテマラ、ホンジュラス、ニカラグア、エルサルバドル、ドミニカ共和国がDPCWを支持する決議文を採択して国連に知らせた。今年は、拘束力のある国際法として制定するために国連総会上程を目指してい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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開会の辞を述べるHWPLイ・マニ代表
イ・マニHWPL代表は開会の辞で、平和世界の構築は地球上の全ての人間の責任であると強調し、「じっと座って平和を待つのではなく、私たちは一つの心、一つの志をもって人類と地球を守らなければならない。皆平和の使者となって、戦争終息と平和を成し遂げ、後代に遺産として残しましょう」と力説した。

戦争のない平和世界を後代に残すという趣旨で設立されたHWPLは、UN経済社会理事会によって協議資格を認められた国連認定NGOであり、現在170カ国に支部を置いて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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エルサルバドルに建立されたHWPL平和記念碑
このようなHWPLの趣旨に基づいてイ・マニ代表は、2014年、宗教と政治の紛争地域であるフィリピンのミンダナオ島を訪れ、カトリックとイスラムの平和協定を仲裁した。これを記念に平和公園と記念碑が建てられ、モロ・イスラム解放戦線の駐屯地にも世界平和宣言の全文を刻んだHWPL平和記念碑が建立された。また、米国、南アフリカ、フィリピン、エルサルバドル、中国など海外各地でも、世界平和宣言の宣言日である5月25日と宗教大統合万国会議の開催日である9月19日をHWPLの日に制定し、平和記念碑を建て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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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界一三八箇所学校がHWPL平和学校に指定された
また、イスラエル、スリランカ、コソボ、インド、フィリピン、中国、ミャンマー、インドネシアなど138カ所の学校はHWPL平和学校として指定され、平和教育MOUを締結した。特に今年1月には、フィリピン高等教育委員会とMOAを締結し、フィリピンの各大学で平和教育を実施する予定であり、インドネシアの大学総長や学長らをHWPL平和学校の教師として任命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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オバマ前大統領のお祝いメッセージ
一方、オバマ大統領はこの日の行事のためにお祝いのメッセージを送り、HWPLの活動を激励した。

「平和と正義を築くためのHWPLの変わらぬ歩みは、私にとって大きな手本となりました。変化は簡単に訪れるものでもなく、時にはその過程も一直線ではありません。二歩前進するために一歩下がる時もありますが、歴史は自由と正義と繁栄に向かっていることを固く信じています。しかし、これはただで与えられるものではなく、HWPLと多様な背景と生き方を持っている人々が一つになって共に叫び、より高い理想に向かって進んでこそ実現可能なのです。世界のために実践する皆さんのすべての活動に私とミシェルも喜んで同参します。 」
左からイム・ドクギュ会長、プラビン・パレク代表、ツラ・タッ・ウ・マウン大使.jpg左からイム・ドクギュ会長、プラビン・パレク代表、ツラ・タッ・ウ・マウン大使
続いて、世界国際法協会の62代目会長を務めた月刊ディプロマシーイム・ドクギュ会長より祝辞が述べられた。「国際法による世界平和実現こそ最も現実的且つ実現可能な主張である」とし「偉業に挑むイ・マニ代表にエールを送るという意味で皆起立して拍手しましょう」と聴衆に呼びかけ、会場を盛り上げた。

インド弁護士連合会プラビン・パレク代表は、「イ・マニ代表は、韓国戦争時に特戦団の一員として参戦し、戦争の残酷さを自ら体験して平和の必要性を痛感した。今こそ世界平和が最も必要な時です。もし誰かがボタンを誤って押せば人間も動物も生き残ることができない大量破壊兵器の脅威にさらされています。そういう武器を全て無くすために、それぞれの立場で平和のために真剣に働きかければならなりません」と力説した。

ツラ・タッ・ウ・マウン駐韓ミャンマー大使は「平昌五輪を通じて実質的な平和の礎が築かれ、その勢いで韓半島統一まで突き進んでいくと思います。国家の経済発展のために平和は不可欠です。HWPLがDPGWを現実化し、戦争を全て終息させ、世界の人々と共に平和を成し遂げていきますように」と激励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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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WPGユン・ヒョンスク本部長
IWPGユン・ヒョンスク本部長は、「子供たちが未来への希望を抱いて、戦争のない世界で生き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したい」とし「世界の37億の女性はIWPGと一つになってDPCWを支持していきましょう」と訴えた。また、「DPCW十条三八項をお読みください。邪心も不純な思想も全く入っていない純粋な平和の材料であり、平和の答えです」と強調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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六大宗教代表、宗教の自由のための共同声明
続いて、キリスト教、仏教、儒教、ヒンズー教など六大宗教代表は「宗教の自由のための宗教指導者共同声明」を発表した。声明は、▲宗教は天の教えである▲宗教と政治は分離されなければならない▲宗教弾圧と人権弾圧を招く強制改宗を根絶しなければならない▲宗教差別と宗教極端主義の根絶のために、DPCW九条を現実化する強制改宗禁止法の制定を促すという内容を盛り込ん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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イ・マニ代表、韓国ノーベル財団「2018大韓民国平和賞」受賞
この日、イ・マニ代表は韓国ノーベル財団(総裁イム・ギオク)より「2018年大韓民国平和賞」を受賞した。最後に、イ代表は「ドイツは政治や法で統一されたのではなく、東ドイツの小さな聖堂から始まった。私は、北朝鮮に行って平和運動のピリオドを打つ覚悟です。大きな使命を果たそうとすれば命を失うこともある。私は、釜山の国連墓地で眠っている仲間たちに「君たちの願いを必ず成し遂げる」と約束しました。私たちの夢も考えも努力も全て平和のために捧げましょう」と訴えた。

「宗教の自由のための宗教指導者共同声明」全文

一、宗教は天の教えである。
宗教指導者は、経書の教えに従って生命を尊重し愛さなければならず、平和を実現しなければならない。

一、宗教と政治は分離されなければならない。
互いの利権のために宗教と政治が一つになり偏った政治を行ったために、宗教が腐敗し不法が横行している。その結果、二つの国民、二つの市民に分かれた。韓国の憲法には「宗教と政治は分離される」と明記されています。政治家も宗教人も天地の法を守らなければならない。

一、宗教弾圧と人権弾圧を招く強制改宗を根絶しなければならない。
DPCW8条にある宗教の自由とは、他人から宗教を強いられない自由である。人権を蹂躙するやり方で強制的に改宗することは反社会的犯罪行為である。

一、宗教差別と宗教極端主義を根絶するために、DPCW九条を現実化する強制改宗禁止法の制定を求める。
DPCW9条は、宗教的信念を理由に暴力行為を行う場合、国家がその行為に対して訴追や処罰など適切な措置を取らなければならないと明示している。政府は、これ以上宗教差別や強制改宗を容認してはならず、強制改宗禁止法を制定しなければならない。
【平昌五輪を応援します】新天地イエス教会創立35周年記念、シム・ヨハン東京支部長インタビュー
【天の文化世界平和光複(HWPL)】「第2周年9・18国際法制定・宗教大統合万国会議記念式」開催
【世界女性平和グループ(IWPG)】国際女性デー平和キャンペーン「平和の花が咲きま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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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기】재한일본인회 '라일락', 대구 위안부역사관 '희움' 방문

20180317_163215~2.jpg日本語
3월 17일 재한일본인회 '라일락' 회원 여섯 명이 대구에 있는 위안부역사관 '희움'을 찾았다. 꽤 오래된 건물들이 많이 남아 있는 동네라서 그런지 회원들은 잠시 길을 헤매다가 빙 돌아 겨우 박물관에 도착한 다음, 한 시간 가량 관내를 견학한 뒤 마침내 이인순 관장을 만날 수 있었다.

에미 : 수고하십니다. 박물관 운영이 그리 쉽지는 않을텐데 어떤가요?

관장 : 대구는 매우 보수적인 지역입니다. 이런 곳에서 위안부역사관을 열고 지금까지 운영해왔다는 것은 정말 '기적 같은 일'입니다. 공사 자금을 만들기 위해 1년 이상 거리에서 모금하기도 했습니다.

에미 : 지금까지 일본의 역대 총리들이 공식적으로 몇 번이나 사과를 표명한 적이 있는데 그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관장 : 확실히 말해 일본 총리들의 사과는 한국의 입을 막기 위한 형식적인 사과에 불과했지 내용은 없었다고 봅니다. 독일에서는 나치나 히틀러를 찬양하는 사람을 공적인 위치에 세우지도 않을 뿐더러, 만일 공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이 그런 발언을 하면 처벌합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총리는 사과하는데 다른 정치인들이 공적인 자리에서 태연히 그에 반하는 말들을 서슴없이 하기 때문에 국가가 진정으로 사과한 것이 아니라고 보는 겁니다.

에미 : 그럼,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관장 : 먼저 범죄에 대한 책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일본 정부가 위안소를 만들고 운영했다는 사실과 위안부 피해자들 본인의 의지가 아니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또 피해자의 숫자 등 아시아 각국의 피해 상황을 정확히 파악해 발표해 줘야 합니다.

그리고 더 이상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줘야 합니다. 위안부에 대한 내용을 역사 교과서에 기술하고 국민 교육을 실시하고 위령비와 기념관 등을 세워 추모제도 지내야 합니다.

에미 : 그렇게 벽이 높으면 일본 정부와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고 할머니들이 살아계시는 동안 해결되기는 어렵지 않을까요?

관장 : 일본인이나 한국인들으로부터 "왜 일본의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느냐"고 무수히 비판을 받아왔지만, 이것이 바로 할머니들이 바라는 '사과'이기 때문에 양보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에미 : 피해자들과 개인적으로 만날 수 있습니까?

관장 : 경북 지역 피해자들은 공공시설이 아니라 가족과 함께 살고 있고, 신분이 노출되는 것을 꺼리기 때문에 개인 면회는 어렵다고 봅니다. 또 국가가 아니라 개인이 피해자에게 사과하는 것도 별로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연화보살 :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지만 할머니들과 만나 마음을 위로해 드리고 싶네요.

관장 : 지금은 저희들이 도와드릴 수 없지만 개인 면회라면 '나눔의 집'에 가셔서 알아보시는 게 좋을듯 합니다.

연화보살 : 오늘 만나 뵙게 되어 기쁩니다. 관장님은 심기가 강한 분이고 가슴 속에 쌓여 있던 것들을 확실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서로 기탄없이 하고 싶은 말들을 다 했으니 여기까지 온 보람이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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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을 마치고〜
에미 : 이 분들이 일본에 요구하는 내용이 그렇게 많을 줄 몰랐습니다. 하지만 할머니들도 같은 생각인지 궁금합니다. 정말 할머니들을 대변하고 있는지, 아니면 할머니들이 그 분들을 대변하고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연화보살 : 할머니들은 그렇게 어렵게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좋았다고 그렇게 느끼고 싶을 것입니다. 이 동네는 온통 한으로 맺혀 있는 동네입니다. 할머니들도 마치 공산주의자처럼 분노를 에너지로 삼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김금산 : 예전에 대구가 독립운동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뼛속 깊이 반일감정을 품고 있는 후손들이 아직도 영적인 독립운동에 정열을 불 태우고 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지금 시대정신이 남북통일이기 때문에, 언제까지나 한에 사로잡혀 멈춰 있으면,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고 맙니다. 반일감정만으로는 한이 쌓일 뿐 결코 해방되지 못 합니다.

일본은 과거지향적인 사과에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남북통일을 위해 거국적으로 협조해야만 합니다. 그리하여 과거의 실패를 만회해야 합니다. 그러면 독립운동가들의 소원도 이뤄지고 그들도 해방받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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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한일본인회 '라일락'】위안부 문제를 생각하는 아시아연대회의를 마치고
【위안부 사죄 담화】'말 한마디로 천냥 빚 갚는' 보기드문 일본 정치인
【한일 역사를 극복하고 우호를 추진하는 모임】위안부 문제에 대하여 진심으로 사죄합니다
【재한일본인회】'나눔의 집' 방문, 봉사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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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평화의 길 Ⅲ】역지사지(易地思之)
【남북분단과 통일】70년 포로 및 귀환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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